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는 일들의 자연사

뛰어넘을 수 없거나 뛰어넘어가는 것들에 대하여.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올리버 색스ㅣ알마

“컨디션이 너무 좋은 걸로 봐서, 어디가 아픈 게 틀림없어.”

의학계의 시인이라 불리는 정신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의 미발표 에세이 모음집이다. 사사롭기보다는 그가 평생 돌본 환자들의 일화와 의학 지식이 곁들여 있어 쉬운 교양서를 읽는 기분이다. 그중에서도 엉클 토비의 일화에서는 한동안 끝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엉클 토비는 7년째 혼미한 상태로 마치 붙박이장처럼 집 한구석에 놓여 있던 남자다. 산송장 같은 그를 가족들은 곤란해했고 이에 저자의 스승이 데려와 돌보기 시작한다. 원인은 금세 발견됐다. 갑상샘저하증. 즉 몸을 덥히는 난로가 고장 난 것이다. 냉동 인간 같던 그는 의료진이 몸을 데워주고 보살피자 배터리가 완충된 듯 번쩍 깨어난다. 지난 7년의 기억은 몽땅 잊은 채. 인체도 참 신비하지, 기억과 함께 멈춰 있던 급성 암세포도 깨어났다. 결국 엉클 토비는 죽고 만다. 이날의 기억을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적었다. “그의 가족은 그를 차갑게 방치함으로써 생명을 살렸고, 우리는 그에게 온기를 불어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 아이러니란. 스포일러 같아서 엉클 토비의 결말을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삶은 영화가 아니기에 적어둔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스킵’ 버튼 없이 살아나가는 이들의 묵묵한 이야기를.

 

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

조너선 실버타운ㅣ서해문집

“인간에 대한 나의 정의는 ‘요리하는 동물’이다.”

저자는 솔직했다. 그는 이 말로 책을 시작한다. “음식에 대한 책은 너무 많다. (중략) 솔직히 음식이라는 주제에 대해 더 쓸게 뭐가 있겠는가?” 집밥 선생, 미식회, 골목식당 솔루션, 나아가 바다포도 터트려 먹는 ASMR 방송까지, 음식에 대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현상은 한국이나 저자가 사는 영국 애든버러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대신 저자는 우리가 이토록 넘치게 먹고 마시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근원을 찾는다. 그는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에는 진화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솔직히 ‘수평적 유전자 전달’이라든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처럼 발음하기도 어려운 학문적 지식이 나올 때면 하품이 비집어 나오다가도 식재료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뜨인다. 당장 오늘 아침에 먹은 요리 재료의 뒷이야기니까. 가령 요즘 한국을 휩쓰는 마라에 빗대어보자. 콩알보다도 작은 육두구를 씹으면 혀가 얼얼해지는데 그게 다 진화의 흔적이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달아날 수 없으므로 방어 전략으로 한 입 베어 물면 기절할 만큼 맵거나 혀가 아릿할 정도로 진화해온 것이다. 식물의 반격이다. 인간 역시 그 반격을 맛있게 즐길 만큼 진화한다는 게 식재료에는 유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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