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햇살 아래서

강렬한 인상의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아름다운 땅 크로아티아를 누볐다.

피곤한 일정이었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공항에 주차된 자동차 트렁크에서 라이딩 기어가 가득 찬 새 캐리어로 바꿔 들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크로아티아에서 열리는 미국 정통 크루저 모터사이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의 신모델 체험 이벤트 때문이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길 바랐다. 싱가포르와 독일을 거쳐 크로아티아로 돌아가는 코스는 편도 28시간짜리 남방 항로였으니까.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라이더와 교감하고 밀착감이 큰 두 바퀴를 선호한다. 머리로 생각한 대로 민첩하게 멈추고 정교하게 회전하는 녀석들이 좋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할리데이비슨은 이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넓은 대륙을 장시간 달리는 크루저의 대명사라는 설명처럼 라이더와 수시로 교감하는 쪽은 아니었다. 유유자적 함께 달리는 넉넉한 녀석으로만 느껴졌다. 그래도 스포츠스터는 기대할 만했다. 할리데이비슨 모델 중에서는 가장 군더더기가 없는 모델이다. ‘날것’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게다가 일정의 마지막 날 할리데이비슨의 스포츠 전통을 엿볼 수 있는 플랫 트랙 체험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행사가 열리는 크로아티아에 대한 기대가 컸다. 유럽에서 살아보기도 했지만 발칸반도 지역을 여행할 기회는 없었다. 몇 해 전 <꽃보다 누나>에서 소개된 햇살이 눈부신 나라가 바로 크로아티아다. 누나들이 성채의 망루에서 바라보던 아름다운 바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이번 일정에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스플리트(Split) 같은 아드리아 바다의 절경을 지나는 루트가 포함됐다.

28시간의 이동 끝에 비좁은 비행기를 빠져나오는 순간, 눈부신 광경에 놀랐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는 말이다. 미세 먼지가 없는 투명한 공기로 전해지는 햇빛이 강렬했다. 발칸반도는 다른 지역보다 태양에 수만 km는 더 가깝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렇게 밝은 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스플리트 공항에서 이어진 해안 도로를 따라 스플리트 시내에 잠시 들렀다. 화강암으로 지은 로마 시대의 건축물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함께 아름다운 바다가 인상적인 휴양지다. 햇살이 뜨거웠던 낮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부는 가운데 아드리아해의 저녁노을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스트리트 글라이드와 로드 글라이드는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할리데이비슨의 스포츠 GT다.

이튿날 본격적인 라이딩 일정이 시작됐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덩치 큰 할리데이비슨 투어링 모델을 시승하기에 부담이 됐다. 조금은 겁도 먹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허약한 브레이크와 낡은 서스펜션으로 400kg에 육박하는 육중한 투어러를 타고 코너 밖으로 흘러갔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대형 투어러를 굳이 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다시 맞닥뜨렸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제품 소개의 시작은 첨단 기술이 접목된 정통 핫 로드 배거(Hot Road Bagger)부터. 배거는 크루저 뒤편 좌우에 가방을 달았다는 뜻에서 출발한 모터사이클 장르다. 커다란 등받이와 톱 케이스를 갖춘 본격적 투어러에 비하여 단출하다. 모터사이클의 본질에 가깝지만 장거리 여행도 잘 치르는 균형 잡힌 모터사이클이다. 지난 몇 년간의 카페 레이서 신드롬에 이어 최근 아메리칸 크루저 시장에서 강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둘째 날 투어 코스. 산악 지형의 와인딩과 해안 도로를 잇는 화끈하고 강렬한 코스를 아이언 1200으로 달렸다.

‘핫 로드’란 키워드가 핵심이다. 장거리 주행에 초점을 둔 크루저라고 해서 느긋한 것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신호등에 녹색 불이 들어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화끈한 가속력으로 박력을 느끼게 해준다는 뜻이다.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밀워키 8 엔진이 핵심이다. 꽤 탄탄한 서스펜션도 같은 맥락이다. 첨단 기술도 변화의 증거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모델에는 6.5인치 컬러 디스플레이와 강력한 출력의 사운드 시스템이 달린다.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스트리밍도 가능하다.

배거와 달리 로드 글라이드는 바람을 막는 훨씬 큰 프런트 페어링이 특징이다. 뒷좌석 시트에 등받이를 갖춘 탑 박스만으로도 영락없는 풀 스케일 대형 투어러의 모습이다. 로드 글라이드와 스트리트 글라이드의 가장 큰 차이는 프런트 페어링의 모습이다. 로드 글라이드는 차체 프레임에 고정된 뾰족한 샤크 노즈 페어링이고, 스트리트 글라이드는 핸들 바에 고정된 배트 윙 페어링을 달았다. 말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여도 두 모델의 주행 감각 차이는 크다.

첫날 투어는 스플리트 북부의 황야 지대를 가로지른 뒤 해안을 따라 달리는 크루징 코스였다. 전체 거리는 약 280km. 긴 거리는 아니지만 도중에 포토 세션과 식사, 그리고 정취를 즐기는 티타임을 포함한 장거리 여행의 축소판이었다.

로드 글라이드를 타고 자세를 잡았다. 가장 무겁고 둔한 녀석을 경험하면 다음부터는 좀 더 쉽겠다는 판단이었다.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시동을 걸었다. 금년에 새롭게 선보인 밀워키 8 엔진을 처음 경험해본다. 사운드는 역시 할리답다. ‘두둥두둥’거린다. 하지만 불쾌한 진동은 거의 없다. 엔진 자체의 진동도 상당히 작아졌다. 이전에는 신호등 앞에 정차할 때마다 혼자 말 타는 기분이었는데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출발하고 불과 몇 km 달리지 않아서 확신하게 됐다. 할리 투어러가 이렇게 타기 쉬웠다니!

브레이크 페달의 제동력도 확실하고 충분했다. 코너를 만나면 브레이크 페달로 슬쩍 속도를 줄이고 코너 안쪽을 쳐다보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 코너링이 쉽고 자연스럽다. 기본기가 몰라보게 좋아졌고 타기 쉽다는 점에서는 오후에 탔던 스트리트 글라이드도 같다. 반면 프런트 페러링 방식의 차이로 성격도 크게 다르다. 일단 시동을 걸었을 때 엔진의 진동이 스트리트 글라이드에서 더 느껴진다. 눈만 돌려도 방향이 바뀔 만큼 앞바퀴가 가벼운 로드 글라이드에 비해 스트리트 글라이드는 앞바퀴의 감각이 좀 더 명료하다. 대신 방향 전환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두 모델 모두 페어링 위로 솟은 짧은 스크린의 효과가 좋다. 바람이 정확하게 헬멧의 윗부분을 때린다. 얼굴과 그 아래 상체 부근에는 전혀 소용돌이가 없다. 로드 글라이드는 하체 쪽으로 오는 바람까지 거의 완벽하게 막아 장거리 주행의 피로를 덜어주고, 스트리트 글라이드는 바람을 적당히 몸으로 보내서 달리는 감각을 더해준다.

크로아티아의 해변 도로를 달리면서 미국 서부를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오전에 달렸던 황량한 산악 지대는 스케일로 압도했다. 반면 해변 도로는 캘리포니아 풍경과 비슷했다. 멋진 바다, 눈부신 햇살로 가득했다. 차이가 있다면 가끔 만나는 소박하면서 아기자기한 마을, 그곳의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다. 첫날 투어는 할리데이비슨의 고향인 미국에서도 서부 지역을 연상시키는 하루였다. 커다란 두 바퀴 크루저를 타고 유유자적 달리며 경치를 즐기기에 좋았다.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라이딩을 즐기며 분위기에 흠뻑 젖었다.

다음 날 투어는 어제의 점잖은 분위기와 달랐다. 스포츠스터를 타고 약간은 비뚤어질 수 있었다. 최근 카페 레이서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 카페 레이서의 원조 중 하나가 스포츠스터다. 할리데이비슨 제품 중 날것의 멋이 흐른다. 결코 대충 탈 수 있는 모터사이클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라이딩할 때 더 큰 희열로 보답한다.

이날 함께 달릴 새로운 두 1200 시리즈는 순수와 박력의 끝을 보여주는 양극단에 있다. 아이언 1200은 이미 존재했던 아이언 883의 에볼루션에 고성능 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라이딩의 본질에 집중하는 할리 스타일의 교과서다. 이에 비해 포티에잇 스페셜은 드래그 머신처럼 낮게 깔린 실루엣과 두툼한 앞바퀴 둘레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투어 코스는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달려 산악 지대의 와인딩을 실컷 즐길 수 있다. 옛 유고 연방 시절 같은 나라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국경선까지 달려간다. 포티에잇 스페셜과 함께 바람을 맞았다. 바람이 온몸을 타고 흐르면서 즐거움이 배가된다.

라이딩 포지션은 희한하다. 시트에 앉아서 손과 발을 모두 앞으로 뻗은 자세다. 시동을 건다. ‘우당탕탕!’ 그래, 이게 진짜 할리다. 사정없이 떨리고 소리도 우렁차다. 엔진에서 목 쉰 소리까지 들린다. 생각해보면 이게 바로 할리 감성 아니던가.

플랫 트랙 이벤트.

속도를 높인다. 저회전 영역에서는 마치 경운기가 가속하듯 엔진 회전수에 따라 차체와 내 몸이 함께 흔들린다. 이런 감각이 오랜만이라 반갑다. 요상한 라이딩 포지션으로 차체와 라이더의 접점이 부족하다. 이럴 때 핵심적 밀착점인 엉덩이와 시트의 관계가 더 중요해진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허리와 엉덩이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코너를 하나 둘 베어나갔다. 스포츠스터 특유의 얇은 차체가 마치 칼날처럼 느껴진다. 눈앞으로 뻗은 주먹 때문에 진짜로 하늘을 나는 슈퍼맨 같은 기분이다. 피가 끓어오르려고 한다. 흥분되려는 순간이다. “조금만 더!”를 외치며 코너를 도는 순간 ‘끼이익’. 낮은 차체에 맞춰 제작한 발받침이 아스팔트를 강하게 할퀸다.

아이언 1200으로 갈아탔다. “뭐 이래? 이렇게 쉬웠어?” 포티에잇 스페셜에서는 강렬하고 격렬하게 베어나가던 코너가 아이언 1200으로는 훨씬 부드럽다. 제자리로 돌아온 발받침 덕분에 차체와의 일체감이 훨씬 좋다. 하지만 기본은 어디에서도 똑같았다. 시트에 체중을 싣고 무게를 좌우로 넘기면서 적극적으로 춤추면 포티에잇보다 높은 발받침이 아스팔트를 벅벅 긁으며 경쾌하게 코너를 달린다. 놀 줄 아는 친구였다. 나도 타고, 아내도 타고, 다 큰 자녀와 함께 타고 싶은 두 바퀴다.

할리데이비슨이 준비한 플랫 트랙 이벤트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플랫 트랙 레이스는 타원형의 평평한 비포장 경기장을 한 방향으로 주행하며 랩 타임으로 순위를 가린다. 뒷바퀴가 코너 밖으로 미끄러지고 동시에 차체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핸들바를 반대로 돌리는 기술(카운터 스티어)로 화려한 모습을 구현한다. 재미있었지만 단시간에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스포츠스터를 타면서 이미 할리데이비슨의 피 속에 흐르는 뜨거운 열기를 느꼈기에 굳이 플랫 트랙 이벤트에 많은 에너지를 쏟지는 않았다.

할리데이비슨 사회에는 희한한 것이 하나 있다. 스포츠스터를 일명 ‘꼬마 할리’라고 하대하는 문화다. 성격이 다를 뿐 엄연히 할리데이비슨의 중요한 장르 가운데 하나임에도 단지 작다는 이유로 푸대접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1957년에 등장한 스포츠스터는 초기의 콘셉트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가장 순수한 할리다. 그러니 라이딩 스킬의 정석에 뿌리를 둔 아이언 1200이든, 터프한 자세로 공격적 이미지를 풍기는 포티에잇 스페셜이든 작다고 얕보면 큰코다친다. 이번에 경험한 할리데이비슨 대형 투어러들도 내 고정관념을 크게 바꿔줬다. 타는 재미가 있고, 뜨거운 흥분이 존재한다. 중년 이후 생활에 여유가 생긴 늦깎이 초보 라이더에게 어울리는 친절한 모터사이클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제품, 감각, 마케팅까지 모든 부분에서 수긍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크로아티아는 20세기 말 유고 내전으로 참혹한 전쟁터였다. 달리던 도중 ‘코소보(Kosovo)’라는 마을 이름을 보았다. 물론 이 코소보는 처참한 살육의 현장이었던 세르비아의 코소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밝은 태양 아래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아픔의 역사는 분명 여기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말이다. 여행 중 들른 식당이나 카페, 호텔 등 어디서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괜히 말 한마디 더 붙이면서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헤어지는 그들. 좋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여행 중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다음 결혼기념일에 이곳에 옵시다. 좋네, 여기.”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시작한 투어. 하지만 환상적인 여행지에서, 뜨거운 두 바퀴를 타며 맛본 희열 때문인지 모든 것이 강렬한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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