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군위의 한 사립 수목원이 세계적 매체들의 관심을 받은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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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의 한 사립 수목원이 세계적 매체들의 관심을 받은 이유

경상북도 군위에 사유와 명상을 위해 지어진 수목원이 있다고 했다. 다녀온 누구나 말하기를, 직접 걸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고 했다.

오성윤 BY 오성윤 2022.05.02
 
사유원 내부 풍경. 경상북도 군위 부계면에 위치한 33만m2(10만 평) 규모의 수목원으로, 수백 년 수령의 귀한 나무들이 부지 곳곳에 심어져 있다.

사유원 내부 풍경. 경상북도 군위 부계면에 위치한 33만m2(10만 평) 규모의 수목원으로, 수백 년 수령의 귀한 나무들이 부지 곳곳에 심어져 있다.

 
나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걷다 문득 멈춰 서 “이런 곳에 팽나무가 있네” 한다든가 “이팝나무가 벌써 흐드러졌네” 하는 사람들. 어릴 때는 그게 여느 눈썰미 좋은 어른이나 마찬가지로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수산시장에서 생선 종류를 척척 구분하는 어른이나 자동차 앞코만 보고 모델명을 말하는 어른과 크게 달리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이를 먹으며 새삼 그 능력을 곱씹게 되는 건 그게 다른 종류의 마음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입에 들어가는 것을 따지거나 호사를 꿈꾸는 동안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배경처럼 놓인 것들을 하나하나 구분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능력이라서. ‘이 나무와 저 나무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작년의 나무와 올해의 나무가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할 때 두터워지는 계절과 삶의 측면이 있지 않을까?’ 경상북도 군위의 어느 숲을 거닐 때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 잘생긴 나무가 참 많기도 한 곳이라 들뜬 탓이었을 텐데, 그 수목원의 이례적인 명칭이 마주치는 모든 아름다움과 조응하는 부분도 있었다. 사유원(思惟園). 이름하여 ‘생각하며 거니는 정원’이었다. 과묵한 디자인의 입구 벽면에서부터 반가사유상의 이미지가 커다랗게 새겨 있어서, 그리고 문득 돌아보면 우뚝 솟은 표지석 뒤편에도 범상치 않은 필치로 ‘思惟園’하고 쓰여 있어서, 완연한 숲속으로 발을 들인 후로도 오래도록 그 이미지와 의미를 더듬게 되었다. 
 
사유원은 일반적인 수목원의 범주를 넘어 ‘사유하고 명상하는 정원’을 지향한다.

사유원은 일반적인 수목원의 범주를 넘어 ‘사유하고 명상하는 정원’을 지향한다.

현암 위에서 내려다본 사유원 풍경. 인위적인 요소는 모두 숨기듯 조성해 가장 높은 전망대인 소대 외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현암 위에서 내려다본 사유원 풍경. 인위적인 요소는 모두 숨기듯 조성해 가장 높은 전망대인 소대 외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네 그루의 모과나무라는 근간
사유원의 설립자 역시 나무와 연을 쌓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살아온 사람이다. 적지 않은 비용도.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자연에 큰 애정을 쏟아왔는데, 덕분에 업태에서 풍기는 인상과 달리 태창철강 대구 본사 부지는 너른 한국식 정원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가 국산 모과나무의 일본 밀반출이 빈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회사 정원의 관리 직원 덕분이었다. 정원사는 이번에도 300년 수령의 모과나무 네 그루가 일본으로 나갈 것이라고 했고, 설립자는 곧장 부산항으로 달려가 후한 값을 치르고 그 나무들을 도로 사왔다. 1989년 당시 돈으로 2000만원을 주고. 액수를 마음의 크기인 양 내세우는 문장이 자칫 속돼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때는 숫자로 간단히 증명되는 마음도 있는 법이다. 유재성 설립자 같은 행보를 가진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그는 네 그루의 모과나무 이후로도 지난 30여 년간 끊임없이 귀한 나무를 수집했고, 그 나무들이 살 곳으로 마련하기 시작한 부지만 해도 이제 66만m2(20만 평)에 달한다.
그곳이 곧 사유와 명상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처음 말한 건 건축가 승효상이었다. 그리고 ‘골프장 짓기 참 좋은 땅이다’ 같은 조언에 진력이 나 있던 설립자는 그 발상이 꽤 흡족했던 것 같다. 그때의 제안이 거의 고스란히 시설의 근간이 되었으니까. ‘사유원’이라는 이름까지도. “이름이 정해지자 이 수목원의 성격과 갈 길이 명확해졌다. 여기에 짓는 모든 시설은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며 영성을 맑게 하는 단초를 제공할 목적이 되기로 한 것이니 단순한 수목원이 아니어야 했다.” 승효상 건축가의 작업 노트에 쓰인 설명이다. 이 대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수목원을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조성된 시설이 아니라, 나무 하나하나를 아끼고 돌보는 마음이 오랜 세월 더께를 쌓듯 만든 장소라는 사실을. 그러니 수목원의 어떤 전형을 머릿속에 품고 사유원을 찾은 사람은 돌아보는 내내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목원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실상 자신만의 존재 의의와 취향을 굳게 따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유원을 방문한 날, 시계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돌고자 서쪽 끝으로 향했을 때 계곡의 낙차를 이용해 조성된 다섯 개 연못 ‘오당’을 마주했다. 다섯 오(五)가 아닌 깨달을 오(悟)를 써서 ‘깨달음을 얻는 연못’이라 했는데, 당도해보니 정작 물은 맑지가 않고 꽤나 탁한 녹색 빛이었다. “그러게요.” 사유원 운영팀의 김준 매니저는 그저 이렇게 답했다. “녹조가 좀 올랐네요. 요새 비가 통 안 왔잖아요.” 연못을 위한 인위적 배수 시설이 따로 없다는 뜻이었다. 그 필요성도 알지 못한다는 듯했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내 그 자리에 있던 자연은 결국 스스로 구할 것이라는 것. 그 과정에서 사람이 보기에 좋은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 그런 것 역시 수목원이 되기 전부터 오랜 세월 이 길을 거닌 설립자가 아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유원의 다른 어느 모퉁이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기도 했다. “자연이 자연스럽지 않고 자유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自然이 아니다.” 설립자가 직접 쓴 글씨라고 했다. 오당을 바라보던 김준 매니저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비가 오면 오당에 물안개가 껴요. 몽환적인 풍경이죠. 사유원의 건축과 자연을 보려면 맑은 날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비 내리는 날 찾는 것도 추천하고 싶어요. 굉장히 운치 있거든요.” 그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수목원이라는 형식과 사유를 연결 짓는 건 어쩌면 자연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듯했다. 도시 사람의 눈에는 얼마나 위태로워 보이든 그냥 그런 시기로 존재하는 초록빛 호수라거나, 구태여 맑은 날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 궂은 날을 상상하게 하는 숲이라거나, 사유의 영감은 자연 그대로도 차고 넘치는 듯했으니까.
 
현암 내부. 사유원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로, 삼면이 트인 전망 창을 통해 ‘땅과 하늘 사이에서’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현암 내부. 사유원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로, 삼면이 트인 전망 창을 통해 ‘땅과 하늘 사이에서’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숨은 건축, 감출 수 없는 존재감
그리고 사유원의 이런 별난 성격을 이해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괜한 것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실제로 걷다가 문득 팸플릿을 펼쳐 지도만 봐도 흐뭇했다. 도무지 ‘어떻게 생겼다’고 말하기가 힘든 시설이라서. 그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는 곧다 싶으면 둥글어지며 둥글다 싶으면 툭툭 불거졌고, 내부에 조성된 길도 마찬가지였다. 곧다가 휙휙 돌아나갔다가 꼬불꼬불하고 경사도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일말의 규칙성을 찾기가 힘드니 자연스레 상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 원래 있던 것들을 최대한 덜 괴롭히는 방향으로 조성했나 보다 하고. 이제 와 마냥 흐뭇하지 못하고 곤란한 이유는 원고에 그 시설이 어떻게 생겼는지 옮기기도 쉽지 않아서인데… 북동쪽으로 쭉 뻗은 사선 형태를 기반으로 곳곳에서 길이 갈라지고 다시 만나며 물에 떨어진 한 방울 잉크 형태를 그린다고 하면 그나마 근접한 묘사일 테다. 그리고 그 길의 줄기 사이사이에 열매처럼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사유원이 미처 국내에 그 존재를 널리 알리기도 전에 해외 유수 매체의 이목까지 끌었던 건 건축의 힘이 컸다. “어떻게 알았는지 오픈하기도 전에 찾아온 외국인도 있었어요. 개중에는 입장이 어렵다고 하니까 몰래 담을 넘는 경우도 있어서 곤욕을 치르곤 했죠.” 사유원 영업팀 홍효림 과장의 설명이다. 출입구부터 화장실, 벤치까지 사유원의 인위적 요소 대부분을 디자인한 승효상 건축가는 그 내부에 ‘명정’ ‘사담’ ‘와사’ 같은 건축물도 지었고,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인 알바로 시자는 ‘소요헌’ ‘내심낙원’ ‘소대’ 같은 건물을 설계했다. 원오원아키텍츠의 최욱 건축가도 카페 ‘가가빈빈’을 비롯한 몇몇 전망대의 설계로 참여했다. 눈여겨볼 지점은 이 건축물들 대부분이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연못 오당을 끼고 지어진 ‘누운 수도원’ 와사는 이름처럼 그저 거닐며 생각에 잠기기 좋은 구조물이었고, 수목원 끝자락 언덕에 세워진 명정 역시 묵상을 위한 공간이었다. 명정은 천장이 없이 상부가 훤히 열린 건축물이지만 좁은 계단을 따라 발을 들이는 순간 사유원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자연은 높은 담에 막혀 일거에 사라졌다. 그리고 아래로 아래로 돌아 내려가니 곧 콘크리트 벽과 물, 달항아리 조형물로 이루어진 형이상학적 공간이 펼쳐졌다. 사면의 벽에 부딪혀 울리며 자꾸만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시키던 발소리,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새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는 듯했던 감각. 사실 명정이라는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말해야 할 부분은 소재나 형태보다 오히려 그런 경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미술 작품이라 할 만한 공간이다. 입구에서 Y자 형태로 갈라진 구조물 양 끝에 각각 무모한 폭력을 주제로 한 공간과 생명을 주제로 한 공간을 조성한 건물. 한쪽에는 허공에 매달린 철강 구조물로 폭력과 전쟁을, 다른 한쪽에는 거대한 대리석 알 형태 구조물로 생명을 표현한 것이다. 이 건축물은 사실 알바로 시자가 일찍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위해 만들었다가 축조까지 하지는 못한 파빌리온 설계안을 구현한 것인데, 이제 와 재미있는 건 그것이 사유원이라는 공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이를 테면 폭력과 생명의 오브제들 뒤로 건물 끝자락이 활짝 열린 구조 같은 것. 무겁고 서늘한 작품들을 감상하다 코너를 돌면 짙은 녹음이 내 존재 전체를 감싸듯 달려드는 것이다. 두 공간 사이에는 정향나무, 미선나무, 미스김 라일락 등 향기가 좋은 나무들로 ‘몽향구’라는 중정이 조성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소요헌에 시적 영감을 더해주고 있는 건 새 둥지였다. 양쪽 공간으로 길이 나뉘는 갈림길의 벽면에 작은 홈이 있어 들여다보니, 어느 새가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둔 채였다. 무슨 새의 알인지는 사유원 관리팀도 잘 모른다고 했다. “혹시나 알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나중에 새가 깨어나면.”
둥지 사진을 찍어 SNS 공식 계정 같은 데에 ‘아무개 새가 알을 낳았어요’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것. 어떤 관심이나 사건에도 짐짓 태연한 것. 괜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것도 사유원이라는 수목원의 별난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렇듯 빼어난 건축물을 여럿 갖추고 있는데,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서 봐도 그들 대부분이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승효상 건축가는 강력히 희망하기로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듯한 건물들’을 짓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모든 시설을 땅속으로 넣거나 묻히게 했다는 것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기까지 했다. “사유원에서 건축은 중요하지 않으니, 나무를 흘깃 보지 말고 대화하도록 노력하세요.” 지나치게 건축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이 수목원의 의도에서 한참 벗어나는 일이라는 뜻이다. 다만 건축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무래도 좀 지나친 표현이지 싶기도 했다. 알바로 시자가 만든 작고 고요한 예배당 내심낙원, 승효상 건축가가 버드나무 숲에 조성한 수변 공연장 사담, 수목원 정상부에서 통창으로 팔공산 비로봉을 내다보는 최욱 건축가의 북카페 가가빈빈, 한국식 정원의 정수를 펼쳐놓은 유원… 모든 장소가 저마다의 신선한 경험과 영감을 안겼으니까. 이 걸출한 건축가들은 대지와 주변 자연을 이해한 후 그에 종사하는 건물을 지었고, 그렇기에 건축물을 하나하나 오롯이 즐긴 관람자는 나무와 좀 다른 종류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할 것이다.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 내부. 무모한 폭력과 전쟁을 주제로 한 공간으로, 다른 쪽 끝에는 생명을 주제로 한 공간이 있다.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 내부. 무모한 폭력과 전쟁을 주제로 한 공간으로, 다른 쪽 끝에는 생명을 주제로 한 공간이 있다.

명정 내부. 사유원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건축물로,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명상의 공간이다.

명정 내부. 사유원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건축물로,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명상의 공간이다.

와사. 역시 승효상이 만든 구조물로, 연못 오당을 감상하며 명상할 수 있는 작은 수도원을 의도했다.

와사. 역시 승효상이 만든 구조물로, 연못 오당을 감상하며 명상할 수 있는 작은 수도원을 의도했다.

 
사유원의 주인공들
만약 승효상 건축가의 말처럼 건축물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사유원의 주인공은 무엇일까? 아마 많은 사람이 모과나무밭 ‘풍설기천년’을 꼽을 것이다. 정상부에서 다시 입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모과나무 108그루가 식재된 들판이 펼쳐졌고, 그 속에는 사유원의 단초가 되었던 4그루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모과나무는 아무리 잘 찍은 사진도 직접 보는 것만 못한 것 같아요. 눈으로 볼 때의 오묘한 느낌이 담기지 않는 것 같다고 할까요?” 홍효림 과장이 지나가듯 한 말이 절로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저마다의 전위적 모양을 가진 나무들이 언덕 여기저기 수행자처럼 들어앉아 장관을 펼쳤고, 다만 거닐며 깊이 들여다보면 300년 이상 수령의 고목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건 더없이 소박하고 진솔한 역사였다. 정원 초입에서 사라졌던 포토그래퍼는 한참 뒤에야 문득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여기 하루 종일이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그 말을 얼른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이곳에 다다른 누구나 자연히 떠올릴 감상일 거라는 문장과 함께. 잘 가꾸어진 정원이라는 것만으로 조경에 식견이 없는 사람이 경이를 느끼기는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그의 웃는 얼굴은 딱 그런 종류였다. 경이. 시종 담백한 작명을 추구하는 듯하던 사유원이 과연 ‘바람과 눈을 이겨 1000년을 이겨내는 정원’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을 붙여놓을 법했다.
물론 풍설기천년이 이 수목원의 주인공이라는 주장에 사유원 관계자 누구도 동의하지는 않을 테다. 사유원을 이루는 식물은 1000여 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모과나무 외에도 귀한 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유원에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직접 작업복을 입고 곳곳을 가꾼 설립자나 유준혁 대표는 분명 귀한 나무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할 것이며. 어쩌면 계절에 따라, 날에 따라 주인공이 바뀐다고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아직 앙상한 느티나무 숲 ‘한유시경’을 지날 때는 한여름 흐드러진 잎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상상하게 되었고, 배롱나무 뜰인 ‘별유동천’을 지날 때는 새하얀 가지마다 붉은 꽃이 잔뜩 돋아난 가을 풍경이 놀랍도록 아름답다는 전언을 곱씹게 되었던 까닭이다. 돌은 또 어떻고. 그 귀한 나무들을 두고, 나는 때로 포토그래퍼를 불러 세워 돌 구경을 시켰다. 이 바위 좀 보라고. 너무 잘생기지 않았느냐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유원이라는 세계를 빚어낸 건 유명 건축가들만이 아니다. 사유원의 풍경은 정영선, 가와기시 마츠노부 같은 장인 조경가들이 풀과 나무, 물과 돌의 바른 위치와 조화를 세심히 따져 조성한 것이다. 바위 하나까지도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 엄선해 가져온 것을 일일이 골라 1cm 단위로 옮겨놓으며 제자리를 찾았다고 했다. 물론 1cm의 차이를 범인이 알까마는, 감동은 누구나 받을 것이었다. 땅에서 자연히 나는 것들을 구경하고 다니면서도 어째 계속 융숭한 대접 받는 듯한 느낌은 그런 치밀함이 모여 만든 것이었을 테니까.
말인즉, 사유원은 이런 곳이다.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오랜 세월 쌓여 만들어진 곳. 부지를 차지하고 있던 산세와 자연을 최대한 그대로 두고자 하며, 인위를 들인다면 그 어떤 것도 허투루 택하지 않은 곳. 그리고 그 모든 정성에도 기이할 정도로 과묵한 곳. 아무렴 사유를 권하는 이가 미덥지 못한 부분이 있어도, 너무 수다스러워도 안 될 일이지 생각하고 보면 현명한 태도 같았다. “보통은 입구 옆 이쯤에 장황한 설명문을 걸어놓았을 텐데요.” 내일부터 일반 관람객에 공개 예정이라는 전망대 소대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농담 삼아 말했을 때 홍효림 과장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설명이 감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선입견을 만들 수도 있잖아요. 저희는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무 선입견 없이 사유원을 직접 경험하는 게.” 듣고 보니 과연 ‘사유를 위한 수목원’에 맞는 방침 같았다. 그래서 소대 앞 현판에는 이렇게만 쓰여 있다. “소대 Miradouro 巢臺”. 장소에 따라 몇 줄의 설명이 덧붙여 있거나 반대로 한글 병기 없이 한자만 적힌 경우도 있지만, 사유원에서 볼 수 있는 현판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딱히 불친절하다고 여길 계제는 아니다.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입구에서 받은 팸플릿을 펼치면 되니까. 심지어 사유원에는 온갖 사소한 것에도 이름이 붙어 있다. 물탱크를 근사하게 설계해 전망대 역할을 하도록 하고 그 앞에 ‘첨단’이라는 이름을 써놓은 마음을 보면, 시설 곳곳의 화장실에 각각 다른 이름을 붙여놓은 정성을 보고 나면 그 누가 무신경하다 여길 수 있을까? 모든 이름은 한학에 정통한 유재성 설립자가 직접 지은 것이며, 글씨는 중국의 서예가 웨이량이 쓴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걷다가 곳곳에서 그 근사한 필치의 이름들을 필담처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쉬려고 앉았다가 벤치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좌망심재(坐忘心齋)’라는 한자를 발견했을 때 새삼 깜짝 놀랐던 건 그래서였다. 자기도 모르게 함축적 한자들에서 뜻을 헤아리고 있자니 옛 선비들이 한시 짓기를 놀이로 삼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 물론 다른 식으로 감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벤치에까지 이름을 붙이는 성심에, ‘앉아서 모두 잊어버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그 메시지에, 혹은 존재하지 않으려는 듯 존재하는 벤치의 오묘한 디자인과 해당 메시지가 조응하는 방식에. 아무렴 이곳에서 아무런 사유에도 들지 않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일 것이고 말이다.
 
풍설기천년. 108그루의 모과나무로 조성한 정원으로, ‘바람과 눈을 이겨 1000년을 가는 정원’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풍설기천년. 108그루의 모과나무로 조성한 정원으로, ‘바람과 눈을 이겨 1000년을 가는 정원’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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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오성윤
    PHOTOGRAPHER 박현성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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