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다이닝의 시대가 올까?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의 가능성에 관하여.

파인다이닝, 발음해보면 입에 착 감기는 단어다. 이 단어를 우리가 입에 올린 지는 몇 해 되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셰프들이 미디어를 통해 스타로 등극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자된 파인다이닝은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발간되며 더욱 빈번히 출현했다. <미쉐린 가이드>의 상징이자 핵심 가치인 별점 제도가 애초에 파인다이닝을 가려내고자 고안된 장치였기 때문이다. 물론 싱가포르 편에서 길거리 음식점에 별을 수여하는 변수가 발생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7년에 발간한 개정판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 소재한 레스토랑 중 두 곳이 3스타, 네 곳이 2스타, 19곳이 1스타에 해당한다. 고로 서울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총 25곳 있다는 얘기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미쉐린 가이드>가 선정한 결과일 뿐이다. 실제로 서울에서 파인다이닝을 표방하는 레스토랑의 수는 훨씬 많다. 다만 <미쉐린 가이드> 이전에는 서울에서 레스토랑의 등급을 표준화할 기준이 없었을 뿐이다. 호텔만 해도 별, 무궁화, 다이아몬드 등 문화권마다 동일하게 적용하는 등급제가 존재한다. 대개 레스토랑을 패스트푸드, 패스트캐주얼, 캐주얼다이닝, 파인다이닝으로 구분하는 것이 보편적 추세이지만, 그 기준이 모호하여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에 따라 상향 지정이 가능하다.

식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다이닝(dining)’ 앞에 붙은 형용사 ‘파인(fine)’이 훌륭하고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이제 초등학생도 알 것이다. 그리고 흐린 날이 갠 뒤 맑아진 날씨를 ‘It’s fine’이라고 표현하는 건 일종의 ‘고진감래’와 같은 의미다. 고생 끝에 오는 즐거움이 더 크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파인다이닝’은 쉽게 말해 레스토랑의 ‘끝판왕’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예술계에서 순수 예술을 ‘파인 아트(fine art)’라 명명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자의적 해석을 넘어 자타가 공인하는 파인다이닝이 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그 해답은 아무래도 <미쉐린 가이드>는 물론, 파인다이닝 문화가 처음 도래한 프랑스 미식계의 보편적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셰프의 이력을 가장 중시합니다. 유럽 예술 계통에서 뿌리 깊은 도제 제도의 영향입니다. 제아무리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꾸며도 셰프의 경력이 짧으면 파인다이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셰프 아래에서 어떻게 수학하며 도제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파인다이닝의 수준과 진위 여부가 판가름 납니다. 또한 음식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굉장히 많은 산물 중 의약품과 함께 유일하게 몸속으로 들어갑니다.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브리야 사바랭의 명언은 비단 취향이나 기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음식은 건강과 직결되는 요소인 만큼 위생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위생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는 기본이고 레스토랑의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인력과 예산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요소를 모두 충족했을 때 비로소 파인다이닝의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습니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프랑스 레스토랑 ‘메르씨엘’ 윤화영 셰프의 설명이다. 10여 년 동안 프랑스의 특급 호텔과 파인다이닝 주방에서 경력을 쌓은 윤 셰프는 누구보다 프랑스 미식 문화에 정통하다.

“국내 셰프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포크, 나이프 놓으면 다이닝, 식탁보 깔면 파인다이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말에 실소를 터뜨리자 윤 셰프는 자못 진지한 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닙니다. 식탁보 한 장을 세탁하는 데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아십니까? 1만원입니다. 보통 매출을 100%로 잡으면 인건비가 35%, 재료비가 30%, 임대료, 감가상각비, 보험, 이자 등의 금융 비용을 제외한 일반 관리비, 즉 수도, 전기, 가스, 통신비 일체가 15%씩 빠져나갑니다. 거기에 식탁보 세탁비까지 감당해야 하죠. 그러려면 테이블당 매출이 적어도 15만원 이상이 나와야 합니다.” 테이블마다 새하얀 식탁보를 까는 일은 음식의 가격대가 높은 파인다이닝만이 부릴 수 있는 사치다. 실제로 <캠브리지 영영사전>이 내린 파인다이닝의 정의는 이와 같다. “a style of eating that usually takes place in expensive restaurants, where especially good food is served to people, often in a formal way.” 한글로 옮기면 ‘대단히 훌륭한 음식을 주로 격식을 갖추어 제공하는 값비싼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라는 것인데 어김없이 ‘비싸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물론 이를 두고 파인다이닝의 경지에 오르는 필수 조건이 비싼 가격이라 여긴다면 역시 오산이다. 훌륭한 음식을 격식을 갖추어 서비스하려면 자연히 높은 비용이 발생하고, 그에 합당한 가격대가 책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에 문을 연 파인다이닝 중 큰 관심을 모으는 곳은 ‘더 테스트 키친’ 출신의 박무현 셰프가 오픈한 ‘무오키’다. 더 테스트 키친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외진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임에도 영국 잡지 <레스토랑>이 발표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22위를 기록했다. 영국의 ‘팻덕’, 호주의 ‘키’에 이어 더 테스트 키친에서 수셰프를 역임한 박 셰프는 파인다이닝을 ‘감동을 주는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예약하는 순간부터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까지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게 파인다이닝입니다. 완벽에 가까운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음식과 서비스, 인테리어, 와인, 편의 시설 등이 레스토랑이 위치한 지역의 문화 안에서 최고 수준을 갖춰야 합니다.” 줄곧 해외에서 요리를 해온 박 셰프는 한국 사람들이 꿈꾸는 파인다이닝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그보다 앞서 정착한 셰프들이 차린 파인다이닝을 찾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이 정말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았다.

“레스토랑을 열겠노라 선언했을 때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굉장히 높았어요. 남들이 안 된다고 하니 더 하고 싶은 오기가 생겨 악착같이 준비했습니다.” 박 셰프가 외부인의 도움 없이 전 재산을 털어 자신만의 파인다이닝을 연 배경에는 오기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고요,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의 전망이 밝다고 확신했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레스토랑들도 사정이 어려운 판국에 시장을 낙관한 근거는 무엇일까.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은 현재 걸음마 단계로 앞으로 해외 시장처럼 꾸준히 성장하리라 봅니다. 또 우리 국민이 미식의 세계에 눈을 뜨며 해외여행의 코스로 미쉐린 레스토랑을 찾는 경우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들이 한국에 돌아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찾으리라 예상합니다.” 실제로 무오키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레스토랑>이 선정한 파인다이닝에서 일한 셰프가 차린 가게라는 이유로 방문하는 이가 꽤 있다고 한다. “서서히 늘어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개수도 고객층이 두꺼워진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요?”
파인다이닝에서 일어나는 비일상의 경험은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날로 각인시킨다. 그 경험은 때로는 열심히 달려온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자 오늘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특별한 순간을 일상에서 좀 더 자주, 그리고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식업계 종사자들은 파인다이닝 문화가 국내에 잘 정착하려면 개선할 점들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윤화영 셰프는 서비스업 종사자를 대하는 태도를 우선으로 든다. 홀 서버를 하대하는 성향이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는 이야기다. 박무현 셰프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타 셰프가 등장하고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오면서 국내에서도 셰프를 꿈꾸는 학생이 느는 반면, ‘레스토랑 매니저’를 장래 희망으로 고려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서버들 또한 자신의 일을 평생 직업으로 여기는 경우가 드물고요. 상황이 이러하니 파인다이닝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적임자를 찾았다고 한들, 희소성 때문에 인건비가 주방 인력에 비해 높게 형성돼 있어 레스토랑으로서는 부담이 큽니다.” 결국 서비스업 종사자를 하대하는 사회 인식 때문에 이를 장래 희망이나 평생 직업으로 여기는 경우가 드물고, 그로 인해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초래됐다.

파인다이닝은 높게 책정된 가격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음식을 팔아서 운영하는 게 힘든 구조다. 식재료가 차지하는 비용이 높은 데다 인건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저희는 수용 가능한 손님 수가 15~20명인데, 직원은 11명입니다. 견습생까지 합치면 13명이고요.” 서비스의 질은 상당 부분 인력에서 판가름 난다. 일례로 크루즈의 등급을 매기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설이나 선체 크기가 아니다. 승객 대비 승무원의 수다. 럭셔리 등급에 해당하는 크루즈는 승객과 승무원의 수가 거의 비슷하다. 이는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다. 음식만큼이나 서비스가 레스토랑의 수준을 좌우하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에 기본 비용이 높은 파인다이닝이 적자를 면하려면 음료, 즉 와인을 팔아야 한다. “손님 중에 와인을 여러 병 가져와서 코르키지 비용을 깎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돌아가면서 분위기며 음식이 너무 마음에 들어 또 오고 싶다고 할 때마다 재방문할 수 있도록 레스토랑이 오래 버티려면 저희가 정해놓은 룰 안에서 서비스를 이용해주시기를 간청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박무현 셰프가 파인다이닝을 직접 운영하며 느낀 고충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실제로 파인다이닝 문화가 좀 더 보편화된 해외에서는 와인을 주문하는 것이 불문율과 같다. 고객 입장에서도 자주 찾는 레스토랑이 장기적으로 발전하고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애정 어린 투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와인이 기호에 맞지 않거나 여전히 낯선 이들에게 이는 해결해주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어쩌면 레스토랑 역시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내 문화권에 맞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윤화영 셰프는 레스토랑이 개선해야 할 점을 덧붙여 설명했다. “최근 국내 파인다이닝들이 원 코스 메뉴를 지나치게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원 코스 메뉴는 해외에서도 꽤나 인기 있는 전략이지만, 우리나라만큼 편향돼 있지는 않습니다.” 원 코스 메뉴란 점심, 저녁 각각의 서비스 시간에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하나이며, 주요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음식이 이미 결정된 대로 서비스되는 체제를 말한다. “하나의 확정된 메뉴로 운영하면 음식의 완성도를 높이고 재료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실력을 완벽히 갖추지 못한 경력 5년 미만의 어린 요리사 입장에서는 매일 똑같은 요리만 하다 보니 실력을 키울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훌륭한 인력이 많아야 그 시장이 발전합니다. 당장 힘들더라도 단품 메뉴나 프리 픽스 메뉴를 늘려 주방 인력의 실력을 높이는 동시에 고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박무현 셰프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에서는 정식당 이후에 진정한 의미의 파인다이닝 시대가 열린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파인다이닝에서 가장 주목받는 셰프들 대부분이 30대입니다.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가 저와 같은 1984년생이기도 하고요. 현시점에서 저희 세대의 셰프들이 지닌 내공이 다소 부족할 수 있겠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강민구 셰프가 20년 후에 내놓을 음식은 얼마나 훌륭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제가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을 밝게 전망하는 이유입니다.” 그야말로 ‘파인’ 다이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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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 주연(미식 칼럼니스트)
사진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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