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윤승아

윤승아는 그 누구의 무엇이 아닌, ‘배우 윤승아’가 간절해졌다.

시스루 블라우스 필라소피 드 로렌조 세라피니 by 네타포르테. 블랙 스커트 더 쿠플스. 구두 쥬세페 자노티.

나이에 비해 굉장히 어려 보이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애교가 많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도 많아요. 실제로는 노인처럼 정적인 편인데.(웃음)

2006년에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윤승아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계기가 됐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름이 알려져 조금 얼떨떨했을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라 감독님께서 주시는 디렉션에만 집중해 작업했는데 그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면서 갑자기 검색어 1위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즐길 겨를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죠.

2005년에 광주에서 서울로 놀러 왔다가 길거리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원래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고등학생 때부터 제안을 몇 번 받았지만 미술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죠. 대학생이 돼서 다시 제안을 받았을 때도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연예인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죠. 워낙 정적인 아이였으니까요. 그러다 모델 일을 시작했는데 미술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그때는 그게 일종의 창작 활동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재미있기도 했어요. 항상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해왔지만 제 자신을 직접 표출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다만 직업을 삼고 길게 일할 거란 생각까진 못 했죠.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군요.

할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한국화 작품 활동도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화가가 될 거라고 했죠. 실제로 미술이 재미있었고요. 그래서 자연스레 미술 학원에 다니면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게 됐죠.

시스루 드레스 마쥬 by네타포르테. 골드 링 넘버링.

<메소드>에서 연기한 희원이란 인물이 미술가라서 반갑진 않았나요?

방은진 감독님과 처음 미팅할 때 희원이가 미술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질렀어요.(웃음) 게다가 대학생 시절까지 보낸 제 고향인 광주에서 촬영하는 신도 많아 희원이에게 더 끌렸던 거 같아요.

희원이라는 여자는 본래 차분하고 사려 깊은 인물로 등장하지만 두 남자 사이에서 점차 극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마음이 요동치는 인물이었을 거 같아요.

사실 촬영 기간 동안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어요. 첫 촬영 신이 극장에서 희원이 영우(박성웅)와 재하(오승훈)가 키스하는 걸 보는 장면이었는데 그때 정말 심장이 강하게 떨리는 걸 느꼈어요. 여자로서 희원에게 공감하는 면이 있지만 아무래도 퀴어 코드가 있는 영화이다 보니 그런 부분이 제겐 생소하게 와닿았던 거 같아요. 대본을 보고 리딩할 때 짐작했던 것과 현장에서 보는 건 또 다르더라고요.

어떤 식으로든 그런 생소함을 극복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요. 어디에서 어떻게 해법을 찾았나요?

감독님께서 처음부터 희원이 가장 어려운 캐릭터일 거라 말씀하셨어요. 왜냐하면 두 남자가 흔들릴 때에도 희원은 냉정하게 그 모든 상황을 감내해야 하고, 그 중심에서 계속 그런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캐릭터니까요. 그래서 정말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많이 몰입하려고 노력했고, 감독님이나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기댄 부분이 많아서인지 예전보다 촬영장에서의 친밀도도 크게 느껴진 거 같아요. 결과적으론 제가 배우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얻은 느낌이에요.

<메소드>에서 함께한 박성웅 씨와는 <살인의뢰>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죠. 그때만 해도 끔찍한 관계였는데.

살인자와 피해자였죠.(웃음)

<메소드>에서는 연인이 됐군요.

사실 <살인의뢰> 촬영 때는 만날 기회가 적었어요. 한 다섯 번 정도? 그때는 유쾌한 오빠처럼 느껴졌는데 <메소드>를 찍으면서는 정이 많이 들었죠. 그냥 만나기만 해도 웃게 되는 그런 선배? 장난기가 정말 많은 편이기도 하고, 항상 유쾌했어요.

반대로 재하 역을 맡은 오승훈 씨는 <메소드>가 첫 영화였다더군요.

현장에서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어요. 어린 나이지만 에너지가 넘치게 열정적이었어요. 덕분에 현장 분위기도 업된 거 같아요. 연극 무대 신을 정말 타이트하게 촬영해서 정말 힘든 상황이었는데 승훈 씨의 에너지가 그런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어쩌면 영화를 18회 차 안에 찍게 만들어준 원동력일지도 몰라요.

벨벳 드레스 구찌. 구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렇다면 신인 시절의 배우 윤승아에게 촬영 현장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저는 낯가림도 심하고 소심한 편이었어요.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도 어려웠죠. 누군가 말을 걸면 얼어버렸으니까. 그래서 승훈 씨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남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좀 달라졌나요?

예전에는 불편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환경에서 벗어나려 했다면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그 안에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거죠.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최대한 서로 배려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노력하죠.

그런 변화를 가져온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무열 씨를 만나면서부터였던 거 같아요. 무열 씨가 출연하는 공연을 보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어요. 요즘에는 대본도 같이 봐달라고 하는데 단순히 리딩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제가 보는 것과 다른 시각이 궁금해서예요. 저는 A라는 답으로 대본을 보는데, 그는 B나 C라는 답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관점에 대해 서로 토론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제겐 엄청난 자극이 돼요. 결과적으로는 캐릭터를 더 풍성한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그 이전까진 배우로서 큰 갈망을 품지 못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사실 한때 배우를 계속할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 3>(이하 <로필 3>)를 하면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님, 작가님이 제게 많은 힘이 됐거든요.

그런 변화는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경험을 거친 이후에 더욱 명확해지는 법이잖아요. <로필 3>를 끝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맞아요. 그때는 잘 몰랐죠. <로필 3>가 끝나고 나서 차기작을 선택할 때 더 많이 고심하게 됐어요. 그 전까진 작품이 들어오는 대로 쉬지 않고 활동했는데 <로필 3> 이후로 배우로서 고민이 많아지면서 공백이 길어졌죠. 그래서 공백 기간 동안 처음으로 단편영화에 출연해보기도 했고요. 뭔가 새로운 걸 느껴보고 싶단 생각이 강해졌어요.

어쩌면 그런 고민들이 <메소드>를 선택하게 만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제가 <메소드>를 한다고 했을 때 소속사에선 놀랐어요. 아무래도 기존에 맡았던 캐릭터나 출연했던 작품과는 너무 달랐으니까요. 영우나 재하보단 비중이 적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저는 희원이 두 남자 사이에서 그저 소모되는 캐릭터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정말 하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열망이 생겼는데 정작 공백기가 길어지니 힘들진 않았나요?

어느 날 TV를 보다가 울었던 적이 있어요. 어떤 드라마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거기 나오는 배우들이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왈칵 났거든요. 그 당시에 뭔가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지난 추석 연휴에는 우연히 <백조클럽>이라는 예능을 봤는데 거기에 배우 김성은 씨가 출연하더라고요. 김성은 씨가 ‘누구의 엄마’ 혹은 ‘누구의 아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그냥 ‘김성은’으로서 뭔가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저도 결혼한 뒤에 배우로서 많은 작품을 하지 못했거든요. 물론 그 모든 과정은 제가 선택한 것이지만 ‘배우 윤승아’보다 ‘김무열의 아내’ 혹은 ‘강아지를 사랑하는’이란 식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결국 배우 윤승아는 잊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제 스스로의 갈망이 커진 거 같고요.

<메소드>를 연출한 방은진 감독과의 작업은 여성 감독과의 작업이란 점에서 그 전의 현장과는 남다른 느낌이 있지 않았을지 궁금합니다.

그보단 방은진 감독님이 원래 배우로 활동하셨잖아요. 그래서인지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잘 이해해주신 거 같아요. 마치 극 안에서 같이 숨을 쉬는 느낌이랄까요? 희원이 너무 힘들어 보이는 장면을 찍었을 때엔 컷을 하면 다가와서 꼭 안아주시는 경우도 많았고요. 마치 희원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시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감독님을 믿고 캐릭터에 더욱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화를 하다 보니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배우처럼 느껴지는군요.

“작품은 안 하세요?”가 몇 년 사이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에요. 그래서 <메소드>가 11월에 개봉하면 그런 궁금증을 갖고 있던 분들에게 답을 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제게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거 같고요. 그동안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혹시라도 <메소드>를 본 관객이 ‘윤승아에게 이런 표정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1초라도 해주신다면 정말 고마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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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MOK JUNGWOOK
헤어 이 에녹
메이크업 이 준성
스타일링 김 지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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