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페리아’ 이토록 매혹적인 불길함

톰 요크의 '서스페리아' OST 바이닐은 미로 같은 사운드트랙이다.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연출한 루카 구아다니노의 차기작은 이탈리아의 공포물 ‘지알로’의 거장으로 꼽히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대표작 <서스페리아>를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에게 필요한 건 영화 분위기를 장악해줄 음악감독이었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에는 고블린의 사운드트랙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고블린의 OST는 <서스페리아>라는 영화에 광기의 심장을 달아주고, 공포의 숨을 불어넣는 완벽한 카니발이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에게도 그런 강력한 공포를 체감하게 만들어줄 음악적 동료가 필요했다. 라디오헤드의 프런트맨 톰 요크 말이다.

톰 요크는 다리오 아르젠토를 몰랐다. <서스페리아>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블린은 알았다. 고블린의 무시무시한 박력을 대체한 21세기 판 사운드트랙을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거절했다. 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개월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절박했다. <서스페리아>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관객의 말초신경을 마비시키는, 극강의 감각적 공포를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사운드의 조력자가 필요했다. 톰 요크는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주문처럼 보였다. 포기할 수 없었다.

“꿈이 이뤄졌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톰 요크가 새로운 <서스페리아> 사운드트랙 작업을 수락한 것에 대단한 기쁨을 표했다. <서스페리아>는 톰 요크가 처음으로 수락한 영화음악 작업이기도 했다.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엔딩 크레디트에 삽입된 ‘Exit Music’을 제공한 바 있지만 온전히 영화 한 편의 정서를 책임지는 작업은 처음이었다.

톰 요크에게 힌트를 준 건 반젤리스의 <블레이드 러너> 사운드트랙이었다. 쨍한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활용한 초현실적 신비감은 톰 요크를 강렬한 불길함으로 인도하는 최초의 문턱이었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자신만의 <서스페리아>를 만들고자 했다. 톰 요크도 그에 어울리는 새로운 사운드를 마련했다. 고블린의 사운드가 감각을 폭격하고 압사시키듯 반복되는 폭력적 주문이라면 톰 요크의 사운드는 정서적 불길함을 증폭시키고 음산함으로 침식시키려는 은밀한 주술처럼 느껴진다. 격렬하지만 과격하지 않고 음산하지만 기괴하지 않다. 간혹 고요하게 누워 있다가도 매섭게 일어난다.

한편으로는 톰 요크가 온전히 한 편의 영화에서 구현할 음악적 쓸모를 고려해 만든 사운드의 조각 모음 같은 작업이란 점에서 그의 역량을 쏟아부은 음악적 총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분홍과 파랑의 투톤으로 완성된 커버 아트도 인상적이다. 단순한 이미지 구성으로 강렬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예감을 부른다. 그야말로 영화의 신비와 공포를 온전히 품어버리듯 불길하면서도 매혹적인, 미로 같은 사운드트랙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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