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국 야구 필승 전략

용감하게 투자하고 과감하게 트레이드하라. 이기고 싶고 응원받고 싶다면.

1. 타이거즈 완벽 우승

2017 시즌의 기아 타이거즈는 완벽했다. 4월 14일 처음으로 1위 자리에 오른 뒤 시즌 내내 정상에 군림했다. 6월 한때 NC 다이노스에 반 경기 차로 쫓겼고 시즌 후반부에 두산에 바짝 추격당하는 등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한국 시리즈 또한 마찬가지. 첫 경기를 내주었지만 이후 파죽의 4연승, 군말이 필요 없는 절대적 우승을 일궈냈다. 이쯤 되면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대회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은 채 우승을 차지했다는 뜻의 골프 용어)’이라 해도 무방할 터.

원동력은 자명하다. 목돈을 풀어 걸출한 4번 타자감 최형우를 영입했다. 양현종과 헥터가 20승씩 책임졌다. 또 다른 외국인 선수 팻 딘과 버나디나의 활약도 더할 나위 없었다. 임기영이라는 깜짝 스타도 등장했다. 키스톤 콤비 김선빈과 안치홍이 공수에서 제 몫의 120%를 발휘했다. 김주찬과 이범호는 여간해서 아프지 않았다. 그럼에도 있었던 전력의 틈새(특히 포수와 테이블 세터)는 시즌 중 대형 트레이드로 너끈히 메워냈다. 사정이 이쯤 되면 (감독 이름 앞에 ‘돌’이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걸 비롯한) 타이거즈 팬의 어떤 불평도 다른 팀 팬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타이거즈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유니폼 디자인 센스.

2. 제자리를 찾아가는 트레이드

바둑과 장기는 한·중·일 삼국이 공히 즐기는 전통 마인드 스포츠의 양대 산맥이다. 바둑은 삼국의 규칙이 거의 비슷하다. 중국의 계가 방식이 다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장기는 두는 방식이 저마다 달라서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의 장기 중 ‘쇼기’라 부르는 일본 것이 가장 재미있다. 쇼기는 경기 중 포획한 상대의 말을 아군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덕분에 쇼기 특유의 독특하고 복잡한 매력이 만들어진다. 이게 없다면? 한국이나 중국 장기 혹은 체스와 별로 다를 게 없다.

트레이드 없는 프로야구는 매력이 빠진 일본 장기나 다름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즐길 만하지만 활성화되면 흥미가 배가되는 것이 프로스포츠의 트레이드다. 한국 프로야구는 그동안 트레이드의 중요성을 너무 무시했다. 우리가 버린 말을 상대가 요긴하게 쓰는 꼴을 못 보겠다는 속 좁은 근성 탓이었다.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다는 프런트의 복지부동도 한몫했다.

최근에는 트레이드가 제 위치를 찾는 것 같다. 2017시즌을 제압한 타이거즈만 해도 트레이드로 선수를 수혈해 시즌을 완벽하게 치렀다. 주전 포수 김민식, 테이블 세터 이명기, 불펜 투수 김세현이 트레이드를 통해 타이거즈의 일원이 되었다.

팬들도 달라졌다. 프로스포츠 팬이라면 야구든 축구든 누구에게나 발견되는 속성이 있다. 틈만 나면 비난한다는 점이다. 근거가 무엇이고 대상이 누구든 일단 욕을 늘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풀려 한다.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지만 딱히 나무라기도 힘든 팬들만의 특권이다. 그런 팬들에게 ‘트레이드 실패’라는 사냥감을 던진다면 어떻게 될까? 너 나 할 것 없이 떼로 달려와 물어뜯을 것이다. 자기 팀에게 너무나 유리하지 않은 이상 트레이드라면 욕부터 하고 보는 것이 대부분 팬들의 마음에 깃든 욕심쟁이 심보다. 프런트의 경직성에도 이유는 있었던 셈이다.

최근 팬들이 조금 누그러졌다. 넥센을 중심으로 한 트레이드의 윈-윈 사례가 잇따르며 합리적 셈법이 팬들 사이에서도 자리를 잡고 있다. 트레이드 실패에도 옛날처럼 무자비하지 않다. 당장의 부진을 욕하기보다는 좀 더 두고 보자는 느긋한 심리가 보인다. 그 결과 2017 시즌은 그 어떤 시즌보다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탄력을 받은 만큼 내년 시즌에는 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럼으로써 KBO 리그는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3. 국민 타자의 은퇴, 오른손 거포의 귀환

2017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승엽이 은퇴했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왼손 타자를 적어도 현장에서는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KBO 리그는 오른손 거포들을 다시 맞았다. 외국 원정에 나섰던 이대호가 돌아왔다. 젊은 거포 최정도 잠재력을 터뜨렸다.

KBO 리그만의 흥미로운 점이 있다. 10개 구단이 치열하게 자리 싸움을 한다는 점. 타자들의 콘택트 능력과 인내력이 뛰어나다는 점. 다만 단점도 있다. 외야수의 송구 능력과 내야수의 포구 능력이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 비해 떨어진다. 투수의 평균 구속도 상대적으로 느리다. 홈런 타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오른손 거포들이 그나마 마지막 단점을 메우고 있다. 돌아온 이대호는 2017년 홈런 34개를 쳤고, 2017 시즌 홈런왕 최정은 46개의 홈런을 쳤다. 하루빨리 새로운 별들이 출현해 리그의 다른 단점이 극복되길 바란다.

프로야구는 인기를 끌었다. 심판 금품 수수 사건과 WBC에서의 부진, 여기에 시즌 초 미세 먼지까지 관중 동원에 악영향을 미칠 요소가 즐비했는데도 KBO 리그는 역대 최대 관중 기록을 갈아치웠다. 고마운 줄 알아야 할 텐데….

4. 야구장을 더럽힌 것들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는 요소가 빠지면 스포츠는 지루한 3류 각본으로 전락한다. 그 점에서 몇 년 전 선수의 도박 사건에 이어 이번 시즌 정체를 드러낸 심판 금품 수수 사건은 프로야구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다행히 해당 심판이 프로야구계를 떠난 상태라 사태가 더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KBO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추악한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늘었다 줄었다를 되풀이한 스트라이크존. 시간을 질질 끄는 비디오 판독 시스템. 그럼에도 오심이 생겨나는 한심한 작태. 모호하기 짝이 없는 홈 충돌 방지 규칙 등등. KBO와 심판만 잘하면 KBO 리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 최고의 프로스포츠 리그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다.

5. 그럼에도 흥행하다

아무튼 프로야구는 인기를 끌었다. 1등부터 9등까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순위 경쟁이 팬들을 흥분시켰다. 10위가 빠진 점 양해 바란다. 1위와 37.5게임 차로 벌어지고 9위와 7.5게임 차가 나는 상황이라 도저히 끼워줄 수 없었다. 그렇게 동원한 관중이 840만688명. 심판 금품 수수 사건과 WBC에서의 부진, 여기에 시즌 초 미세 먼지까지 관중 동원에 악영향을 미칠 요소가 즐비했는데도 KBO 리그는 역대 최대 관중 기록을 갈아치웠다. 고마운 줄 알아야 할 텐데….

6. 거인이 가르쳐준 것

시즌 전반기가 끝날 때 롯데 자이언츠는 7위였다. 시즌 마무리 시점에서는 3위. 믿을 수 없는 후반기의 대활약 덕에 순위와 관중 수가 뛰었다. 무엇이 거인들을 진격하게 만들었을까? 롯데 자이언츠의 후반기 대활약은 현대 야구에서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의 역량이 순위 싸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직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거인들이 전반기에 주춤한 까닭은 투타 양측에서 딱 하나씩이었다. 투수는 팀 전력을 감안하면 전반기 동안 곧잘 했다. 외국인 투수가 문제였다. 레일리와 애디튼 두 투수가 기록한 ‘외국인 투수 성적’은 평균 자책점 9위(평균 5.48), 패 1위(11패), 피홈런 최다 2위(14개).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좋은 투수가 부족한 KBO 리그 특성상 외국인 투수 두 명이 동시에 부진하면 팀 성적이 좋을 리 없다.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7월에 이르러 프런트가 린드블럼을 영입하며 이 점을 해결했다. 특히 레일리의 후반기 약진이 눈부셨다.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대활약이었다.

타자도 곧잘 했다. 역대 최고 대우를 받고 귀환한 이대호는 명불허전이었다. 모두 잘하는 상황에서 딱 한 명만이 헛방망이질을 일삼았다. 최준석. 타선 한가운데에 자리한 5번이 병살타를 밥 먹듯 쳐대니 팀 순위가 오를 리 없었다. 감독은 최준석을 계속 기용했다. 때로는 3번으로, 때로는 6번으로 올리고 내려 보았지만 계속 패망했다.

2017 시즌 거인 타선의 특징은 뚜렷했다. 장타력과 정확성이 좋고 주력이 느렸다. 특히 이대호-최준석-강민호라는 4-5-6번 타선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느린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작전으로 어쩌지 못하는 자이언츠 타선의 개성이었다. 어느 정도의 병살타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장타력과 정확성의 위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준석은 전반기 동안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전반기 자이언츠 더그아웃은 어느 조치도 하지 않았다. 코칭스태프의 조언도 없었다. ‘언젠가 잘 쳐주겠지’라는 허망한 미련만 있었던 것 같다. 최준석은 그 안에서 계속 비틀대다 7월 말에는 7경기 연속 무안타의 수렁에 빠졌다. 7월 21일 최준석은 2군으로 갔다가 8월 2일 1군으로 돌아왔다. 귀환한 최준석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어 있었다. 그가 활약을 시작한 시점은 거인이 약진을 시작한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과론일 뿐이지만 최준석을 잠정적으로 포기하는 시점이 좀 더 빨랐다면 거인의 순위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시즌 조원우 감독은 아마도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느낀 점 덕분에 라인업 구성과 작전이 더 세밀해진다면 내년 시즌 거인들은 좀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조원우 감독과 3년 계약을 다시 맺었다.

7. 거품 논란

스토브 리그만 되면 거품 논란이 빠지지 않는다. 많은 팬이 선수 몸값에 거품이 끼여 있다고 개탄한다. 언젠가 그 거품이 터지면 프로야구계가 쑥대밭이 될 거라 걱정한다. 솔직히 나는 그런 논란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번 시즌 KT 위즈가 부진했던 까닭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투자가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내 의견도 같다. 중심 선수가 턱없이 부족한 신생 구단이었지만 위즈는 지갑을 열지 않았다. 반면 기아 타이거즈는 본래 강팀이었음에도 최형우와 100억짜리 대형 계약(당시로는 사상 최고액이었다)을 맺으며 시즌 우승 발판을 마련했다.

위즈가 내년 시즌 성적을 올릴 방법은 지금으로는 단 하나뿐이다. 우수 선수 영입. 그러려면? 남보다 더 써야 한다. 그렇다면? 선수 몸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위즈의 성적은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팬들은 어느 쪽을 원하는가?

황재균이든 민병헌이든 마찬가지다. 현재 FA 시장에 나온 선수 대부분은 어느 팀에나 도움이 될 전력이다. 구단이 욕심 낼 법하다. 전력 향상을 기대한다면 데려오는 편이 훨씬 낫다. 데려오려면 투자해야 한다. 투자를 하려면 선수 몸값이 오르게 마련이다. 필요한 만큼 투자하는 걸 거품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거품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거품이 터지면 어쩌느냐고? 무슨 거품이 어떻게 터진다는 건가? 야구단이 줄줄이 해체라도 할까? 그렇게 찢어지는 형편이라면 애초에 투자도 않을 테니 걱정 접어두시라. 입장료가 더 비싸지면 어쩌느냐고? 걱정 접어두시라. 구단은 입장료 가격을 결코 함부로 올리지 못한다. 관중 수 격감이 두렵기 때문이다. 설마 올린다 해도 인상 폭은 10~20%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한 달에 한두 번쯤 야구장을 찾는 평범한 관중의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더 많이 낸 입장료가 팀 전력 향상에 보탬이 된다면 좋은 일 아닌가.

나는 내가 응원하는 구단이 돈을 더 많이 쓰기를 바란다. 그걸로 좋은 선수들을 더 많이 확보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부자가 된 선수들이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기를 바란다. 그런 끝에 팀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란다. 100억이 됐건 200억이 됐건 무슨 걱정인가? 내 돈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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