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칼럼] 스테이크? 아무나 구워선 안돼!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웠다. 뭐가 문제였을까. 박찬일 셰프가 스테이크 굽기의 힘겨움을 토로했다.

20여 년 전 쯤 지인이 자기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워 한잔하자고 했다. 샤토 라투르, 샤토 마고 같은 걸 따겠다고 하니 훌렁 넘어갔다. 그때 빈티지가 싱싱했다. 1990, 뭐 이런 것들이었다. 그걸 그냥 갖고 있었더라면…. 한 가지 조언하겠다. 옛날에 마셔버린 빈티지를 오랜 세월이 지나 아쉬워하는 건 마치 성인이 된 아이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은 일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뜻, 돌이킬 수 없어서 의미 없다는 뜻.

그때는 스테이크감 고기 한 장 사는 일이 어려웠다. 호텔 셰프에게 부탁해서 미국산 안심을 구했다. 마트에 가면 안심이고 등심이고 아주 얇게 저민 것밖에 팔지 않았으니까. “스테이크요? 그런 건 이태원 미군 부대에나 가야 파는 거 아녀?” 그렇게 되묻던 시절이었다. 정말 짧은 시간에 우리는 스테이크 왕국이 되었다. 뉴욕, 파리, 런던, 어디든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 못한 놈들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피렌체에 갔더니 중국 식당에도 크게 써 붙여 팔고 있었다.

“비스테카 피오렌티나 오케이!”

한국도 이젠 제법 잘 굽는다. 경력이 4~5년쯤 되었을, 홍대 앞의 발랄한 셰프들도 잘 굽는다(유튜브는 웬만한 요리 학교보다 나을 때가 있다). 냉동한 거, 수분 질질 빠진 수입 안심에 연육제 발라 팔던 왕년은 갔다. 오랜만에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워봤다. 뭔가 실험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고기를 사고, 또 뭐가 필요하지? 그렇다. 팬과 가스레인지와 소금이면 된다. 집에 어린아이가 있으면 마트나 ‘새벽 배송’ 하는 쇼핑몰 사이트에서 ‘데우기만 하면 되는, 아무개 셰프의 특제 소스’를 사면 된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인터넷을 보니 아마추어들이 이미 멋지게 굽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셰프 아닌가. 잘 구울 수 있을 거야.

문제는 내가 가정집 주방에서 뭘 한다는 사실이었다. 조수도 없고 장비도 없는. 우선 우리 집 가스레인지의 배연기가 그렇게 힘이 약한지 몰랐다. 식당 것은 몇 마력인지를 따진다. 아파트 배연기는 액세서리다. 대개 스테이크 굽는 요리사들의 첫 멘트는 이렇다. “연기가 날 때까지 기름을 달구세요!” 그랬다가는 작은 우리 아파트에서 화생방 훈련을 하게 될 것이다. “두툼한 팬을 준비해주세요!” 그런 것도 없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코팅 팬은 싼 게 좋아. 쓰다가 버리는 게 낫다고.”

고기 두 장을 얹었더니, 젠장, 팬의 기름 온도가 뚝 떨어졌다. 팬이 너무 얇았다. 이렇게 되면 굽는 게 아니라 찌는 거다. 아, 스테이크감을 사는 일도 쉽지 않았다. 마트에서 잘라놓은 건 너무 얇았다. 백화점이라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잘라준다. 그러나 너무 비쌌다. ‘원하는 대로’의 비용까지 이미 포함된 가격 같았다. 왜 아닐까. 저 비싼 동네에선 눈만 마주치면 달려오는 직원의 ‘고객님 뭘 찾으십니까’도 다 비용이다. 그런 걸 알고 있지만 비쌌다. 그래도 사는 수밖에. 두툼하게 잘라 몇 장을 구했다.

팬에 고기의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튀기 시작했다. 식당에서는 요리복을 입고, 기름이 튀는 건 그런가 보다 하고 말 일이지만 집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부엌 바닥이 미끈거리기 시작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미끄덩하고 기름이 묻었다. 양면을 뒤집어가며 잘 지졌다. 아차, 오븐 예열을 안 했군. 식당에서 나는 오븐을 켜는 담당이 아니다. 오븐은 늘 켜져 있다. 오븐을 켜도록 아내를 불렀다.

“오븐 고장 난 게 언젠데. 쓸 일이 없어서 안 고쳤어.”

그렇군. 전자레인지로 옮겨서 속을 익혀? 농담이 아니라 가능하다. 해동이나 그것보다 조금 센 마이크로파로 고기 속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팬에서 레어나 미디엄 레어 정도로 굽고 전자레인지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 다루면 유통기한 지난 육포가 되어 나올 수 있느니 권장하지는 않는다.

부엌 바닥의 기름기를 닦았다. 머리 위로는 뿌연 연기가 가득 찼다. 아내가 슬슬 비웃기 시작했다. 고기는 양면을 다 지져서 크러스트를 지나 구두 밑창처럼 딱딱해졌지만 속은 아직 차가웠다. 오븐도 없는데 너무 두꺼운 고기를 샀기 때문이다. 팬에 뚜껑을 덮어서 찌듯이 스테이크 속을 데웠다. 우리 집 아이는 레어로 구운 고기는 먹지 않으니까. 겨우 식탁을 차렸다. 내 머리칼은 기름 연기를 먹어서 무스에 스프레이 칠까지 한 것처럼 빳빳하게 엉켰다. 아이가 말했다.

“아빠, 소스는?”

스테이크는 아무나 집에서 굽는 거 아니다. 아마도 블로그나 유튜브를 열심히 본 애호가들이 더 잘 구울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븐도 없고 조수도 없는 가정집 주방이라면. 저렴하고 맛있는 스테이크하우스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가니시도 멋지게 주고, 더러는 코키지 프리에 쿠폰도 준다. /글_박찬일(로칸다 몽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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