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블록버스터'의 재림을 기다리며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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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블록버스터'의 재림을 기다리며

오성윤 BY 오성윤 2022.06.27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영화적 순간 중 하나는 1987년에 벌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고 로버트 저메키스가 연출한 〈백 투 더 퓨처〉였다. 1985년 미국에서 개봉한 〈백 투 더 퓨처〉는 과거로 돌아간 아들과 엄마가 데이트를 한다는 설정 때문에 한국 개봉이 금지됐다. 근친상간 음란물이라는 이유였다. 19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다행히 영화는 2년 뒤 정식으로 개봉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갔다. 시간 여행을 다루는 이 코미디 블록버스터는 압도적으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넋을 놓았다. 겨우 현재로 복귀한 주인공 앞에 박사가 타임머신을 타고 나타난다. 그러고는 주인공을 태우고 다시 미래로 간다. 영화 내내 도로를 달리던 타임머신은 갑자기 공중을 날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 순간 마산의 작은 극장에서 벌어진 소동을 여기 그대로 기술한다고 해도 1987년에 세상에 없었던 사람은 믿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끝났다. 주인공들은 더 미래적으로 개조된 타임머신을 타고 “해결할 문제가 있다”며 날아가버렸다. 영화는 후속 편을 예고하며 끝났다. 그 시절 관객들은 후속 편을 예고하는 영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한 편의 영화는 그 자체로 마무리가 되어야 마땅했다. 〈백 투 더 퓨처〉는 마무리를 짓지 않았다. ‘궁금하면 다음 편을 보시라!’는 선언으로 끝이 났다. 꽤 헷갈리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도 멍하게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이렇게 외쳤던 것도 기억한다. “뭐꼬? 끝난 기가?”
블록버스터 속편의 시대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가 유행을 이끌었다. 이전에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있기는 했다. 1980년대 속편들은 좀 달랐다. 전편을 봐야 후속 편을 더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티브이 시리즈의 문법을 영화로 끌어온 첫 번째 사례들이었다. 개중에서도 〈백 투 더 퓨처〉가 놀라웠던 것은 작품 내에서 속편을 예고하면서 끝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속편을 슬그머니 예고하면서도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라는 약간은 장난스러운 쿠키를 남기며 끝이 났다. 〈백 투 더 퓨처〉는 작정하고 속편을 홍보하며 마무리를 지었다는 점에서 가히 블록버스터 문법의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2001년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의 개봉은 〈백 투 더 퓨처〉 이후 가장 혁명적인 속편의 시대를 알리는 선언이었다. 제작사는 매년 1편씩 3편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백 투 더 퓨처〉는 사실 1편을 보지 않아도 다음 편을 소화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반지의 제왕〉은 그렇지 않다. 거대한 서사와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신은 반드시 3편의 영화를 순서대로 봐야 한다. 나는 이게 과연 ‘영화적’인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영화라는 건 한 편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어야 마땅한 대중예술이다.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 캐릭터의 전사(前史)를 공부해야 하는 건 일종의 반칙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톨킨의 거대한 서사시는 2시간 안에 쑤셔 넣기가 애초에 불가능했다. 피터 잭슨은 미리 우리에게 3편의 시리즈로 마무리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예측 가능한 속편이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비윤리적인 일은 아니었다.
마블의 시대는 〈반지의 제왕〉까지도 할리우드가 지켜왔던 ‘속편의 윤리’를 파괴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 시리즈는 전편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속편을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었다. 페이즈 1을 마무리한 〈어벤져스〉도 단독 영화들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고전적인 블록버스터였다. 페이즈 2의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페이즈 3, 〈캡틴 아메리카〉의 세 번째 영화인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부터 마블은 영화라는 매체가 대중과 어느 정도 느슨하게 약속한 속편의 법칙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영화들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 당신은 페이즈 1과 페이즈 2의 모든 영화를 봐야만 한다. 특히 모든 캐릭터가 얽히는 거대한 사건이 등장한다면 관객은 그 사건을 숙지해야만 한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소코비아 참사’를 모르고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를 즐기기란 힘든 일이다.
그나마 페이즈 3까지는 처음 마블에 진입하는 팬들의 진입 장벽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다.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팬서〉 〈캡틴 마블〉 같은 히어로 솔로 영화들이 있었던 덕이다. 페이즈 4에서 마블 영화의 진입 장벽은 지나치게 높아졌다. 최근 개봉한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그야말로 대혼돈의 블록버스터였다. 두 영화는 마블의 지난 속편들이 그나마 지키려고 노력하던 경계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당신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를 모른 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을 볼 수는 없다. 심지어 마블은 멀티버스라는 지나치게 간편한 설정을 통해 소니가 제작한 이전 스파이더맨 캐릭터들을 불러들인다. 스파이더맨의 오랜 팬들이라면 꽤 감동했겠지만 이건 분명한 영화적 반칙이자 세계관의 위반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더한 혼돈이다. 이 영화 한 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닥터 스트레인지〉 전편뿐 아니라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아야 한다. 심지어 디즈니플러스 채널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완다비젼〉을 보지 않으면 당신은 완다라는 캐릭터의 분노를 거의 이해할 수조차 없다.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의 ‘블립’은 이후 개봉한 모든 마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설정이 됐다. 이제는 소니가 제작한 빌런 시리즈인 〈베놈〉과 〈모비우스〉까지 마블의 세계관과 이어진다. 맙소사. 대체 우리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마블 세계관을 어디까지 공부해야 하는 것인가?
마블의 공식은 다른 할리우드 시리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 총괄을 맡은 〈쥬라기 월드〉 시리즈를 생각해보시라. 이 시리즈는 전편과 속편이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편을 보지 않고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을 온전히 즐기는 건 쉽지 않다. 스필버그의 오리지널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그렇지 않았다. 조 존스턴이 연출한 〈쥬라기 공원 3〉까지 모든 작품은 고유의 캐릭터와 사건을 가진, 그 자체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단독 영화들이었다. 한 편의 영화로 존재할 수 있던 고전적 블록버스터의 세계는 우리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오랜 경력을 지닌 장인들마저 통합된 세계관이라는 함정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있다. 영화는 이제 거대한 시리즈가 되어간다. 모든 것이 마블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물론 아직 모든 것이 그렇게 된 건 아니다. 올해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두 편의 영화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였다. 하지만 지난 5월 7일 개봉한 톰 크루즈의 〈탑건 : 매버릭〉은 두 영화의 기록을 깨며 북미에서만 첫 주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톰 크루즈 경력 최고의 성적이다. 팬데믹 종료 직후 첫 개봉한 블록버스터라는 덕을 본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기록을 깨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정정합니다 : 2022년 7월 4일 15시 06분 : 〈탑건 : 매버릭〉의 첫 주 흥행 수익은 약 1억2천6백만 달러로(출처 boxofficemojo.com),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나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의 첫 주 흥행 성적에 미치지는 못한다. 정정일을 기준으로 약 11억 달러의 수익을 올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넘어섰으나,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을 넘지는 못했다.) 재미있게도 〈탑건 : 매버릭〉은 마블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고전적 블록버스터 속편이다. 톰 크루즈와 감독 조지프 코신스키는 1편을 보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모든 전사(前史)를 친절하게 설명한 뒤 ‘이것이 바로 시네마다’라고 선언하듯 CG의 이질감을 최대한 제거한 하이퍼리얼리즘 스펙터클로 관객의 모든 감각을 폭격한다.
〈스크린 크러시〉는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대체 어떻게 저걸 찍었지?’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가디언〉은 “영화관에 가는 것이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보다 낫다는 걸 증명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블록버스터로부터 오랫동안 바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마틴 스코세이지가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모든 이유가 〈탑건 : 매버릭〉에 있다고 확신한다. 시네마의 존재 가치를 여전히 증명하면서 마블 바깥의 미래를 제시하는 사람이 40년 현역 톰 크루즈라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다. 아직 오랜 장인들의 블록버스터는 죽지 않았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 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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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WRITER 김도훈
    ILLUSTRATOR VERANDA STUDIO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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