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로 가는 길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곳에서 다시 영화와 만났다.

“콜미짚.”

태국 이름이 적힌 명함을 받아보고 나서 도무지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을 때였다. 짚이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발음하기 어렵지? 그냥 편하게 ‘짚’이라고 불러.”

짚의 본명은 사티야 시리포야나콘(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이다. <에스콰이어> 태국판 편집장이다. 짚은 한국으로 출장을 온 참이었고 <에스콰이어 코리아> 사무실에 잠시 들러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알고 보니 짚의 숙소는 <에스콰이어> 사무실과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게 <에스콰이어> 태국판 ‘짚편’과 <에스콰이어> 한국판 ‘신편’의 비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개인적으로 <에스콰이어 코리아> 팬이야. 여러 나라 <에스콰이어> 에디션 중에서도 <에스콰이어 코리아>가 참 좋아.” 처음에는 인사치레겠거니 했다. 짚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보여줬다. <에스콰이어> 태국판 2018년 10월호의 2종 커버였다. <에스콰이어 코리아> 2018년 9월호의 송중기 커버 3종 가운데 2종을 활용했다.

단순히 한류 스타 송중기의 사진만 함께 쓴 게 아니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와 커버 라인 배치에 커버 사진 구도까지 거의 똑같았다. 짚 편집장이 <에스콰이어 코리아>를 존중하고 있다는 걸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웠다. 감동했다. 내심 자랑스러웠다. 그때부터 짚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 짚은 사무실 벽면에 붙어 있는 <에스콰이어 코리아> 커버들을 살펴봤다.

“이건 누구야?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어, 한국 배우.”

“이건 누구야?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데.”

“어, 이 사람도 한국 배우.”

그러고 보니 지난 2년 가까이 <에스콰이어 코리아> 커버 인물은 대부분 한국 배우였다. 해외 에디션의 커버를 주로 장식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사진과 기사를 활용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고집스럽게 한국 배우들을 커버 인물로 내세운 결과였다.

덕분에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다른 에디션과는 남다른 커버 스타일을 확립하게 되었다. 독자적인 커버 스타일을 갖는다는 건 <에스콰이어 코리아>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에스콰이어 코리아> 편집부가 합심해서 이룩한 성취 가운데 하나라고 자평하고 있었다. 그때 짚이 툭 말을 던졌다.

“한국에는 커버로 쓸 만한 인물이 참 많구나. 좋겠다. 부럽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가 한국 배우들을 커버 인물로 내세워서 독자적인 커버 스타일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던 건 단지 편집부만의 공로가 아니었다.

한국 배우와 한국 영화와, 나아가 한국 대중문화 전체에 빚을 지고 있었다. 한국 대중이 한국 영화를 사랑해주고 한국 영화가 한류 스타급의 한국 배우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성장시켜온 덕분이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 역시 한국 영화 발전의 수혜자란 말이다. 외부인 짚의 시선 덕분에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됐다.

짚은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과월호를 짊어지고 태국으로 돌아갔다. 그런 한국판에 대한 애정 역시 한국 영화의 발전과 성취가 바탕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짚과의 만남 이후 <에스콰이어>가 한국 영화로부터 받은 게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그렇다면 <에스콰이어>는 한국 영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서의 탁상공론은 소용이 없겠다 싶었다.

마침 10월 4일부터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답은 현장에 있는 법이다.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다. 마침 패션팀은 이달에 부산에서 패션 화보와 제품 화보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디지털팀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취재할 일이 있었다. 제네시스와 함께 하는 베스트 포토 어워즈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에스콰이어> 부산특별취재팀이 꾸려졌다. 특별취재팀 가운데 가장 쓸모없는 요원은 물론 편집장이었다.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눈칫밥 먹어가면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은 25호 태풍 콩레이 탓에 폭풍전야였다. 콩레이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첫 주말 장사를 작정한 듯 망쳐놓았다. 6일 토요일 오전, 콩레이가 부산을 관통했다. 해운대 숙소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영화의 전당까지 당도하는 과정만으로도 재난 영화 한 편은 찍겠다 싶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지만 예정돼 있던 관객 행사가 줄줄이 취소된 상태였다. 불가항력이었다. 야외에서 실내로 행사 장소를 옮겼다지만 영화인들이 숙소에서 영화의 전당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관객들이 행사 취소 소식을 접하고도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무심코 관객들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금세 알 수 있었다. 관객 중 누구도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걸 말이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배우와 영화를 기다릴 거란 사실을 말이다. 다들 <씨네21>의 부국지 데일리를 탐독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대신 종이 미디어를 보는 군중을 거리에서 목격한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똑같이 <씨네21> 데일리를 읽기 시작했다. 품에서 셀카봉을 꺼내 옆에 내려놓았다. 영락없는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이었다.

문득 한 번도 부산국제영화제를 관객 입장에서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왔을 때부터 목적은 취재였고 역할은 기자였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언제나 기삿거리의 대상으로 소비하기에 급급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관객을 이어주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인데도 그렇지 못했다. 관객이 무엇을 원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무엇이 필요한지 무심했기 때문이었다.

짚 편집장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깨우쳤던 것처럼 관객의 틈바구니에서 바라보자 안 보이던 게 보였다. 콩레이가 지나가자 비록 실내였지만 관객 행사가 재개됐다. 최고 인기는 <암수살인>의 배우 주지훈이었다. 열광의 도가니였다.

관객들을 제대로 감동시킨 건 배우 유아인의 깜짝 등장이었다. <버닝>과 관련된 유아인의 오픈 토크는 당초 태풍 탓에 취소됐다. 유아인은 오래 기다린 관객들을 만나러 저녁 맨 마지막 시간에 다시 틈을 냈다. 기대하지 않았던 유아인의 등장에 관객들이 술렁거렸다. 감동의 물결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이 원하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영화를 통해 배우와 감독과 소통한다는 느낌을 만끽하는 것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진정 창출하고 싶은 순간도 틀림없이 이것이었다. 레드 카펫의 휘황한 드레스도 좋다. 스크린의 화려한 볼거리도 좋다. 영화제의 진정한 감동은 언제나 영화로 진심이 통하는 마법 같은 순간들에 있다.

한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위기였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부산국제영화제는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마침 올해부터 과거의 열기와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23년 동안 영화제를 이끌어온 주역들이 돌아왔다. 영화인들이 돌아왔고 관객들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모두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는 것이 창작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렵게 다시 일어선 부산국제영화제를 보면서 <에스콰이어>도 무엇이든 하고 싶어졌다.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에스콰이어>가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와 관객들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다 모른다. 한국 영화를 위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인 답은 없다. 다만 그 답이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고 기록하는 것과 관련 있으리라는 사실만큼은 이젠 안다. 관객과 영화와 배우와 감독의 진심이 마법처럼 서로 통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미디어의 마술이니까 말이다.

부산에서 <에스콰이어>가 한국 영화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한국 영화에 기여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에스콰이어>가 한국 영화로부터 받은 게 많다는 걸 이제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부산의 어느 포장마차에서의 우연한 술자리가 떠올랐다. 옆자리를 돌아봤더니 추앙해온 영화감독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고 잠시 인사까지 나눴던 마법 같은 순간을 말이다. 그의 이름은 허우 샤오시엔이다. 부산에서 다시, 영화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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