<카터>의 정소리는 "이름대로 살아진다"고 말했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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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의 정소리는 "이름대로 살아진다"고 말했다

경복궁에서 ‘쑥대머리’를 부르던 소리꾼이 북한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배우가 되었다. 이 한 문장 안에 담긴 그만의 고유한 드라마가 궁금했다. “이름대로 살아지나 봐요.” 정소리가 노래하듯이 대답했다.

ESQUIRE BY ESQUIRE 2022.09.22
 
데님 재킷 비비안 웨스트우드. 카디건 푸시버튼. 이어커프 빈티지 할리우드.

데님 재킷 비비안 웨스트우드. 카디건 푸시버튼. 이어커프 빈티지 할리우드.

 
촬영날 태풍 소식이 있어 걱정했어요.
저도요. 내심 각오하고 있었거든요. 어쩌면 두부를 며칠 더 먹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아, 식단 하시는구나.
네, 두부랑 달걀 으깬 거 조금 먹었어요.
준비를 많이 했군요.
최상의 컨디션으로 와야 그나마 덜 긴장할 것 같아서요.(웃음)
매거진 화보는 처음이죠?
네. 원피스도 입고 슈트도 입고. 오늘 진짜 원 풀었어요.
필모그래피를 쭉 보는데 현대적인 옷을 입고 나온 적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소리 씨의 작정하고 꾸민 모습이요.
안 그래도 촬영 시안 받아보고 너무 감사했잖아요. 저도 제 또래들이 입는 발랄한 옷 한번 입어보고 싶었거든요. 작품에서는 늘 유니폼이나 제복, 이런 것만 입어서….
근데 마지막에 입은 슈트가 약간 제복 느낌이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그 옷이 제일 잘 어울린다는 게 모든 스태프들 반응이었어요.
그러잖아도 〈카터〉 의상 나온 날, 저 북한군 제복 입은 거 보고 감독님도 그러시더라고요. 이건 두말할 것 없는 북한인이다. 북한인이 아닐 수가 없다.
하하. 데뷔작인 〈공작〉의 ‘홍설’도 북한 사람이잖아요. 그동안 네 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그중 두 편이 북한 사람 역할이라니, 거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저도 궁금해서 감독님들께 한번 여쭤봤거든요? 제가 북한 사람처럼 생겼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면서 두 분 모두 하신 말씀이, 가만히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대요. 제 얼굴 표정이요.
아하, 정체를 숨기는 인물이 잘 어울린다는 거군요.
그렇죠.
실은 저도 아까 촬영할 때 옷이 바뀔 때마다 매번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느낌이 들긴 했어요.
아까는 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어요. 실은 음악도 생각했거든요.(웃음) 이런 옷에는 이런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면 좋겠다, 혼자 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보면서.
음악이요? 어떤?
어셔? 맨 처음에 청재킷 입었을 때 그 노래가 딱 생각나더라고요. 제목이 ‘Yeah!’였나? 어셔 노래요.
그건 제가 어릴 때 유행하던 노래인데….
하하. 제가 음악 들으면서 걷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너무 딥해질 때가 있는데, 그 노래는 그럴 일이 없어서 좋아요. 얼마 전 산책하다가 우연히 들었는데 신기하게 생각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어디를 그렇게 자주 걸어요?
목동 살아서 안양천에 자주 가요. 시간 나면 한강도 가고요. 근데 사실 제일 많이 걷는 건 동네예요. 풍경만 보면서 걷는 게 좀 심심할 때가 있어서요. 골목 돌아다니면서 가게 구경하는 거 좋아해요. 어, 여기 비누 만드는 데가 있네? 꽃집이 새로 생겼네? 하면서.
길 가다 보면 알아보는 사람 있지 않아요?
그 정도는 아닌데, 〈카터〉 공개되고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오긴 했어요. 가족이랑 친구들 응원도 많이 받고요. 제일 좋았던 건, 연기하는 선후배들이 작품 잘 봤다고 한마디씩 해주시는 거. 그전에는 연기 이야기로 누군가와 소통할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비로소 나도 이들과 작품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어요.
액션 연기에 대한 피드백도 많이 받죠? 와이어를 매고 붕붕 날아다녔는데.
그 장면이 저에게는 가장 위험하면서도 중요한 신이어서 꼭 직접 소화하고 싶었어요. 촬영 며칠 전에 주원 선배님이 온몸을 던져 연기하는 걸 보고 엄청 자극받았거든요. 스턴트 배우가 리허설하는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다가 한번 덤벼보기로 했죠. 촬영 끝나고 감독님이 진짜 좋아하셨어요. “소리야, CG 굳었다” 하시면서.(웃음)
〈카터〉에서 주원 씨의 액션도 대단하지만 소리 씨의 목소리 연기를 거론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북측 요원 ‘한정희’는 극 초반부터 상당 시간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인물이죠.
실은 액션보다 목소리 연기에 더 공을 들였어요. 톤은 어떻게 할지, 강약 조절은 얼마나 할지 고민이 많았죠. 한정희는 카터의 아내이기도 하니까, 기계처럼 말하면서도 약간의 감정 동요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감독님 의견이셨거든요. 관객에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연중에 남편을 걱정하는 미묘한 감정을 목소리로만 보여주는 게 쉽지 않았어요.
같은 북한 사람인데 〈공작〉의 홍설과는 말투가 완전히 달라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두 작품을 연달아 봤는데 그 차이가 아주 또렷하게 느껴졌죠.
〈공작〉 때 북한말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에게 사투리를 새로 배웠어요. 홍설과 달리 한정희는 서울말에 가까운 북한말을 구사하는 캐릭터라 좀 더 정돈된 말투가 필요했거든요. 그러면서도 관객에게는 북한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야 했고요.
소리 씨는 이름처럼 소리를 참 잘 쓰는 배우 같아요. 비중이 작긴 했지만 〈파친코〉에서 조선의 부유층 자녀 지연 역을 따낸 것도 저는 소리 씨가 가진 말맛의 힘이 컸다고 봐요.
음, 아무래도 제 전공이 국악이다 보니 남들보다 좀 더 편하게 목을 조절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정소리라는 이름도 국악인이신 부모님이 소리꾼이 되라고 지어주신 이름이거든요. 이번에 목소리 연기하면서 ‘정말 이름대로 살아지나?’ 싶었어요.
 
재킷, 셔츠, 팬츠 모두 토즈. 로퍼 세르지오 로시. 브로치,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셔츠, 팬츠 모두 토즈. 로퍼 세르지오 로시. 브로치,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고등학생 때 〈너의 목소리가 보여 3〉에 출연해 '인간문화재 손녀'로 얼굴을 알렸죠. 한복 차림으로 윤복희의 '여러분'을 열창했어요.
맞아요.(웃음) 그때 그 모습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요즘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이제까지 국악을 해온 게 아깝지 않느냐고요.
다섯 살 때부터 소리를 했으니까요.
네, 근데 저는 (연기나 국악이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국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데뷔 초에는 고민이 없지 않았어요. 〈공작〉 촬영 시작할 때 선배님들께서 “소리야, 너 연기 계속할 거야?” 물어보면 우물쭈물했거든요. 그러다 촬영하면서 현장의 매력에 빠졌죠. 배우뿐 아니라 연출부, 제작부, 카메라팀까지 수많은 사람이 다 같이 몰입해서 일하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거든요. 쫑파티 날 선배님들이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때는 “네, 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공작〉 촬영할 때 열아홉 살이었잖아요. 황정민, 이성민 같은 대선배님들과 연기했는데 긴장되지 않았어요?
어휴, 그때는 정말 헛웃음이 날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어요. 어느 정도였냐 하면, 첫 촬영이 제가 황정민 선배님을 미행하는 신이었거든요. 선배님이 걷다가 뒤돌아보면 제가 아닌 척 딴청을 피우는 장면이었는데….
아, 시장에서 커플로 위장하고 미행하던 장면 말이죠?
맞아요. 그때 선배님께서 “소리야, 내가 돌아보면 그때 이렇게 딱 돌면 돼” 하셔서 제가 “그럼 선배님은 몇 발자국 걷고 돌아보실 거예요?” 했더니 너무 당황하시는 거예요.(웃음) 그런 웃긴 일이 진짜 많았어요.
그래도 어쩐지 강단이 느껴지는데요. 신인들은 현장을 즐기기가 쉽지 않은데.
선배님들 말로는 제가 깡이 좋대요. 아마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서서 그런 것 같아요. 한 번 공연하면 관객 천 명이 기본이니까, 모두가 저를 쳐다보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없어요. 영화 현장은 아무리 많아도 백 단위니까, 막 두렵지는 않더라고요.
흥, 천 명도 상대했는데 백 명쯤이야.
그렇죠.(웃음) 지금도 현장 가는 게 가장 즐거워요.
실은 인터뷰 준비하면서 유튜브를 계속 틀어놨어요. 5년 전에 소리 씨가 경복궁에서 ‘쑥대머리’ 부르는 영상이요. 댓글 반응이 엄청나던데, 본 적 있어요?
지인들이 보내줘서 보기는 했어요. 많은 분이 제 노래를 좋아해주시니 감사한 일이죠. 근데 저는 제가 소리 하는 거 듣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가끔 친구들이 보내주는 동영상에 나오는 제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 끼쳐요.
하하. 천 명 넘는 관객 앞에서 노래하던 깡은 다 어디로 갔어요.
그러게요. 제가 나온 영화도 아직 잘 못 봐요, 쑥스러워서… 이번에 〈카터〉도 집에서 혼자 봤어요.
예전에 배우 이하늬 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하늬 씨도 국악을 평생의 동반자처럼 생각하더라고요. 소리 씨도 아까 비슷한 말을 하던데, 그런 사명감은 국악인들의 공통된 마음가짐인가요?
국악인들은 어릴 때부터 너무 당연하게 국악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태어나자마자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국악을 했거든요. 어릴 때는 그게 진짜 싫었어요. 주말에 친구들은 다 놀러 가는데 저만 맨날 종합운동장에서 ‘심청가’ 부르고 있고.
하하하.
근데 지금은 부모님이 국악을 가르쳐주신 것을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이번에 〈카터〉 사운드트랙에 구음(口音)으로 참여했거든요. 녹음 끝나고 엄마한테 바로 전화드렸어요. 덕분에 제가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노래할 수 있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요.
 
드레스, 양말, 이어링, 슈즈 모두 미우미우. 링 사카이.

드레스, 양말, 이어링, 슈즈 모두 미우미우. 링 사카이.

 
곧 추석인데 가족들 보러 가요?
네,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요. 완전 아기 때는 전북 전주에 살았는데 여섯 살 때쯤 양산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쭉 살았어요.
부산 사투리가 자연스러운 이유가 있었군요. 〈헤어질 결심〉에서 연기한 PC방 아르바이트생이요.
처음 서울 올라왔을 때는 사투리가 엄청 핸디캡이었어요. 빨리 고쳐지지가 않더라고요. 어디 가도 꼭 경상도 애들이랑만 친해지고. 소울이 맞는다고 해야 하나.(웃음) 그래도 요즘은 제가 말 안 했으면 몰랐을 거라는 분도 있고, 서울 사람인 줄 알았다는 분도 있고, 전보다는 꽤 나아졌어요.
배우에게 사투리는 재산이기도 하잖아요. 특히 경상도 출신 배우 중에는 서울말과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것 같아요. 실제로 〈헤어질 결심〉이랑 〈파친코〉에서 연기할 때 큰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근데 이제는 사투리 연기 하려면 촬영 들어가기 전에 부산 친구랑 통화를 한번 해야 해요. 저도 서울 올라온 지 꽤 돼서 사투리가 좀 연해져가지고.(웃음)
그나저나 인터뷰하면서 또 한 번 느끼는 거지만, 필모그래피가 참 탄탄하네요.
작품들이 다 너무 좋죠. 저도 돌아보면 참 뿌듯해요. 물론 제 역할의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요. 특히 말씀하신 두 작품은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거라 뿌듯한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카터〉의 한정희 역도 〈파친코〉 촬영 중에 오디션을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캐나다에서 격리 중에 대본을 받았는데 연습할 상대도 없고, 시간도 촉박했거든요. 그래도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셀프 테이프를 찍었어요. 그때 제가 머물던 호텔이 좀 예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드가 좀 도움이 되지 않았나….(웃음)
지난달에 〈에스콰이어〉에서 소리 씨와 같은 소속사인 배우 심달기 씨 인터뷰를 봤는데 달기 씨의 경우 장르물, 특히 액션 영화를 너무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소리 씨는 반대로 다른 인터뷰에서 4차원 같은 캐릭터를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고요. 두 사람이 원하는 경험이 서로에게 조금씩 있는 것 같아 재미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맡은 역할들은 상황이 한정되어 있거나 특정한 목적 아래 움직이는 캐릭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평소에는 장난기도 많고 약간 푼수 같은 성격이라, 앞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도 한번 보여드리고 싶어요. 아니면 음악 영화도 너무 좋을 것 같고요.
좋아하는 음악 영화 있어요?
제 인생 영화 중 하나가 〈스타 이즈 본〉이에요. 거기 나오는 잭슨이랑 앨리 보면 정말 ‘그 사람’ 같잖아요. 내용은 실화가 아닌데도요. 저도 그렇게 제 본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부른 노래를 들으면 영화 속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그냥 연기하는 것과 음악이 보여주는 힘은 또 다르니까요.
관객들에게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일 만큼 실제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는 거죠?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또 좋아하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혹시 〈바람〉이라고 아세요?
정우 씨 나온 영화요?
네. 제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바람〉이에요.
오늘 소리 씨랑 〈바람〉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하하하. 경상도 사람 중에는 안 본 사람이 없잖아요.
어? 지금 약간 사투리 나왔어요.
좋아하는 영화 얘기가 나오니까 저도 모르게.(웃음) 거기 나오는 동네들이 저에게는 다 너무 익숙하고, 대사들도 정말 재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우 선배님이 ‘그 사람’처럼 보여요. 특히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장면은 진짜… 나중에 들어보니까 실제로 선배님의 자전적 요소가 들어간 영화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내추럴한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북한인은 아니면 좋겠고요?
그럼요. 일단 남한인이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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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REELANCE EDITOR 강보라
    PHOTOGRAPHER 장기평
    STYLIST 김성덕
    HAIR 김세욱
    MAKEUP 조혜영
    ASSISTANT 송재연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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