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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스는 본능을 따랐다. 에스콰이어와 만났다.

2018년 3월 30일 오전 3시 30분, 서울 용산 어딘가에서 10여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카메라에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모델, 자동차, 조명에 전문 영상 감독과 연출자까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꽤 본격적인 구성의 팀이었다. <에스콰이어>와 피치스(Peaches)가 함께 작품을 만드는 현장이었다. 촬영장 가운데선 이리저리 움직이며 카메라 앵글을 잡는 남자가 보였다. 마스크 너머로 꽤 진지한 표정을 한 그는 피치스 영상의 총괄을 맡는 김종권 감독 겸 대표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SM엔터테인먼트의 뮤직비디오(최근에는 엑소 뮤직비디오도 연출했다)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을 수도 있겠다. 피치스 영상에 언제나 등장하는 ‘Dawittgold’가 바로 그의 닉네임이다.

“촬영장에서 이미지는 즉흥적으로 잡는 걸 선호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정해진 콘티뉴이티에 충실히 따르는 게 좋은가요?” 잠깐의 휴식 시간,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콘티뉴이티가 있는 작업은 그 부분에 충실해야죠. 하지만 피치스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건 즉흥적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순간순간 예쁘고, 멋진 장면을 감각적으로 발견하는 거죠.”

피치스와 에스콰이어의 프로젝트 제작 현장의 모습. 현장에 많은 사람이 나와 있지만 모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생각하고, 대처했다. 피치스라는 매개체가 그들을 강하게 엮고 있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에스콰이어>와 피치스의 협업 촬영 현장의 분위기도 그랬다. 전달할 메시지가 확실했고 스토리라인도 미리 짜여 있었다. 하지만 모델의 포즈, 자동차 위치 등 감각이 필요한 부분은 모두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누군가의 본능이었다.

‘Pioneer the Trend’. 피치스와 <에스콰이어>가 함께 한 콘텐츠에 담길 메시지였다. 여기에는 인쇄 매체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 미디어와 새롭게 떠오르는 뉴미디어 브랜드를 관통하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에스콰이어>의 경우 1960년대 저널리즘의 추세를 개척하는 데 힘써왔다는 뜻에서 모티브를 잡았다. 그리고 현재도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피치스는 새롭게 떠오르는 뉴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의미를 담았다. 하나의 브랜드이자 트렌드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목표였다. 그들이 우리를 선택한 것도, 우리가 그들과 협업하는 이유도 공통점이 있어서였다. 플랫폼은 달랐지만 추구하는 근본은 같았다. ‘멋지고 근사한 것을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잠깐, 피치스가 누구야? 뭐 하는 사람들인데?” 피치스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17년 2월이었다. 감각적인 자동차 영상이 있다며 누군가 보내준 유튜브 페이지가 시작이었다. 일본 도쿄의 한 주차장에서 열린 RWB(클래식 포르쉐 911의 차체를 볼륨감 있게 만드는 튜너)의 정기 모임 스케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튜너의 활동 장면을 멋진 영상과 음악으로 녹여낸 것이다. 자동차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해도 믿을 만했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좋아할 분위기가 감각적으로 녹아 있었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33만 회를 기록했다. 만든 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영상이 이렇게 갑자기 주목받는 건 업계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특히 자동차라는 주제로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때까진 영상을 만든 피치스가 한국 브랜드라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시작은 단순했어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커피 마시면서 내놓은 아이디어였죠. 생각해보니 우리에게는 디자이너, 영상감독, 브랜딩에 특화된 사람들이 모두 있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리소스를 낭비하면 안 되겠다 싶었죠.”

여인택 대표는 피치스가 이렇게 빨리 궤도에 오를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몇 번의 음식 관련 사업을 거쳐 현재는 피치스의 기획 총괄을 맡고 있다. “다른 곳에서의 브랜딩 경험이 피치스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아요. 피치스는 이전에는 없던 전혀 다른 분위기에 단독적인 개체이기 때문이죠.” 그는 피치스를 통해 지금도 매일 새로운 일을 경험한다고 했다. 완성된 지식과 경험으로 피치스를 실현한 게 아니라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궁금하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처럼 표현을 잘할까?

피치스 인스타그램 계정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팔로하는 사람은 12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피치스가 팔로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건 피치스를 만드는 사람도, 유명인도 아니다. 바로 나사(미국 항공우주국)다. ‘갑자기 웬 나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모든 결정에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중은 이런 행동에 마음을 빼앗긴다.

“피치스만의 색이 있어요. 그냥 검은색에 핫 핑크죠. 그러곤 F*** you예요. 풀이하자면 그냥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단 의미죠. BMW나 나이키와 협업하는 이유도 간단해요. 보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우리가) 진짜 좋아하는 브랜드와 일하고 싶은 거예요. 협업을 위해 협업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니까 하는 거죠.”

여인택 대표와 김종권 감독은 전혀 다르면서도 추구하는 코드가 비슷했다. 브랜드를 운영한 경험이 없어도 직감적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이건 슈프림, 나이키, BMW처럼 그들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브랜드의 영향이라고 했다. 어디서 배운 게 아니라 스트리트 브랜드 문화의 이해도가 높았다는 풀이겠다. 이처럼 피치스의 사고방식에는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순간순간 직감에 충실했던 것이 쌓여서 지금의 결과에 도달한 것이다. 중요한 이야기다. 요즘의 성공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는 계산이 아니라 본능적 감각이 무엇보다 필요하니까.

피치스 RWB 뮤비 2탄 , 나플라&루피 편에 등장한 일러스트는 MR.MISANG의 작품. 정신없는 세계 속에서도 아티스트와 피치스가 조화를 이루며 등장한다(사진 아래).

본능. 이것이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실제로 RWB 콘텐츠 이후 피치스의 SNS는 팔로어가 순식간에 늘었다. ‘피치스 크루’라고 불리는 추종자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사실 숫자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즐겁고 만족스러운 일을 잘하면 됐다. 그러면 결국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생긴다는 것도 알고 있다.

피치스는 ‘원-유니버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전 세계, 그러니까 세상을 아우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치스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 사는 다양한 민족이다. 심지어 미국에 사는 흑인조차도 피치스 후드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자동차 문화에 뿌리를 두지만 스트리트 브랜드로 발전하는 중이죠. 멋지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피치스라는 브랜드 아래 원-유니버스라는 미디어 크루를 둘 예정이고요.” 어쩌면 피치스가 멋있게 느껴지는 건 구구절절한 설명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설명하지 않고도 메시지를 아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 부분이 나에게도 통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어느 날 시사회 초대장을 받았으니까.

2017년 12월 28일 용산 롯데시네마. 피치스가 BMW와 협업해 만든 <공도최강(公道最强)> 필름을 공개하는 시사회가 열렸다. 자동차 마니아를 비롯해 자동차패션업계 관계자 등 170여 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피치스는 이날 처음 공식적으로 자신들을 소개하고 앞으로 정식 브랜드로 출범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회사나 영상 미디어가 아니라 자동차 문화를 지원하는 패션 브랜드가 된다는 것이 목표였다.

그 중심에 피치스를 표현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다. 어떤 영상 프로덕션보다 영상을 잘 찍는 패션 브랜드가 되겠다는 것, 그리고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실력 있는 아티스트(브랜드)와 협업해 멋진 결과물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명확한 개념이 없었다. 한 가지만 잘하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가능성이었다. 누구와 작업하느냐, 무엇을 작업하느냐에 따라 발전의 여지는 무궁무진했다. 그런 유연한 플랫폼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피치스는 애초에 미디어 그룹을 목표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뉴미디어에 곧 한계가 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죠.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더라도 과연 구독자가 어떻게 비즈니스로 연결될 것인지가 불분명했어요. 그래서 상품을 중심에 두기로 했죠. 눈에 보이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팔면 결국은 문화가 생기죠.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가 확장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 플랫폼이에요. 좋은 메시지가 담긴 멋진 영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이끌어야 하죠. 영상의 장점은 무궁무진해요. 협업에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피치스 차고 프로젝트. 개인 가라지를 소유한 AT 랩과 함께 자동차를 쉽게 만질수 있는 공간과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실제로 이들은 지난 1년간 나이키, BMW 등 각 분야 최고의 브랜드들과 협업했다. 나이키의 경우에는 2017년 말에 <코르테즈 스타일>이라는 영상 작품을 시작으로 올 3월에는 ‘나이키: 온 에어 프로젝트’에 작품(피치스×AT랩 프로젝트 카)도 출품했다. 또 BMW와는 지난해 M4 바이럴 영상을 비롯해 곧 한국에 출시하는 고성능 세단 M5의 홍보 영상도 제작할 예정이다.

다가오는 5월은 피치스에게 도전이다. 그들의 첫 번째 시즌 컬렉션이 출시되기 때문이다. 티셔츠, 후디, 모자 같은 기본 상품 외에도 자잘한 액세서리가 나올 예정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2018년 피치스의 시즌 캠페인이다.

나이키: 온에어, 상상을 현실로’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에어맥스 프로젝트 카. 피치스와 AT랩이 협업해 BMW E36 3시리즈를 새로운 에어맥스처럼 꾸몄다. 에어 서스펜션으로 차고 높이가 조절된다.

“이번 시즌의 캠페인은 ‘If You Love Me’예요. 피치스의 모든 물건과 현상을 잘 말해주는 메시지거든요. 그러니까 뒤에 ‘If You Love Me’라고 새겨진 옷 앞에는 ‘Buy Me a Lambo’가 붙는 거죠(날 사랑한다면, 람보르기니를 사라/사줘라). 이 캠페인은 상황에 따라 위트나 역설도 가능해요. 담배 케이스에 쓰인 ‘나를 사랑한다면, 담배를 끊어라’ 같은 거죠. 브랜드와 협업할 때는 주요 메시지로도 활용할 수 있어요. 가령 ‘If You Love Me, Just Do It(나이키)’ 같은 거겠죠.”

현재 피치스의 모든 제품은 미국 LA에서 생산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통된다. 한국에 모회사를 두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한다는 의미다. 외국에서 인지도를 키워 오히려 한국으로 이미지를 역수출하는 전략이다. 올해 시즌 컬렉션은 안티 소셜 클럽과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앞으로는 고급 소재를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와 협업해 가죽 재킷 같은 제품도 내놓을 예정이다. 슈프림이 내놓은 핀볼 머신처럼 위트 있는 액세서리도 준비 중이다.

“좋아하는 차를 타고 LA의 고속도로와 해안가를 달리는 느낌. 이게 피치스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닐까요?” 여인택 대표가 꿈꾸는 피치스는 그런 느낌이다.

“최근에는 방향을 약간 틀어서 탤런트 에이전시로도 확장하고 있어요. 미국이나 슬로바키아, 체코 같은 나라에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많거든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세계적으로 발휘할 플랫폼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와 잘 맞는, 가능성이 있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협업할 계획이에요. 전속 계약을 통해 그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되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편견이 없어요. 어느 나라에 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의 실력과 가능성, 팬들의 성향을 보죠. 그렇게 섭외하고 계약하고, 키워나가는 거죠. 그 사람이 피치스 안에서 다른 아티스트와 또 협업하고, 이렇게 계속해서 발전하는 거죠. 누군가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매개체가 되는 것, 그게 피치스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김종권 감독의 말처럼 현재 피치스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피치스와 일한다. 나이키 에어맥스 프로젝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준 서브 클래스(본명 안드레시저), 전속 사진가 레널드 리도 그렇다. 여인택 대표, 김종권 감독을 비롯해 디자인 디렉터 마크 아세날 CDO, 헨리 송 미국 브랜드 디렉터 등 모두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비밀인데) 우린 아이스크림도 팔 거예요. 피치스라는 이름을 쓰니까 복숭아 아이스크림을 파는 건 당연한 거겠죠. 그 밖에도 아직은 밝힐 수 없는 많은 협업을 계획하고 있어요. 88라이징(아시아 힙합 문화를 알리고 전하려고 만든 뉴미디어 그룹)과의 협업이 대표적이에요. 실력 있는 래퍼나 뮤지션과 공동 작업하는 거예요. 그들이 피치스 음악을 만들고, 우리가 영상을 찍고, 우리와 협업하는 일러스트 작가나 사진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결과물을 공유하겠죠. 그럼 각종 상품과 음반도 등장하겠죠. 멋지지 않나요?”

이 모든 것이 불과 1~2년 만에 이뤄졌다. 취미로, 자동차 영상을 잘 만드는 미디어 그룹에서 시작한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엄청난 추진력을 바탕으로 피치스는 이제는 글로벌 수준의 브랜드로 발전하는 단계에 있다. 이들의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로는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성공을 바라는 바다. 한국에 뿌리를 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지난 1년간 피치스를 관찰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가능해보인다.”


피치스 영상 베스트 5

Let you roll in a Hyundai?

현대차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바친다. 제네시스 쿠페가 이렇게 강력할 수도 있다.

 

2017 RWB Porsche Tokyo Meet After Movie

세계가 피치스를 주목하게 된 영상. 튜너 RWB와 클래식 포르쉐 911이 압권이다.

 

NIKE Cortez Style

자동차, 나이크 코르테즈, 길거리 문화는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멋있다. 피치스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Street Savage

BMW M4를 앞세워 ‘공도최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영상팀과 함께 본격적으로 역동적인 영상미를 추구했다.

 

PEACHES×ESQUIRE

피치스가 <에스콰이어>를 재해석했다. 4월 말부터, <에스콰이어> SNS와 피치스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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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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