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살자? ‘암흑도시’ 작가 정뱅

대충살자. 웹툰 '암흑도시' 작가 정뱅처럼. 전략적으로.

웹툰 <암흑도시> 작가 정뱅

# 전략

“그런데 대충 산다는 게 뭐죠?”

만화가 정뱅은 급히 바른 로션이 아직 표피에 머물러 있는 듯한 멀건 얼굴로 말했다. 그는 조금 전에 일어나 씻은 참이라고 말했다.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장소는 그의 작업실. 오후의 햇빛이 널브러진 빈 생수병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작업실은 넓었다. 상상하던 풍경과 달랐다. 상상이라고 해봤자 드라마에서 흔히 만화가의 집을 연출한, 아담한 공간에 만화가의 그림 작업을 돕는 어시스턴트 하나 혹은 둘이 피곤에 지쳐 책상에 엎드려 자고 그 옆에는 원고 뭉치가 쌓여 있는 드라마틱한 모습 정도였지만 말이다. 현실은 달랐다.

넓은 작업실에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 머뭇거려졌다. 생경한 작업실 풍경을 둘러보았다. 입구에 놓인 여러 켤레의 실내화 중 하나를 골라 신고 들어선 공간에는 벽면마다 책상이 주르르 붙어 있었다. 대략 예닐곱 개. 따로 방도 두 칸 있었다. 정뱅 작가는 공간 한편의 널찍한 가죽 시트를 단숨에 들어 올리며 말했다. 침대인 줄 알았던 그것이 순식간에 소파가 되었다. “아, 공동 작업실이에요. 제 작업실은 저기예요.” 그가 작은 방 하나를 가리켰다.

정뱅은 웹툰 작가다. 네이버 금요 웹툰 <암흑도시>를 그린다. 네이버 웹툰 작가라고 하면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 사원 같은 이미지가 있다. 네이버 웹툰은 웹툰 플랫폼 중에서 가장 많은 독자 수를 거느리고 있다. 달리는 댓글 수도 다르다. 랭킹 1위에 오른 웹툰을 비교해보면 타 플랫폼의 1위 웹툰에 달린 댓글 수는 600여 개, 네이버 웹툰 내 1위 작품에 달린 댓글 수는 2만여 개를 넘는다. 베스트 댓글에 투표한 사람 수만 해도 네이버는 7만5000여 명이다. 어쩌면 네이버 웹툰 작가란 이 사회의 대기업 신입 사원이 아니라 임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네이버 웹툰 작가가 작은 방 하나를 자신의 작업실이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공동 작업실이라는 개념을 수년 전 홍대 앞에서 조각하던 어느 미술가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 미술이나 문학 같은 분야에서 혼자 작업실을 빌리기에는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공동 작업실이란 특별한 일이 아닐 거다. 정뱅 작가 역시 그렇게 여기는 듯했다. 이 공간은 9명의 각기 다른 업계 사람들이 작업실로 쓰고 있고, 월세는 각 구역에 따라 정해져 있으며, 자신은 방을 써서 조금 비싼 편이라고 말하며 정뱅 작가가 웃었다. 그의 월세는 20만원이다.

정뱅 작가의 작업 방에는 컴퓨터와 스탠드, 사리곰탕면과 와인 잔, 올라설 때는 꼭 슬리퍼를 벗는 것으로 보아 잠자리로 보이는 얇은 매트리스가 있다. 웹툰에 함께 이름 적히는 어시스턴트 자리는 어디인지 묻자 어시스턴트들은 외부에서 각자 일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요청 사항과 일감은 데이터로 주고받는 형태다. 지금은 효율성 높은 디지털 시대이자 효율을 좇을 수밖에 없는 집값 대란 시대였다.

“그래서 대충 산다는 게 뭐죠?”

정뱅 작가가 다시 물었다. ‘대충 살자’는 말 그대로 대충 살자는 기조다. 그런데 어디 대충 살자고 해서 정말 대충 살자는 의미일까. 대충 사는 듯한 사람들을 만나 대충 사는 이야기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대충 사는 듯한 사람들이란 누구란 말인가. 단순하게, 대충, 정했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의하는 ‘열심히’의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 정해진 노선 대신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사람.

“저 대충 안 살아요. 그림도 얼마나 열심히 그리는데요.” 반가운 소리였다. “그런데 만화 그리는 것 외에는 대충 사는 것도 같네요. 왜냐면 집에 안 들어간 지 지금.” 그가 손가락을 접었다. “여섯 달째거든요.”

정뱅 작가의 원고 마감일은 목요일이다. 웹툰은 금요일에 연재된다. 목요일까지는 콘티 그리기, 완성, 다음 화 준비 등의 이유로 작업실 밖에 나가는 일이 드물다. 집에 안 들어갔다기보다 못 들어가는 듯했다. 정뱅 작가는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실내에만 머무는 몸과 정신 건강을 지킬 겸. 그런데 사실상 헬스장의 샤워실만 쓰고 온다. “오늘도 거기서 씻고 왔어요.” 그러고 보니 공동 작업실 내에는 욕실이 없다.

그런데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짜내야 하는 만화가가 작업실에만 있어도 괜찮은 걸까. “그러니까요. 여기저기 둘러보고 바람도 쐬고 그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해요. 마감이 금방 돌아와요. 세이브 원고가 많으면 모르겠는데 금세 다음 화가 돌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큰일이에요. 재밌는 이야기가 생각이 안 나.” 그는 웃다가 정말 큰일이라는 듯 턱을 괴었다.

정뱅 작가의 웹툰 <암흑도시>는 대충 그린 듯한 그림체에 내용은 시쳇말로 ‘병맛’이다. 이야기가 개연성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 흘러가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예리하게 사회를 풍자한다. <암흑도시>는 금요 웹툰 중에서 순위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웹툰 댓글 창은 독자들의 단결력으로 끈끈하다. 스스로 해석해낸 풍자 요소를 적으며 작가를 찬양하는 내용이 줄을 잇는다. 하나의 놀이 문화가 생긴 셈이다.

“부모님이 경상도 토박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무조건 보수당 편을 드셨어요. 무조건. 대체 왜 그럴까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그래서 반대편에서 세상을 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일부러 풍자한 부분을 잘 알아채시는 경우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부풀려 해석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 정도는 아닌데.” 그는 다시 웃었다. 정뱅 작가는 목요일까지 정신없이 마감을 하고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가 되면 연재되는 웹툰과 함께 슬슬 올라오는 댓글을 하나하나 읽는 게 요즘 최고의 낙이라고 했다. 이때 꼭 맥주를 마셔줘야 한다며, 맥주는 와인 잔에 마셔야 제맛이라고도 추천했다. 방에 있던 와인 잔 하나는 그 용도였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채색 공부도 좀 하고 싶고. 색을 잘 못 써서 흑백으로 그리는 것도 있어요. 만화를 제대로 배워본 게 몇 년 안 되거든요. 군대 다녀와서 만화가가 되어야겠다 결심하고 만화학과로 재입학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만뒀어요. 채색 배우기 전이었지 뭐.” 웃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웃음이 났다. 정뱅 작가는 <암흑도시> 속 캐릭터로 보자면 ‘스왈로부스키’ 같았다(만화 속 이름은 ‘스와가라 유스케’인데 다른 캐릭터는 물론 독자들도 그냥 스왈로부스키라고 한다). 허둥지둥 느슨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은연중에 만화가란 편안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시간 유용이 자유로운 프리랜서이며, 그림의 ‘금손’이고, 그 손으로 자유자재 만화를 그려나가니까. 적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 말도 맞아요. 물론 제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아니고. 만화를 그릴 때면 다른 일을 할 때보다 자유롭고 즐겁더라고요. 다른 일을 일주일 내내 막 하잖아요? 그럼 하기 싫어요. 그런데 이 일만큼은 해도 또 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왜 그럴까대충 산다는 건 그런 것 같아요. 나에게 진짜 중요하고 행복을 주는 게 무엇인지 찾는 것. 그 외의 것들은 그냥 신경 쓰지 않는 것. 대충 살지만 저는 만화 그릴 때는 절대 대충 하지 않아요.”

정뱅 작가는 작업실 벽에 붙여놓은 종이를 떼어 보여줬다. 일본 만화나 개그,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분석한 자신만의 웃음 공식이다. 영업 기밀이니 조금만 공개하면 이렇다. 분위기/상황 설명바람잡이 등장중심 개그중략‘스몰’ 개그중략엔딩. 무의식의 흐름대로 그린 것 같던 블랙코미디 <암흑도시>가 전략적인 웃음 제조기였다는 사실에 약간의 놀라움과 배신감이 밀려왔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과 함께 쓸려 사라졌다. “대충 해서는 안 되더라고요.”

대충해서는 안 된다. 잘하고 싶은 일은 대충해서는 안 된다. 정뱅 작가가 짚은 기본에 ‘대충 살자’라는 자조에 담긴 시대의 많은 그림자 중 하나가 선명해졌다. 시대는 이들을 무민(無MEAN) 세대라고 한다. 치열한 삶에 지쳐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 무의미한 것도 괘념치 않는 세대라고 말이다. 그러나 시대가 잘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잘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설 힘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만화가 좋아서 만화가가 된 정뱅 작가가 전하는 ‘만화가가 된 길’을 여기 적는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이 무엇인지 짚어보는, 잘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는 대충이란 없는, 누가 이름 붙였는지 모를 이 시대의 무민에게 전한다. 이 방법이 당연히 정답은 아니다. 유의미한 것이란 모두에게 다르므로.


만화가가 된 길

계속 그린다.

다한증의 영향이 컸지만 정뱅 작가는 손에서 흐른 땀으로 종이가 젖을 때까지 만화를 그렸다고 했다. 물론 즐거워서 한 일이며 다한증은 수술해서 완치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라 종이가 젖을 일도 없지만.

장르를 공략한다.

네이버 웹툰의 경우에는 웹툰 장르별로 연재 작품 수가 정해져 있다. 정뱅 작가는 자신이 연재하려면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장르를 골라야 한다고 판단했고, 분석 결과 코미디 장르를 택했다. 반대로 가장 인기 많고 그만큼 치열한 장르는 로맨스와 판타지다.

객관적 평가 자리를 마련한다.

정뱅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온라인에 그림을 올렸다. 신랄하고 뼈아픈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특히 ‘DC인사이드 만화 갤러리’를 추천했다. 여기에서 ‘재밌다’, ‘다음 화가 기다려진다’고 평가받은 작품이 네이버 웹툰 연재에 성공한 <암흑도시> 1편이다.

대충살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저자 하완

대충살자? ‘퇴근길 책 한 잔’ 김종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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