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릉로부터

서울 강남의 남쪽 경계선이 경험한 현대 한국.

희망대공원

이번 연재에서 다룰 ‘대서울의 길’은 헌릉로다. 길 중간에 조선왕조 3대 임금인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부부의 무덤인 헌릉, 그리고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부부의 무덤인 인릉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헌릉로는 동쪽으로 서울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양재동 꽃 시장과 현대자동차 본사가 있는 염곡사거리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헌릉로 동쪽과 서쪽 끝에서 조금씩 더 나아간 곳까지 포함해 말씀드리려 한다. 그렇게 해야 헌릉로가 지니는 길의 특성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헌릉로 동쪽 끝인 8호선 산성역은 남한산성 어귀에 해당하는 산 중턱에 자리한다. 최근 들어 이 지역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있지만, 성남시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성남 원도심의 특성이 산성역 일대에서도 아직 엿보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성남 원도심은 서울 시내 철거민 10만여 명을 1968년부터 당시의 경기도 광주군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형성된 곳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광주 대단지라고 불렸다. 정부와 서울시 등이 사람만 이주시키고 교통, 상하수도, 직장 등의 인프라가 거의 갖추어지지 않은 데다 투기 열풍까지 일어난 결과, 1971년 8월 10~12일 ‘광주 대단지 사건’이라 불리는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신흥2구역

이렇게 광주 대단지가 형성되기 전에는 이곳에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다. 그러니까 철거민 이주 단지를 이곳으로 정한 것일 터이고, 광주 대단지가 형성되기 전부터 육군교도소가 들어서 있었다. 영등포에서 설립한 육군교도소는 육이오 전쟁 때문에 대구, 부산 등을 전전하다가 1962년에 이곳 산성역 부근에 자리 잡았다. 광주 대단지가 만들어지기 6년 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이 든 남성들은 군 복무 중에 범죄를 저질러서 수감된다는 것을 ‘남한산성 간다’고 말한다. 육군교도소는 성남시의 성장에 따라 1985년에 이천시 장호원으로 옮겨갔다. 군사 교도소가 1962년에 성남, 1985년에 장호원에 설치된 것은 그 지역이 대서울, 즉 수도권의 경계 지역임을 상징한다.

군부대에는 흔히 ‘○○대’라는 별명이 붙는데 육군교도소의 별명은 ‘희망대’였다. 교도소에서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뜻이었으리라. 육군교도소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것이 생긴 이 지역은 육군교도소가 떠난 뒤에도 희망대라고 불렸다. 헌릉로 남쪽 언덕 위에 자리한 희망대공원은 그러한 현대 한국의 기억을 전하는 도시 화석이다. 현재 희망대공원 일대는 신흥2구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답사 팀을 이끌고 철거가 시작되기 이틀 전에 우연히 이곳에 들러 몇 장의 사진을 찍은 것은 행운이었다. 곧 사라질 도시 경관을 사진에 담는 작업은 언제나 쓸쓸하다.

 

 

복정역 교차로

서울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출발하는 헌릉로는 위례 신도시의 남쪽 경계를 형성하며 8호선 복정역에 다다른다. 서울시 송파구 위례동, 성남시 위례동, 하남시 위례동의 세 지방자치단체에 걸쳐 있는 위례 신도시는 주민센터도 세 곳이고, 한때는 도서관이나 쓰레기 봉지도 서로 달라 주민들의 불편이 심했다. 이렇게 여러 행정단위에 걸쳐 있는 곳은 ‘특별동’ 같은 형식을 취해서 한 행정단위에 편입시키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이곳에서 걷히는 세수 등을 생각하면 각 지자체들이 자기 지역을 포기하지 않는 심정도 이해가 된다. 한때 어떤 트위터 사용자가 자기소개 글에 “위례 신도시는 서울임. 암튼 서울임”이라고 올려놓은 것을 보고 ‘여기도 복잡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서울시 송파구와 성남시의 경계선이 지나가는 서울지하철 8호선 복정역 교차로 서남쪽에는 지금도 빈민촌이 존재한다. ‘일반 시민’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을 주변에는 펜스가 높게 처져 있어서 여름에는 무척 덥겠다는 생각을 답사할 때마다 한다. 이 마을을 광주 대단지 시절의 잔존 형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빈민촌, 각종 공장과 고물상, 폐수·폐기물 처리 시설이 행정단위들 사이의 경계 지역으로 밀려난다는 현대 한국의 현실을 이곳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헌릉로는 은곡, 세곡, 내곡, 자곡, 염곡 등 ‘골짜기 곡(谷)’ 자가 들어간 지역을 차례로 지나며 염곡교차로까지 나아간다. 그 어귀에는 성남시에 있지만 ‘서울공항’이라는 이름이 붙은 군사 공항과, 여기가 서울 강남임을 외치는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닐하우스와 고층 아파트 단지를 따라 좀 더 서쪽으로 가면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를 표시하는 간소한 나무 표지판이 서 있다. 행정단위들 사이의 경계를 지나는 대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색의 커다란 표지판이 아닌, 녹색이 가득한 계곡 오솔길에 서 있는 강남구·서초구 경계 표지판을 보면 ‘여기도 강남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센병력자 정착촌

이렇게 외진 곳이다 보니 헌릉로 남쪽의 작은 분지에는 한센병력자 정착촌이 형성되어 있다. 서울 강남이 아직 농촌이던 시절에 많이 세워진 소박한 교회 건물 앞에는, 이 마을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준 미국 변호사 에틴저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현재 가구 단지로 기능하는 이 마을은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마을은 사라지더라도 부디 이 교회와 에틴저 비석은 도시 화석으로서 이 지역에 남아 있으면 좋겠다.

‘곡’ 자 붙은 지명이 이어지는 헌릉로의 이 구간은 성남 서울공항은 물론 서초구 내곡동의 국가정보원, 신흥마을 계곡의 예비군 훈련장 등 군사 지역의 성격이 짙고, 그로 인해 개발 제한에 묶여 있는 구역이 많다. 내곡동의 고급 주택과 개발 제한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이 이 지역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내곡동

이처럼 군사적 성격이 강한 구간이다 보니 한때 의왕에서 출발해 한강 건너 남양주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던 남부순환선 철도 부설 계획이 군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한국 남부에서 수도권으로 컨테이너 트럭이 가져온 화물을 의왕의 오봉역에서 철도에 옮겨, 고속도로의 정체를 피해 강북까지 옮길 목적으로 구상된 남부순환선은 어느 정도 계획이 추진되었다. 현재 의왕역 일대에 자리한 오봉역과 각종 대형 화물 터미널, 그리고 8호선 문정역 주변에 길쭉한 모양으로 조성된 문정근린공원 등이 바로 남부순환선 계획을 엿볼 수 있는 도시 화석이다.

만약 남부순환선이 지금의 헌릉로 자리에 부설되었다면 수도권 남부의 교통 정체는 지금보다 덜했을 터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헌릉로 ‘곡’ 구간은 지금보다 더 한적하고 강남답지 않은 공간의 성격을 띠었을 터이다. 남부순환선을 둘러싼 사연과 오늘날의 헌릉로 주변 경관은, 대서울이 여전히 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시 또는 수도권 도시의 중심부에 사는 시민들이 자기 도시의 군사적 성격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군사적 특성을 띤 시설이 중심에서 행정단위의 경계 지역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말죽거리

그리고 염곡사거리. 여기까지가 현재의 헌릉로다. 여기서 강남대로로 갈아타고 양재천을 건너 조금 북쪽으로 가면 양재역이 나온다. 이곳이 옛 말죽거리다. 복잡한 양재역사거리의 동북쪽 한편에 놓여 있는 말죽거리비석은 이 지역이 한때 한강 남쪽의 한적한 경기도 농촌에 자리한 저잣거리였음을, 그리고 불과 40~50년 사이에 강남 지역이 참으로 빠르게 성장해서 원래 강남이라 불리던 영등포에서 강남이라는 이름까지 빼앗아올 정도가 되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1991년에 출판된 <영등포구지> 서문의 다음 구절이, 서울 강남이 겪은 지난 100년간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듯하다.

최근에 와서 강남이라는 말은 영등포에서 동쪽으로 훨씬 떨어진 지역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다시피 되었지만 그것은 그 지역 일대가 비교적 근래에 와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영동·잠실 개발이 본격화되는 70년대의 초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의 강남은 영등포 지역 그 자체였고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울시와 성남시 사이를 지나며 서울 강남과 위례 신도시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헌릉로는, 서울 강남이 강남역과 테헤란로 또는 청담동과 압구정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다면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흔히 ‘강남’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중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외곽에서 중심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남겨진 것들이 있기 때문에 형성될 수 있었다. 길게는 1936년에 경성부로 편입된 영등포, 짧게는 1967~1969년에 완공된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1967~1970년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와 1968~1971년에 극적인 부침을 경험한 광주 대단지 등으로부터 시작된 파란만장한 한강 남부 개발의 역사를 헌릉로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기 위해 헌릉로를 걸을 때 함께해주신 트레바리 클럽 ‘시민의 도시 대서울을 걷다’ 회원분들께 감사드린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