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 칼럼] 번역가의 이름

번역가 황석희는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마주하게 됐다.

‘번역 황석희’라는 다섯 글자를 극장 스크린에 올리는 게 숙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영화 번역가가 되려는 건 아니었고 그저 한 번만 이름을 올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려 했다. 케이블 TV 외화 번역을 6년 하면서 영화 번역가라는 벽이 비현실적으로 높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땐 정말 수년을 부딪쳐도 그 벽에 금 한 줄 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왜 내겐 기회가 없냐고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천지신명에게든 어지간히 술주정을 부린 것 같다. 인간 승리네, 노력의 결과네 이런 신파를 쓰려는 게 아니다. 영화 번역가가 된 건 그런 감동적인 이유보다는 사소한 우연의 덕이 훨씬 컸다. 그저 내가 번역가 크레딧에 한 맺힌 인간이라는 걸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뿐이다.

지금도 극장에 가면 영화가 끝나도 끝까지 앉아 습관처럼 번역가의 이름을 확인한다. 번역가가 누구인지 아는 작품은 물론이고 심지어 내가 번역한 작품도 내 이름을 확인한다. 화장실도 못 가고 강제로 옆에 앉아있는 지인은 내가 끝끝내 확인하려는 게 내 이름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침내 크레딧 끝에 올라오는 내 이름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지인은 번역가만 아는 쿠키라도 있는 줄 알았다며 방광염 걸리면 책임지라고 윽박을 지른다.

뭐 어쩔 거야. 번역가 크레딧에 한 맺힌 번역가랑 영화 본 당신 탓이지. 내 이름 도둑맞을까 봐 지키고 선 파수꾼처럼 크레딧을 끝까지 지켜본 게 벌써 햇수로 9년째인데 요즘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번역가 크레딧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자의 혹은 타의로.

알다시피 요즘은 영화사들이 번역가 크레딧을 스크린에 잘 넣지 않는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화 번역가라고 하면 한 달에 최소 개봉작 두 편 이상 번역하는 번역가를 말하는데 대여섯밖에 안 되는 그 좁은 풀에서 번역가 크레딧을 삽입하는 번역가는 절반이 되지 않는다. 이는 영화사의 방침일 때도 있고 번역가의 요청일 때도 있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번역가 크레딧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한국에선 이미도 번역가가 최초로 번역가 크레딧을 쓴 이후로 쓰게 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까지 번역가 크레딧을 삽입하지 않는 방침을 고수하는 영화사도 있고 번역가의 의사에 맡기는 곳도 있다. 최근 빼는 경향이 큰 것은 사실이나 갑자기 번역가 크레딧을 일괄적으로 빼거나 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나는 번역가 크레딧에 한 맺힌 번역가면서도 그런 결정에 누구보다 공감한다. 영화사 입장에선 불필요한 리스크를 사전에 제외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번역가 입장에선 심적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가 크레딧이 없다는 건 비난의 화살이 꽂힐 표적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 화살들은 허공을 통과해서 바닥에 떨어질 뿐이고 어지간히 집요하지 않고서야 꽂히지 않는 화살을 허공에 계속 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표적을 없애는 것이 영화사와 번역가 모두에게 실질적인 최선이 아닐까?

“욕먹기 싫으면 애초에 완벽한 번역을 하라”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다. 얼마 전 출판번역가에게 메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공황장애 증상을 고백하는 글에 마음이 안 좋았다며 공감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책은 번역 비교를 하려면 원서를 구입해 1:1 비교하는 수고를 들여야 해서 번역 지적이 그리 많지 않지만 영화 번역은 실시간으로 원문과 번역문을 비교당한다. 수백만 명 앞에 발가벗겨진 기분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이 안 된다.”

오역과 실수는 노력으로 최소화해야 하는 대상이지 원천봉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완전무결한 번역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는 셋 중 하나다. 번역의 신이거나 근거 없는 자신감의 화신이거나 번역을 해 보지 않았거나. 게다가 수용자에 따라 정역을 오역으로 판단하는 일도 많은데 그 판단 경계마저 모호하다. 이것들을 일일이 다 해명하다간 영화사도 번역가도 체력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래서 실질적인 이유로 번역가 크레딧을 빼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고민하는 지점도 바로 거기다. 아무리 크레딧에 한이 맺혔다 해도 온몸이 화살로 고슴도치가 되고 죽어 가면서까지 크레딧을 움켜쥐고 있을 자신은 없으니까. 크레딧에 대한 집착이 번역가로서의 내 수명을, 혹은 말 그대로 물리적인 내 수명을 깎아 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인정받으며 가장 긴 시간 활발히 활동해 온 영화 번역가는 번역가 크레딧을 쓰지 않는다.

지금으로선 번역가 크레딧을 공개하지 않는 영화사들이 방침을 바꿀 확률보다 나머지 영화사들이 번역가 크레딧을 비공개하게 될 확률이 커 보인다. 갈수록 번역으로 인한 리스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다. 지금도 영화사에 따라 번역한 작품명을 외부에 공개하면 안 되는 곳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번역가 크레딧은커녕 내가 번역했다고 어디에 글 한 줄 쓸 수 없다. 말 그대로 “크레딧”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그런 작품들을 작업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블로그에 번역 후기를 쓴다거나 포스터를 올린다거나 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고 관객들과 그 영화 번역에 관한 얘기도 할 수 없다. 만약 번역가 크레딧을 반드시 올려야겠다고 고집한다면 의뢰조차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굶을 순 없는 일이니까.

나를 한 맺히게 했던 존재인 만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또 한편으론 내 이름이 쓰여진 표적을 치우고 싶은 마음도 크다. 화살 하나하나가 그렇게 아프더라. 아직 선택을 강요 받고 있진 않지만 언젠가 절벽 끝에 설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때까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나저나 요즘 선택형 드라마가 유행이라던데 나도 첫 칼럼을 선택형으로 마무리해볼까 보다.

번역가 크레딧을 공개해서 프라이드를 얻고 화병으로 단명한다?
VS.
번역가 크레딧을 비공개해서 직업수명을 늘리고 이름 잃은 대나무숲 지박령이 된다?

당신이 번역가라면 어떤 선택을?


필자소개 황석희, 영화번역가, 남편. 79년생으로 갓 아재의 문턱을 넘은 13년차 번역가. 충실한 번역 하나, 열 드립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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