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유림이 가장 멋질 때 | 에스콰이어코리아
PEOPLE

배우 박유림이 가장 멋질 때

그녀와 인터뷰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연기라는 건 운전이다.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탈처럼 뒤집어쓰고 어떻게든 움직여 목적지에 다다르는 과정이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09.22
 
 니트 톱 렉토. 이너 레이스 톱 앤아더스토리즈.

니트 톱 렉토. 이너 레이스 톱 앤아더스토리즈.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두 작품이라고 하면 얼마 전에 방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드라이브 마이 카〉겠죠? 한 작품에선 말을 못하는 역할이었고, 또 한 작품에선 계속 긴장해 있거나 슬퍼하거나….
주눅 들어 있었죠.
그런데 실제 유림 씨는 너무 쾌활하고 편안해요.
편안한 분위기에서는 밝은 성격이에요. 원래는 낯도 가리고 말수도 적어서 저를 차갑게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오늘은 함께하는 실장님들이랑 작업을 해서인지 마음이 편하네요.
저도 낯을 가려서 사람들이 화나 있는 줄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신나 있는 경우도 있지요.
그쵸. 난 그냥 집중하고 있었을 뿐인데 ‘화났어?’라고 물어본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일 할 때는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짓고 밝게 인사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화나 있는 걸로 오해하면 사실이야 어떻든 불편한 상황이 될까 봐 죄송하더라고요.
웃는 거 힘들지 않아요?
하루 종일 미소 짓고 웃다가 집에 가면 축 처지죠. 그래서 전 집에 있을 땐 정말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요. 아무 감정도 안 느끼고 싶어요.
감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은 소모니까요.
에너지를 쓰는 거잖아요. 감정을 느낀다는 건, 결국 생각도 하고 있는 거거든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했을 때 수많은 팬이 깜짝 놀랐을 것 같아요. 게다가 빵 셔틀로 나와서요.
다들 ‘어? 설마? 어? 왜 저기서 나오지?’라며 놀라거나 반가웠다고 하더라고요. 평가랄 것도 없었어요. 다들 제가 그 드라마에 예고 없이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놀란 게 더 컸나 봐요.  
어린 사원의 긴장감과 주눅 든 마음은 정말이지 훌륭하게 전달됐어요.
좋게 봐주셨네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카메라 앞에 서서 정말로 긴장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요. 아마 긴장을 연기하려는 마음과 실제 긴장이 반반 섞였던 것 같아요.
왜 그동안 우리가 유림 씨를 자주 못 봤을까요?
그러게요. 전 그래서 〈드라이브 마이 카〉가 정말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를 졸업하고 사실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면서 정말 피폐해진 때가 있었어요. 자신감도 바닥났고, 자존감도 엄청 낮아졌고요. 정말 유령처럼 살았어요. 뭘 먹어도 ‘내가 이걸 먹어도 되나’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살면서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대요. 저는 그 첫 번째 기회가 제게 찾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죽기 살기로 한 거 같아요. 당시엔 제 인생에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분들에 비해 저는 아직 어리지만, 그땐 너무 지쳐서 배우를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였거든요. 감독님께 정말 감사해요.
게다가 체호프의 본질을 꿰뚫는 어마어마한 작품이었죠. 체호프는 사실 세상의 모든 걸 비관으로 바라보고 인식해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 비관의 세계를 이겨내고 낙관의 의지로 인생을 살아내죠. 마지막에 유림 씨가 하는 대사들이 작가 일생의 주제인 셈이죠.
오디션 2차와 3차를 그 수화 장면으로 봤어요. 그런데 오디션을 준비하며 그 수화 장면을 연습하는 과정 자체가 정말 위로가 됐죠. 유나가 연기하는 소냐의 마지막 대사들이요.(극 중 박유림이 연기한 ‘이유나’는 연극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에 등장하는 소냐 역을 수화로 연기한다.) 그 대사들이 너무 와닿아서 유나를 연기할 때 제 자신과 계속 헷갈리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그 대사들을 하면서 ‘아, 그래.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정신이 번뜩 드는가 하면, 저희 가족들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했지요.
민트 니트 톱 쟈니헤잇재즈. 오간자 스커트 손정완.

민트 니트 톱 쟈니헤잇재즈. 오간자 스커트 손정완.

오디션을 보기 전에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봤기에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제가 엄청 행복한 상황에서 유나를 맡아서 소냐의 연기를 했다면, 그때 느낀 그 무언가를 느끼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이동진 평론가의 채널에 인터뷰로 나온 걸 봤어요. 극 중 유나가 〈바냐 아저씨〉를 연습할 때 나뭇잎을 주워서 엘레나 역의 배우에게 주는 장면이 있지요. 이게 디렉션에 없던 거였다면서요?
그때 엄청 충동적으로 그랬어요. 감독님의 영향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이 워낙 배우들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감독이거든요. 평소 같으면 엄청 눈치를 보다가 결국 못 하고 후회나 할 상황이었는데, 그날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해야 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이건 내가 하면 되는 거지. 저 나뭇잎을 주워서 주고 싶어”라는 충동에 따랐어요. 해놓고 덜컥 놀랐죠.
엘레나 역을 맡으신 분이 안 놀란 것도 신기했어요.
다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라 상대방이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합의가 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저희는 마치 약속이라고 한 듯, 감정을 넣어서 연습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 실전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대비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나뭇잎이 심지어 예쁜 것도 아니었어요.(웃음)
맞아요. 심지어 찢어져 있더라고요. (웃음) 뭔가 하자가 좀 있는 나뭇잎이었어요.
만약에 준비된 장면이었다면 스태프들이 예쁜 나뭇잎으로 준비했겠죠.(웃음)
사실 전 그때 제 눈에 예뻐서 줍기는 했어요.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엘레나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요.
전 별생각을 다 했어요. 원작에서 ‘바냐 아저씨’는 숲을 상징하는 캐릭터기도 하거든요. 엘레나의 남편인 교수(세레브랴코프)는 그 숲을 팔아먹으려는 사람이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엄청난 상징으로 보였거든요.
그렇게까지는 생각 못 했어요. 그저 웃었으면 좋겠다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거였거든요. 엘레나도 소냐도 그렇고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것뿐이었어요.(웃음)
아까 얘기한 마지막 장면은 좀 현대무용 같기도 했죠. 혹시 무용을 배웠나요?
대학교 다닐 때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연기과 수업에는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 등이 있거든요.
다음번 작품이 〈발레리나〉잖아요.
제가 발레리나로 나오고 제가 맡은 배역 ‘민희’의 죽음에 분노한 옥주(전종서)가 펼치는 무자비한 복수극입니다.
발레를 배우고 있겠네요.
지금 배우고 있어요. 너무 재밌는데, (웃음) 안 쓰던 근육을 쓰다 보니 너무 힘들어요. 몸이 안 되더라고요.
포스터에 이름을 거는 첫 번째 주연작인 셈인데요. 기분이 어때요?
책임감도 느껴지고 뭔가 비장해지고 부담도 없지는 않아요. 〈발레리나〉를 찾으면 3명 얼굴이 뜨는데 그중 하나가 저라는 사실에 놀라곤 했어요.
전종서 씨와의 합도 기대가 되네요.
저도 기대하는 중입니다. 예전부터 독보적인 배우라는 생각을 했고, 꼭 같이 해보고 싶었거든요. 저희 두 사람이 결은 전혀 다른 것 같은데, 제 생각엔 정말 근사하게 어울리는 것 같거든요.
둘 다 이미지가 독립적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저도 그런 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저도 종서 씨도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거든요. 한쪽은 조용한데, 다른 쪽은 계속 말을 거는 스타일이면 부담스럽잖아요. 둘 다 선 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아까 우리 힘든 시절 얘기를 좀 했었잖아요. 혹시 다른 걸 꿈꾼 적은 없었나요.
다른 걸 꿈꾼 적은 없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본 적은 있는데, 답을 찾은 적이 없거든요. 학창 시절에 꿈을 적어 내라고 하면 그 당시에 가장 널리 유행하는 직업을 적어 냈죠. 교사, 의사, 은행원 같은 거요. 연기를 배우러 대학에 들어간 이후 연기는 항상 제 인생의 1순위였어요.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다른 걸 생각 안 했다는 게 정말 대단하네요.
가족과 친구들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절대적 위로, “유림아, 너는 잘될 거야”라는 말들. 사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찍을 때 이미 제가 20대 후반이었거든요. 부모님께서 불안해하실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티를 내신 적이 없으세요.
〈오징어 게임〉의 이유미 씨도 캐스팅될 때 배달 알바를 하고 있었다고 했지요.
저도 배달 알바를 했어요. 쿠팡잇츠 같은 앱으로요. 오토바이 안 타고 뚜벅이로 했지요. 되게 재밌었어요. ‘어, 배달 왔다!’ 이러면서 신나 했고요. 그래서 지금도 도로명으로 주소 찾는 걸 굉장히 잘해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선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했더라고요.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라는 게 어떤 뜻일까요?
아! 전 어릴 때도 가족, 친구들과 영화를 꽤 즐겨 봤거든요. 그때는 할 수 있는 게 영화 보러 다니기, 떡볶이 먹기 이런 거잖아요. 그때쯤 문득 스크린 안에 있는 영화라는 게 너무 멋있고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영화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나도 저걸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껴 있고 싶다. 저 세계에, 스크린 안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요. 그리고 그 세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게 배우들이었고요.
컷아웃 블레이저 YCH.

컷아웃 블레이저 YCH.

영화 제작진에 대한 소속감이라기보다는 영화라는 세계 전체에 속하는 감각이었군요.
나도 저 멋있는 세계에 속하고 싶어! 저도 좀 껴주세요. 그거였죠 뭐.
해보니까 어때요?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가요?
어렵죠.(웃음) 근데 연기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저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게 되는 직업인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드라이브 마이 카〉 대사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죠.
“진정으로 타인을 보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다카츠키가 하죠. 나를 알고 이해를 해야, 나부터 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저는 아직 남을 몰라요. 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죠. 연기란 정말 즐겁지만, 너무 어렵고, 또 뿌듯해요. ‘나 여기 들어왔다’라는 느낌이랄까요?
몰랐던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게 있나요?
전 제가 계획적인 사람이 아닌 줄 알았고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런데 요새 일을 하면서 ‘어? 나 꽤 계획적인데?’라고 느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죠. 앞서 얘기했듯이 긴장을 싫어하니까 준비 안 된 상황과 맞닥뜨리는 것보다 철저하고 충분하게 생각하고 나서 부딪히는 걸 더 좋아하는 거죠. 예전에 친구가 한 말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유림이 넌 엄청 자유로운데 너만의 선이 있다?”라고 하더라고요. 전 그 선 안에서 자유로운 걸 좋아한대요.
아까 그 얘기와도 일맥상통하네요.
상대도 그런 사람이라야 편하게 생각하죠.
〈드라이브 마이 카〉를 찍으면서 혹은 찍기 전에 체호프의 원작을 봤나요?
저희 대학교는 졸업 무대 때 체호프의 4대 희곡(〈갈매기〉 〈세 자매〉 〈벚꽃동산〉 〈바냐 아저씨〉)을 돌아가며 올려요. 졸업 공연에 참석을 못 해서 직접 연기해보진 못했지만, 매년 봐온 셈이죠.  사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왜 이렇게 슬프고 우울해’라고만 생각하며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바냐 아저씨〉를 정말 많이 읽었거든요. 그 작품을 이해해야 제가 연기를 하니까요. 뭔가를 느꼈고, 엄청 많이 울었어요. 정말 ‘삶’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어요. 그전까지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손열음 씨에게 예전에 대체 그 긴 악보를 어떻게 다 외우냐고 물었더니, 악곡의 구조를 알고, 화성의 변화를 알고, 모티브의 변주를 알면 외워진다고 답했죠.
정말 비슷한 걸 〈드라이브 마이 카〉 대본을 보면서 처음으로 느끼기도 했어요. 저는 그전까지는 작품에 짧게 출연해서 제 작품 전체를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다 같이 앉아서 전체 대본 리딩을 해요. 한 번 읽으면 안 되고, 계속 여러 번 읽다 보면 저도 그 작품과 같이 흘러가게 되거든요. 그걸 처음 느껴서, 정말 행복했어요.
얼마 전에 첫 차를 샀지요?
경차예요. 산 건 아니고, 엄마한테 물려받았어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하는 느낌은 어때요?
너무 멋있어요.
누가요?
제가요. 도로 위에서 차를 모는 그 수많은 사람들 안에 내가 있다니! 와! 지금 운전자들 사이에 나도 운전자로 있어. 나도 운전자야, 너무 멋있어! 그런 느낌?
또 본인이 언제 멋있다고 느껴요?
수영할 때요. 저 수영을 정말 좋아해서 전생에 물고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선수처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폼이 예쁘다고 칭찬도 해주셨어요. 혼자 수영할 때면 제 자신에게 폭 빠져요.
수영의 어떤 점이 제일 기분 좋고 행복해요?
제 마음대로 제 몸을 드라이브하는 느낌, 나의 몸을 운전하는 느낌이 들어요. 또 물속에서 자유형을 할 때 제 손가락 사이로 포말이 떨어지는 걸 물속에서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정말 예쁘거든요. 앞에서 같이하는 이모들이 발차기를 하면 거기서 물결이 생기고 포말들이 퍼지는데 그것들도 너무 예쁘고요.

Keyword

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송시영
    STYLIST 이필성
    HAIR 진희
    MAKEUP 수진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최지훈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