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미라이’ 너의 미래는.

호소다 마모루의 '미래의 미라이'는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절을 돌아보게 만드는 마법이다.

조금 부끄러운 일화지만 유년 시절 누나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내 방이 좁은 것에 불만이 많았는데 누나가 없다면 누나 방을 내가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매우 악랄한 바람을 단순하게 품었던 것이었다. 물론 누나는 집에 들어왔고, 누나의 방 역시 내 방이 될 수 없었다. 애초에 일어날 일도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어 뒤늦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실현된 바람을 뒤늦게 돌아볼 팔자가 아니었다는 것이 새삼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어린 시절의 철없던 생각을 소환하게 된 건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를 본 덕분이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까지, SF와 판타지의 경계 속에서 현실적인 성장담과 가족드라마를 녹여낸 애니메이션을 연출해온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잠재된 유년시절을 끌어올리는 낚싯대 같다.

소년 쿤은 창에 불어넣은 입김을 제 손으로 닦고 투명해진 창 밖을 바라보는 행위를 거듭 반복한다. 창 밖에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쿤이 기다린 건 바로 엄마와 아빠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건 단 둘이 아닌 셋이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새로운 여동생까지, 어린 쿤에게 더 어린 여동생이 생긴 것. 놀란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보는 쿤에게 엄마는 부탁한다. 사이좋게 지내 달라고, 혹시라도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달라고. 쿤은 대답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만 쿤은 좋은 오빠이기 이전에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쿤은 어린 여동생에게만 신경 쓰는 부모가 못마땅했다. 부모의 주의를 끌고 싶어서 응석을 부리고, 집안을 어지럽히고, 여동생을 괴롭힌다. 곤히 낮잠을 자는 여동생의 볼을 꼬집어 깨운다. 그래서 엄마의 질책을 듣고 설움에 울음을 터트려도 부모의 신경은 온통 여동생에게만 쏠려 있다. 심통이 난다. 여동생에게 엄마와 아빠를 빼앗긴 것만 같다.

그런 어느 날 집에서 나와 마당에 들어선 쿤은 마당의 풍경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울창한 숲이 된 마당을 거닐다 한 여자를 만난다. 교복을 입은 것이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그녀의 손에는 붉은 반점이 있다. 쿤은 그것이 문득 어린 여동생의 손에서 본 반점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정체를 짐작한다. 그의 정체는 바로 여동생 미라이, 그러니까 미래의 미라이인 것이다. 그렇게 쿤은 미래의 미라이를 만난다. 이 작품의 제목이 <미래의 미라이>인 건 그래서다.

<미래의 미라이>는 여동생이라는 미지의 존재를 만난 네 살 소년 쿤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소년인 쿤에게 여동생 미라이는 부모의 관심을 독점하는 불공정한 존재이자 극복의 대상이 된다. 그런 쿤에게 찾아온 미래의 미라이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미지이자 언젠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의 조우인 것이다.

사실 쿤이 미래의 미라이를 만나게 되는 과정은 다소 엉뚱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그저 집의 실내공간에서 마당이라는 실외공간으로 이동한다는 것만으로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설정 자체가 종종 뻔뻔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터무니없게 여겨지진 않는다. <미래의 미라이>가 시공간의 점프를 통해 현재의 쿤과 미래의 미라이의 만남을 설득하는 근거는 이성적인 규칙이 아니라 정서적인 공감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호소다 마모루는 호소다 마모루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통해 보편적인 가족애와 성장담의 감동을 전하는 데 능한 감독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소녀(<시간을 달리는 소녀>), 전 세계의 시스템과 연결된 오즈라는 가상 세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힘을 모으는 대가족(<썸머 워즈>), 늑대인간과 결혼해 낳은 늑대인간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자 안간힘을 쓰는 여자(<늑대아이>), 부모도 없고, 갈 곳도 없이 도시를 떠돌다 우연히 괴물로 인식될 만한 존재를 만나 그의 세상으로 가 성장하게 되는 소년(<괴물의 아이>)까지, 미지의 존재 혹은 세계와 대면하게 되고 그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대와 성장을 깨닫는 존재로 자라난다.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관이 끌어안은, SF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인 설정에 대한 현실감을 불어넣는 건 정밀한 규칙이 아니다. 호소다 마모루의 영화를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이끄는 건 결국 그러한 세계관 속에 자리하게 된 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에 있다. 소녀가 시간을 오가는 능력을 얻게 된 당위를, 전 세계인이 쓰고 있는 일원화된 가상 시스템에 대한 가능성을, 늑대인간이라는 존재의 현실성을, 비현실적인 세계와 문명화된 현실 세계의 불명확한 경계를 따져 물을 필요가 없다.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에서 그 모든 가정과 환상은 가장 보편적인 울림을 주기 위한 특별한 외피로서 기능하는 장치 이상의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미라이> 또한 마찬가지다. 쿤이 미래의 여동생, 미래의 미라이를 거듭 만나게 되는 과정은 소년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모험담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소년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기 위해 다가온 시련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배려하기 위한 선물 같기도 하다.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소년의 세계 속에서만 허락된 상상의 결과 같기도 하다. 쿤이 미래의 미라이를 거듭 만나며 깨닫게 되는 건 여동생과 가족의 존재가 단지 지금의 찰나만이 아닌 긴 시간을 공유하게 될 존재라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건 <미래의 미라이>가 비현실적인 체험을 통해 성장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유년 시절을 지나온 관객 입장에서는 그것이 결코 단순한 개인의 경험으로만 여겨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미래의 미라이>는 우리 모두가 지나온 어린 시절을 환기하고, 그 시절을 지나오며 성장해온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래의 미라이는 어쩌면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될 관객들 자신일 것이다. 반대로 미래의 미라이를 만나게 되는 어린 쿤은 관객들이 되새기는 자신의 어린 과거일 것이다. <미래의 미라이>를 보는 관객 대부분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미래의 미라이>는 결국 관객들이 현재와 과거의 시공간을 초월하도록 이끄는 촉매 같은 작품인 것이다.

한편 호소다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은 사실적이면서도 회화적인 풍경 묘사를 통해 실제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데, 이는 비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현실적으로 설득하는 데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관을 구체화시키는 사실적인 풍경은 뻔뻔한 거짓말을 순수한 믿음으로 이끄는 착시 효과로서 적절한 기능을 하는 셈이다. 적당한 믿음을 권하는 데 적절하게 용한 주문 같다고 할까. 이는 <미래의 미라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호소다 마모루는 초등학생인 큰아들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미라이>를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미래의 미라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네 살 아이의 시점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됐고, 그 시절의 자신을 체험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호소다 마모루 역시 <미래의 미라이>를 통해 지난 성장을 뒤돌아보게 된 셈이다. 하지만 <미래의 미라이>는 육아를 경험한 부모의 입장을 대변하는 작품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지나온 어린 시절을, 그리고 그 어린 시절 이후를 경험하며 성장한 혹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시간을 돌아보고 되짚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미래의 미라이>의 쿤은 미래의 동생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신을 심지어 과거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두에게 어린 시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모두 다 그렇게 과거를 건너 현재라는 미래로 나아가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다. 쿤의 성장담은 결국 <미래의 미라이>를 지켜보는 모든 관객의 성장담과도 같다. 모두 다 그렇게 깨닫게 된다. 모두 다 그렇게 누군가와 함께 성장해온 존재이며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존재이며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존재라는 것을.

<미래의 미라이>는 결국 관객을 위해 마련된 타임머신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절에 존재했던 손길과 체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들고, 그 시절의 공기와 온도를 넘어온 지금의 나를 직시하게 만드는, 일종의 마법 같은 주문. 그럼으로써 지금의 나와 다시 한번 만나게 되는, 나 자신을 향한 악수를 권하는 경이로운 거짓말.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너를 만나며, 수많은 어제를 지나 끝내 오늘까지 왔다는 것을, 그렇게 미래의 너를 만나는 미래의 내가 되기까지 수많은 현재를 건너온 너와 나의 시간을.

<미래의 미라이>는 그렇게 우리가 지나온 어제에는 언제나 미래였던 오늘을 무심히 지나는 우리 자신에게 그렇게 말을 건다. 주문을 건다. 시간이라는 사소한 마법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재능이다. /글_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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