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그림자

아이폰의 진짜 문제는 배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2013년 10월 <뉴욕타임스>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 제목은 ‘애플의 함정을 깨버리기’였고, 온라인판의 제목은 ‘왜 애플은 당신의 아이폰이 고장 나길 원할까’였다. 기사의 요지는 간단했다. 애플이 의도적으로 자사 제품을 구식으로 만드는지도 모르는데, 그건 소비자들을 짜증 나게 하는 일이며 애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내용은 없고 기자의 추측으로 쓴 <뉴욕타임스>답지 않은 기사였다. 당시 출시된 지 3년 반 정도 된 아이폰4를 사용하던 기자가 새롭게 출시된 아이폰5S와 5C를 보고는 자신의 아이폰이 느려지고 배터리가 더 빨리 닳기 시작했다고 느끼면서 쓴, 사실 기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답지 않은 기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새 아이폰이 출시되고 새 iOS가 출시될 때면 자신의 구형 아이폰이 느려지는 걸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폰8과 8 플러스, 아이폰X가 출시된 작년에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9월과 11월 사이, 새 아이폰이 출시될 때쯤 구글에서 ‘iPhone slow’라는 키워드의 검색량이 50%나 증가했다. 단순히 애플만이 아니라, 애플과 같은 기술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속도를 떨어뜨려 매년 소비자들이 새 제품을 사게 만든다는 생각은 ‘계획적 구식화’라는 표현으로 음모론자들 사이에 널리 퍼진 믿음이다. 다만 합당한 근거가 없어 음모론 이상으로 넘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17년 12월, 소셜 커뮤니터 웹사이트 ‘레딧(Reddit)’에 한 포스트가 올라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단 레딧의 포스트 내용을 알기 전에 지난해 초, 아이폰6, 6s, 6s 플러스 사용자들이 갑자기 폰이 꺼지는 문제를 겪었다는 사실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된 상태인데도 게임이나 앱 다운로드처럼 기기의 성능을 끌어내야 하는 작업을 할 때면 폰이 꺼지고는 했다. 애플은 이 문제를 인정했고 iOS 10.2.1 업데이트에서 이 문제를 수정했다고 말했다. 사용자들은 업데이트 이후 폰이 갑자기 꺼지는 문제는 없어졌지만 대신 폰이 느려졌다고 말했다. 폰이 느려지는 문제가 아이폰의 배터리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게 바로 레딧의 포스트 내용이었다. 한 레딧 사용자가 아이폰이 느려지면 배터리를 교체해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이 포스트가 올라온 뒤 하드웨어 성능을 측정하는 벤치마크 프로그램 긱벤치(Geekbench)의 개발사인 프라이메이트 랩(Primate Labs) 창업자 존 풀은 이 가설을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는 긱벤치에 등록된 10만 대의 아이폰 벤치마크 데이터를 iOS 버전별로 분석하고 iOS 10.2.1 업데이트를 한 오래된 아이폰의 최고 성능이 제한되는 경향을 확인했다. 애플이 의도적으로 새 아이폰을 사게 하려고 계획적 구식화를 한다고 믿어온 음모론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증거는 없었다.

애플은 논란을 인정했다. 애플은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보낸 성명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는 추운 환경이나 충전량이 적은 경우, 혹은 오래 사용해 노후한 경우 점점 최대 전류 요구량을 공급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럴 경우 기기가 내부의 부품을 보호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종료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아이폰6, 6s, SE가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종료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순간적인 최대 전류 요구를 없애는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우리는 이 기능을 iOS 11.2를 탑재한 아이폰7까지 확대 적용하고, 향후 다른 제품에도 지원을 추가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애플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소비자가 새 아이폰을 사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폰을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성능을 제한했다’는 말에 꽂혀서 이 제한을 음모론자들의 계획적 구식화로 받아들이는 건 곤란하다. 이는 애플의 문제라기보다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문제이고, 애플이 불가피한 경우 최대 성능을 제한하기로 한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합리적인 문제 해결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애플의 소비자들은 애플의 결정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불만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듯 최대 성능 제한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애플과 소비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는 문제가 남는다.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애플은 이번 사안 이전에도 iOS 10.2.1 업데이트 이후 배터리가 노후하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띄워줬지만 배터리를 교체하지 않아서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배터리 성능이 기기의 최대 성능을 제한할 수 있다면 투명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현재 애플을 상대로 한 집단 소송에서도 초점이 맞추어지는 부분은 애플이 성능을 제한했다는 부분이 아니라, 배터리가 기기의 최대 성능을 제한한다는 정보를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다면 새 제품을 사는 대신 배터리만 교체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 상원 의원 존 튠이 애플에 질문을 던진 것도 투명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전문 리뷰 웹사이트 <아스 테크니카(Ars Technica)>는 “배터리 사용 시간과 안정성을 속도보다 우선시한 것은 사용자들에겐 최선이었다”며 애플의 결정을 옹호했지만 투명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은 잘못된 일이었다고 논평했다.

투명성 문제에 대한 애플의 대응은 빨랐다. 애플은 기존에 79달러였던 배터리 교체 비용을 29달러로 인하하고, 곧 업데이트할 iOS 11.3에서 배터리 성능에 따른 기기의 최대 성능 제한을 사용자가 켜고 끌 수 있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이번 사건 이전에 79달러를 내고 배터리를 교체 한 사용자들에게 차액을 환불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아이폰 배터리와 성능에 관해 고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는 공개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애플에 남긴 손해는 적지 않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사건은 오래된 음모론에 다시 불을 지폈고, 애플의 고객들과 애플 사이의 통상적인 신뢰 관계를 훼손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기술을 다루는 기업은 고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애플이 전통적으로 소비자에게는 최종 결과물만 전달할 뿐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을 숨기는 기업이었다곤 하지만 이번 사안은 경우가 달랐다. 어떤 기능이 타협의 결과물이라면 왜 그런 타협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2013년 <뉴욕타임스> 기사가 올라왔을 때도 그렇고, 5년이 지난 현재도 기술 기업이 계획적 구식화를 실천에 옮길 이유는 없다. 어떤 음모론을 파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모론의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인센티브가 있을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 음모론이라면 애플이 계획적 구식화로 새 아이폰을 팔아 매출을 극대화한다는 인센티브가 있으니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매년 바꿔야 하는 스마트폰보다 오래도록 쓸 수 있는 폰을 더 선호한다. 만약 애플이 계획적 구식화를 실천에 옮긴다면 상당수의 사용자가 결국 아이폰 대신 다른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1년이면 고장 나는 자동차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누가 그 자동차를 또 사겠는가. 윈도 XP 개발에 참여한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 매니저 그렉 라이즈는 “운영체제를 만드는 기업이 계획적 구식화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아무런 인센티브가 없다”고 말한다. 2013년의 <뉴욕타임스> 기사조차 지적한 것이지만 계획적 구식화는 애플에도 결과적으로 손해일 뿐이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에 따르면 잡스는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은 내 접근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고객들이 원하기 전에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애플은 소비자가 하기 어려운 결정을 자신이 대신 내리고 그것을 소비자에게 강요한다. 그것이 스티브 잡스의 방식이고, 곧 애플의 방식이다. 그 방식은 애플 생태계를 울타리 안에 가둬버리기도 하고, 때론 애플의 소비자들을 애플의 양이라고 조롱받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애플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애플이 대신 내려준 결정이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될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에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폰을 구입한다. 애플이 이번 사안에서 내린 결정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실보다 득이 많은 결정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애플은 소비자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 결정이 애플의 비밀주의와 잘못 만났을 때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좀 더 투명해지라는 요구는 합당하다. 애플의 소비자들은 애플의 결정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불만을 느낀다. 명심해야 할 점은, 고객들은 원하는 것을 받아만 먹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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