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기자가 바라본 아베 피살 사건의 의미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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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기자가 바라본 아베 피살 사건의 의미

오성윤 BY 오성윤 2022.09.10
올해 3월부터 서울에 머물며 연구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물가다.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세트가 7000원대부터이고, 점심 끼니는 1만원이면 저렴하게 때운 편이라니.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가성비 좋은 음식’이었는데, 이젠 일본보다 싸게 식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얼마 전부터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일본인 교수에게 이런 불편을 토로했더니, 한국에 오기 전 미국에서 연수를 마친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글쎄, 뭐. 외국 생활이란 그런 거죠. 일본의 물가가 너무 올라가지 않은 것도 문제죠?”
그렇다. 5년 전에 여행차 다녀온 뉴욕에서 점심은 최저 20달러였고, 다음 해 출장으로 갔던 모나코에서는 더했다. 아니, 그런데 여기는 한국인데요? 27년 전에 내가 유학생으로 와 있었을 때만 해도 짜장면이 3000원, 점심은 5000원이면 충분했는데! 하고 말하다 못내 한숨을 쉬었다. 일본 경제가 미국을 추월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버블경제가 붕괴된 지 30년. 세계경제가 꾸준히 성장하는 동안 일본은 제자리였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슬픈 현실이다.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 유세 도중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역대 최장인 3188일 동안 총리직을 맡았던 거물 정치인의 충격적인 죽음이었다. 한국의 언론 보도에는 대부분 ‘일본 보수의 심장’ ‘우익의 아이콘’ 같은 수식어가 붙었고, 나는 그걸 보며 막연히 생각했다. 2010년대의 대부분을 차지한 ‘아베 시대’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국 나는 그것이 ‘침체하는 일본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혹자는 이렇게 반론할지도 모른다. “아베는 ‘아베노믹스’로 경제를 부흥시킨 사람이지 않은가?” 맞다. 리먼 쇼크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이 큰 경기 침체에 시달렸던 2012년, 재등장한 아베는 금융 완화를 주축으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세우고 주가를 상승시켰다. 일본 친구들에게 물어도 대부분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오사카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지인은 “사업을 접어야 할까 고민까지 했는데, 아베노믹스로 매출액이 2배가 됐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했고, 도쿄에서 행사 대행업을 하는 이는 “올림픽 특수로 겨우 살았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인식이 이렇다 보니, 야당 분열이라는 도움까지 받으면서 선거는 항상 아베 자민당의 완승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일본 사회를 뒤덮어온 것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었다.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e-커머스는 아마존에 완전히 점령됐다. ‘GAFAM’(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IT 거물들)에 맞설 수 있는 토종 기업도, 다음 시대의 정상을 노리는 성장주도 찾아보지 못한 채 ‘잃어버린 20년’은 ‘잃어버린 30년’이 됐다. 그 모든 것을 아베 한 명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일본 국민들이 아픔을 수반하는 재분배가 아닌 현상 유지 정책을 선택한 결과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세대는 그런 시대의 부산물이다. 일본에서 잃어버린 세대란 ‘잃어버린 20년’ 초기에 20대였으며, 취업난에 시달리면서 정규직을 얻지 못한 채 고령화된 사람들을 말한다. 아베 저격범은 내 또래인 41세. 보도에 따르면 모친이 통일교에 빠져 가정이 무너지는 바람에 대학도 못 다니고, 주로 비정규직을 전전했으며, 지난 5월에는 계약직으로 일하던 창고 노동까지 끝난 처지라고 했다. 그래서 통일교 관련 단체의 행사에 축하 비디오 메시지를 보낸 아베에게 깊은 원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만약 그런 배경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일본 내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아베 국장’에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포스트 아베’로 내세울 유력자가 없는 자민당은 소속 의원들과 통일교 사이의 깊은 관계까지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했다. 동기야 무엇이 됐건 총격 살인 같은 범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그 사건을 곱씹을 때면 조금은 다른 감상에 잠기곤 한다. ‘잃어버린 2010년대’의 상징을 겨냥해 마치 물총이나 쏘듯 너무 쉽게 저지른 ‘마흔의 반격’이 오래도록 항구에 계류되어 있던 일본의 닻을 끊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고. 표류를 시작한 배가 향하는 방향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요시노 다이치로는 기자 겸 편집자다. 〈아사히 신문〉 기자, 〈허프포스트 재팬〉 뉴스 에디터 등을 거쳐 지난 2월 말부터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펠로로 서울에서 주로 북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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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오성윤
    WRITER 요시노 다이치로
    ILLUSTRATOR VERANDA STUDIO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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