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절명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OST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OST LP판의 커버 아트는 영화 그 자체다.

지난 6월 27일에 개봉한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를 보고 나서 문득 전작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이하 <시카리오>) OST LP판 커버 아트가 생각났다. 두고두고 회자될 비범한 전작에 비해 평범한 할리우드발 범죄물로 평준화된 속편이 갖지 못했던 전편의 재능이 이 커버 아트에 망라돼 있기 때문이었다. 전작의 주연배우 중 한 명인 에밀리 블런트, 촬영감독 로저 디킨슨과 감독 드니 빌뇌브라면 포착하고 연출해냈을 법한 유려하고 신묘한 긴장감과 중압감의 찰나, 그리고 음악감독 요한 요한손까지, <시카리오>가 이룬 모든 성취가 이 커버 아트에 집약돼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단 하나의 컷으로 압축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카리오> OST를 LP판으로 구입하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본래 LP가 아닌 CD로 구입할 생각이었으나 CD판의 커버 아트보다 LP판의 커버 아트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음악이란 극적인 감상을 보완하기 위한 청각적 병풍에 가깝지만 어떤 영화에서는 주연배우에 견줘도 좋을 만큼 또렷한 캐릭터의 위치를 차지한다. 음악 자체가 하나의 형상으로 선연한 기억을 남긴다. 그런 영화의 OST를 다시 듣는다는 건 결국 영화를 다시 보는 것과 유사한 경험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를 볼 때 온전히 느낄 수 없었던 감각적 체험을 보존하는 행위이다. <시카리오>가 그렇다. 바늘 끝을 마주 보고 있는 듯한 긴장감을 전하는 현악기의 떨림과 현실감을 일깨우듯 중량감 있게 진동하는 타악기의 울림이 서서히 고조되며 점차 영화 속 장면에 밀착하고 캐릭터의 감정과 공명한다. <시카리오>의 타이틀 스코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두 번째 트랙 ‘The Beast’는 영화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사운드이자 <시카리오>라는 영화를 청각적으로 압축해낸 결정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음악가 요한 요한손은 유럽에서 영화음악감독으로 활동하다 드니 빌뇌브의 <프리즈너스> 음악감독을 맡으며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됐다. 그 뒤로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와 <컨택트>에 연이어 참여하며 점차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음악이 로저 디킨스의 촬영술과 함께 드니 빌뇌브의 작품에 생생한 감각을 새겨 넣으며 그는 독보적인 영화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음악감독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비록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음악감독직을 맡았다가 의견 차이로 하차하긴 했으나 드니 빌뇌브의 차기작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은 늘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게 됐다. 

<시카리오> 속편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요한 요한손을 추모하는 문구가 등장한다. 그는 지난 2월 9일 베를린의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향년 48세였다. 속편의 후반부에는 전작의 정서를 지배하던 스코어 ‘The Beast’가 흐른다. 절명한 대가가 남긴 절정의 유산이 계승된다. 하지만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는 유산이다. 애석하다. 정말 애석한 일이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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