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빈은 궁금하다-1

힘 있는 캐릭터에 끌리지만 남성적 시각에 갇힌 캐릭터를 보면 답답하다고, 김옥빈은 말했다.

트렌치코트, 니트 원피스 모두 막스마라.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 촬영이 한창이라 들었다.

지난 12월 말부터 시작했으니 한 2주 정도 됐나? 내일 아침에도 일찍 강원도 철원까지 가야 한다. 한국에서 제일 춥다는 그곳.(웃음)

<작은 신의 아이들>을 쓴 작가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한 시사 프로그램 방송작가라고 들었다. 지금까지 보던 대본들과는 다르다고 느껴진 부분은 없었나?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이야기가 섬세하면서도 힘이 있고, 현실감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인물들은 경쾌하고. 그래서 좀 놀라며 읽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 작가가 썼다는 거다. 나중에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의 특성도 잘 살렸다. 극이 진행되다가 인물들이 갑자기 붕 떠서 사건을 재연하는 상황 속으로 쑥 들어갈 때가 있다. 마치 시사 프로그램에서 세트를 지어 사건을 재연하듯이.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령처럼 수사를 하는 거다. 그런 아이디어가 다른 비슷한 장르물과는 차별화된 장점으로 보인다.

김단이라는 형사 역을 맡았는데, 이 역할에 끌린 이유가 궁금하다.

초보 형사라는 점이었다. 팀에서 막내다. 그만큼 미숙한 모습에서 차근차근 성장하는 스토리를 소화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 끌렸던 거 같다. 원래 <워터 보이즈>나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같은 성장 드라마를 좋아한다. 성숙한 캐릭터보다 미숙한 캐릭터가 좋고. <작은 신의 아이들>은 장르물이니까 차기작에서는 좀 더 사람이 돋보이는 드라마에서 내면적인 성장을 이뤄나가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

숄더 워머, 바지 모두 헬무트 랭 by 비이커. 보디슈트 렉토 by 비이커.

최근작인 <악녀>에서 강렬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김옥빈의 액션 신을 기대해도 좋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형사 역할을 맡았다고 하니 <악녀>를 생각하고 비슷한 질문을 하는 분이 많았다. 이번 작품에선 미숙한 초보 형사라 오히려 실수가 많다. 그리고 액션 연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몰라도 능숙하게 수사하는 검사나 형사 역할을 제안하는 작품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능숙한 인물을 연기하면 극이 진행됐을 때 별로 할 게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요즘 장르적인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는데 <작은 신의 아이들>도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처럼 보인다.

맞다. OCN에서는 장르물 드라마를 많이 방영하고 있는데, <작은 신의 아이들>도 거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스릴러물이자 수사물이다. 사건 자체는 굉장히 거대하고 무섭다. 그런데 그 안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가볍고 밝다. 그래서 장르 특성상 무겁게 보일 수 있는 요인이 많음에도 너무 심각하지만은 않다는 게 장점인 거 같다. 약간 ‘미드’ 같은 느낌? 그래서 특이하게 느껴졌고.

김단은 기묘한 능력이 있는 형사라던데.

어렸을 때부터 보고 싶지 않은 걸 보게 되는 인물이다. 타인의 기억 속에 자리한 과거가 조각처럼 보이는 능력이 있어, 남의 고통이 전이되거나 예지할 수도 있다. 이런 능력 탓에 어릴 때부터 ‘귀신 들린 애’라고 손가락질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한다. 그래도 사랑으로 감싸주는 아빠 덕분에 스스로 밝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이왕 가진 능력이니 좋게 써보자며 경찰의 꿈을 키운다. 사건 발생을 먼저 알아차리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형사가 된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밝은 성격으로 덮는 인물처럼 보이는데, 배우나 연예인으로 살다 보면 대중이 원하는 모습을 고려해서 행동하고 말하게 되는 순간순간이 있지 않나. 그러다 보면 진짜 내 모습이 사라진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을 거 같다.

사실 이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2~3년간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10대 때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어린 나이이기도 했고, 배우로서 자아가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았던 때라 진짜 내 모습과 유명인으로서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 잘 맞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계속 활동하다 보니 점점 맞춰지더라.

인기를 얻은 직후에 느끼는 혼란이 있었나 보다.

배우나 연예인이라면 다들 느끼지 않았을까? 데뷔하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김옥빈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예인 김옥빈과의 괴리가 확 느껴졌다. 그 차이가 너무 컸다. 사람들이 나한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게 어느 순간 너무 싫어졌다. 그래서 이런 기대감 자체를 무너뜨려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배우로 생활하는 게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톱 유돈 초이. 바지 프로엔자슐러. 구두 니나 리치.

그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

혼자 생각해봤지만 딱히 답이 없어서,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박쥐>를 할 때 좋은 선배님들을 많이 만나면서 자연스레 풀린 듯하다. 내 의식이 가장 크게 성장했던 게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대선배들이 즐비한 촬영장에서 스물두 살짜리 애가 열심히 해보겠다고 현장을 누비고 다니니까 다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때 너무 궁금해서 질문도 많이 했다. “선배님은 힘들 때 뭐 해요?” “연기하다 괴로우면 어떻게 해결하세요?” “연기가 잘 안 풀릴 때도 있어요?” 이런 거. 베테랑에게 하기엔 너무 애 같은 질문이지만 그때 나는 그런 게 너무 궁금했다. 박찬욱 감독님을 비롯해 김해숙 선생님, 송강호 선배, 신하균 오빠, 오달수 선배 등과 매일같이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만 해도 의식이 많이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 <박쥐>를 통해 큰 주목을 받은 만큼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도 생겼던 것 같다.

<박쥐> 이후로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제작자나 감독 입장에서는 배우의 이미지를 다시 활용하는 게 실패할 위험도 적고,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확실하게 알게 된 건 내가 힘없는 여자 캐릭터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남한테 끌려다니지 않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역할을 원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주관이 뚜렷한 역할을 주로 선택했고 그런 연기를 했던 거 같다. 결국 지금의 내 이미지는 스스로 구축했다는 느낌이 있다.

개봉을 앞둔 <1급기밀>에서 연기한 방송국 기자 김정숙도 공군의 방산 비리를 파헤치는 인물이다. <소수의견>에서 연기했던 신문사 기자 공수경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두 역할의 공통점은 기자로서의 직업의식을 넘어 개인적으로 참을 수 없는 일을 들이받아서 뒤집고 싶어 하는 인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1급기밀>을 선택한 건 역할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내가 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였다. <소수의견>의 공수경은 영화가 다루는 사건을 함께 끝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1급기밀>의 김정숙은 끝까지 함께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마치 <소수의견>의 수경이가 성장해서 이번에는 끝까지 함께 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1급기밀>은 출연 분량은 적었지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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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어시스턴트이정훈
사진목정욱
헤어조영재
메이크업이준성
스타일링윤은영
출처
3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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