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삶을 건축한 시간들

독일에서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흔적들을 수집했다.

Weiße Stadt Berlin / Weisse Stadt Berlin (1929–31), Architekten / architects: Martin Wagner, Otto Rudolf Salvisberg, Bruno Ahrends, Wilhelm Büning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하우스 바우(Haus Bau). 독일어로 ‘하우스 바우’는 집을 짓는다는 의미다. 이를 토대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이름 지어 세운 학교가 바우하우스다. 건축과 예술과 삶을 숙명처럼 삼켜낸 듯. 이후 100년이 흐른 지금 바우하우스는 하나의 양식이자 상징이자 사조가 되었다. 바우하우스가 태동한 독일에는 그들이, 그들의 정신이 남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여전히 명명하다.

백색 도시(Weiße Stadt Berlin)
베를린(BERLIN)/1929년

Weiße Stadt Berlin / Weisse Stadt Berlin (1929–31), Architekten / architects: Martin Wagner, Otto Rudolf Salvisberg, Bruno Ahrends, Wilhelm Büning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Weiße Stadt Berlin / Weisse Stadt Berlin (1929–31), Architekten / architects: Martin Wagner, Otto Rudolf Salvisberg, Bruno Ahrends, Wilhelm Büning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Weiße Stadt Berlin / Weisse Stadt Berlin (1929–31), Architekten / architects: Martin Wagner, Otto Rudolf Salvisberg, Bruno Ahrends, Wilhelm Büning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바우하우스는 1919년에 설립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도시는 피폐했고 삶은 퍽퍽했다. 이에 바우하우스 1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를 비롯해 건축가 마르틴 바그너, 브루노 타우트가 주축이 되어 베를린에 시민을 위한 주택 단지를 건설한다.

주택 수가 부족했으므로 평면적으로 설계해 효율성을 우선시하되 발코니는 꼭 갖추었다. 일상에 빛과 공기를 최대한 전하기 위해서다. 이때 설계한 여섯 곳의 주택 단지는 여전히 독일 시민들의 안식처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백색 도시는 여섯 곳의 주택 단지 중 하나다. 이름 그대로 백색 파사드다. 차가워 보일 수 있는 건축물의 창틀과 옥상 돌출부 등에 색을 입혀 활기를 더했다. 채도 높은 색이지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을 만큼 적은 영역에만 적용했다. 바우하우스 3대 교장인 미스 반데어로에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

바우하우스 아카이브(Museum für Gestaltung)
베를린(BERLIN)/1976년

Bauhaus-Archiv / Museum für Gestaltung Berlin (1976–79), Architekten / architects: Walter Gropius, Alex Cvijanovic, Hans Bandel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Bauhaus-Archiv / Museum für Gestaltung Berlin (1976–79), Architekten / architects: Walter Gropius, Alex Cvijanovic, Hans Bandel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Bauhaus-Archiv / Museum für Gestaltung Berlin (1976–79), Architekten / architects: Walter Gropius, Alex Cvijanovic, Hans Bandel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바우하우스는 크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독일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를 설립한 1919년부터의 시기. 두 번째, 정치 세력의 방해로 데사우로 이주한 1925년부터의 시기. 세 번째, 나치의 탄압 때문에 베를린으로 또다시 이주한 1932년부터의 시기.

그리고 네 번째, 바우하우스를 불온한 예술가 집단으로 규정하고 폐쇄를 명한 나치의 탄압으로 결국 뿔뿔이 해체되고 말았으나 미국으로 건너간 마이스터(meister: ‘장인’이란 의미로 바우하우스에서는 교수를 마이스터라 불렀다. 호칭에서 오는 권위를 덜어 학생과 교사가 수평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한 의도다)들과 졸업생들이 바우하우스 정신을 계속 이어나간 1933년부터의 시기.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는 이러한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했다. 그러나 완공은 그가 타계한 후에 이루어졌다. 그사이 재정적인 문제 등 여러 난관으로 실제 발터 그로피우스의 설계 중 남은 것은 지붕 정도다. 일명 톱니바퀴 지붕(sawtooth roof). 전시 공간에 자연광을 끌어들이기 위한 디자인이다.

현재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는 확장과 리모델링을 위해 잠시 문을 닫았다(임시 전시 공간은 샤를로텐부르크 거리에 마련했다). 새로운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는 2022년에 문을 열 예정이다. 현재진행형인 바우하우스의 정신은 또 얼마나, 어떤 모습으로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에 담기게 될까.

바우하우스(Bauhausgebäude)
데사우(DESSAU-ROßLAU)/1925년

Dessau-Roßlau Bauhausgebäude / Bauhaus building (1925–26), Architekt / architect: Walter Gropius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Dessau-Roßlau Bauhausgebäude / Bauhaus building (1925–26) Fassade, Architekt / architect: Walter Gropius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Dessau-Roßlau Bauhausgebäude / Bauhaus building (1925–26) Balkone des Atelierhauses, Architekt / architect: Walter Gropius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Dessau-Roßlau Bauhausgebäude / Bauhaus building (1925–26) Südseite, Architekt / architect: Walter Gropius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건축물. 연이어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건축물만 소개하는 건 고의가 아니다. 바우하우스, 모더니즘 건축에서 발터 그로피우스는 빼고 싶어도 뺄 수가 없다. 그 이유로, 사진 속 건축물에 앞서 독일 알펠트 지역의 파구스 공장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구두끈을 만들던 파구스 공장은 시대를 앞서간 건축물로 꼽힌다. 외벽 일부를 유리 패널 커튼월로 마감한 최초의 건물이기 때문이다(아주 단순하고 쉽게 설명하자면 건물 외벽을 벽돌 대신 유리판으로 완성했다고 상상하면 된다. 김중업 건축가가 1970년대에 설계한 종로 삼일빌딩이 이러한 유형이다). 파구스 공장이 세워진 건 1913년이다.

사진 속 건물은 바이마르에서 데사우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 지은 바우하우스 학교다. 파구스 공장과 비슷하게 강철과 콘크리트 구조를 바탕으로 벽돌과 유리로 마감한 유리 패널 커튼월이 눈에 띈다. 이 역시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했다.

파구스 공장을 지을 때 발터 그로피우스가 유리 벽을 설계한 이유는 건물의 기능을 중시하면서도 답답한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해 채광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바우하우스를 설계할 때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제아무리 건축과 예술을 도모하는 곳이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학교는 가끔 월요일 아침 같은 존재일 테니까.

촐페라인 탄광(Zeche Zollverein)
에센(ESSEN)/1928년

Zeche Zollverein Fördergerüst Schacht XII / Zollverein Coal Mine Industrial Complex Pocket XII (1928–1932), Architekten / architects: Fritz Schupp, Martin Kremmer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Zeche Zollverein Fördergerüst Schacht XII / Zollverein Coal Mine Industrial Complex Pocket XII (1928–1932), Architekten / architects: Fritz Schupp, Martin Kremmer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Zeche Zollverein Fördergerüst Schacht XII / Zollverein Coal Mine Industrial Complex Pocket XII (1928–1932), Architekten / architects: Fritz Schupp, Martin Kremmer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Zeche Zollverein Fördergerüst Schacht XII / Zollverein Coal Mine Industrial Complex Pocket XII (1928–1932), Architekten / architects: Fritz Schupp, Martin Kremmer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바우하우스는 기능적인 디자인을 도모한다. 그래서 가끔 미적인 감각은 제쳐둔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 오해를 깨부수는 게 촐페라인 탄광이다. 독일 에센 지역의 촐페라인 탄광은 1847년부터 1986년까지 세계 최대 탄광 시설이었다. 시간이 흘러 탄광은 문을 닫았고 자연스레 쇠락의 길을 걷게 될 폐탄광촌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인다. 아름다운 공업 지대를 보기 위해서.

촐페라인 탄광은 건축가 프리츠 슈프와 마르틴 크레머가 설계했다. 미스 반데어로에에게 바우하우스 정신을 배운 이들은 기능주의 미학의 추종자였다. 이들이 설계한 권양탑(채굴한 석탄을 끌어 올리는 구조물)은 촐페라인 탄광의 랜드마크가 됐다.

지하에서부터 석탄을 끌어 올려야 하므로 튼튼함을 배가시키기 위해 이중 트러스 빔(보: 삼각형으로 짜서 강화시킨 들보의 총칭) 구조로 설계했을 뿐인데, 높이 55m짜리의 거대하고도 굳건한 이 권양탑에는 ‘골리앗의 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기능과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궁극의 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촐페라인 탄광이 증명한다.

지들룽(Siedlung), 성십자가교회(Kirche)
프랑크푸르트(FRANKFURT)/1929년

Siedlung / Housing estate Bornheimer Hang(1929~1930), Kirche
Architekt / architect: Ernst May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Siedlung / Housing estate Bornheimer Hang (1929– 30), Kirche, Architekt / architect: Ernst May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독일어로 주택 단지는 ‘지들룽’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들어선 지들룽은 바우하우스 마이스터들이 주축이 되어 건축했다. 그중에서도 에른스트 마이는 환경이 어우러진 주택 단지를 추구했다. 여기서 환경이란 녹지가 포함된 자연의 환경,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모든 삶의 환경을 말한다.

에른스트 마이가 프랑크푸르트 지역에 설계한 주택 단지에는 가톨릭 신자가 많이 거주했다. 이에 에른스트 마이는 주택 단지 가장자리에 교회를 짓기로 했다. 설계는 교회와 수도원 건축 경험이 풍부해 교회 전문 건축가로 꼽히는 마르틴 베버가 맡았다. 마르틴 베버는 바우하우스 양식에 따라 성십자가교회를 설계했다.

깔끔한 색과 선이야말로 바우하우스의 대표적인 특징이지만 이 교회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요소는 공예적인 장식이다. 성십자가교회 남측 벽면에는 입체적인 장식물이 있다. 날개 달린 인간, 사자, 황소, 독수리를 형상화한 조각이다. 이는 각각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네 전도사를 의미한다. 단정한 벽면에 힘이 더해졌다.

교회 정면의 시계는 태양 형태다. 태양의 모습을 선으로 단순화해 시계로 삼은 디자인이 꼭 추상화 같다. 애초에 바우하우스는 ‘미래의 새로운 건축을 위해 조각, 회화 같은 순수 미술과 공예 같은 응용 미술이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설립한 학교다. 성십자가교회는 공예적 아름다움이 건축과 조화된 예를 보여준다.

크로이첸베르거 와이너리(Weingut Kreutzenberger)
라인란츠팔트(RHEINLAND-PFALZ)/1929년

Weingut / Vineyard Kreutzenberger(1929~1930)
Architekt / architect: Otto Prott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Weingut / Vineyard Kreutzenberger (1929/30), Architekt / architect: Otto Prott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Weingut / Vineyard Kreutzenberger (1929/30), Architekt / architect: Otto Prott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독일 라인란트팔츠주는 ‘와인의 땅’이라고도 불린다. 모젤강과 라인강이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주었고 이곳 사람들은 그 땅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든다. 많은 와이너리 중에 와인 말고 또 다른 것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전통적인 양조장 마을에 난데없이 등장한 하얗고 부드러운 집, 크로이첸베르거 와이너리다.

작지만 전통적인 양조장인 크로이첸베르거 와이너리는 건축가 오토 프로트에게 설계를 부탁했다. 오토 프로트는 이곳을 바우하우스 스타일로 디자인했다. 테라스가 있는 개방형 평면 지붕, 직선과 적절히 어우러지는 둥근 구조, 그 둥근 면을 따라 자연스레 함께 흐르는 창문. 크로이첸베르거 와이너리는 와인을 한 방울도 못 마시는 사람일지라도 건축을 보기 위해 오는 명소가 되었다.

이후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지하 창고를 확장하는 등 리모델링을 거쳤는데 리모델링을 맡은 건축가는 본래의 건축적 특징을 최대한 유지하고 최소한으로 보수했다. 굳이 덜어내고 채워야 할 시대 차이란 없었다. 오토 프로트가 설계할 때 그린 집 그림은 크로이첸베르거 와이너리가 생산하는 와인 보틀의 라벨에 남아 있다.

슈민케의 집(Haus Schminke)
작센(SACHSEN)/1930년

 

Haus / House Schminke (1930), Architekt / architect: Hans Scharoun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Haus / House Schminke(1930)
Architekt / architect: Hans Scharoun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Haus / House Schminke (1930), Architekt / architect: Hans Scharoun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1930년 독일 작센주 로바우 지역에서 국수 공장을 운영하는 프리츠 슈민케가 건축가 한스 샤로운에게 요청했다. “부모님 두 분, 아이 넷, 가끔 손님이 한 명 묵는 말끔한 집을 지어주세요.” 그 결과가 이 집이다.

한스 샤로운이 남긴 유명한 건축물 중에는 베를린 필하모니 음악당이 있다. 당시 일반적이던 프로시니엄 극장(프로시니엄은 ‘앞 무대’라는 의미로 객석과 무대가 정확히 분리된다)과 달리 원형 구조로 설계했고 이는 모든 관객을 위한 진정한 극장으로 평가받는다.

한스는 슈민케의 요청을 받고 대가족과 가끔 오는 손님이 즐거이 지낼 수 있는 집은 어떤 것일까 고민했다. 그 결과 2층 구조이되 벽 모서리를 둥글게 굴리고 나선형 계단을 설치해 1층과 2층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집이 탄생했다. 여기에 테라스를 두고 조경가 헤르타 해머바커와 협업해 드넓은 정원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설계는, 마치 바다를 유랑하는 유람선을 떠올리게 한다. 슈민케 가족은 구서독의 적군파에게 집을 빼앗기기 전까지 이 집에서 약 12년 동안 살았다. 그리고 훗날 이 집을 되찾았을 때는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 기념물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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