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맛

지구상의 모든 식재료가 요리에 들어가는 홍콩의 맛.

홍콩 카이탁 공항은 조종사들에게 최악의 공항이었다. 홍콩의 나이 지긋한 현지 가이드는 말했다. “당시 대한한공 조종사들이 최고였어요. 건물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날개를 집어넣고 ‘슈욱’ 딱 맞게 착륙을 했거든.” 비가 오거나 조종사가 정신을 못 차리면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바다에 처박히곤 했단다. 시내의 높이 솟은 건물들 사이로 활주로가 있었다. 새로 생긴 첵랍콕 공항은 그 스릴을 모두 앗아갔다. 그래봤자 첵랍콕 공항도 1998년생이다. 홍콩은 변했다. 달라진 게 많다. 하지만 음식은 여전하다. 다파이당(大排) 같은 실내 포장마차에서는 여전히 웃통을 벗은 요리사들이 기름과 씨름하며 음식을 볶아낸다. 백인 관광객들이 눈을 반짝이며 코카콜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서툴게 젓가락을 놀렸다. 아, 음식 담는 그릇이 도자기에서 멜라민으로 바뀌었다.

언제나 나는 거리 음식에 시선을 빼앗긴다. 특히 중화권이나 아시아권에서 그렇다. 더운 날씨의 그들에게 거리는 일상의 식당이니까. 설거지는 누런 종이로 휙 닦으면 그만인 나라도 있었다. 요즘은 아예 비닐봉지를 씌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 주거나 일회용 스티로폼 그릇에 국수를 담아내기도 한다. 국수에 올라간 오리고기를 발라먹고 뼈를 바닥에 퉤퉤 뱉으면 그만인 노천 식당. 홍콩에는 카트 누들, 현지어로 체자이민으로 불리는 국수가 있다. 시내 어디든 국수를 파는 카트가 있고, 그 좁은 카트에서 다양한 고명의 국수를 삶아 팔았다.

이제 그런 거리 국수는 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에나 있던 국숫집들이 실내로 들어갔다. 실내 포차가 된 건가? 그 국숫집들 근처에 가면 유증기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사방 100m쯤은 온갖 고명 냄새로 가득하다. 사실 홍콩의 오래된 거리는 간장과 홍소 식초의 시큼한 냄새, 돼지 내장과 소시지 삶은 냄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미 우리의 코는 마비되어 있다.

카트 누들이라는 뜻의 체자이민은 카트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홍콩 시민의 ‘콤포트 푸드’다. 줄을 서는 건 기본. 면도 열 가지 중에 골라야 한다. 밀가루로 만든 면이냐 쌀로 만든 면이냐, 너비와 두께는 어떻게 할 것인지, 튀길 것인지 삶을 것인지, 양은 보통인지 곱빼기인지 등. 고명도 다양하다. 소 뱃살을 조린 것, 돼지 창자를 간장에 조린 것(아, 이때 냄새는 각오해야 한다. 원래 돼지 내장에는 냄새가 나는 법이니까. 옛말에 돼지는 울음소리 빼고는 다 먹는다고 했는데, 냄새도 먹는 것에 들어간다.) 오리나 거위의 쫄깃한 창자, 닭발과 오리발(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용광로에 녹아들어가면서 뻗었던 손 같은), 소 심줄과 돼지 선지도 있다. 아, 중국식 소시지 저민 것이나 돼지고기 저민 것도 있고, 얌전해 보이는 닭고기나 오리고기도 있다. 홍콩에는 아직도 뱀탕을 판다. 뱀 고기 같은 건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생선 만두나 어묵도 있다.

이만하면 ‘만물 홍콩 기원설’은 사실 같다. 영국의 영향으로 샌드위치와 프렌치토스트를 죽집에서 아침 식사로 먹을 수 있는 동네가 홍콩이다. 베이컨을 올린 완탕도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는 나라. 무엇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지구상의 모든 재료가 진정으로 요리에 들어가는 유일한 나라(라고 호칭하니, 어쩌면 이제 내겐 중국 비자 심사가 엄격해질 것 같다)가 홍콩이니까. 이런 요란한 고명의 폭격이 싫으면 그냥 젱민(淨麵)이라고 하는 ‘민짜’를 주문하면 된다. 이건 뭐랄까, 몸이 순수해지고 맑아지는 기분이 들게 한다. 사실 이 ‘민짜’는 가난한 이의 국수다. 저렴한 길거리 국숫집의 가격마저 부담스러운 이들은 국물에  국수를 넣고 부추나 파만 겨우 얹은 젱민을 먹는다. 가격은 단돈 20홍콩달러(3000원)면 충분하다. 물론 이런 가게에는 제비집이나 샥스핀을 넣은 국수는 없다.

아아, 홍콩에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은 하버의 야경과 라이트 쇼를 보는 것,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웨이터는 당신이 왼손잡이라는 것을 3분 이내에 알아채고 테이블에 놓여 있는 커틀러리 위치를 잽싸게 바꾸어줄 것이다), 진짜 세일다운 세일로 쇼핑백을 채우는 것, 초고층 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그저 거리의 오향과 동물 내장 냄새 사이를 헤집고 국수를 먹는 일이 홍콩에서 제일 아름답다. 가능한 한 국수보다 고명을 많이 얹어서 호화롭게. 문득 돼지 창자의 냄새가 후각을 스치고, 닭발의 마지막 경이가 떠오른다. 홍콩에서 이런 국숫집을 찾는 일은 아주 쉽다. 테호이 시장 근처 같은 서민들 동네에 가서 ‘○○車仔麵’이라는 상호를 찾으면 된다. 아니, 냄새가 당신을 먼저 반기겠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물체가 푹 삶아지고 있는 그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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