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더한 예술

정윤석

지존파 사건을 쫓은 <논픽션 다이어리>(2014)로 2014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 영화상인 넷팩상을 수상했다. 이어 국가보안법 재판에 회부된 인디 밴드를 관찰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를 발표하며 ‘복잡한 한국 사회를 읽는 다큐멘터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전시 <눈썹>에서는 마네킹과 섹스돌을 만드는 노동자를 담은 영상과 설치작을 선보인다.

지금껏 문제적인 사회 이슈를 깊이 들여다봐왔다.

나는 항상 선이 중요했다. 예를 들어 어떤 원인 때문에 결과가 그렇다면 같은 원인을 지닌 나 역시 그런 결과여야 하는데 왜 나는 그렇게 안 됐을까, 그 결과를 나누는 선이 궁금했다. 그래서 만든 게 지존파를 다룬 <논픽션 다이어리>였다. 지존파에서 제일 나이 어린 친구는 나랑 세 살 차이밖에 안 났다. 조사해보니 그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였다. 나도 그 노래를 좋아했다. 나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그 친구도 가난했다. ‘똑같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왜 저 사람은 살인자가 되고 나는 저 사람을 찍는 감독이 됐을까? 우리 사이의 그 선이 언제부터 벌어졌을까?’ 그게 항상 궁금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간 밖을 향해 있던 시선을 안으로 돌렸다고 들었다. 밖이란 사회이고 안이란 나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런가?

그렇다. 시스템의 문제든 국가의 문제든 사회학적으로 모든 것을 분석하기에는 인간의 문제가 복잡하다는 걸 느꼈다. 변수가 너무 많고, 단단했다가도 한순간에 취약하게 무너지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그런 관점에서 국가나 시스템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인간에 대한 고민인데 소재가 마네킹과 섹스돌이다.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풍경이 궁금했다. 마네킹과 섹스돌이 아니라 그들을 만드는 사람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재밌는 게, 요즘 백화점 마네킹을 보면 얼굴이 없다. 예전 마네킹에서 머리만 잘라내고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초창기 마네킹은 풀 메이크업도 시키고 최대한 인간처럼 묘사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 욕망을 버리고 재활용하는 과정인 거다. 어떻게 보면 마네킹으로 인간을 재현하겠다는 욕망을 버린 셈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인간 재현의 욕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섹스 산업과 맞물려 섹스돌로 이동한 거지.

눈썹
‘무제’, 폐기된 마네킹의 부분, 2018

그래서 섹스돌 공장에 갔나?

중국 자유경제구역인 선전(심천)에 있는 공장이었다. 가보니 ‘여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게 재밌었다. 유니폼 벗으면 여느 또래처럼 꾸미는 거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여자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얼핏 봐도 40~50kg은 돼 보이는 인형을 끙끙대면서 옮기고 있었다. 내겐 그 모습이 레슬링 같아 보이기도 하고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고, 인간이 어떤 물질을 상대해서 이겨내려고 하는 모양 같기도 하고, 복합적인 느낌이었다. 그게 결국 노동 현장인 거다.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노동. 그 노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전시의 핵심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무엇을 묻느냐’인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영상 작품에서는 무언가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표정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작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게 인터뷰 장면이다. 웃긴 게, 통역할 때 내가 100을 말하면 내 기준에서는 10 정도밖에 안 되는 내용을 전달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10의 대답을 하면 나는 1을 전달받는다. 그런 부분에서 언어는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표정이 번역을 거쳐 전달받는 말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운 것 같았다. 관객이 노동자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앞에서 봤던 섹스돌과 마네킹의 얼굴이 확 대비되면서 ‘저게 인간이지’라는 생각을 할 것도 같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 때 나오는 표정이었나?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무엇이 제일 힘드냐고 물었더니 눈썹 그리기라고 했다. 최근 4일 동안 로봇 오페라 공연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전날과 달리 로봇의 표정이 엄청 좋아졌다. 그 전에는 너무 기계적이라 표현이 부자연스러웠는데. 그래서 엔지니어에게 로봇의 표정이 좋아졌다고 말하니까 눈썹을 수정했다고 하더라. 그 순간과 겹쳤다. 눈썹은 인간의 형상을 띤 것을 보다 인간답게 보이도록 붙이는 장식물인 거다. 그래서 전시명이 눈썹이다.

2009년 첫 개인전 이후 두 번째 개인전이다. 10년 사이 예술 신에 달라진 게 있나?

달라져야지. 우선 지금 젊은 작가들이 미술 신에서 하는 이야기나 풀어내는 방식이 많이 변했다. 감수성도 되게 다르다. 그들을 ‘포스트 인터넷 세대’라고 부르던데, 뭐 세대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제적으로도 훨씬 다양하고 풀어내는 방식에서도 감수성이 많이 다른 것은 좋은 의미다. 각자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보이는 것처럼. 다들 개별성이 있으니까 더 풍요로워 보여 좋다. 그리고 오히려 신 자체가 망해버려서 그런지 신에 대한 기대감이 없으니까 자기들끼리 모여 ‘더 스크랩’(실험적인 방법으로 사진을 사고 파는 퍼포먼스) 같은 행사도 만들고, 재밌다. 옛날에는 어느 미술관에서 전시했는지 권위적인 걸 따지고 작가 스스로도 불합리한 고민이 많았는데 요새는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하니까 좋아 보인다.

스스로도 변한 게 있나?

변화는 없고 나이만 먹어서 문제다.(웃음) 변해야 하는데 그게 좀 어렵다. 지난 10년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잘 모르고 그런 전시와 그런 작업을 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도 뭘 제대로 알고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했고, 이런 거 저런 거 따지지 않고 한 것 같다. 그래서 미래에도 여전히 이렇게 잘 모른 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왜?

그게 나한테는 작가로 살 수 있는 이유라서. 뭔가를 제대로 알았다면 작가로 10년 넘게 살지 못하지 않았을까?

늘 선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다. 10년 넘게 예술로 그 선을 탐구해왔는데 실마리를 찾았나?

내가 만든 영화에 동일하게 나오는 자기 서명 같은 장면이, 영화 중간 지점에 화면 한가운데를 지르며 길이 등장하는 거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나도 나중에 안은별 평론가가 그 길을 선이라고 표현하며 “정윤석은 편을 가르는 선의 기준에 대해 항상 질문하는 사람이다”라고 쓴 것을 보고, 왜 내 영화의 가운데에 길 장면이 등장하는지 깨달았다.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는 영상 속 길이 쭉 직진하지는 않는다. 패닝이라고 하는데, 직진이 아니라 옆으로 이동하는 샷이 많다. 그건 축이 완전히 바뀐 거다. 작가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진보-보수, 남자-여자 등 우리를 나누었던 선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의심하고 고민해보고자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좀 더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게 아닐까?


김아영

시각디자인 전공 후 영국에서 사진과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팔레 드 도쿄(2016), 멜버른 페스티벌(2017)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 본전시에 참여했다. 이미지, 사운드, 비디오 등 매체를 넘나들며 현실과 상상을 직조해 인간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이번 작품 <다공성 계곡> 영상에 승무원이 나와 이주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자 이주민인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격리되고. 그래서인지 영화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그랬다면 기쁘다.

어떻게 시작된 작업인가?

운 좋게 호주에서 가장 큰 축제인 멜버른 페스티벌 측에서 연락이 왔다. 호주에 대한 주제라면 무엇이든 개인전을 열도록 지원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원래 파리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 요청을 받고 멜버른 지역에 2주 정도 머무르며 호주를 관찰했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호주의 어떤 모습이 작품에 녹아 있나?

2가지 굉장히 흥미로운 이슈가 있었다. 하나는 호주가 금, 은, 철, 동 등 한 나라가 하나만 갖기도 힘든 광물을 다 가진 대단한 나라라는 거다. 광물 수출이 호주의 수입을 좌지우지하는 1순위다. 그런데 재밌는 지점이, 광산업이 발달하고 석유 시추를 하게 되면 지표면 아래로 땅을 파지 않나. 구멍을 뚫어 암석 사이에 고여 있는 석유를 채취하는데 그러면 땅 아래가 점점 비게 된다. 그럴 때 지반이 주저앉지 않게 하기 위해 석유를 빼낸 자리에 물을 채워 넣는다고 하더라. 마치 피를 빼고 식염수를 집어넣는 것처럼. 이상했다.

다공성 계곡
‘페트라 제네트릭스 vs. 페트라 제네트릭스’, 디지털 프린트, 2017

이상하다.

그래서 듬성듬성 비어 있을 지하의 모습에서 다공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다. 다공성은 과학 용어인데 ‘구멍이 많다’, ‘비어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지질학적 다공성이 내겐 너무 중요한 관심사였다. 또 하나는 호주의 이주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거다. 호주 정부에서 지난 10년 동안 배 타고 들어오는 난민을 단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난민 문제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심각하다.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 대해선 캥거루밖에 몰랐는데.

그러니까.(웃음) 지질학적 다공성과 이주가 내게는 호주에 대해 풀어가는 시발점이었다. 거기에 내 상상을 더한 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21세기 우리의 삶에서는 데이터 마이그레이션(데이터 이송)도 중요한 이슈이지 않나. 기업이든 개인이든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다른 서버나 클라우드로 옮기는 데 집중한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터 이송도 물리적 이주와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전문용어끼리 비슷한 게 많다. 난민이 이주하는 이주 절차 과정이나 데이터 이송 과정이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이야기를 써보자 싶었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작가가 굉장히 신나서 즐겁게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어쨌든 주제는 ‘이주’, ‘난민’이지 않나. 예민한 이슈를 예술적으로, SF 영화처럼 즐겁게 풀어버리기만 하면 괜찮은 걸까?

특히 이번 작업에는 사변 소설이란 장르를 적용했는데, 사변 소설은 SF 소설처럼 가상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은 똑같다. 그러나 생각을 끝없이 밀어붙여서 생각 실험을 하게끔 하는, 뭔가 조금 더 가능성이 풍부한 장르다. 사실 나는 리얼리즘을 즐기는 사람이다. 리얼리즘과 다큐멘터리가 지닌 가능성도 존중하지만 이야기 만드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사변의 세계로 생각을 완전히 밀어붙여보면, 마치 멀리 행성에서 이 지구를 보는 것처럼 다르게 바라보면 어떤 성찰이 또 가능할까’ 궁금하다. 이건 다큐멘터리도, 리얼리즘도 할 수 없는 방식인 것 같다.

되짚어보면 10년 전에는 자극적인 신문 기사를 모아 포토몽타주 방식으로 다룬 적이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직조해 새로이 즐기는 방향은 여전하다 싶다.

맞다. 더 넓어지고 더 멀리 가고 있다. 나는 연결시키려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연결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별자리처럼. 전혀 연결될 수 없어 보이는 종류의 것들을 연결시키는 게 즐겁다. 이런 것을 매체 불문하고 어떤 식으로든 자꾸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프린트 위주의 평면 작업에서 이번에는 3D를 비롯해 여러 기술이 필요한 입체적 작업으로 확장했다. 혼자 소화했나?

그럴 수 없지. 전문가들과 같이 작업했다. 스크립트는 내가 짠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아주 디테일한 스크립트를 만들고 그걸 토대로 3D 모델링, 3D 애니메이션, 크로마키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각 영역의 디테일을 그 분야 전문가보다 잘 알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일의 분량이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모인 세 작가는 10년 이상 활동했다는 공통점 외에는 모두 달랐다. 특히 김아영 작가는 해외 레지던시 경험이 풍부해 유달리 행동반경이 폭넓은 걸까, 고리타분한 추측을 했다.

국내와 해외 예술 신의 차이인 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주로 머물렀던 파리의 경우 굉장히 액티브한 면은 있다. 특히 프랑스의 공연 예술 신이 아주 흥미롭다. 프랑스의 민족성이나 파리의 특성일 수도 있겠는데, 일반인도 공연, 현대무용, 오페라, 다원 예술 퍼포먼스 같은 걸 즐긴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건 있다. 그러나 작가 개개인의 성향 차이일 거다.

개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

기술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결국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미적 형식을 낳는 것이거든. 새로운 형식이 곧바로 미적 형식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고 소화시킨 후에 본인의 특성과 융화되면서 뭔가가 확 나온다. 그게 케미스트리다. 연인이 만나는 것처럼 형식과 내용이 만날 때의 케미스트리. 그래서 요즘은 ‘블렌더’라는 3D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열심히 공부 중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예술가가 변화를 두려워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도약의 10년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어떤 일을 10년 동안 꾸준히 하면 10년이 지난 시기에는 반드시 도약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칙이 예술계에도 통한다고 여기나?

10년을 작업한 데에서 나오는 누적된 세계관과 생각의 깊이, 본인만이 쌓아온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통찰, 이런 건 더 유니크하게 다져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작업을 이만큼 해왔다는 사실에 스스로에 대한 다독거림도 생긴다. 그런데 중요한 게 10년 정도 예술을 한, 특히 40세를 전후로 한 기점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져 동어반복을 하거나 혹은 본인의 시그너처 스타일을 만들어서 그것만 재생산하는 등 슬럼프에 빠지기 쉽다는 거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게임의 시작이라고 본다. 여태까지는 워밍업이었다면 이제부터 진짜 게임의 시작이다.


이문주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 보스턴, 디트로이트 등 여러 도시에서 관찰한 사회적 폐허의 현장을 회화로 기록해왔다. 2005년 금호미술관, 대안공간 풀 등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본격적으로 국내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도시 이면을 대상으로 하는 기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도시는 생겼다 사라지는 일의 연속이다. 그중에서도 왜 폐허적 면모에 주목하나?

대학생일 때 우연히, 정말 우연히 지나가다 현저동이란 동네 풍경을 보았다. 당장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을 듯한 집이 반쯤 뭉개져 있었다. 생애 처음 본 재개발 현장이었다. 특히 젊은 학생 때는 단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뭔가를 많이 찾는 것 같다. 당시 나도 사회적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본 재개발 현장이 눈에 더 들어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때는 사진만 찍어놨지 바로 작업한 건 아니다. 왜냐면, 할 수가 없었다. 무거운 주제였고 ‘내가 그림에 잘 담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걱정을 덜게 된 건 언제인가?

30대에 돌아다닐 기회가 굉장히 많았다. 2000년에 유학 간 미국 보스턴은 도시 개발의 역사가 아주 잘 정리돼 있었다. 이중적 의미다.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는 것보다 더 심하게 순수 혈통이 사는 좋은 동네와 아일랜드인이 사는 동네, 이탈리아인이 사는 동네 등등 촘촘히 나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집값이 싸니까 흑인과 저소득층이 사는 경계에 살았는데, 그곳에도 내가 현저동에서 본 풍경이 있더라. 곧 사라질 게 분명한 그 풍경을 기록해야 했다. 그때 도시의 폐허적 면모를 기록하는 것이 내 작업으로 확실해진 것 같다.

기록 이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국에는 관찰자 시선에서 파괴되는 것, 사라지는 것을 지켜만 본다는 느낌도 있다.

도시 문제에 실천적으로 관여하는 예술가가 많다. 도시 구성원들과 협업하고 인터뷰하고. 나도 깊숙이 알려면 그렇게 했어야 했나, 더 밀어붙여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내게는 화가라는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주제를 회화로 풀어내는 시각적인 문제다. 사진 기록과 다르다. 나의 개인적 판단과 감수성과 시각 체험을 더해 새로운 장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회화로 해석하는 것이지.

표현의 매개체가 회화라는 점에서 어쩌면 더 정적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시각 예술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표피적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자극적인 장르다. 예를 들어 폐허 자체가 지닌 미학이 있지 않나. 미술사를 보면 고전적으로 난파선이라든지 유적을 그려왔다. 무너져가는 것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여기는 거다.

모래산 건설
‘디트로이트 톰슨가( Thompson Street, Detroit)’, 2006

모순적이네.

모순적이지. 원래 폐허란 엄청 회화적인 주제다. 붓 터치로 무너지게 그리면 시각적으로 호소력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경계심은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 빠지지 않도록 나름 노력해왔다고 생각한다. 대상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고 관찰하는 이유도 경계하기 위해서다.

원래 회화에 사진을 콜라주했는데 요즘은 잘 안 한다고 들었다.

내 이상한 감수성 때문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다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을 현상한 뒤 확대 복사해서 작업에 썼는데, 사진을 확대하다 보면 이미지가 깨지고 흑백으로 전환되면서 뭔가 새로운 미학이 발견된다. 오히려 거리감도 생기고 관찰 당시에는 몰랐던 부분을 사진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알아채게 되는 것이 있었다. 장소를 새롭게 만나는 거지. 그런데 요즘에는 디지털화되어 사진을 확대하면 그냥 픽셀이 된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도시의 변화만큼 개인적 변화에 민감한가?

장점이면서 단점인데 변화를 막 추구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사람을 존경은 한다. 30대에는 일부러 새로운 곳에 가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보스턴에서 디트로이트로, 또 서울에서 베를린으로,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해보자는 생각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그림에 자연스럽게 달라진 점이 보인다. 폐허 너머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면에서 그렇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나?

그런 것 같다. 사실 10년 전 그림에도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있었다. 다만 그때 인물은 단지 요소로 작용했다. ‘폐허를 멀찍이서 감상하는 여행자’ 식으로 역할을 부여해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한 요소였던 거다. 그런데 이제는 예전에 찍어둔 기록 사진을 봐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특히 이번에 전시한 작품 중 사실은 미완성인 작품이 있다. 노부부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왜 완성하지 못했나?

노부부가 베를린 장벽을 지나가는 모습을 그린 건데, 두 노인이 역사적 장소를 천천히 바라보며 지나가는 장면이 뭐랄까… 나는 그저 기록하는 관찰자라면 그들은 현장에 있는 사람 같았다. 지난 세월을 다 겪은 사람들이지 않나. 그 사람들이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이제는 다 지워진 배경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궁금했다. 그들 앞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도시의 모든 역사가 사실은 사람들 초상에 있는 거다. 그렇다는 걸 왜 그랬는지 노부부를 보고 깨달았다. 미완성인 이유는, 사람은 지금까지 항상 그리던 방식으로는 그려지지 않는 것 같아서다. 어떤 붓질로, 어떤 색채로, 어떻게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형식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새로운 과제네.

그렇다. 고민이다. 젊었을 때는 종횡무진 바꿀 수 있었는데.(웃음)

이번에 함께 전시하는 작가들을 두고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보여줘서 놀랍고 뛰어나다고 평했다.

정윤석, 김아영 작가는 현재 말 그대로 ‘센터’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다. 나는 옛날 작업부터 보여줬는데 이들은 신작을 보여줬다. 게다가 어떻게 보면 현학적인 주제를 끝까지 탐구해서 시각적으로 풀어냈다는 것 자체가 새롭고 신선했다. 나는 과거에서부터 보여주는데 이들은 너무나 현재적이지 않나.

오히려 그 점이 이문주 작가의 차별성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이상 ‘도시’라는 하나의 주제를 끌고 왔고, 여전히 주시하고 있다. 웬만한 저력 없이는 못 하는 일 아닐까?

사실 그림을 그리려면 방관자적 이상의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애정 없이는 또 그릴 수 없다. 그림을 그리면서 관심을 축적해가고 확대해가고, 인간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는 것 같은데, 참 양면적이다. 그림은 출구이자 고립이다. 그림을 통해 바깥 세계를 내면화하는 것과 동시에 완벽히 고립되어 그림과 마주하는 시간 역시 너무 중요하거든. 10년이든 20년이든. 

– 국내외 예술 현장에서 10년 이상 활동을 펼친 30~40대 작가들을 조명하는 프로젝트 는 4월 29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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