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여전히, 엄정화

지금까지 엄정화만 해온 것, 지금 엄정화만 하는 것, 앞으로 엄정화만 할 수 있는 것.

스튜디오에 엄정화가 들어오자 기분이 이상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지금 30대 중반쯤 된 세대라면 엄정화의 노래와 출연작을 거의 다 알고 있다. 내 눈앞에 시대의 상징, 한 시대에서 가장 멋졌던 사람이 실제로 서 있었다.

엄정화를 보던 소년은 어른이 됐는데 그녀는 여전히 트렌드의 맨 앞에 있다. 엄정화 주변의 시간만 다른 템포로 흐르는 것 같았다.

WATCH ME MOVE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보디슈트 에레스 by 네타포르테. 스커트 러브미백. 벨티드 보디슈트 데멘드 데 뮤테송 by 뎀 프로젝트.

엄정화 측에서 제안한 이번 촬영 콘셉트는 악녀였다. 도전적인 의상을 입고 센 표정과 분위기도 팍 넣고 카메라 앞에서 맨살도 어느 정도 드러내야 했다.

솔직히 쉬운 촬영은 아니었지만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유는 막연하고 간단했다.

엄정화니까.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어도 엄정화니까 믿을 수 있었다.

촬영 중 틈이 날 때 엄정화에게 말을 건넸다. 엄정화는 언젠가부터 늘 최고의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다. 이번에는 아이유와 가인을 프로듀스한 조영철이 엄정화와 함께했다. 지난 앨범인 <디스코>의 프로듀서는 YG 엔터테인먼트의 테디였다.

왜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엄정화와 함께할까? “다들 전화만 하면 엄정화 님과 작업을 하는 거예요? 엄정화니까?” 그녀는 활짝 웃으며 “네!”라고 말했다. 그 상쾌한 대답 안에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건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WATCH ME MOVE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레이스 보디슈트 라펠라.

WATCH ME MOVE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레이스업 디테일 보디슈트 티 바이 알렉산더 왕 by 네타포르테.

WATCH ME MOVE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촬영이 시작되자 엄정화는 금방 다른 사람이 되었다.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는 정도로 손쉽게 다른 사람을 불러내는 것 같았다. 틈틈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나와 잡담을 나누던 친절한 여자와 렌즈 앞의 아티스트 엄정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엄정화의 이번 앨범 프로듀서인 조영철은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엄정화를 “늘 무대에서 완벽하게 연기하는 가수”라고 표현했다. 그 말대로였다.

보디슈트를 입고 찍는 마지막 컷에서 엄정화가 물었다. “여기 블루투스 스피커 있어요?” 그녀의 스마트폰을 연결하자 익숙한 목소리로 부르는 낯선 노래가 나왔다. 앨범 발매보다 조금 일찍 엄정화의 신곡을 듣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새 노래에 맞춰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었다. 노래가 두세 번쯤 더 돌고 촬영이 끝났다. 내가 그녀의 시간을 잠깐 쓸 차례였다.

엄정화는 남이 나를 좋아해줄 때의 감동을 이야기했다.

“내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이 있어요. 연기도 노래도.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부분을 좋아하기도 해요. 배우 스스로는 이 연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배우 본인만 아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 아는 그 만족감이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은 그 작은 부분까지 잘 알아요. 그걸 알아주면 다르죠. 정말 특별하게 나를 알아주는 것 같은 기분. 남이 그걸 알아주는 건 너무 감동적인 일이에요. 아주 작은 거라도.”

WATCH ME MOVE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레이스 시스루 코르셋 라펠라.

WATCH ME MOVE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레이스업 디테일 보디슈트 티 바이 알렉산더 왕 by 네타포르테.

엄정화는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다.

어떻게 20년 동안이나 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게 그녀의 동기일까? 아니었다. 엄정화는 자가발전기 같은 사람이었다.

“이걸 좋아하니까, 이 일을 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게 동기부여예요. 좋아하는 일을 다 할 순 없는데 다 하게 된 것에 늘 감사해요. 1993년에 데뷔해서 제 나이에, 11번째 정규 앨범을 내거든요. 이 자체가….”

엄정화는 여기서 잠깐 말을 멈췄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침묵.

“감사하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엄정화는 아팠다. 갑상선 수술 후유증으로 성대를 다쳤다. 마비된 부분도 있다. 조영철의 페이스북 게시물엔 이런 말도 있다.

“대화 톤을 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의사 진단도 그랬지만 본인도 노래를 다시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고요. (중략) 다만 만약 노래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꼭 음반 작업을 같이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중략) 가까이서 본 엄정화는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내는 프로였습니다.”

엄정화는 이겼다.

“극복하고 싶었어요. 이 목의 컨디션을. 사실은 노래 부르기 너무 힘든 상황인데, 끝까지 내가 노력해서 이걸 넘어가고 싶은 거 있잖아요. 지금도 마비된 성대가 다시 돌아오진 않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불편하지만, 해냈다는 것에 되게 큰 의미가 있어요. 이겨내고 싶어요. 12월 26일이 첫 방송이에요. 가요대전.”

그야말로 엄정화다운 복귀 아닌가.

WATCH ME MOVE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쥬얼 장식의 미니드레스 21드페이.

엄정화의 가장 큰 매력은 당당함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배반의 장미’에서도, ‘초대’에서도, <싱글즈>에서도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도, 그녀는 자신 있고 당당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통념을 벗어나면서도 늘 사랑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엄정화는 여전했다.

“신곡 이름은 ‘와치 미 무브(watch me move)’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를 봐’라는 게 노래 안에서 나를 보라는 뜻도 있지만 ‘내(엄정화) 움직임도 좀 봐’ 이런 느낌. 이제 8년 만에 새 앨범이 나왔어요. 지금도 저는 현재진행형의 음악을 하고 있어요. 그걸 봐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계속 보고 싶을 것 같다. 엄정화는 늘 새로우니까. 늘 멋있으니까. 늘 사랑스럽게 웃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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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사진유 영규
헤어한 지선
메이크업박 혜령
스타일링김 석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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