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탁 칼럼] 좋은 음악이 없다고?

좋은 음악이 없어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

어디 보자. 2018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뮤지션 숫자를 한번 세 봤다. 쭉 훑어보니 10명을 간신히 채울 수 있는 정도다. 이번엔 2000년대로 범위를 넓혀본다. 꾸준히 그 숫자가 감소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안 끝났다. 싱글 차트는 통상 ‘핫 100’이라 불린다. 100위까지 순위를 매겨서다. 그렇다면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뮤지션 숫자를 헤아려볼까.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하다. 톱 10이든, 히트곡의 기준이라 할 톱 40이든 결과는 역시 매한가지다. 약속이라도 한 듯 부지런하게 감소해왔다.

가요 쪽은 말할 것도 없다. 흔히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렇게 차트가 형성된 게 언제인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오해 말기를. 나는 지금 차트에 오른 곡들이 ‘좋지 않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멜론 차트를 접속해봤다. “참 좋아요” 도장을 쾅쾅 찍어주고 싶은 곡들이 최소 20곡은 넘는다. 지난주 신곡들 중 단연 최고라 할 태민의 ‘Want’가 예상외로 낮은 순위에 있는 게 좀 불만이긴 하지만 말이다. 단언컨대 이 곡으로 태민은 신이 빚은 피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경지에 올랐다. 곡 자체의 매력도 끝장난다. 행여 아직도 못 들어봤다면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해보길 강력하게 권한다.

이제 과거로 타임 워프를 해볼 차례다. 추억의 그 이름 <가요톱10>, 다들 기억하고 있을 거다. 이것도 아주 친절한 누군가가 인터넷 상에 정리를 다 해놨다. 대충 봐도 정말 여러 장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통상적인 가요는 물론이요 록, 랩, 댄스, 알앤비, 심지어 트로트까지, 가히 장르 백화점이 따로 없다. 그에 반해 지금 각 방송사가 주관하고 있는 순위 프로그램은 그냥 아이돌 쇼에 가깝다. 차트와 마찬가지로 좋은 곡들이 여럿이지만 장르적으로 단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빌보드도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1960, 70년대까지만 해도 그것은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 1년간 차트 1위에 오른 곡이 아무리 못해도 최소 20곡은 넘었다. 내가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는 좋은 음악이 드물기 때문이라 단언하지 말라. 국내로 한정해봐도 2010년대 이후에도 좋은 음악은 많았다. 아이돌 중에서도 많았고, 아이돌이 아닌 경우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좋은 음악은 많지 않은 적이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음악이 탄생한 뒤로 좋은 음악은 ‘언제나’ 많았다.

이쯤에서 내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본다. 나는 다음처럼 적었다.

‘직관적인 재미로 가득한 놀이들에 비하면 음악만큼 지루한 놀이도 없을 거다. 해외나 국내나 차트가 갈수록 평면화 되어가는 이유 중 하나다. 여가 시간을 채울 게 음악 외에 별로 없었던 세대와 여가 시간에 할 게 널려 있는 세대는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간단한 이치다. 무엇보다 요즘 친구들이 예전만큼 음악을 다양하게 듣지 않는다는 건 과거와 현재 차트를 비교하면 바로 알 수 있는 명확한 팩트다.’

과거에는 음악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다름 아닌 음악의 시대였던 까닭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나면 음악을 들었다. 집에서 들었고, 공연장에 가서 들었고, 친구들과 함께 모여 음악을 틀어놓고 춤도 췄다. 그게 그 시대의 주요한 여가였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음악보다 흥미롭고, 중독적인 놀이가 (음악이 1960, 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지천에 널려 있다. 게다가 이 놀이들은 ‘접속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확실한 우위를 자랑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았던 과거의 놀이와는 달리 이제는 그 제약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중에서도 게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차트를 움직이는 동력은 결국 국가를 막론하고 10대와 20대다. 이 친구들이 시간이 나면 뭘 하겠나. 음악 듣는 비율과 게임하는 비율을 한번 따져볼까. 비교하는 거 자체가 허망할 만큼 게임 쪽이 높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내가 어제 새벽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하며 고대 그리스를 내 집처럼 돌아다닌 것처럼 당신은 시간만 난다면 그 어떤 시간에든 마음껏 놀 수 있다. 그런 와중 수고를 들여 직접 좋은 음악을 찾아보는 시간 따위 있을 리 만무하다. 일단, 게임에 비해 재미의 직관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나는 지금 10대와 20대가 ‘듣는 음악만 습관처럼 듣는다’며 타박하려는 게 아니다. 놀이의 역사가 그런 식으로 전개되어왔다는 걸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의 놀이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애호가 김세윤 작가의 과거 코너 제목을 빌리자면 개미핥기 아닌 ‘재미핥기’랄까. 시간의 공백을 재미로 메워야 하기에 인간은 필사적으로 새로운 놀이를 개발해왔다.

기본적으로 모든 놀이는 게임의 규칙 하에 작동한다. 이런 측면에서 음악 역시 게임의 일종이다. 한데 이걸 어쩌나. 음악은 앞으로도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서 항시 울려 퍼질 것이지만 게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재미가 최하위권에 위치한다. 거의 2부 리그 강등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쉽게 GDP 개념으로 설명해볼까. 음악 산업과 영화 산업을 다 합쳐도 게임 산업의 ‘쨉’도 되지 않은지 오래다. 당연히 음악이 셋 중 압도적인 꼴찌다.

“보석 같은 음악이 숨어있는 차트 밖으로 행군하여 발굴하라!” 따위의 제언은 하고 싶지 않다. 뭐, 어떻게든 음악은 살아남을 것이다. 혹시 아나. 다른 놀이의 ‘브금’ 역할을 통해 생존왕의 칭호를 하사 받을지. 어쨌든, 갈수록 차트는 단순해질 것이고, 숨어있는 좋은 음악 찾기는 극소수만이 즐기는 여가가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좋은 음악이 없었던 적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걸 부디 명심하기 바란다. “요즘 음악 들을 게 없어” 입 밖으로 내뱉는 그 순간, “드디어 내가 갔구나” 여기면 된다. 그건 그냥, 자기 게으름에 대한 구멍 난 알리바이에 불과할 뿐이다.

작년 타계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의 인터뷰 중 일부로 글을 마친다. 그는 “요즘 젊은 후배들은 선생처럼 많이 읽지는 않는 것 같다. 못마땅하지는 않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책’을 ‘음악’으로, ‘읽다’를 ‘듣다’로 바꿔 곱씹어보라.

“전혀. 우리에게는 우리의 필연이, 그들에게는 그들의 필연이 있소. 우리는 읽는 게 양식이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다른 양식이 있겠지. 뒷방 늙은이가 관여하고 가르치는 건 염치없는 일. 나는 다만 내 일을 할 뿐이오.”

/ 글_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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