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 때문이다

타이거 우즈는 골프의 멋을 잊게 만들었다.

타이거 우즈의 귀환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타이거 우즈는 지난 9월 24일 무려 5년 1개월 만에 PGA 우승을 이뤄냈다. 통산 80번째였다. 올해 마흔두 살의 중견 골퍼 타이거 우즈의 투지만큼은 멋졌다. 우즈 특유의 우승 패션인 붉은색 피케 셔츠와 검은색 바지와 야구 모자를 필드에서 다시 보려니까 씁쓸했다.

타이거 우즈 이전의 골퍼들은 결코 야구 모자를 쓰지 않았다. 골프 패션은 타이거 우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타이거 우즈 이전에만 해도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은 전설적인 골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당대의 전설적인 패셔니스타였다. 보비 존스나 잭 니클라우스 같은 골퍼들이었다. 그만큼 골프 패션은 일상적인 남성 패션과 직결돼 있었다. 일상 정장 아이템인 윙팁 구두나 바람막이 재킷이나 아가일 문양 카디건은 모두가 골프 패션에서 비롯됐다.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면서 골프 패션과 남성 패션의 디커플링이 진행됐다. 타이거 우즈 이후 필드의 골프 패션은 더 이상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기능성 위주의 스포츠웨어였다. 더 화끈한 티샷과 더 정교한 어프로치를 위해 최적화돼 있었다.

타이거 우즈의 우승이 거듭될수록 모두가 타이거 우즈처럼 야구 모자를 쓰고 스포츠웨어를 입게 됐다. 결국에는 니커보커스에 브이넥 카디건을 차려입고 헌팅캡을 쓴 멋쟁이 골퍼가 오히려 필드에서 별종 취급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구 모자가 당연해지고 말았다. 자연히 골프가 지녔던 남성 패션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어 버렸다.

이건 골프뿐만 아니라 남성 패션계에도 손실이었다. 골프 필드는 남성들이 일상복과는 격이 다른 과감한 패턴과 색감을 선보이는 공간이었다.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면서 남성 패션은 골프라는 중대한 영감의 원천을 잃고 말았다. 타이거 우즈는 골프 역사상 최고의 골퍼일지는 몰라도 골프 역사상 최고의 패셔니스타는 아니다. 지금은 필드에서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야구 모자를 쓴다. 타이거 우즈 이전에는 당연한 게 아니었다. 타이거 우즈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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