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앤드 어웨이

집과 집이 아닌 곳, 어디서 하는 게 더 좋을까?

에스콰이어 - 섹스

“당연히 집이 편하지.” 권헌준 씨가 돼지갈비를 먹으며 말했다. 권헌준 씨가 먹는 모습을 보면 그는 정말 섹스를 좋아하고 잘할 것 같다. 그는 격렬한 섹스를 하는 기세로 돼지갈비를 입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보통 집이 있으면 집에서 하는 걸 더 좋아하지 않나? 하고 나서 여자를 집에 데려다줄 필요도 없고.” 역시 권헌준 씨에게는 늘 악당 같은 면이 있다. 집에서 하고 데려다줄 수도 있잖아? “장소를 제공했으니 집 정도는 혼자 갔으면 싶다. 내가 데려다준다고 기름값 주는 것도 아니잖아.” 연애는 안 하고 섹스만 하는 남자답게 권헌준 씨는 섹스의 거래 조건이 확실했다.

“저도 집이 좋아요. 왜 밖에서 하죠?”라고 말한 은수현 씨는 오래 만나온 연인이 있다. 그러니 굳이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다. 은수현 씨는 질문을 자세히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지금 연애를 안 하고 더 자유롭게 남자를 만난다면 집에서 할까 싶어요. 집을 보여주는 건 조금 더 미묘하니까.”

“내 집은 나잖아요.” 성지현 씨는 단언했다. “신경 쓰이죠. 갑자기 남자가 들어왔는데 청소가 안 되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거 떠나서 내 모든 취향이 다 보이잖아요. 벽시계부터 이불 커버까지. 그렇게 내가 다 간파되는 것 같아서 연애할 때도 남자를 집에 들인 적이 없어요.” 반대로 윤지나 씨는 내 집이 나이기 때문에 집을 좋아했다. “저는 집으로 부르는 편이에요. 편안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려줄 수도 있고요.” 이런 말을 듣자 더 궁금했다. 그 집에 뭐가 있길래. 비로자나불 같은 거라도 있나.

“어디를 헤집을지 모르니까 집 아닌 곳이 좋겠어요.” 허현미 씨는 합리적인 관점에서 홈과 어웨이 중 어웨이를 골랐다. “내 침대에서 하는 게 조금 찝찝하기도 해요.” 내 침대가 뭐가 찝찝할까. 늘 확실하게 말하는 김예리 씨가 이번에도 확실한 단어로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하다 보면 지지가 나오잖아. 내 침구에 지지 묻는 게 싫어요. 그래서 나는 홈은 싫어요. 대신 홈이 아니면 다 좋아. 남자 집이나 호텔 객실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여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한 번에 이가 10개쯤 드러나는 김예리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니 작년 이맘때쯤 그녀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녀는 대관령 옛길에 차를 세워두고 섹스하기를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홈과 어웨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였다. 내 집으로 당신을 들인다는 건 내 집과 나 자신을 얼마나 연결시키느냐의 문제이기도, 당신에게 나를 얼마나 보여주느냐의 문제이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의 집은 그 자체로 정보다. 동네나 면적 같은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물론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무슨 가구를 쓰는지, 원목 무늬와 페인트칠 중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TV는 얼마나 큰지, 설거지는 얼마나 자주 하고 샤워 부스는 얼마나 잘 청소하는지. 냉장고 안에는 물과 맥주 중 뭐가 더 많은지, 집에 콘돔을 두는지, 그 콘돔이 침대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부부는 아무래도 집에서 하게 되죠. 같이 사니까요.” 자녀가 있는 결혼 20년 차 김경미 씨가 말했다.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녀는 짧게 정리했다. “다 시간이 나요.” 신현서 씨 역시 ‘홈파’였다. “저는 아무래도 제 집이 좋은데요. 편하니까요. 여자들은 외박하려면 생각보다 필요한 게 많아요. 남자 집에서 자려면 클렌징도 없고, 남자가 렌즈를 안 끼면 렌즈 케이스도 없고. 그런 거 생각하면 내 집이 훨씬 편해요.”

“실질적으로 어웨이뿐입니다. 부모님과 살기 때문에” 평생 부모님과 산 서울 토박이 김인건 씨에게 홈과 어웨이는 선택 자체가 불가능했다. 김인건 씨는 결혼 전까지는 독립할 생각이 없다. 즉 결혼 직전까지 어웨이 섹스만 즐길 것이었다. “그리고 어웨이가 더 짜릿해요.” 그는 상상력도 풍부했다. “그녀의 공간을 구경하는 느낌?” 거기에 합리적이기까지 했다. “그녀 집에서 하면 데려다줄 필요가 없잖아요. 만약 제 집에서 한다면 나중엔 ‘왜 집에 안 가지?’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어웨이라면 그럴 일도 없고요.” 아무튼 서울 깍쟁이다.

“저는 홈파였어요.” 심현진 씨가 기억을 불러냈다. “대학생 때 만나던 오빠가 있었어요. 오빠는 서울에 부모님과 살았고 저는 자취하면서 학교에 다녔으니까 자연스럽게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죠. 모텔은 돈은 둘째치고 지저분한 느낌이라 가기 싫었어요.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것 말고도 집에서 같이 있으면 좋잖아요. 편하고 친근하고, 같이 TV도 보고.” 귀엽고 예쁘지만 어떻게 끝날지 예상이 될 듯한 이야기였다.

“그 오빠랑 헤어졌죠.” 예상대로 젊었을 때의 추억은 생각보다 아프게 끝날 때가 많다. “헤어지고 집에 혼자 있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한 거예요. 그 사람은 없는데 그와 함께했던 기억은 있으니까. 내 집 이곳저곳을 볼 때마다 생각나고. 그래서 앞으로는 남자를 만나도 집에 데리고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친구랑 같이 살아요. 어웨이파가 됐네요.” 여기까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친구는 장거리 연애를 해서 퇴근만 하면 무조건 집에 있어요. 남자가 있어도 집에 데려올 수 없으니까 불편하네요. 이 계약이 끝나면 다시 혼자 살려고요.” 심현진 씨의 계약은 아직 1년쯤 남았다.

“그런데 있잖아요” 은수현 씨는 오늘도 놀랄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모텔에 가잖아요. 그런데 모텔에서 신용카드로 내요?” 그럼 카드로 내야지. 그 말을 듣자 은수현 씨는 진짜 놀란 것 같았다. “그러면 기록이 남잖아요.” 온갖 못된 말을 하면서도 은수현 씨는 가끔 이렇게 순박하다. 기록이 남으면 뭐 어때서? “기록 남으면 엄마가 볼지도 모르니까 저는 늘 남자 친구랑 현금 뽑아서 갔어요. 편의점은 수수료 아까우니까 은행에서.” 그 정도 걱정은 모텔도 한다. 은수현 씨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다. 모텔에서 무심코 카드로 계산했는데 문자에 표시된 가맹점명은 단 한 글자였다. 꿈.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박찬용(매거진 에디터)
일러스트이영
출처

Tags

39511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