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를 세운 사람들

세운상가를 다시 세운 장인들을 찾아가 묻고 들었다.

서울시의 ‘다시, 세운 프로젝트’로 세운상가가 다시 세워졌다. 다시 세워졌다는 세운상가는 얼마나 변한 걸까. 살면서 와본 적 없으니 모르겠고, 변했다고 하기엔 영 볼품없다. “변한 거 없어. 돌아다니다 보면 유령 도시 같지 않아? 사람도 없고 문도 다 닫혀 있잖아. 껍데기만 갈아입는다고 해서 살아나는 게 아니야. 안이 중요하지. 내적인 건 크게 변한 것 없어.” 오디오를 수리하고 있던 이승근 장인이 말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장인을 내세운 거다. “세운상가 재생사업을 하다 보니 종사하는 사람들이 중요하잖아. 그래서 우리를 목표로 삼았겠지.” 나쁠 거 하나 없다는 표정으로. 세운상가에 장인이 산다. 무려 16명의 장인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9명만 남았다.

그런데 세운상가는 왜 자꾸 다시 세워지는 걸까. “이명박이 서울시장 때 개천을 뜯어서 인기가 굉장히 좋아졌잖아. 그게 하나의 모티프가 돼서 박원순 시장이 비슷한 걸 하는 거 같아. ”

그리고 이번엔 왜 장인인 것일까.

“왜 장인이 세운상가에만 이렇게 많은지 의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박원순 저 양반이 임기가 끝나면 우리도 그냥 끝나는 거야. 2016년에 오세훈 씨는 세운상가를 철거하려고 했거든. 이명박 씨를 따라서 여기를 완전히 개혁하려고 그랬던 건데, 계산을 잘못한 거지. 박원순 씨는 이걸 발전, 혁신시키려고 했고. 이게 더 낫지. 더 맞는 말이고. 하기는 참 잘한 건데 장인을 이렇게 남발하면 안 되지. 그 양반의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아. 난 그렇게 생각해. 정치하는 사람이니까 일단 인지도가 좋아질 거 아니에요. 이게 이슈화되면 사실 임팩트가 크거든. 여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나비효과가 엄청 커요.”

왕년의 세운상가

“일본 아키하바라처럼 세운상가도 세계적으로 알아줬다고.” 이래 봬도 왕년에 꽤 잘나갔던 세운상가다.

“세운상가가 아주 잘되는 시기가 있었어요. 서울 시내에서 제일 길이 많이 막히는 동네, 그게 세운상가였다고. 세운상가 때문에 길이 막히니까 세운상가를 내쫓자 해서 용산 전자 상가가 생겼어요. 그래서 세운상가가 갈라진 거고, 끝까지 버티고 있던 사람들은 여기에 남았고. 나라에서 개입해서 시장을 망가뜨린 거지.” 이정성 장인은 세운상가를 살리기 위한 재생 사업에 대해 떨떠름한 입장이었다.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애초에 살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는 거다. 상인들이 저절로 망했으면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었을 거라고 했다. “공무원들은 전문 상인이 아니잖아요. 상인들이 어디가 가려운지, 어디가 아픈지 아무것도 몰라요. 책상 앞에 앉아서 어렴풋이 궁리한 걸 밀어붙인다고. 그렇게 세운상가를 다시 살릴 수 있느냐? 그건 ‘임파서블’이에요.”

세운상가 취재를 위해 만난 김시덕 교수와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종로3가에서 만나 텅 비어버린 경리단길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번화가가 그렇게 폭삭 망하면 정부가 좀 나서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니 시장경제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이정성 대표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말했다. “관이 힘을 줄 순 있겠지. 그런데 관이 시장을 다시 살릴 수는 없어요. 한번 발길을 끊은 사람들이 다시 오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이 말에 세운상가의 호시절과 현재와 미래가 있다.

무일푼의 장인

장인들의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청년 기술자들과 공유한다고 하니 당연히 어느 정도 지원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다. 한마디로 무일푼에 이름만 장인인 것이다. 서울시에서 어느 정도 지원을 해주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서울시에서 무슨 지원을 하겠습니까”다. 공무원 임금처럼 장인들 줄 수 있는 돈도 없을 거고, 그들에게 그런 걸 바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했다. “물질적인 건 없더라도 세운상가를 홍보해주고, 우리를 좋게 평가해주고, 그러면 그게 지원이지 뭐.” 이승근 장인은 이번에도 긍정적이다.

이정성 장인은 달랐다. 회장을 맡고 있는 터라 더 바빠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도 많은데 세운 마이스터로 지정되면서 맨날 회의하러 다니고 뭐 하고 뭐 하고, 내 생업은 100% 손해야. 나한테 득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날 세워 이야기하면서도 대의를 위한다면 맞는 일이라고 금세 정정했다. “사람 사는 게 꼭 내 이득만 따지고,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나같이 바보 같은 놈도 돈 벌고 살아야지. 대의만 찾으면 배고프잖아요. 그래서 나 이제 장인 그만둘라고.” 대뜸 장인의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했다. 생업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아서.

세운상가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

“시설이 깨끗한 건물도 많고, 교통이 편리한 곳도 많은데 왜 계속 여기에만 계신 거예요?” 만나는 장인들에게 똑같이 물었고 똑같은 답을 들었다. “부품 사기 편하잖아요. 필요한 부품이 수천 가지인데, 필요하면 바로 앞에서 사 와서 실험할 수 있으니까. 근처에 다 있어요.” 장은진 장인이 말했다. “전자 쪽으로는 여기가 최고 중심지였어.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뭐든 빨리 해야 되니까. 빨리하려면 부속을 빨리 구해야 되잖아.” 류재용 장인도 비슷했다. 발 빠르게 부품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은 세운상가와 세운상가 일대의 생태계 문제와도 관련 있다.

장인들은 기계에도 길이 있다고 하나같이 이야기했다. 이걸 회로라고 하는데, 어떤 난관을 만나도 이 길만 생각한다. 몇십 년을 한길만 파면서 머릿속에 회로가 잡힌 거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수리하건 간에 이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이들이 고군분투하는 건 시간이고 부품이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부품이 없어서다.

장인이라고 하면 사무실 가득 특별한 물건이 진열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고물상처럼 오래된 물건이 잔뜩 쌓여 있다. 뭘 버리지 못한다. 연식이 오래된 제품은 부속 또한 단종된 터라 혹시 몰라 챙겨두는 거다. 1985년부터 세운상가에서 전기 제품을 수리하면서도 여전히 이 일이 재미있다고 하는 김광웅 장인은 말을 급히 고쳤다. “다 재미있는데, 재수리할 때가 제일 재미없어.” 세운상가야말로 고치고 또 고쳐지고 있는 곳이다.

장인의 안내로 금은방이 모여 있는 예지상가로 움직였다. 세운상가와는 좀 떨어진 곳이다. 시계를 수리하는 장충락 장인은 딱 봐도 장인들 중에서 제일 고가의 물건을 다룬다. 금 시계를 다루니 금손 중에 금손 아니냐고 농을 치며, 수리해본 제일 고가의 시계가 얼마짜리였는지 물었다. “비밀인데…” 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게, 우리 책에는 몇천만원짜리 시계가 턱턱 나온다고 했다. “몇천만원짜리는 시계가 아니야. 억 소리가 나야지.” 과연 장인의 스케일이다. “어디 회장이었는데, 3억짜리 시계라고 가져왔더라고. 감정하니까 모조품이더라니까. 가짜라고 하니까 난리가 났지. 아무리 부자여도 다 똑같아. 사기당하면 다 기분 안 좋은 건.” 가게 값의 몇 배나 되는 시계를 다루는 게 걱정되지 않느냐고 했다. “비싼 건 나도 떨리지. 그만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 실수하면 치르는 대가가 크니까.” 그럼 그렇게 고가의 제품은 애초에 사양하면 되는 일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면 엘리베이터는 왜 타요?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돌팔이

“인터뷰할 게 없어. 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이라고 하는 류재용 장인에게 장인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냐고 물으니 “부담 갈 게 있나, 돌팔이인데”라는 답이 돌아왔다. 왜 자신을 돌팔이라고 하느냐 물으니 모르는 게 많아서란다. 그럼 벽면 가득 붙어 있는 특허증은 뭐냐고 했다. “25개 있는데 15개만 걸어놨어. 심심해서 냈더니 특허심사관 바보 같은 놈들이 해줬어”라며 허허 웃는다.

하지만 이제 특허는 받지 않을 생각이다. 특허를 내면 나라에서 연금처럼 돈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아니,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데. 특허 낼 때마다 내 돈이 들어가요. 처음에 특허 낼 때는 300만원에서 500만원 들어가고, 이 특허를 유지하는 데 또 돈이 들어. 처음에는 10만원 정도였다면, 해마다 10만원씩이 더 올라가니까, 2년에 20만원, 3년에 30만원. 나라에서 한 푼도 안 줘. 내가 낸 돈이 나라로 가는 거지.” 그래서 포기한 것도 여러 개다.

특허를 유지하지 못하면 그 기술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특허를 내려면 아주 기초 지식만 갖고 있는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세세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그래야 특허심사관이 특허를 내주기 때문에 기술을 온전히 모두 공개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특허 기간 동안은 나만 할 수 있지. 그런데 가만 보면 특허라는 게 기술을 다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거 같아.” 존 박이 ‘방송국 놈들’이라고 호통치는 표정이었다. ‘특허청 놈들’이라고 하는 것 같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이제는 누군가 제품을 따라 만들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고 했다.

추억을 고쳐드립니다

세운상가 3층에는 ‘추억을 고쳐드립니다’를 모토로 한 수리수리 협동조합이 있다. 서울시와는 별개로 세운상가의 장인들끼리 ‘우리가 전국에 있는 것들을 다 수리해보자’ 해서 만든 조합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전국에서 별의별 거를 다 보낸다고 했다. 그러다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웃는다. 야박한 마음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몇천원짜리를 고쳐달라고 보내는데, 그 제품을 고치려면 몇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 몇천원짜리의 수리비는 또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의 문제다.

정음전자의 변용규 장인은 나이는 64살. 10살 때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해서 시작한 오디오 수리를 지금껏 하고 있다. 장인이 수리하는 모습을 보고 “요즘 젊은 사람 중에 이런 오래된 물건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별로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없지. 의사도 오진을 하잖아요. 기술자들도 의사처럼 오진해. 암도 아닌데 암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 포기하라고, 다시 사라고 하죠. 우린 ‘사세요’ 그 소리 절대  안 해요.” 장인의 자존심이다.

변용규 장인은 이 일을 하면서 요즘이 제일 좋다고 했다. 정년퇴직이 없으니 계속 일할 수 있어서.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내 친구들을 보면 다 놀거든. 백수야 전부. 50살 넘으면 다 잘리잖아. 친구들이 제일 부러워해. ‘이야, 넌 진짜 좋겠다’고.”

아울러 사는 세상

홍인전자의 장은진 장인은 세운 마이스터의 유일한 여성 장인이다. 홍인전자에서는 태양열 키트, 시계 키드 등 과학 실험용 키트를 제작한다. 경력 18년,  장인들 중 제일  짧다. 장인은 계속 자신이 장인이 된 게 의아하다고 했다. 서울시로부터 장인으로 선정하려 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손사래 쳤다. 경력이 오래된 것도, 기술이 특수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기술이 좋은 분만 장인이 아니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봉사하는 게 장인이라고 하더라고요.” 듣고 보니 그렇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한 전국 경시대회가 없어지는 바람에 지금은 중단한 상태지만, 이곳에서 몇 년에 걸쳐 학생들을 상대로 무료 교육을 했다.

대회는 재작년 봄에 없어졌다. 학교나 학부모들의 항의도 많았다고 했다. 회로는 전자의 제일 기초인데, 없애서 어떡하냐고. “그런데 나라에 예산이 없다고 하는데 어떡하겠어요. 학교에 이걸 가르쳐줄 사람이 없대요. 키트는 학교 교재에도 나오는데 말이 안 되잖아요. 그렇다고 저희가 재단에 가서 로비하고 이런 건 할 줄 모르고. 필요한 분들은 가져가겠지 하면서 그냥 이렇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물건은 팔린다.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다.

“회로가 제일 기본이에요. 로봇 만들고 뭐 하고 해도 회로 모르고 어떻게 로봇을 만들겠어요. 그런데 그걸 지금 다 만들어진 아두이노로 대신 한대요. ‘탱크를 만들어야지’ 한다고 해서 탱크가 바로 만들어지나요? 기초부터 다스려야지.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컴퓨터를 어떻게 만드는지부터 알려줘야 하는데, 그냥 다 해놓은 걸로 배우니까 안 되는 거죠. 학생들이 처음부터 해봐야 하는데 휘황찬란한 것부터 보여주고,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는지 과정은 모르고. 그러니까 국가 행정이….”

“자기 본업에 충실하면서 자기가 아는 만큼 남들에게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장은지 대표가 장인에 대해 말했다. 장인의 말에 “요즘은 다 혼자 사는 것 같던데요?” 하니 “그래도 아울러 사는 세상이잖아요. 우리나라가 자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는 너무 깜빡하다가 사라지고 하니까 개발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요. 국가에서 꾸준하게 연구비도 나오고 뭘 만들게끔 해야 하는데 사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니까.”

세운상가가 그렇다. 서울시장이 누구냐에 따라 바뀐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린다. “이번에도 세운상가 프로젝트 담당자가 승진해서 다른 곳으로 가고 새로운 팀장님이 왔더라고요. 우리는 또 그냥 그러려니 해요. 그런 거에 연연했으면 다른 걸 하지 이 자리에서 몇십 년 있겠어요? 그냥 그건 그 사람 일이고 우리는 우리 일이고 그렇게 생각하고 내 할 일 하는 거예요.”

세운상가의 호시절을 물었다. “취재하면서 장사가 잘된다고 한 사람 있었어요?” 아, 장사에 대해 물어본 적 없다. 장인분들이 장사하는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장인분들도 다 장사하는 분들이지. 그러면 장인은 어떻게 먹고살아요.” 그렇다. 결국엔 모두가 먹고사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장사가 된다 싶으면 다른 걸 하는데, 우리는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이것만 했어요. 한 우물만 판 거죠. 살다 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겠지만 이걸 하는 게 좋더라고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잘 모르겠어요. 잘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일이 항상 많아요.” 대형 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노공래 장인과는 뒷모습만 보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바빠 보였다. 항상 바쁘다는 장인은 새벽 7시에 출근한다고 했다. “아침 7시가 새벽입니까, 아침이지.”

“세운상가에 온 지 31년 정도 되셨네요. 1988년 10월에 문을 여셨으니까 88올림픽 끝나고 오셨구나” 하니 그런 것까지 어디에 나오느냐고 되물었다. 세운 마이스터 홈페이지를 보면 잘 정리돼 있다. 노공래 장인은 ‘다, 나, 까 체’로 딱딱하게 말했다.

“이 인터뷰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겁니까?” “장갑 끼면 불편해 일 못 합니다.” “장인은 제3자가 판단하지, 본인이 판단합니까?” “30년을 넘게 했는데 여유 있게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장시간 일해도 시간이 없어서 처리를 못 합니다. ”

장인과의 인터뷰 녹음 파일에는 장인의 목소리보다 기계 소리가 더 크고 더 많이 녹음 돼 있었다.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됐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지 물었다. “좋아지고 나빠지고를 떠나서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땜쟁이 발명가

차전자의 차광수 장인은 발명을 하고 특허 출원을 한다. “이건 시간 싸움이야. 누가 1분이라도 먼저 냈느냐, 먼저 낸 사람이 특허권을 가질 수 있거든.” 하지만 특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허권 존속기간은 정해져 있다. 최근에 알아낸 게 저작권은 보호 기간이 70년이라는 거다. 돈도 안 내고. 특허는 특허를 신청한 사람이 돈을 내야 한다 “유지비로 계속 돈을 내야 해. 그래서 발명이 안 좋아. 시대가 지나면 다 사장돼버리고. 요즘은 저작권을 더 잘 대우해줘. 나도 이제 특허 안 내고 저작권 낼 거야.”

세운상가는 차광수 장인의 자랑, 장인은 자부심으로 일한다. 그래서 받는 상처도 크다. “주문한 사람들이 이런 쓰레기를 만들면 어떡하냐고 공격하는데, 그때 절망감을 느껴서 하기 싫어져. 오래 활동한 사람들을 대우해주면 힘이 나서 하겠는데, ‘(납)땜쟁이 기사’로 취급하니까 하기 싫어지는 거지. 우리가 좋아서 한 일이기도 하지만 옛날엔 천대받으면서 생활했는데, 지금은 우리더러 장인이라고 하잖아. 그렇게 위상을 올려주면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깎아내린다 하면 누가 하려고 하겠어. 돈도 안 되는데.”
장인은 어느 순간에는 접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 끝이 보이냐고 물었다. “제자리 일 때. 만든 거 또 만들고, 만든 거 또 만들고 그럴 때, 한계를 느낄 때.” 장인은 장인이 하는 일로 매일 산을 넘는다고 표현했다. 일이 안 풀리면 처박아둘지언정 언젠가는 꼭 해내야 하는 그런 기질이 있다고 했다. 뭐든 문제가 생기면 피해 가지 않고 부딪쳐야 한다는 신조로 한다고.
“우리는 손으로 직접 깎는 쪽으로 숙달돼 있는 사람들인데,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3D 프린터 사업으로 키우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장인은 변화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3D 프린터 작업의 원리도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이만큼 일하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터득하는 눈이 생겨. 곁눈질로 보기만 해도 알지.” 장인은 느닷없이 죽기 전까지 세운상가에 있고,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겠다고 했다.

세운상가의 모든 기술 장인이 서울시가 지정한 세운 마이스터인 건 아니다. “장인? 그거 해서 뭐 해요?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 은둔형이라 나서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 빈티지 오디오를 수리하는 진테크 황종진 대표가 말했다. 1968년, 세운상가가 세워진 때부터 50년간 한자리에서 한 우물만 팠지만 서울시에서 선정한 세운 마이스터는 아니다.

황대표는 황정은 소설가의 아버지로, 황정은 소설의 배경도 이곳 세운상가다. 그런 걸 보면 자랑스럽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금세 목소리가 다정해졌다. “자랑스럽지. 그런데 내가 표현을 잘 못해서.”

장인은 오후 3시가 넘어 출근한다고 했다. “새벽 5시에 들어갔으니까 늦게 나올 수밖에 없지. 일을 하다 보면 빠져들게 되고, 결말을 지어야 안심이 되거든. 그러다 보니 새벽까지 하는 거야.” 여전히 일을 끝내놓고 가지 않으면 찜찜하다고 했다. “결말을 보지 않으면 속이 갑갑하고, 돈을 떠나서 속상해.”

이일이 무엇이 그리 매력적인지 물었다.

“매력 없어요.” 50년간 이 길만 파고 온 사람에게서 나온 답이다. “그냥 성취감이에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거야. 그런 자부심이 없으면 일 못 해요. 귀찮아서. 내가 의무적으로 하다 보면 ‘귀찮아 죽겠네’가 돼. 나는 수리할 때 ‘네가 어디가 아파서 꼬장을 부리냐’ 이렇게 얘기하면서 해요. 대화라는 게 중요하거든. ” 분명한 건 남이 못 하는 걸 내가 해냈구나 하는 자부심은 아니라고 했다. “그건 아주 건방진 생각이지. 여기 왔다 갔다 하는 사람치고 기술자 아닌 사람 없어요. 어디 가서 나 잘났다고 하면 다들 시기해요. ‘네가 얼마나 잘났냐’ 이러면서.”

“여기는 분야가 다른 것 같아도 다 연락이 돼. 그러니까 서로 도움이 되는 거지. 하나의 집단이라는 게, 네트워크가 잘 이루어지면 이게 인프라가 되는 거 아니에요?” 이들이 몇십 년 동안 한곳에 다 같이 있는 이유다.

“세운상가가 왜 좋으세요?” 또 물었다.

“난 좋은 거 없어요.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라고 할 수 있잖아. 내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이런 사람이 어디 가서 취직을 합니까.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복이거든. ”“난 좋아”수리수리 협동조합에서 이승근 장인이 말했다. “여긴 다 빈티지들, 추억이 있는 제품이야. 나이 든 사람들이 쓰는 것들이지.” 조합의 모토는 ‘추억을 고쳐드립니다’다. 이 이름을 이승근 장인이 지었다.

1963년부터 세운상가에서 진공관 오디오를 다룬 이승근 장인은 젊은 사람들이 오가는 게 좋다고 말하는 유일한 장인이었다.“난 좋아. 나는 얼마 있으면 떠나야 하잖아.” 55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장인의 바람은 세운상가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일이다. “젊은 친구들로 바뀌면 좋지. 어차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다 바뀌는데, 젊은 애들이 여기에 관심 갖고 하면 세운상가가 활성화될 거 아냐.” 이승근 장인은 디지털 시대에도 오래된 물건을 수리하는 세운상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믿는다. 자신들이 그러하듯.“집에 고장 난 가전제품이 하나도 없겠네요?” 물으니 이승근 장인이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어투로 말했다. “대장간 식칼이 녹슨다는 말이 있잖아.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한 대도 없어.”

이승근 장인은 춘천에서 출퇴근한다. “갈 데가 없잖아.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으니까. 기술자라는 게 다 그래. 배운 거 하나 가지고 평생을 사는 거야. 좋든 나쁘든.”

살려야겠다는 사명감

“여기 온 게 백남준 취재가 아니라 세운상가 취재 아냐?” 세운 마이스터의 회장 이정성 장인이 버럭 화를 냈다. 그도 그럴 게 장인을 두고 백남준 아티스트에 대한 것만 물었다.
세운 마이스터 홈페이지에서 장인들의 이력을 봤을 때 누가 봐도 단연 가장 눈에 띄는 장인이다. ‘백남준 아티스트 작품 관리와 유지 보수’라고 소개 돼 있으니까. “백남준이라고 설치미술가 있잖아요. 그 사람 작품 수리하고 관리하는 사람이에요.” 다른 장인들도 이렇게 이정성 장인을 소개하며 제일 먼저 찾아가보라 했다.

“백남준이라는 예술가가 왜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냐면, 백남준은 예술가지 전자 기술자가 아니잖아. 그걸 실현시킬 만한 기술자가 필요한 거지. 한 번 설명하면 곧장 알아듣고 원하는 걸 만들어주는 사람. 금년이면 딱 30년을 같이한 건데, 그간 선생님이 만들어달라고 한 걸 안 된다고 한 적이 없거든. ”

그렇게 같이 상의하고 만들어갔으니, 장인도 예술가 아니냐고 물었다. “난 백 선생님을 도와드리는 기술 도움자이지 예술가는 아니지.” 취재를 하다 보니 장인에게 선생님이라 하고 있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백남준 작가의 예술품도 안 나왔잖아요”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예술가라고 할 수는 없어요”라고 하는데 ‘펑’ 하고 수리 중인 물건이 터졌다.

“고장 난 걸 고치다 보면 이렇게 튀는 경우도 있지만, 고장 나서 버릴까 말까 하는 게 수리가 잘되면 희열이 있지.” 그러다 뜬금없이 도둑질만 아니면 자식이 하고 싶은 걸 밀어주라고 했다. 그래야 나중에 딴 거 한다는 소릴 안 한다고. ‘왜냐면 지가 택했으니까.’ 이건 장인의 이야기다. 그래서 자신도 지금까지 물러서지 않는 거라고 했다. 시켜서 했으면 벌써 딴 데 갔을지도 모르지만, 재미있고 자신이 택한 길이라 하고 있는 거라고.

장인에게 언제가 가장 즐거웠는지 물으니 지난날의 즐거움을 저울로 달 순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난 백남준 선생이랑 함께 보따리 짊어지고 전 세계를 누볐지. 잘사는 나라는 다 갔다 왔어요. 내가 다닐 때는 외국 큰 공항에 가서 한국 사람 찾기가 어려웠어. 지금은 어딜 가도 한국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생전에 제일 빛나는 훈장은 아니지만 장인만의 값진 훈장이다.

장인은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묻자 “장인은 무슨… 우리나라 속된 말로 하면 쟁이야. 우리나라는 기술자를 천하게 봤잖아. 붓글씨나 글 쓰는 사람은 선비고, 우리 같은 사람은 땜쟁이, 그림쟁이, 쟁이라고 그랬어요. 이쁘게 포장해서 장인이라고 하지만, 특별히 편의 봐주는 것도 없어. 립서비스지. 시에서 뭐 해주는 것도 없고, 장인 임명장 주는 것도 그냥 립서비스. 일본은 장인이 한 거는 다 알아주고 대우가 좋아요. 우리나라는 땜쟁이라고 부르기 뭐하니까 장인이라고 불러주는 거지.”

피차일반이라는 말투로 말했다. “우리도 장인이라고 해서 영예롭게 생각하는 거 없어요. 여기 있는 장인들은 여기서 생활을 다년간 해왔으니까 이 시장이 망가지는 게 보기 싫고 그런 거지. 여기가 터전이라 망가지는 게 꼴 보기 싫고, 여길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으니까 열심히 하는 거야. 우리나라는 굉장히 많이 바뀌어야 하는 게, 궁궐을 짓는 목수도 장인이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들을 궁궐 지을 때는 막 불러다 쓰면서 잘 안 부르잖아. 우리 같은 장인들을 어디에 쓰겠어요. 쓸데없는데 그냥 부려먹으려고 장인이라고 불러주는 거지.”

이정성 장인은 회장답게 객관적으로 세운상가를 직시한다. 지금처럼 젊은 친구들이 세운상가를찾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고 했다. “최근에 세운상가 살리기 운동이라고 행사를 했는데 만 명 이상이 몰려와 육교가 마비 됐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거예요. 학생들이 놀러와서 사진 찍는 건 좋은데, 그건 공무원들 보고용이지. 그러니까 학생들 와서 괜히 집세만 올라가고 이런 소리만 나온다고. 세운상가를 살리려면 인원수가 많든 적든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해.”

세운상가 층계에 붙어 있는 간판. ‘전자의 모든 것!!’ 세운상가 한 바퀴만 돌면 탱크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세운상가라는 정

“올해 73살이야. 너무 늙었죠?” 류재용 장인은 1970년에 세운상가를 찾아 줄곧 이곳에 있었다. 작년 5월부터 최근까지 인터뷰를 40~50번 정도 한 것 같다고 했다. 왜 재작년에는 안 하셨느냐고 물으니 “재작년에는 할 일이 없죠. 세운상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한다.

온화한 인상의 장인은 어느 부분에서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잘못된 게 젊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기술 배워 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요. 난 50년 이상 이걸 했으니까 이렇게 응용해서 기계를 만드는데, 단 며칠, 몇 달 만에 기술 터득해서 자기 걸 뭘 해볼 생각을 하고 와. 그런데 서울시에서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청년들 위해서 장인들한테 지원을 해달라고 해요. 장인들한테는 보수도 안 주는데, 활성화시킨다고 청년들한테는 지원금도 주면서.” 반대로 지원금은 장인에게 돌아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한테 지원을 하지, 미쳤다고? 여기 장인들한테는 지원 안 해줘. 내가 자꾸 이런 소리를 하니까 기사로 쓸 게 없잖아. 이런 거 쓰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러니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고, 인터넷 보면 자신이 한 얘기 다 나오니까 그거 보고 쓰고, 사진이나 한두 개 찍어 가라 했다. “네. 그럼 사진이나 한두 개 찍어 갈게요”라고 하니 또 웃는다.

장인은 세운상가 8층 사무실 앞에 탁자를 세우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하루 종일 음악을 틀어 놓는다고 했다. “클래식도 틀고, 올드 팝도 틀어요. 여기 오는 사람들 즐겁게 해주려고. ”
블루투스에 관심이 많은 장인에게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알긴. 사람들이 내가 옛날 기술만 있는 줄 아는데, 기술자로 유지하려면 지금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공부해야 돼요. 블루투스가 2.0부터 나왔는데 나는 최신 버전 5.0까지 쓰고 있어요. 블루투스 기능 때문에 핸드폰도 바꿨고.”
장인에게 세운상가는 정이고 벗이다.

“몇십 년 세월을 함께했으니 특별할 수밖에 없지. 세운상가 앞에 있던 현대상가를 없앤다고 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하나 했어. 현대상가 허무는 걸 보고 끝나가는구나 싶었지. ”

현대상가가 헐리고 세운상가로 넘어온 후 집값이 훌쩍 올랐다고 했다. 최근에 세운상가에 입주한 젊은 청년들은 이곳이 임대료가 싸서 들어왔다고 했다. “당연히 오르지, 안 오르겠어요? 여기 아파트 한 칸이 스물 몇 평인데 이전에는 매매가가 2억이 안 나갔는데 이제는 5억을 호가해요. 우리 같은 사람이 버텨봐야 얼마나 버티겠냐고.” 세운상가는 괜찮을 거라고 한 사람들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가 있어 문화재법상 건드릴 수 없다고 했다. “아이구, 서울시도 참 웃기는 사람들이에요. 세운상가 활성화 한다고 현대상가도 헐어놓고 을지로 쪽도 다 헐려고 하고. 을지로 쪽에 철공소가 있어요. 철공소가 부품을 깎고 뚫고 다듬는 곳인데, 저기 다 내쫓으면 우리는 그 사람들 찾아 문래동이나 인천으로 가야 하잖아요.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도 여기 있을 이유가 뚝 떨어지지 않겠어요?” 장인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여전히 시끄러운

세운상가 일대가 시끄럽다. 이번엔 청계천변 입정동 일대. 또 도시재생사업과 관련 된 문제다. “옆에 건물들 봤어요? 88올림픽 열린 그때 그대로예요. 외국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냐고 하는데, 왜 그동안 가만두다가 이제야 재개발을 하려는지 모르겠어. 여긴 못 건드리게 전부 규제를 했다고. 불 나면 불도 안 껐어. 딴 데로 쫓으려고 그런 거겠지? 집이 없으면 나갈 거 아냐.” 지금 이곳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사람들이 나가면 이 생태계가 파괴된다. 그러면 세운상가 또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장인들에게는 이런 일이 여러 번이다. 그 일을 겪어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도 있고, 지인들의 일을 보고 듣기도 했다. 그러니까 남 일이 아니다. “용산에 있는 사람들도 여기서 쫓겨난 거고, 또 쫓아내려고 했던 곳이 가든파이브예요. 우리도 입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거기까지 누가 가냐고. 입주권은 있었는데 포기했어요. 가든파이브에 간 사람들은 다 손 털고 나왔지. 장사가 안돼서.” 변용규 장인이 말했다.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다 거기 있으니까 벗어나면 생활 보장이 안 되는 거야. 따져보면 여기도 그래요. 집세 올라가면 다 내쫓길 거 아니에요. 그러면 사람들은 한을 품지. 나는 공무원들에게 떠나는 사람들이 눈물 흘리지 않게 재생사업의 총 투자 비용이 만원이면 백원이라도 주라고 해요. 그 사람들은 몇천만원씩 권리금 주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권리금은커녕 쫓겨나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예산이라도 배려를 해줘야지. 주어진 시책대로 막 해서 누가 내쫓기든 말든 난 모른다, 이러면 자꾸 반발이 일어나고 시위를 하는 거야.”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쓰러져가는 건물부터 멀리 을지로와 명동의 높은 빌딩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사대문의 한복판이잖아요. 여긴 너무 좋은 위치라서 이렇게 남아 있을 수는 없을 거예요.” 김시덕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지켜지는 세운상가

세운상가는 서울시, 정확히는 서울시장과 운을 함께한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세운상가를 없앤다, 살린다 하니까 짜증이 났을 법도 하다. “짜증 나는 게 아니라 그 바람에 여기가 침체되는 거야.” 이승근 장인은 서울시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이라고 추진하는 일을 두고 침체라고 했다. “맨날 헐린다, 개발한다 하면 사람들이 안정이 되겠냐고. 그런 소문이 자꾸 돌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했으니까 안정이 안 돼서 떠난 사람들이 많아.”

하늘 아래 사연 없는 게 어디 있겠냐만 대한민국에서 세운상가만큼 사연 많은 장소도 없을 거다.

“세운상가가 번창했을 적에는 교통이 번잡해서 서울시의 골칫거리였던 때도 있었어. 그걸 무너뜨려서 빈집이 됐는데 다시 살리려 하고 있지. 서울시가 병 주고 약 주고 그러는 거야. 병을 준 건 여기 사람들을 내쫓았던 거고. 이제는 살리겠다고 약을 주는 거지. 대의적으로 봐도 세운상가는 살리는 게 맞고 잘되면 좋은데… 한번 망가진 건 잘되기 쉽지 않아. 사람들 발길 끊어진 거 무슨 재주로 불러올 거야. 망가진 시장이라고 낙인찍혔는데 누가 가겠느냐고.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지만 살리는 건 아주 힘들어. 세운이 너무 늦었냐, 그건 두고 볼 일이지.” 세운 마이스터 회장 이정성 장인이 말했다.

오는 사람들은 생뚱맞은 사람들이고, 원래 있던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떠나는 게 지금 세운상가의 현실이다. 이전의 세운상가에도, 다시 세워진 세운상가에도 장인들이 산다. 세운상가를 다시 세운 장인들이 ‘다시, 세운’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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