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냉면집 1편 평남면옥

흔한 음식도 맛과 사연을 담으면 치명적이다. 산미 강한 동치미 국물로 만든 이북식 평양냉면은 분명 치명적이었다. 강렬했던 ‘첫경험’이었기에 완벽히 즐기지 못했지만 분명 다시 가서 제대로 해내고 싶은 맛이었다.

동두천의 ‘그’ 평양냉면을 먹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경기 전곡에 볼일이 있어서 갔던 다음 날, 아는 선배를 만났다. “평양냉면 좋아해? 어제 술 마셨으면 해장에 아주 딱인 곳이 있거든.” 글쎄. ‘평뽕족’으로 유명한 존박만큼은 아니지만 입맛 없을 때 가끔 냉면을 찾는 걸 보면 좋아하는 음식은 맞을 것이다. ‘나이 들수록 무엇이든 선뜻 좋아한다 말하기가 쉽지 않구나’란 생각도 잠시, 선배가 “알싸한 동치미국물에 말아먹는 냉면이라 도전해 볼만 할거야”라고 말했다. 삼삼한 맛에 먹는 게 평양냉면인줄만 알았는데 동치미국물에 나온다니 갑자기 그 맛이 궁금했다.

동두천시 생연동의 ‘평남면옥’은 한국전쟁 때 남하한 평양 출신의 고 김병두 사장이 처음 연 정통 평양냉면집이었다. 1953년 열었다고 하니 벌써 65년째 한 자리에 있는 것. 2000년대 들어 고 김병두 사장은 오랫동안 함께 한 동료인 윤혜자 사장에게 물려줬고 그녀는 아들과 함께 지금까지 평남면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가게에 들어서니 65년째 이어온 식당이라 해도 특별히 낡고 비좁은 느낌은 없었다. 1년 내내 여는 가게답게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에 오히려 특유의 따뜻한 기운이 피어있었다. 그 때 ‘평양냉면 8천원’이란 가격이 눈에 띄었다. 늘 비싼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1만원 미만의 평양냉면 맛집을 찾다니 가벼운 충격이었다.

냉면을 시키면 육수를 담은 주전자가 나오는데 면수나 고기 육수가 아닌 동치미 국물을 마주하게 된다. 이 냉면집에서 동치미 국물과의 첫 대면.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컵에 따라 들이키고 먼저 나온 열무김치, 동치미 무를 씹어 먹으니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났다.

 

이어서 나온 평양냉면은 확실히 서울에서 즐겨 먹던 냉면집의 모습과는 달랐다. 일단 면의 색깔은 확실히 검은 편이었고 굵기 역시 다른 평양냉면보다 두꺼웠다. 메밀의 껍질을 까지 않은 상태에서 정제해서 좀 더 검은색을 띠니 춘천에서 먹던 막국수의 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냉면의 국물 맛을 보기 위해 그릇째 들이켰다.(평소엔 침착하게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산미가 느껴지는 동치미 국물이 확실했고 아주 예민한 미식가들은 고기 육수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론 크게 느끼지 못했다. 산미가 강하니 못 먹겠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사실, 홍어나, 묵은지, 동치미 등 숙성 음식들은 잘 삭힐수록 오히려 거부감 없는 신맛과 단맛이 함께 어우러지는데 딱 그 정도의 산미였기 때문. 얼마 전 먹었던 ‘보리보쌈’의 홍어삼합이 역한 냄새가 나지 않고 박하향에 가까웠던 것도 잘 숙성시킨 음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명으로 올라간 오이, 동치미 무, 배를 집어 냉면과 함께 먹으니 입안 가득 신선함이 느껴졌다. 신맛을 강하게 느꼈다면 역시 고명으로 곁들인 편육과 냉면을 함께 싸먹는 것을 추천한다. 그럴 리 없겠지만 편육을 먹었는데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반찬으로 나온 열무김치와 동치미 무를 사이 좋게 한입씩 먹고 냉면 국물을 들이키면 된다.

사실, 이북의 평양냉면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으론 꿩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적절할 비율로 섞어 만든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전파되면서 꿩을 비롯해 닭, 소, 돼지 등의 육류로 육수를 내는 집이 있는데 비교적 고기를 구하기 쉬운 우리의 사정상 가능한 일일 것. 북한에선 오히려 동치미 국물의 비율이 훨씬 높은 냉면이 더 대중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맛이 진짜 평양냉면인지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다만, 평남면옥의 평양냉면은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은 확실했다. 여름엔 돼지고기 편육이 고명으로 올라가는데 겨울엔 특별히 꿩 고기를 뼈째 갈아서 편육을 만들어 올려준다고 하니 당연히 겨울에 다시 갈 생각이다. 물론 뜨거운 여름이 코앞인데 그 전까지 참고 안 가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강렬했던 ‘첫경험’이었기에 완벽히 즐기지 못했지만 분명 다시 가서 제대로 즐기고픈 맛이었으니 말이다.

Add. 경기 동두천시 생연동 824-28

Tel. 031-865-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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