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도끼, 톱, 2차대전 때 쓰였던 천막만 들고 캠핑을 다닌다는 사람들을 따라가 봤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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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도끼, 톱, 2차대전 때 쓰였던 천막만 들고 캠핑을 다닌다는 사람들을 따라가 봤다

하룻밤 동안 지도 위에서 사라졌다 돌아오기로 했다. 잘 벼린 도끼와 캔버스 텐트, 철제 반합처럼 100년 전에도 쓰이던 형태의 장비들을 가지고. 부시크래프트라는 게 어떤 취미인지 이해하려면 그 편이 빠를 거라고 했다.

오성윤 BY 오성윤 2022.06.25
 
김경국을 처음 만난 건 강원도 원주의 한 오두막에서였다. 올해 2월 그가 직접 지었다는, 1평 남짓한 크기의 작은 오두막에서. 여기서 ‘직접 지었다’는 표현은 디자인부터 마감까지 혼자 다 했다는 뜻이다. 심지어 설계도도 없이 그냥 머릿속에서 대강 형태를 그리고 눈대중으로 맞춰서 작업했다고 했다. “안 맞으면 또 자르고 다시 맞춰보고 하면서 만든 거죠. 사실 전문가가 보면 웃을 만한 정말 허접한 오두막인데, 그래도 저는 고생을 무지 했어요. 목공을 배운 적도 없으니까.” 그는 오두막 안쪽부터 바깥까지 요소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지붕 합판에서 삐쭉삐쭉 튀어나온 못 끝이나 엄지손가락만 한 나무토막을 걸쳐 열어놓은 창문을 보면 그의 말대로 엉성하다고 할 수 있을 듯했으나, 요리까지 가능한 화로나 테라스 쪽 지붕 위에 마련된 침실 공간에 이르러서는 이게 정말 도면 없이 가능한 일인가 싶어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오두막 외벽을 설명하던 그는 대뜸 언덕 아래 큰 나무 하나를 가리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올해 가을에는 저 위에다 트리하우스를 지을 생각이에요.” 역시나 설계도는 없다고 했다.
 
김경국이 직접 지은 강원도 원주의 오두막.

김경국이 직접 지은 강원도 원주의 오두막.

그를 찾은 이유가 오두막 제작법을 취재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스스로 밝혔듯, 그는 목공이나 건축 전문가는 아니니까. 그의 전문 분야는 ‘부시크래프트’다. 오두막이라는 결과물은 부시크래프트라는 취미가 가진 뾰족한 한 극단이라 할 수 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생소한 분야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덤불’을 뜻하는 부시(bush)와 ‘기술’을 뜻하는 크래프트(craft)의 합성어로, 전문 캠핑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물을 활용하여 아웃도어를 즐기는 레포츠.” 최소한의 장비로 자연 지형지물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거나 불을 피우는 종류의 활동이라는 뜻이다. 캠핑의 일종이지만 몇 주에 걸쳐 사유지에 오두막을 짓는 식의 활동도 포함된다는 면에서 여집합이 존재하기도 하고, 야생과 원시적인 테크닉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서바이벌(이 분야가 생소하다면 영국의 생존 전문가 베어 그릴스를 떠올리면 되겠다)과 비슷한 측면이 있으나 지향점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부시크래프트는 ‘생존 기술의 터득’이 아니라 ‘자연을 즐기는 과정’을 좇는다. 최소한의 장비로 자연에 부딪친다는 측면에서는 백패킹과 맞닿은 지점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차이점이 더 많다. 이를테면 백패킹 장비는 주로 신소재 경량 도구들인 데 반해, 부시크래프트 장비는 주로 캔버스나 쇠 소재다. 무겁지만 그만큼 튼튼한 것들. 백패킹에서는 잘 쓰지 않는 것들을 부시크래프트에서 쓰기도 한다. ‘부시크래프트의 정수’를 다루는 체험기를 쓰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한 것도 김경국의 포드 F-150 픽업트럭에 올라타 한 시간여를 달린 것이었다. 그리고 차가 홍천강 변에 다다랐을 때, 김경국은 차 위에 단단히 동여매두었던 카누를 끌어내렸다. 물론 그가 직접 만든 카누는 아니었다. 강변에 멍하니 서서 카누잉도 부시크래프트 문화에 들어가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럼요” 하고 답했다. “부시크래프트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 대부분 강이나 호수를 끼고 숲이 발달한 곳이거든요.” 대신 우리는 보트도, 카약도 아닌 카누를 탈 것이라고 했다. 짐이 많이 실리지도 않고 균형을 잡기도 힘들지만 힘을 쓰는 만큼 쭉쭉 나아가는 원시적인 형태의 배. 그걸 타고 계속 나아가다가 마음이 동하는 기슭에 정착해 하룻밤 자고 돌아온다는 계획이었다. 거기까지 듣고서야 비로소 수긍할 수 있었다. 여전히 부시크래프트라는 문화의 윤곽이 선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날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이것도 부시크래프트 문화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식의 질문이었고, 그때마다 그는 일일이 답해주었다. 대부분이 ‘그럼요’ 하는 식의 답이었다.
 
취재를 위한 부시크래프트 체험은 홍천강에서 카누를 타고 가다 당도한 어느 기슭에서 이루어졌다.

취재를 위한 부시크래프트 체험은 홍천강에서 카누를 타고 가다 당도한 어느 기슭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30분 정도 노를 저어 가다 커다란 바위 옆, 이름 없는 어느 기슭에 배를 세웠다. 그와 그의 강아지 ‘브라더’, 내가 탄 배가 먼저 정박해 주변 지형을 살폈고, 곧 또 다른 부시크래프트 전문가 이상훈과 포토그래퍼가 탄 배가 도착했다. 카누 앞에서 처음 만난 이상훈은 김경국과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다른 행색이었다. 똑같이 체크 셔츠에 캔버스 배낭 차림이었지만 김경국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필슨, 피엘라벤 등 주로 아웃도어 강국의 유서 깊은 브랜드였다면 이상훈의 복식은 군용품에 좀 더 근원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범상치 않은 배낭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그제야 수줍은 듯 웃으며 설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제로 사용되었던 빈티지 배낭이라고. 부츠도, 텐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폴란드군의 ‘첼트반’은 군용 우의 두 개를 엮어 만든 천에 나무 막대로 중앙에 기둥을 세우는 구조의 텐트로, 극히 원시적이지만 그만큼 듬직하다고 했다. 물과 불에 강하고 튼튼하다는 것이다. 이미 세월이 증명했듯이. 그 설명을 들으며 또 하나 재미있었던 점은 그의 과묵함이었다. 이 유서 깊은 물건들을 챙겨 다니면서도, 그는 하나하나 캐물을 때까지 그 정체에 대해 먼저 늘어놓는 법이 없었다. 거기에는 아마도 그들이 캠핑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듯했다. 김경국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장비가 캠핑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영역이든 자꾸만 경쟁이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누구나 캠핑이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을 하겠죠. 그러다가 장비를 점점 좋은 걸로 바꾸고, 그러다 보면 어떨 때는 그 장비들을 세팅하기 위해 캠핑을 하는 지경이 돼요. 그리고 또 어떤 순간에는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고. 그런데 캠핑은 경쟁이 아니잖아요. 축제잖아요. 물론 예쁜 옷을 산 김에 외출 핑계를 만드는 게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계속 그렇게 남의 시선에서 가치를 찾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내가 정말 행복한가, 그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장비로 야영 환경을 구축하는 부시크래프트는 도끼, 칼, 톱 같은 날붙이가 중요하다.

최소한의 장비로 야영 환경을 구축하는 부시크래프트는 도끼, 칼, 톱 같은 날붙이가 중요하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딱 한 번, 김경국이 ‘장비 자랑’을 한 적이 있긴 했다. 좀 다른 맥락이었지만. 도끼를 마치 식칼처럼 가볍게 통통 내리쳐 나무 끝을 연필처럼 뾰족하게 만들던 그는 나무 밑동에 도끼를 콱 꽂아 넣으며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날붙이가 (품질이) 좋아야 해요. 도끼만 해도 엄청 날카롭게 벼려놓죠. 칼, 도끼, 톱 같은 게 좋지 않으면 뭘 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는 그렇게 다듬은 나무들을 땅에 잘 꽂아 넣은 다음 파라코드(낙하산 줄)로 윗부분을 한데 묶어 삼각대 형태를 만들었다. 이런저런 식재료를 매달아 그 아래에 지핀 불로 익히려고 만든 구조물이다. 그가 그렇게 주방을 만드는 사이 이상훈은 천막을 세웠다. 해가 지기 전에 의식주 기반부터 확보하는 게 급하다고 했는데, 그 와중에 굳이 나무를 찾아와 잘게 토막 내 즉석에서 팩(천막의 가장자리를 고정하는 쐐기)을 만들고 있었다. 천막을 챙길 때 쇠붙이 팩 몇 개 같이 챙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터. 왜 굳이 팩을 만들어 쓰는가 물었으나 그는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렇게 만들어 쓸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 질문은 부시크래프트의 경계를 좀 더 세밀히 가늠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카누를 실어 나른 자동차는 괜찮고 모터보트는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철제 반합은 사용하면서 텐트를 고정하는 팩은 나무를 깎아 만드는 이유가 뭘까? 어디까지는 허용되고 어디까지는 허용되지 않는가? 그 질문들에 대해 김경국은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제 생각에는요.” 기준은 특정 물건이나 행위의 유무가 아니라 ‘추구의 자세’라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즐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거죠. 예를 들어서, 사실 국내 여건에서는 부시크래프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규제가 굉장히 심한 편이니까요. 맨바닥에 불을 지필 수 없으니 우리도 이렇게 쇠 플레이트를 챙겨와서 그 안에다 불을 피우고, 수렵 채집도 할 수 없어 식재료를 다 사오는 거죠. 그래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예요. 플레이트 둘레에 굳이 돌로 벽을 쌓고, 요리도 ‘와일드 쿠킹’ 스타일로 하면서. 해외의 누군가가 ‘그건 부시크래프트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이 문화의 정신을 즐기는 것, 최대한 와일드한 감성을 추구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의 표현, ‘와일드한 감성’을 얕은 수준의 카타르시스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편리한 시대에 굳이 유난을 떨며 자기만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편의를 좇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묘미, 어떤 정신을 다시 찾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경국은 세계 곳곳을 돌며 부시크래프트를 즐기고 있다. 한 해에도 몇 번씩 일본과 영국을 오가고, 유목민 사미족의 전통 나무 컵 ‘쿡사’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노르웨이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그가 처음 부시크래프트를 접한 곳도 캐나다다. 10대 시절 내내 캐나다 앨버타에서 유학 생활을 한 그는 심심하면 친구들과 로키산맥 국립공원에 가서 놀았다고 했다. 그때는 불을 피우고 뭘 만드는 게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바로 부시크래프트였다고. 부시크래프트의 정수를 추구하며 세계를 떠도는 그는 그러다가도 한국에 돌아오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방식으로 야생을 추구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유에는 새삼 흥미롭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었다. 홍천강변에서 카누에 탈 준비를 할 때 땅바닥에서 불을 지핀 흔적을 발견한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런 짓을 해놓고 그냥 가는 것 봐요. 리스펙트가 없는 거예요.” 그가 말한 리스펙트의 대상은 ‘자연’일 수도, ‘문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구태여 되묻지는 않았다.
 
직접 손잡이를 만든 탕개톱으로 야영지를 구축할 나무를 다듬는 김경국.

직접 손잡이를 만든 탕개톱으로 야영지를 구축할 나무를 다듬는 김경국.

파이어스틸로 천연 착화제인 팻우드에 불을 붙이는 모습.

파이어스틸로 천연 착화제인 팻우드에 불을 붙이는 모습.

외딴 기슭에 내린 순간부터, 두 사람은 정말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열을 식히고자 잠깐 강변에 세수를 하러 다녀올 때를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나무와 날붙이를 붙들고 있었다. 썰거나, 내려치거나, 조립하거나. 김경국은 자기 캠핑에 처음 따라온 사람은 꼭 이런 질문을 한다고 했다. “놀러 와서 뭘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을 해요?” 물론 그들도 그 부분이 즐거움의 요체라는 걸 가늠하지 못해 묻는 건 아닐 터였다. 그 고생의 강도 앞에서 새삼 감탄하듯 질문하게 될 뿐. 나도 역시 쉴 틈 없이 일하는 둘 사이에서 별달리 할 게 없었다. 간단한 작업을 거들거나 맥주 캔을 건네는 정도일 뿐이었다. 톱질을 하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 이상훈이 “아, 역시 문명이 좋아” 하고 농담을 하자 김경국이 그 말을 받아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이렇게 하룻밤 밖에서 고생하고 가잖아요? 집에 도착해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냥 식당 들어가서 누가 차려주는 밥만 먹어도 너무 좋고요.” 나는 웃으며 농담조로 되물었다. 부시크래프트의 매력을 취재하러 온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문명에 감사하게 되는 것, 그것 역시 부시크래프트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웃는 얼굴 때문에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상훈은 이런 얘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이런 게 있어요. 부시크래프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와, 나 이제 아무 데도 안 나가’ 싶거든요. 그런데 또 월요일쯤 되면 생각이 나는 거죠. 이 순간들이. 그러면 또 몸이 근질근질해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괜히 주변을 쭉 한번 둘러보게 되었다. 홍천강 줄기 어느 구석, 아무도 오지 않을 숲속이었고, 어느덧 나뭇잎 사이로 석양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어느덧 그럴싸한 요새가 구축되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 주방을 꾸리고, 작은 의자, 간이 테이블까지 만들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쿡사나 작은 그릇, 숟가락 같은 걸 만드는 우드 워킹까지 일정에 넣으면 새벽같이 집을 나서도 하루가 금방 간다고 했다. 이상훈은 주변 정리를 하다가도 쓰다 남은 나무를 착착 다듬어 양초를 올릴 장식대 같은 걸 만들어놓기도 했다. 김경국은 작은 칼을 생선 비늘이라도 손질하듯 휘둘러 얇은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내고 있었다. 치킨을 꽂아 바비큐를 할 꼬챙이를 만드는 중이었다. 이상훈은 양파를 볶아 자연 코팅한 팬 위에 스테이크를 올렸고, 닭 바비큐 설치를 마친 김경국은 어묵을 꺼내 물을 데운 반합 속에 넣었다. 집에서 미리 해온 반죽으로 빵도 구웠다. 나뭇가지에 뱀처럼 똬리를 틀어서. 활활 타는 불 위의 스테이크는 금방 익었기에 바로 술도 꺼내와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촬영 그만하고 드세요” 말했을 때, 나는 잠깐 헷갈렸다. 이제 부시크래프트라 할 만한 것들은 대충 끝난 걸까? 아니면 이 순간도 부시크래프트의 중요한 한 장면이라고 봐야 할까? 김경국은 이번에도 ‘그럼요’ 하고 답했다. “성취감을 느끼는 거야말로 부시크래프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도 일단은 좀 먹고 해요.”
 
와일드 쿠킹 스타일로 식사를 준비하는 이상훈과 김경국.

와일드 쿠킹 스타일로 식사를 준비하는 이상훈과 김경국.

그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성취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편리한 도구들이 너무 많고, 직무는 너무 고도화되어서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물로 나왔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물론 그런 결핍은 다른 취미로도 채울 수 있을 테다. 자전거의 목표 주행거리를 채우거나, 새로운 테니스 기술을 익혀도 성취감은 느낄 테니까. 다만 부시크래프트의 성취감에 차이점이 있다면, 폭넓게 실패하며 자기 스타일을 갖게 된다는 데에 있을 듯했다. 예를 들어, 취재하는 날 이상훈은 원두 커피를 내리는 데에 실패했다. 프라이팬에 생두를 볶고 헝겊 안에 넣어 도끼 뒷날로 내려쳐 부순 뒤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커피콩을 골고루 볶기에는 프라이팬이 너무 작고 납작했으며, 화력은 너무 셌다. “커피는 다음에 다시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한쪽이 검게 탄 원두를 들여다보던 그는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팬을 홱 뒤집어 내용물을 쏟아 버렸다.
그날 밤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기사에 전부 옮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닥불 앞에서 거나하게 취한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사적이거나 거창한 온갖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물론 때때로 부시크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를 테면 ‘부시크래프트를 하며 가장 좋았던 순간’에 대해 묻기도 했고. 김경국은 그 질문 앞에서 오래도록 고민하다, 그냥 손에 잡히는 걸 내놓듯 며칠 전의 경험을 들려줬다. 일본 나가노의 숲속에서 잠을 청했던 밤의 이야기였다. 그냥 타프만 설치하고 초원에 누워서 자려고 했는데, 다시 보니 땅에 개미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로프로 타프 가장자리를 묶고 나뭇가지로 토글 구조를 만들어 해먹을 설치했다고. “타프로 해먹을 만들어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런데 굉장히 튼튼하고 만족스럽더라고요. 뿌듯했죠.”
그건 사실 일반적인 캠핑의 ‘가장 좋았던 순간’과는 꽤 거리가 있는 이야기일 터였다. 캠핑의 가장 좋은 순간은 으레 특정한 자연경관 정도일 테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틀간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새벽녘 동이 트기 시작하는 숲속의 정경이었다. 단 하루의 동행 동안 손재주가 늘거나 어떤 방법론을 터득하기는 어려우니 어쩌면 당연한 일. 다만 그 경치의 감흥이 지난 캠핑의 경험들과 좀 다르게 느껴지긴 했다. 지도 위에 표시되지 않은 숲속의 어느 숨은 구석, 나무 작대기 하나로 기둥을 세운 작은 천막 안에서 눈을 뜨고 기어 나왔을 때, 단 몇 시간 만에 구축한 단단한 요새 뒤로 안개와 희미한 볕이 비쳐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며 어쩐지 스스로가 좀 더 ‘와일드’해진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삶의 터전과 너무 멀고 무관한 곳이어서 그랬을까? 서울에 두고 온 일상 속의 무엇이든 대수롭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용기가 샘솟기도 했고. 다소간 착각이겠으나, 아무튼 좋은 착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재를 하며 느낀 게 하나가 더 있다. 그런 곳에서 함께 야영지를 구축하고 밤을 보낸 사람들에 대한 유대감. 다시 카누를 타고 돌아갈 때 김경국은 자꾸 방수막 바깥으로 나오려는 강아지를 타이르고자 “브라더!” 하고 이름을 불렀는데, 나는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인 줄 알고 순간 뒤돌아 볼 뻔했다. 사회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에게, 당장 24시간 전에 만난 사람에게 느끼기에는 과연 기이하다고 할 만한 유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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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PHOTOGRAPHER 박기훈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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