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은 대역전을 꿈꾼다

닛산 퓨처스에서 자동차 기술의 현주소와 관련 생태계가 꿈꾸는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의 컨벤션 센터. 쇼핑몰과 명품 숍, 호텔이 뒤엉킨 커다란 건물 안을 걸어가는 동안 현실 공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언제 방문해도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유럽이나 미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싱가포르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인상을 줬다. 유럽 이외 지역에서는 처음 개최되는 ‘닛산 퓨처스’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이유기도 했다.

닛산 퓨처스에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 홍콩,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을 대표하는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협력사나 정부 이해관계자도 다수였다. 그러니까 이 행사는 자동차 브랜드가 꿈꾸는 미래 기술을 재미로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앞두고 자동차 제조사와 관련 생태계 모두가 정보를 효과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자리였다.

실제로 여기 모인 모두가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궁금증은 모두 비슷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을까? 복잡한 도시화와 교통 체증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차세대 에너지는 어떻게 보존하고 유통시켜야 할까?

닛산 퓨처스가 모든 질문에 답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이뤄나가야 할 이정표에 가까웠다. 여기엔 ‘인텔리전트 모빌리티’라는 핵심 주제가 있다. 그리고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닛산 인텔리전트 드라이빙’이다. 지난 20년간 닛산이 다방면으로 발전시켜온 모든 기술과 개념의 미래다. 그러니까 차의 안전성을 끌어올리고, 제어 능력을 발전시켜 편안함을 향상시키는 일련의 기술 흐름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율 주행이다.

닛산은 2016년에 일본 자동차 회사로는 처음으로 자율 주행 1단계 제품을 양산시켰다(미니밴 세레나). 한 차선 안에서 자동차 스스로 조향, 가속, 제동을 하며 주변 상황을 인지해 달린다. 현재 이 기술은 닛산 리프를 비롯해 X-트레일과 로그 등에서 사용 중이다. 사실 이건 안전 법규와 제도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개념일 뿐이다.

닛산은 2017년 CES에서 SAM(부드러운 자율주행차)이라는 기술도 공개했다. SAM은 미 항공우주국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자율주행차가 돌발 상황이나 방해물을 만났을 때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인공지능 지식이 핵심이다.

자율 주행 로봇 카 에포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행사장에서도 작은 트랙 위에 펭귄처럼 생긴 삼륜 로봇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에포로는 무리 지어 다니는 물고기 떼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별도의 신호 체계나 외부 규칙이 없음에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각종 센서와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서로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인다. 그렇다고 서로 멀어지지도 않는다.

인텔리전트 모빌리티의 두 번째 영역은 ‘닛산 인텔리전트 파워’, 즉 친환경 파워트레인이다. 배출 가스가 없는 완전한 전기차부터 내연기관의 효율성을 최대로 높인 e-파워, 수소 연료 전지차가 여기에 속한다. 대표적인 것이 리프와 노트 e-파워다. 리프는 2010년 출시 이후 2세대까지 전 세계에 35만 대가 팔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라는 타이틀과 함께 성능과 안전성 면에서 입증된 모델이다. 최근엔 한 번 전기 충전으로 400km를 달릴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JC08 인증 모드 기준).

노트 e-파워는 연료 효율성이 좋은 거리 연장 기술 전기차다. 1.2L급 가솔린 엔진이 달렸지만 여느 하이브리드와 달리 바퀴로 직접 동력을 전달하지는 않고 전기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만 쓰인다. 그러니 별도의 외부 충전 없이도 전기차 구동계의 장점을 누릴 수 있다. 37.2km/L 공인 연비(JC08 기준)도 특징이다.

‘닛산 인텔리전트 인티그레이션’은 인텔리전트 모빌리티의 세 번째 영역이다. 자동차와 사용자, 사회가 연결성을 확장해 더 많은 가치를 누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전기차가 단순히 연료 효율을 높이는 데만 쓰이지 않고 사회 시스템에 도움을 주도록 한다. 앞으로 전기차가 보급화된다면 에너지를 보관하고 유통하는 모든 과정이 크게 변한다. 전기차와 사용자, 도시가 클라우드 서비스로 정보를 나눈 후 필요에 따라 에너지를 공급하고 공급받으면서 효율성을 증대한다. 쉽게 말해 낮에 전기차를 타지 않아서 배터리에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그 에너지를 건물이나 공공 기관 등 다른 곳에 공급할 수 있다. 닛산은 현재 다국적 전력 회사 에넬, 영국 전력 회사 이튼과 협력해 주거용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물론 이런 기술이 실제로 상용화되려면 전기차 보급화뿐 아니라 인프라 구축에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가 ‘미래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기술적 대안이 등장하고 있다. 닛산의 경우는 좀 더 멀리 보며 큰 그림을 그린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모빌리티 기술만의 미래가 아니다. 에너지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생태계 전체를 바꿀 미래를 준비 중이다.

“전기차 기술은 이미 있습니다. 제도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자율 주행도 실현 가능하지요. 이 모든 청사진이 2022년 현실화될 것입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글로벌 디렉터인 가즈히로 도이 부사장의 말처럼 그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세부적인 기술이 아니다. 패러다임을 바꿀 도전이다. 닛산 자동차가 지금 세계 곳곳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닛산 노트 e-파워

노트 e-파워는 가솔린 엔진을 얹은 기본형에 비해 움직임이 가볍다. e-페달을 이용한 운전도 자연스럽다. 효율적이고 직관적이다. e-페달은 가속페달을 밟으면 가속하고, 페달에서 발을 떼면 속도가 줄어드는 기술이다. 페달에서 완전히 발을 떼면 제자리에 정지한다. 주행 중 엔진이 중간중간 시동을 건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목적이다. 이때 차가 움직이는 타이밍과 시동이 다소 엇박자다. 처음엔 낯설지만 곧 익숙해진다.

닛산 리프

리프 2세대는 이전보다 한결 세련됐다. 디자인은 완성도를 높였고, 실내 품질은 개선됐다. 새로운 전기 구동장치로 최고 출력 147마력, 최대 토크 32.6kg·m를 발휘한다. 노트 e-파워처럼 e-페달로 제어할 수 있다. 짧은 테스트 드라이브에서 느낀 것은 조용하다는 것과 좀 더 민첩해졌다는 점이다. 정확한 시기는 미정이지만, 올해 국내 출시가 확정됐다.

닛산-인피니티에서 디자인과 기술을 책임지는 사람들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가즈히로 도이 닛산 얼라이언스 글로벌 디렉터

# 알폰소 알바이사 닛산 글로벌 디자인 수석 부사장

최근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가 됐다. 각자 책임이 다를 것 같다.

단일 관리를 통해 기술을 공유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세 개의 브랜드가 기술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면서 각 브랜드에 맞춰 제품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 목표다.

닛산에서 제품 주기가 긴 차들이 있다. 미래에 집중하기에 발생하는 부작용인가?

스포츠카의 경우 시장은 작고, 많은 투자가 요구된다. 이런 시장에 적당함이란 없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도 곧 패러다임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닛산을 대표하는 스포츠카 GT-R도 미래엔 전기화가 큰 비중을 차지할지 모른다.

2세대 리프를 최고라고 설명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최고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기술뿐 아니라 판매량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차가 팔려서 친환경에 기여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지 않나.

미래의 자동차는 디자인 제한이 줄겠다.

엔진이 없고, 자율 주행으로 충격 흡수 구간이 줄어들면 디자인은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모터 크기가 줄고, 배터리 면적에 따라 디자인 방향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차의 디자인이 똑같아지는 것 아닌가?

전 세계 자동차 디자이너는 4000명이다. 결국 우리는 비슷한 곳에서 영감을 얻고 비슷한 디자인을 실현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자유를 디자인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브랜드의 철학이 중요하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닛산-인피니티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나?

지금까지 디자인의 핵심은 ‘뒤꿈치의 위치’였다. 운전자의 뒤꿈치 위치가 실내를 좌우하고 이것이 곧 디자인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운전자가 필요 없는 미래에는 기준이 완전히 변할 것이다. 아마도 실내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향으로 디자인이 집중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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