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지의 눈빛

무심하게 쳐다보는 김용지의 눈빛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재킷, 티셔츠, 데님 바지 모두 김서룡.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점술가 호타루를 연기했어요. 신인이 도전하기에 쉬운 역은 아니었을 거예요.

오히려 대사가 없는 역이니 모델 일을 할 때처럼 하면 될 줄 알았어요. 오디션을 통과한 후에 감독님, 작가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호타루랑 딱 맞는 이미지라 말씀하셔서 안심을 했죠. 근데 막상 대본을 받고 보니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좀 더 진지하게 연기 연습에 몰두한 것 같아요.

따로 연기 지도를 받은 건가요?

그럴까 했는데 이응복 감독님이 연기 학원을 다니는 건 오히려 호타루 역에 방해될 것 같다고 해서 안 다녔어요. 대신 호타루는 어떤 인물일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더 많이 해봤어요. 타로 점괘를 봐주는 점술가, 말을 못 하는 농아, 동매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동매의 아픔을 보듬는 누이처럼 캐릭터에 담긴 다양한 이미지를 고민했죠.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참고한 영화나 캐릭터가 있나요?

영화 <아멜리에>와 <셰이프 오브 워터>요. 그중에서도 <셰이프 오브 워터>의 샐리 호킨스는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오직 미묘한 표정과 손동작, 떨림, 호흡 등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내공이 깊은 배우의 모든 것을 따라 할 순 없었지만 사랑의 감정을 다른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됐던 것 같아요.

재킷, 귀걸이 모두 셀린느.

구동매를 연기한 유연석 씨와 주로 연기를 했는데요, 연석 씨는 연기 경력 15년 차의 베테랑이니 많이 도와줬을 것 같아요.

정말 친절히 도와주셨죠. 전 아무래도 광고, 뮤직비디오 촬영에 익숙해서 정면 카메라를 응시하는 습관 때문에 초반에 많이 헤맸어요. 그때마다 유연석 선배가 어디 카메라부터 봐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줬고, 제 리액션만 따는 촬영인데도 옆에 서서 같이 연기해주곤 했어요. 호타루가 뛰어가서 동매에게 안기는 장면에서는 “뛰라고 한 거리보다 더 멀리서 뛰어와야 호흡이 가쁘게 나와서 리얼할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거의 제 스승님이죠.

선생님 같던 유연석 씨가 정말 멋지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고요.

연석 선배가 뮤지컬 <헤드윅>을 할 때인데 제가 <헤드윅>의 존 캐머런 미첼을 좋아한다고 하니 저를 공연에 초대해줬어요. 근데 선배가 그 역할을 너무 잘 소화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여장한 연석 선배가 너무 예뻐서 ‘웬만한 여자 뺨 치는 미모’라는 말을 실감하겠더라고요. 한동안 ‘연드윅’에 빠져 있다가 촬영장에서 냉철한 구동매를 연기하는 선배를 보니 같은 사람 맞나 싶더라고요.

호타루 덕분에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을 것 같은데, 최근에 인기를 실감한 적 있어요?

제 평소 모습은 극 중의 호타루와 굉장히 싱크로율이 낮아요. 결론은 화장 안 한 저를 아무도 못 알아본다는 얘기죠. 흰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자유롭게 다니니 다들 못 알아보세요. 심지어 멀리도 아니고 저희 동네만 다니거든요.

트렌치코트 르메르. 귀걸이 본인 소장품.

2015년 처음 모델로 데뷔했잖아요. 혹시 신인 때 하는 흔한 실수 같은 에피소드 없어요?

이구노 사진작가님이 처음 일을 제의해서 데뷔를 하게 됐죠. 각종 패션 매거진을 비롯해 아메리칸 어패럴 등 광고 촬영을 했어요. 그때 제가 어느 촬영장을 가도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고 포즈를 취해서 당돌한 신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원래 무대 체질인가 보군요.

다들 그렇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은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사진과 친구들이 많아서 개인 작업이나 졸업 작품 발표할 때 모델이 돼주곤 했어요. 즉 만들어진 체질인 거죠.

2~3년 만에 패션 화보는 물론 광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어요. 주목받은 이유가 예쁜 얼굴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매력 때문일까요?

둘 다죠.(웃음) 사실 저는 예쁘지 않고 모호하게 생겼잖아요. 몽환적이고 중성적인 데다 혼혈인 같기도 하고요. 그런 모습에서 나오는 이미지 덕분에 사람들이 저를 궁금히 여기고 또 기억하시는 것 같아요. 모델 일 하면서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큰 장점이었죠.

터틀넥 김서룡. 목걸이 레리퀴아 by 바티스트.

혼혈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저 학창 시절에는 ‘잡종’이란 소리까지 들었어요. 어릴 때라 충격이 컸죠. 그 전까지는 제가 토종 한국인처럼 생겼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조금 다르게 생겼구나’ 하고 받아들인 뒤에는 별생각이 없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니까요. 각자 다름을 인정해야죠.

예전부터 유기견 보호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데뷔 전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 보호 단체 카페를 자주 웹 서핑 했어요. 원룸에 살 때는 키우지 못하다가 이사한 뒤에는 유기견을 임시로 맡았다가 좋은 주인에게 입양을 보내기도 했고요. 그런데 보내고 나면 너무 허전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유기견 두 마리를 입양해 키우고 있어요. 첫째는 루고, 둘째는 라이예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하시지만, 사실 제가 주는 것보다 두 아이들에게 받는 것이 훨씬 더 많아서 같이 살고 있어요.

직접 말을 나눠보니 자기 소신이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어떤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해요?

제가 동물 얘기만 나오면 열정적으로 변하긴 해요. 성격은 남들보다 무던해요. 그리고 상처 잘 안 받고 상처 안 주고요. 얘기한 대로 소신이 강한 편이다 보니 제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꼭 얘기하는 편이고요.

모델로 잘 활동하다가 배우들이 많은 대형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배우로 데뷔했어요.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연기를 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과정에 가까워요. 모델 하면서 처음에는 사진 작업을 했고 짧은 영상 작업을 한 다음, 감정 연기가 가능한 뮤직비디오 주인공에 캐스팅됐어요. 차차 단계를 밟다 보니 정극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앞서 얘기했듯 김용지는 특유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이 부분이 배우로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지금처럼 대중에게 각인되기는 쉽겠지만 그 이미지를 바꾸긴 힘들겠죠. 그리고 어느 장르나 다양하게 소화하기에는 이미지가 강렬해서 한동안은 비슷한 역할만 할지도 몰라요. 앞으로 부단히 노력해야죠.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기 몫을 하는 타입이라서 큰 슬럼프 없이 좋은 배우로 성장할 것 같아요.

엄마랑 얘기하는 것 같아. 집에 스파이가 있었는지 엄마한테 전화 좀 해봐야겠어요.(웃음)

티셔츠 스탠턴 스트릿 스포츠 by 하이츠 스토어. 반바지 나이키. 귀걸이, 이니셜 목걸이 모두 셀린느. 펜던트 목걸이 알리기에리.

다음에 꼭 도전해보고 싶은 역이 있어요?

형사물, 정통 추리극을 해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셜록 홈스를 좋아해서 관련된 추리 소설, 영화, 드라마는 빠짐없이 봤거든요.

뮤직비디오 제작이 꿈이라 들었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제 수많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제가 직접 쓴 시나리오로 함께하는 친구들과 뮤직비디오 한 편 만드는 거예요. 제 버킷 리스트에는 세계 일주도 있고, 서울에 강아지 공원 만들기도 있어요. 최근에는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연기파 배우가 되자’도 생겼죠.

지금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요?

미니멀하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옷, 짐 등을 줄이고 있어요. 우리 사회는, 특히 패션을 과소비하게 만들어요. 쉽게 사고 쉽게 버리죠. 사람들이 옷을 많이 사게 하려면 가격을 내려야 하고, 가격을 내리려면 임금이 낮은 국가에서 옷을 만들어야 해요.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공장 시설 관리를 안 하니 공장이 쉽게 무너지기도 해요. 한쪽은 옷을 만들고 반대쪽은 옷을 버리니 환경 문제도 심각해지죠.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 옷을 사지 않고 짐을 줄이는 것, 필요한 것은 중고품을 사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실천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심플하게 살자 생각하고 사는 것과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이렇게 담대한 꿈을 들을 줄이야. “작품이 끝났으니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였거든요. 물론 뜻밖에 좋은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아, 정말요? 루, 라이와 물 맑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두 아이 모두 물을 좋아하는데 올여름에는 제대로 못 데려갔거든요. 루는 아예 물개 같아요. 저도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두 아이와 같이 운동도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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