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들의 축제, 블리즈컨 속으로

블리자드가 개최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게임 축제, 블리즈컨 2018에 다녀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줄을 섰다. 일부는 하루 전날부터 줄을 섰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아니, 그 정도는 기꺼이 줄을 서겠다는 것 같았다.

취재용 패스를 이용해 일반 관람객보다 먼저 콘퍼런스장에 들어섰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어둠 속에 설치된 수백 개의 조명 장치가 만드는 현란함 속에 몸을 맡겼다.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의 콘퍼런스 장소에 놀랐다. 행사장 전체 면적이 미식축구 경기장 21개와 맞먹는다고 했다. 건물 내부가 어찌나 큰지 안에서 볼 때 앞뒤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메인 무대가 있는 D홀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수천 개의 텅 빈 의자를 지나 무대 앞쪽으로 다가갔다. ‘여기에 사람들이 꽉 찬다고? 설마.’ 그때는 믿기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쿵! 쿵! 쿵! 쿵!’ 갑자기 어디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떼를 지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을 해서 미안하지만, 마치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흥분한 팬들이 두 팔을 벌리고 전력 질주로 무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예~! 베이비!”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무대와 가까운 앞자리에 앉는 것은 선두 그룹의 특권이었다. 하루 이상 줄을 선 노력의 대가였다. 쏟아져 들어오는 관람객의 수를 도저히 셀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1만 석 가까운 D홀에 사람들이 꽉 찼다. 사방에서 전해지는 팬들의 에너지가 차가운 콘퍼런스장을 뜨겁게 달궜다. 이것이 바로 블리즈컨, 블리자드의 힘이다.

올해는 약 4만 명의 관람객이 블리즈컨 현장을 방문했다. 많은 사람이 찾는 이벤트인 만큼 관람객을 배려한 흔적이 있다 . 예컨대 행사는 금~토일에 걸쳐서 열린다. 일요일 하루,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꼭 한번 가봐야 하는 곳이 있다. 장소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축제나 이벤트일 수도 있겠다. 마치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1955년 처음으로 생긴 디즈니랜드는 미국 LA 애너하임에 있다. 그리고 거기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서 전 세계 게이머들을 흥분시키는 게임 쇼, 블리즈컨이 개최된다.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한다. 단일 브랜드의 게임 쇼인 만큼 개발자와 팬들이 한자리에 모여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 새로운 소식을 나누고,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는다. 지난 1년간 진행된 블리자드 e스포츠의 최종전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2005년 첫 번째 블리즈컨이 개최된 후 올해까지 총 12회. 그사이 블리즈컨은 게임 세계의 아이콘이 됐다. 인기가 실로 대단하다. 매년 티켓 판매를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매진을 기록한다. 올해의 경우 약 4만 명의 팬들이 방문했다. 물론 현장 방문이 어려운 팬들을 위해 가상 입장권도 준비한다. 디지털 입장권을 사면 안방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블리즈컨의 모든 행사를 관람할 수 있다.

가상 입장권을 구매한 팬은 180개 이상의 국가에서 1000만 명에 달한다. 상상이 되지 않는 수치다. 규모와 구성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로 대단한 프로젝트다. 이틀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생방송 쇼인 셈이다. 오프닝 세리머니는 첫 단추였다. 매년 블리즈컨의 시작이 그러했듯 올해에도 마이크 모하임 대표가 블리자드의 과거와 미래를 설명했다. 그러고는 자신과 함께한 팀과 커뮤니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신임 대표 J. 알렌 브렉을 소개했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플레이들 덕분에 블리자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J. 알렌 브렉은 팬들의 열정이 곧 블리자드가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개발자 중심의 문화는 블리자드의 핵심 가치다. 이런 문화를 지켰기에 블리자드가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신임 대표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개발자 출신이기에 앞으로도 이런 문화를 지켜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실제로 그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맥락의 답변을 들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활용한 게임이 블리자드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가까운 미래에 필요할 것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블리자드는 ‘블리자드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회사라며, ‘최초’ 같은 수식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개발자 출신다운 명료한 답변이었다.

다시 행사장. 신임 대표의 연설에 이어서 비밀에 가려진 게임 정보들이 하나씩 팬들에게 공개됐다. 장내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마치 크리스마스 날 아침, 거실에 쌓인 선물 상자가 하나씩 열리는 기분이었다. 스타크래프트2는 새로운 협동전 사령관 제라툴을 선보였고,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새로운 퀘스트와 신규 영웅 오르피아를 공개했다. 팀플레이 기반의 튜팅 게임인 오버워치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단편영화 <재회>를 공개했다.

“와~!” 카우보이 맥크리가 등장하자 1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머리털이 쭈뼛거리며 소름이 돋았다. 안 그래도 멋진 장면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공감한다는 사실이 놀라운 경험이었다. 오버워치에는 여러 캐릭터가 존재하고 각 캐릭터에는 고유의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블리자드는 이런 내용을 단편영화로 만들어 플레이어에게 꾸준히 제공한다. 장기적 스토리텔링이랄까.

숨겨진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은 하나의 콘텐츠이자 다음 단계를 예고하는 퍼즐이다. 플레이어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게다가 오버워치뿐 아니라 블리자드가 만드는 모든 게임 영상의 완성도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방불케 한다. <재회>의 경우 비주얼과 스토리텔링, 어떤 면에서도 흠잡기 어렵다. 상영 시간이 길다면 영화관에서 돈 내고 볼 만한 수준이다.

단편영화가 끝나자 블리자드는 신규 영웅 애쉬를 소개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팬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 이 자리에서 애쉬는 단순한 캐릭터로 느껴지지 않았다. 팬들 모두가 새로운 가족이자 친구를 맞이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반겼으니까. 게임이 우리 삶의 일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게임 속에 살고 있는 듯했다. 이건 개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워크래프트 시니어 프로듀서 피트 스틸웰은 신규 콘텐츠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이 게임 때문에 내가 게임 개발자가 됐고, 블리자드에 입사했으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며 “워크래프트를 향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고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설명했다. 그러고는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를 발표하며 워크래프트 3 시리즈의 부활을 알렸다.

각 타이틀마다 치열한 e스포츠 결승전이 펼쳐졌다. 언제나 우승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경기장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저력이 드러났다 . 게임의 이해도가 그만큼 높고 경쟁 의식도 강하기 때문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디아블로였다. 모두가 디아블로의 후속작을 기대하고 있었다. 관심은 지나칠 정도로 컸다. 이를 우려했는지 블리자드는 ‘2018 블리즈컨에서 PC판 후속작 공개는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전달했다.

하지만 블리즈컨은 팬들에게 깜짝 발표를 선사하는 장소다. 그러니 많은 팬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온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디아블로 3의 PC판 후속 발표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이었다.

대신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한 신작 ‘디아블로 이모탈’이 공개됐다. 이모탈은 디아블로 2와 3 사이에서 설명되지 않은 20년의 세월을 배경으로 한다. 앨런 애드햄 총괄 프로듀서에 따르면 기존 디아블로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모바일 플랫폼 특유의 최적화를 이룬 작품이라고 한다.

이모탈은 여전히 게임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 중이지만, 확실한 것은 최신 모바일 MMORPG에서 보여주는 자동 전투 기능은 제공하지 않는다. 이 역시 블리자드다운 선택이다.

행사장 밖에서는 코스튬플레이가 한창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게임 속 캐릭터처럼 분장하고 포즈를 취했다. 칼과 방패로 무장한 전사와 엘프, 로봇 외에도 기상천외한 캐릭터가 즐비했다. 흔히 ‘덕’이라고 표현한다.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인 오타쿠를 줄여서 쓰는 은어다.

상황에 따라 부정적인 표현으로도 쓰이지만 이곳에서 ‘덕’은 넘보지 못할 계급이다. 마니아라는 상징이자 열정의 지표 같다. 좀 더 사실적인 코스튬을 만들기 위해 수개월을 투자하고, 커뮤니티로 정보를 나누며, 그것을 현실로 실현한다고 했다. 가까이서 보니 이건 남들이 쉽게 실현하지 못하는 대단한 능력이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블리즈컨이 막바지로 가고 있다는 건 e스포츠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2, 하스스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걸쳐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결승에서 만났다.

2018 오버워치 월드컵 결승전 현장을 찾았다. 한국 팀과 중국 팀의 대결이었다. 커다란 원형 돔 경기장을 꽉 채운 수천 명이 내뿜는 열기와 환호로 들끓었다. 그 에너지를 직접 경험하면서 왜 e스포츠가 이렇게 인기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응원하는 팀이 있으니 훨씬 재미있었다.

한국 팀의 월등한 실력도 흥미 요소였다. 결국 4 대 0으로 한국 팀이 2018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그래도 내 맘속에서는 미국 팀이 우승한 거야.” 한 미국인 팬이 이런 메시지가 담긴 종이를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는 태극기가 격렬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블리즈컨은 매년 관성적으로 진행하는 게임 쇼가 아니었다. 블리자드란 게임 회사의 미래였다. 결국 핵심 주제는 게임을 통한 소통이었고 그 원동력은 팬들의 열정이었다. 흔히 PC나 콘솔 게임은 차갑고 딱딱한 디지털 세상을 대변한다.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디지털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건 만드는 사람이나 즐기는 사람 모두에 해당됐다. 그곳은 건강했고 생동감이 넘쳤다. 블리즈컨은 우리의 상상보다 큰, 또 다른 세계였다.


2018 블리즈컨에서 공개한 정보

 

디아블로(Diablo)

디아블로 이모탈은 모바일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새로운 도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출시 전까지 많은 기능이 추가될 것으로 보이지만 데모 버전에는 자동 격투 같은 기능은 없다. 다시 말해 순수하게 게임의 과정을 즐기는 콘셉트를 유지했다. 더불어 닌텐도 스위치 전용 타이틀인 ‘디아블로 3: 이터널 컬렉션’도 블리즈컨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터널 컬렉션은 기존 3의 확장 팩 ‘영혼을 거두는 자’와 ‘강렬술사의 귀환’을 모두 포함한다. 닌텐도 스위치의 전용 컨트롤러를 사용해서 정교한 컨트롤이 가능하다.

스타크래프트 2 (StarCraft II)

신규 협동전 사령관으로 명망 높은 암흑 정무관 제라툴이 공개됐다. 강력한 젤나가의 유물을 통해 제라툴에게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고 능력치를 높일 수 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Heroes of the Storm)

시공의 폭풍 고유 영웅으로 오르피아가 추가된다. 까마귀 궁정의 후예이자 까마귀 군주의 딸로, 강력한 원거리 암살자 영웅이다. 블리즈컨 가상 입장권을 구매한 플레이어들은 11월 말부터 오르피아를 무료로 체험해볼 수 있다.

하스스톤 (Hearthstone)

12월 5일 출시하는 하스스톤의 신규 확장 팩 ‘라스타칸의 대난투’를 통해 아제로스 최강의 트롤 용사를 상대로 대결을 즐길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전설 로아(Loa)의 하수인 모습으로 전장에 나타난 야생신 카드를 비롯해 새로운 135장의 카드로 치열한 경쟁에 나선다.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Warcraft III Reforged)

2002년 출시한 ‘워크래프트 3’가 리포지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리포지드는 완전히 새로워진 영상과 캐릭터, 구조물, 유저 인터페이스를 갖춘다. 추가된 62개의 싱글 캠페인 임무도 특징이다. 개선된 월드 에디터와 배틀넷에서 최신 소셜 및 매치 메이킹 등을 구현한다. 2019년 중 출시 예정.

오버워치 (Overwatch)

29번째 신규 영웅 애쉬가 등장했다. 악명 높은 무법자 집단인 데드락 갱단의 두목을 맡은 악당 영웅이다. 함께 공개된 단편 애니메이션 <재회>를 통해 카우보이 맥크리와 과거에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 무기인 레버 액션 라이플 바이퍼는 반자동 모드와 정조준 두 가지를 지원한다. 이 외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적을 폭발(화염)시키거나, 충격 샷건의 막강한 위력을 활용해 적을 밀쳐내고 자신을 공중에 띄울 수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12월 10일 주에 공개되는 격전의 아제로스의 첫 번째 대규모 신규 콘텐츠 업데이트인 ‘복수의 파도’를 기점으로 호드와 얼라이언스 간의 전쟁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는다는 소식이다. 복수의 파도는 새로운 퀘스트와 ‘다자알로 전투’, ‘격전지: 어둠해안’ 등 다양한 콘텐츠가 포함된다. 시네마틱 영상 <잃어버린 명예>가 공개됐고, 2018 블리즈컨 참석자들에 한해서 WoW 클래식의 초기 빌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식 버전은 2019년 여름에 출시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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