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도감

스시도(道)를 아십니까?

스시 붐이 일던 십몇 년 전의 일이다. 그저 ‘초밥’이라고 불리던 이 음식이 이른바 미식가의 세계에 닻을 내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초밥은 스시가 되었고, 초밥집은 당연히 스시야가 되었다. 두어 번 가서 알게 된 스시 요리사에게 다들 이런 말도 하기 시작했었다.

“오늘은 뭘로 쥐어주실 건가요?”

가장 대중화된 미식가 위장 언어인 ‘오마카세’가 등장하던 장면이었다. 쥔다는 말은 만들어준다는 말과 달리 프로 냄새를 풍겼다. 왜 아니겠는가. ‘만들다’라는 어휘는 음식마다 다르게 얼굴을 바꾼다. 국수와 국밥은 말아내는 것이고, 회는 써는 것이고, 냉면은 짜는 것이니까. 그런 말을 쓴다는 것은 이미 그 직업 세계에 정통한 느낌을 주는 것이니까.

회전초밥 수준의 스시가 교묘하게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미식가 입문의 기본을 닦을 수 있게 포장하고 나선 것도 그즈음이었다. 아아,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우렁차게 들리던 요리사들의 합창!

“이럇샤이마세!”

일본에서도 잘 들을 수 없는 이런 합창과 복창은 정말 당시 손님들에게는 경이로움이었다. 그다음 단계는 질 좋은 카메라였다. 확대가 팍팍 되는, 100mm 렌즈(어떤 브랜드는 105mm로 출시)가 불티나게 팔렸다. 이른바 ‘땡겨서’ 찍는 게 가능한 렌즈였다. 사진발이 블로그의 수준을 결정해준다고들 했고, 그 사진발이야말로 얼마나 대상을 잘 ‘땡기느냐’가 관건이었다. 사진 찍고 리터치해서 식당가의 강자로 대우받던 블로거 형님들의 세상이었다.

스시를 쥐어 내주시는 요리사들은 사실 상당히 불안할 지경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에 담기어 회자되기 때문이었다. 염소는, 아니 카메라는 힘이 세다. 로버트 카파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미식 동네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담이지만 스시 요리사를 일본식으로 이타마에 상이라고 부르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누군가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면 지금 이 바닥의 공식 호칭으로 굳어졌을 거라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하다. 서울에서 이타마에상이라니….

아침에 표를 끊어서 김포발 하네다행 비행기를 타고 에도마에 스시를 런치 특선으로 먹고 돌아오는 일이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감식안은 더 올라가고, 툭하면 서울 스시집들이 도쿄의 ‘스시야’에 비교되기 십상이다. 별 두 개, 세 개짜리 스시야, 별은 없지만 ‘별 따위쯤이야’ 하는 태도로 긴자의 고층 빌딩에 자리 잡은 가격표 없는 스시야에는 또 얼마나 자주들 가시는지, 서울의 스시 선수들은 쩔쩔맬 뿐이다. 아는 스시 요리사의 전언이다.

“‘지로상이 어제 안색이 별로 안 좋더라. 그도 나이가 참 많긴 하지’ 뭐 이런 얘기를 카운터에 앉아서 내게 하는 손님도 있어요. 매일 다니는 동네 중국집 사장님 안부 묻듯이 말이죠. 나는 그 양반을 본 적도 없어요. 알 필요도 없는 일이고.” 지로는, 알다시피 별 셋을 받은 도쿄의 노장 스시 요리사다. 스시 쥐는 손을 보호하려고 장갑을 낀다는 둥, 미국 대통령이 일본 수상과 나란히 카운터에 앉아 스시를 받아 먹었다는 둥 하는 얘기들을 늘 끼고 다니는 할아버지 요리사다. 그런 사람이 하는 집을 내 집 드나들 듯하는(실제 그런지, 한두 번 다녀온 걸 허세로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을 손님으로 두고 스시를 쥐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을 테다.

일본은 뭐든 ‘道’로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커피 볶는 이들도 도를 만들기도 하는데, 실제로 다도처럼 커피도의 주창자도 있다. “잔을 받은 후 가볍게 목례하고, 무릎 끓고 동쪽에 두 번 절한 후 세 번에 나누어 음미한 후 잔을 내려놓고 침잠한다.” 이런 말을 명기한다. 진짜다. “에피오피아의 새벽 공기가 주는 서늘한 기운이 이르가체페의 맛에 깊게 깃들었는지 명상한다”라고 안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나라이니, 스시도 도처럼 구성하는 집도 있다. 두당 한 100만원쯤 단가를 매기고(이런 집은 메뉴판도 가격표도 없다), 그러면서 “딱 여덟 석만 운용한다. 최선의 서비스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제길, 나도 두당 100만원(술은 별도다) 하는 식당이면 딱 여덟 석 아니라 네 석만 굴릴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의 상술은 ‘도’로 승화되기도 한다. 그들은 손님이 입장하는 동시에 인사한 후 시작한다. 비밀 집회 같다. 손님이 앉아서 인사를 받는 게 아니다. 함께 말이다. ‘자, 우리의 집회를 시작하시지요’ 하는 느낌이랄까. 일본 다도의 시조 센리큐도 이런 수준의 격식은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숨 막히는 두 시간이 흐르고, 고치소사마데시다로 끝나는 이 규격 짱짱한 ‘스시도’는 도대체 뭔지 나는 이해 불가다. 목구멍 어디쯤에 참치 뱃살과 무슨 희귀한 조개와 제철의 전어 새끼 살이 삭지 않고 얹혀 있을 것만 같다. 이런 도 닦는 스시야는 행인지 불행인지 서울에는 없다. 대신 서울의 보통 스시집에서는 이런 말이 오간다.

“이쪽 각도로 찍으시는 게 잘 나올 거예요.”

“천천히 찍으세요. 다음 음식은 좀 여유 있게 낼게요.”

아아, 새 스시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어떤 디지털의 하모니를 감상한다. DSLR 카메라가 내는 묵직한 셔텨음(메이커마다 미묘한 차이는 일종의 변주다), 미러리스 카메라의 기계적이고 서늘한 셔터(셔터가 없지만 일종의 셔터에 대한 오마주로서 미러리스 카메라도 소리를 낸다. 이른바 셔터 맛을 살려주기 위함이다), 하이엔드 콤팩트 카메라(하이엔드 오마카세 스시야에 어울리는 선택이다)에 그것도 아니면 그냥 아이폰과 갤럭시의 입력된 촬영음까지.

샤리에 대한 토론(쌀 품종과 짓는 시간, 짓는 도구에 대한 논의)과 네타(스시 위에 올라가는 재료)와 샤리의 균형감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 그렇게 서울의 스시집은 굴러간다. 아 참, 카운터에 앉으셨을 때는 손으로 스시를 쥐고 네타에만 간장을 묻혀서 드시는 것 잊지 않으셨죠? 물론 테이블에 앉으셨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밥알이 얼마나 부드럽게 풀리는지가 이타마에 상의 솜씨를 볼 수 있는 척도라는 것도 잊지 마세요. 제일 중요한 것! 광어 아니고요 히라메, 도미 아니고요 다이, 고등어 아니고요 사바입니다.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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