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에는 전설이 있다

새빨갛게 내려앉는 태양을 머금고 붉게 빛나는 바다 위로 먹으로 그린 것처럼 층층이 쌓인 산들이 이어져 있다. 마치 먼 옛날 그러했다는 전설 속의 풍경처럼 황홀한 시간이었다.

오전 7시 35분에 이륙하는 베트남 항공편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오자이를 입은 스튜어디스를 보니 베트남으로 향한다는 게 더욱 실감이 났다. 공산국가에서 운영하는 국적기에 대한 의구심이 없지 않았으나 여느 항공사 못지않게 준수한 기내 시설과 서비스를 경험하고 나니 베트남에 대한 익숙함과 생경함이 동시에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다섯 시간 조금 넘게 비행한 뒤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서 하노이 구도심에 있는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도로 위를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를 보고 또 봤다. 도로에 차선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럼에도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뒤엉키듯 어울려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혼재한 도로 풍경이 마냥 신기했다. 심지어 아직 출퇴근 시간 전이라 이 정도면 덜 복잡한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장 혼잡한 시간대의 풍경이 좀처럼 상상되지 않았다.

오토바이로 가득한 하노이 구도심의 도로.

하노이에서 묵게 된 숙소, 그러니까 베트남에서 첫날 밤을 보낼 곳은 하노이 구도심에 있는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였다. 364개의 객실을 보유한 이 호텔은 하노이 중심지인 구도심의 호안끼엠 호수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호안끼엠 호수 주변에는 맥주 거리를 비롯한 맛집과 하노이의 명소들이 인접해 있다. 하노이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삼기에 최적의 위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코르 호텔 계열에서 가장 최상위 등급인 소피텔 호텔 중에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을 ‘소피텔 레전드’라 명명한다.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는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했던 1901년에 건축한 건물을 호텔로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그 시절의 이국적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마치 이 호텔 자체가 유서 깊은 여행지라 해도 좋을 것처럼. 덕분에 해외의 유명인들도 하노이에 방문하면 이 호텔에 묵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의 고풍스러운 외관과 정갈한 실내.

어쨌든 하노이의 밤 문화를 즐기고자 호안끼엠 호수 근처의 맥주 거리로 향했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호수를 끼고 한동안 걷다 보니 사람들로 꽉 찬 좁은 골목이 등장했다. 하노이의 활기가 이 골목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발 디딜 틈 없이 길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제대로 온 것이 맞았다. 그곳에서 로컬 비어인 하노이 맥주를 마시니 정말 여행을 왔다는 것이 새삼 실감 났다. 현지에서 소비할 수 있는 가장 흔한 것을 소비할 때 진짜 여행을 왔다는 기분이 든다. 하노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이 즐비한 베트남 하노이의 맥주거리.

오전 일찍 조식을 챙겨 먹고 하롱베이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이렇게 좋은 호텔에서 단 하루만 지내야 한다는 건 여러모로 아쉽지만 이번 여행의 중력은 하노이가 아니라 하롱베이에 있었다. 영화 <인도차이나>와 <굿모닝 베트남>의 무대였던 하롱베이 말이다. 무엇보다도 하롱베이를 제대로 즐기는 건 하롱베이의 기암괴석 사이에 정박한 크루즈에서 며칠을 보내는 것일 테다. 나는 하롱베이에서 크루즈를 운영하는 프리미엄 선사 바야크루즈의 최고급 크루즈인 오코(Auco) 크루즈에서 이틀을 보낼 예정이었다.

고질라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거대한 하롱베이의 기암괴석.

카약을 타야만 통과할 수 있는 해상 동굴.

오코 크루즈는 하롱베이에서 운영하는 크루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럭셔리 크루즈다. 무엇보다도 오코 크루즈의 가장 훌륭한 점은 전체 32개의 선실 모두에 발코니가 있다는 점이다. 하롱베이를 항해하는 크루즈에서 이틀을 보낸다는 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하롱베이의 다양한 표정을 수집하고 만끽하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니 반짝이는 햇살이 부서지는 아침의 바다와 뜨거운 낯빛을 한 일몰과 함께 빨갛게 물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발코니가 있다는 건, 하롱베이 위에서 며칠을 보내기로 결심한 당신이라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목적지여야 마땅하다.

바야크루즈에서 운영하는 오코 크루즈.

선상 어디에서든 하롱베이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오코 크루즈의 실내와 선상.

선내에서 제공하는 식사도 훌륭했다. 뷔페인 조식을 제외하면 점심과 저녁은 풀코스 메뉴가 제공되는데 선상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창밖으로 중계되는 하롱베이의 풍경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호사다. 무엇보다도 서비스가 대단히 훌륭한 편인데, 한 테이블의 손님이 버섯이 들어간 메뉴를 안 먹겠다고 하자 신속하게 당일 메뉴판에 있지도 않은 메뉴로 바꿔 제공하는 모습에서 친절 이상의 정성이 느껴졌다. 사실 베트남에 와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 상냥하고 잘 웃는 편이라 낯선 외국인 입장에서는 친근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데 그네들의 서비스 또한 그런 천성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롱베이의 수상 마을에서 뱃사공이 노를 저어주는 뱀부 보트를 타고 하롱베이의 해수면과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서 하롱베이의 절경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하롱베이에 정착한 이들이 모여 사는 수상 마을의 풍경을 보며 소박함과 가난함 사이의 어디쯤에 있을 그들의 삶을 잠시 생각해봤다. 실제로 수상 마을에 살다가 도시로 나간 이들이 각박한 도시의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베트남 정부에서는 수상 가옥에 사는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려 한다는데 그것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어쨌든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고, 해가 진 바다는 밤이라는 시간에 한 점 부끄럼없이 까만 밤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창밖으로 아침의 바다를 마주한다는 건 역시나 대단한 호사였다. 하롱베이의 풍경을 마주하며 조식을 먹고 깟바섬으로 향했다. 하롱베이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했다. 이 섬에 거주하는 사람만 1만3000명이라 했다. ‘깟바(Cát Bà)’라는 이름은 여자 섬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섬에 전설이 하나 전해져온다. 오래된 왕조의 여성이 살해당해 깟바섬까지 떠내려왔는데 주민들이 사원을 지어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모계사회였으며 지금도 여성이 경제력을 책임지는 가정이 적지 않다고 한다. 깟바섬에서 농사짓는 이들도 대부분 여자였다. 생각해보면 하노이에 있는 국보 1호 일주사에도 관음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이 모계사회라는 것이 새삼 실감 나는 대목이었다.

깟바섬에 있는 비엣하이 마을에는 집집마다 어린아이들이 있는데 눈을 마주칠 때마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티 없이 맑은 얼굴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망중한을 즐기는 개와 한가하게 꼬리를 흔들며 풀을 뜯는 소들도 보였다. 깟바섬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채소와 과일은 오코 크루즈의 식재료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크루즈의 투어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깟바섬의 경제력도 조금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크루즈 관광이 하롱베이 주변 주민들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니, 여행의 낙에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 기분이었다.

하롱베이의 수상에서 보낸 시간은 특별하면서도 기이한 체험이었다. 바다 위에서 잠을 잔다는 건 불안하지만 낭만적인 일이다. 허공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크루즈에 승선한 뒤에 특별히 불편을 느낄 일은 없었다. 다만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이 돌아갈 날은 오게 돼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마지막 위안일 것이다. 한편으론 하롱베이의 수면 위에서 목격한 천혜의 자연이 주는 경이감에 빠져들면서도 바다 위에서도 삶을 영위해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여의주를 비춰 기암괴석을 일으키고 베트남을 지켰다는, 하롱베이의 오래된 전설. 용의 가호는 그들의 오늘날의 그들에게도 유효할까? 그렇다면 한번 믿어보고 싶어졌다. 하롱베이의 전설을 믿고 싶어졌다. 

*기사의 이미지는 모두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8으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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