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현, 생각에 잠긴

여배우의 마음속에 몇 개의 서랍이 있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남지현, 생각에 잠긴 - Esquire Korea 2016년 9월호

니트 커스텀멜로우.

보통 잡지 인터뷰는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거나 인터뷰를 하고 나서 사진을 찍는다. 순서는 상관없다. 샤워할 때 머리 감고 양치질을 하든 양치질하고 머리를 감든 무방한 것과 같다. 둘을 동시에 하려면 곤란하다는 점도 같다. 남지현과는 인터뷰를 하고 나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우리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제작 발표회 날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오전부터 인터넷 뉴스에 남지현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속의 남지현은 아래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연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차승원과 유준상 사이에 서 있었다.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대학생 같아서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사랑스러운 대학생 좋다. 하지만 <에스콰이어>의 ‘우먼 위 러브’에 어울리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나는 좀 더 성숙하고 묘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원했다.

제작 발표회에 다녀온 남지현을 오후 3시 반쯤 만났다. 그녀는 발목이 보이는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넣어 입고 샌들을 신은 채,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대학생처럼 도착했다. 그 모습엔 타고난 생기와 긍정적인 기운이 있었다. 무리 안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냉장고의 숯처럼 안 좋은 기운을 없애줄 것 같았다. 다만 역시 <에스콰이어>의 ‘우먼 위 러브’에 어울리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나는 계속 좀 더 성숙하고 묘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원했다.

남지현, 생각에 잠긴 - Esquire Korea 2016년 9월호

니트 올세인츠.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기억난다. 남지현은 톤이 높은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과 적당한 속도로 말했다. 문장을 이루는 모든 음절을 또렷하게 발음해 알아듣기가 무척 쉬웠다. 어릴 때부터 단련된 배우다웠다. 어릴 때 배워둔 악기나 운동의 폼처럼 모자라거나 남는 부분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러 곳에서 남지현을 볼 수 있다. 그녀는 <터널>에 출연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9월 초에 개봉하고 9월 16일에는 첫 주연을 맡은 MBC 드라마 <쇼핑왕 루이>가 방영된다. 그녀는 예의 그 정확한 발음으로 설명했다.

“루이(서인국)는 사람 이름이에요. 재벌 집 아들인데 사고 때문에 기억을 잃고 그 과정에서 저를 만나요.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고 강원도 산골에서 남동생과 할머니랑 살아요. 루이랑 저랑은 서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았는데 루이가 기억을 잃고 둘이 만나면서 루이와 저의 로맨스이자 성장이 시작되는 드라마예요.” 냉정하게 말해 ‘안 보고는 못 배기겠다’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남지현의 입을 통해 나오자 묘한 설득력이 생겼다.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한번 볼까나’ 싶어졌다.

남지현, 생각에 잠긴 - Esquire Korea 2016년 9월호

원피스 겐조. 발찌 스톤헨지.

그녀에게 다가가 “지금 무슨 생각해요?”라고 물어보았다. 겐조 원피스를 입은 여배우가 갑자기 다시 활발한 모범생이 되었다. “저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세상엔 주제에 상관없이 어떤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분위기를 밝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가사 없이 스캣만 해도 마음을 울리는 가수처럼. 남지현에게는 그런 식의 특수한 에너지가 있었다. 내 눈앞에 있는 남지현은 보통 대학생과 다를 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난 그녀가 여배우가 된 게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인터뷰는 평이했다. 남지현은 연애 경험이 없으며(거짓말 같지 않았다) 대학교를 아주 열심히 다닌다(역시 거짓말 같지 않았다). 친구들이 “너 연예인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다. 연예인 특혜가 없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며 4.3만점에 3점 이상의 학점을 기록한다. 인천-신촌 구간을 삼화고속을 타고 다니며 등교하고 용돈은 받아서 쓴다. 학업에 지장이 갈 정도의 스케줄이 생기면 휴학한다. 졸업하고 나서 계속 배우를 할 생각이다. 나이 들어서도 멋진 배우를 하고 싶다.

남지현, 생각에 잠긴 - Esquire Korea 2016년 9월호

코트 올세인츠.

모범생과의 소개팅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곤란한 기분도 쌓여갔다. 남지현 특유의 사랑스러운 모범생 분위기는 아주 좋다. 하지만 이건 <에스콰이어>의 ‘우먼 위 러브’다. 담당 에디터인 나는 성숙하고 묘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남지현에게 섹시한 이미지를 기대하진 않았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인간 남지현에게 생긴 호감이나 배우 남지현에게 생긴 신뢰와는 무관하게 나는 직업적으로 난처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지현은 마지막 질문까지 최선을 다해 솔직하고 밝게 이야기해주었다. 묘한 이미지를 원하는 내가 그녀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촬영이 시작되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카메라 앞의 남지현은 묘하게 기묘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아까 나와 이야기한 그 여자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녀는 살짝 입을 벌리고 뭐든 각오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뿐이었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행복해질 기회를 놓친 것처럼 바닥에 앉았다. 사진을 찍던 김참은 “남지현 씨에게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잠시 그녀에게 다가가 “지금 무슨 생각해요?”라고 물어보았다. 겐조 원피스를 입은 여배우가 갑자기 다시 활발한 모범생이 되었다. “저는 지금 아아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휴, 여배우들이란.

남지현, 생각에 잠긴 - Esquire Korea 2016년 9월호

니트, 바지 모두 커밍스텝. 귀고리 스톤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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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헤어혜니
메이크업조 희정
스타일링김 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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