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시 뮌헨

뮌헨을 걸었다.

“뮌헨은 이상한 동네야. 바깥은 전부 옛날 고딕 스타일인데 안은 다 뉴 스타일이야. ‘스트레인지 시티’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머리에 동그란 눈, 다소 높은 옥타브라서 그런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지닌 발레리가 우리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며 말했다. 발레리는 한국에서 온 기자 네 명과 일본에서 온 기자 두 명에게 하루 동안 뮌헨 도심을 구경시키기로 한 가이드이다. 다국적 관광객이 모여 셀카봉을 뻗고 있는 마리엔 광장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뮌헨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는 쇼핑몰 ‘다섯 마당(Fünf Höfe)’이었다. 갑자기 쇼핑 타임인가 싶었는데 이곳이야말로 ‘바깥은 전부 옛날 고딕 스타일인데 안은 다 뉴 스타일’의 최신판이었다.

다섯 마당은 원래 뮌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딕 양식의 유서 깊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이를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드 뫼롱을 필두로 독일의 힐머&자틀러사, 이바노 지아놀라가 합심해 리모델링한 결과 지금의 쇼핑몰이 탄생했다. 동서남북으로 5개의 출입구가 있어 다섯 마당이라 부르는 이곳은 실제로 도심 어디서든 쉬이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다만 그 입구가 하나같이 뮌헨의 오랜 건물들 틈바구니에 묻혀 있어서, 하얀 글씨로 쓰인 간판만 아니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그만큼 도심 한가운데 대형 쇼핑몰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렵다. 뮌헨 사람들은 이곳을 숨은 랜드마크라 부른다.

안에 들어서면 중세에 백화점이 있었다면 이런 모양새였겠구나 싶다. 다양한 상점이 붉은색 벽돌 벽과 아치 형태의 터널을 따라 늘어서 있다. 내부 형태는 들어오는 입구마다 달라서 내가 본 풍경을 여러분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해리포터의 9와 4분의 3 승강장 같다. 물론 누구나 똑같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다섯 입구가 한데 모이는 심장부이다. 이곳은 천장이 확연히 높아지며 광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 높은 천장에는 식물이 크리스털 샹들리에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발레리는 천장을 가리키며 진짜 식물이라고 강조했다. 놀랍지 않느냐며 어깨를 으쓱하는 발레리를 향해 미소 지으며 끄덕였지만 속으론 생각했다. ‘서울에는 2년 전쯤부터 이런 행잉 플랜트 인테리어가 유행인걸.’ 이어지는 그의 설명에 할 말을 잃었지만. “이게 15년 전 작업이야.”

 

#

뮌헨은 걷기 좋다. 누군가는 뮌헨을 두고 거쳐가는 도시라고, 유럽 여행 중 당일치기로 들러도 충분한 곳이라고 한다. 그 말은 천천히 걸으며 가까이 들여다보기 좋은 도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날 발레리와 함께 시티 투어를 하며 내내 걸어 다녔다. 덕분에 뮌헨에 세 집 건너 한 집은 디자인 가구 스토어라는 사실을 알았고(과장을 조금 보탰지만 적지 않은 수인 것은 분명하다. 왜 이렇게 가구점이 많은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이 많으며(도심인데도 말이다),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더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대다수 유럽 도시의 공통점일 수 있으나 그만큼 뮌헨이 여느 도시에 비해 특별히 지루한 곳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걷고 걸어 우리는 발레리가 가장 사랑한다는 미술관에도 들렀다(이쯤 되면 발레리 개인 투어 같겠지만 이번 여행은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가 초청한 투어였다. 루프트한자는 뮌헨으로 빠르고 쾌적하게 데려다준다). 나는 이 미술관이야말로 뮌헨이란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의 이름은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피나코테크는 미술관, 모데르네는 현대라는 뜻으로, 즉 현대미술관이라는 의미다. 뮌헨 현대미술관이 아니라 그냥 현대미술관. 작명이 우연인지 자신감인지 이 현대미술관은 뮌헨을 넘어 유럽 최대 규모다.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가 뮌헨을 대표한다고 생각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건축물이 말도 안 되게 간결하다. 콘크리트의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벽면, 길게 뻗은 기둥의 외관에는 어떤 꾸밈도 없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오직 회색과 흰색, 스틸 소재로 이루어진 공간의 유일한 장식은 작품뿐. 덧붙여 채광을 위한 돔 형태의 천장 정도라고 할까. 이 미술관을 지은 건축가는 슈테판 브라운펠스다. 그는 뮌헨이 주도인 바이에른주의 또 다른 도시 아우크스부르크 태생의 건축가다. 브라운펠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그의 성향 자체가 내세우지 않는 건축을 추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건축가를 선정했다는 데 있다. 48개 유럽 나라 중에서도 가장 많은 소장품 규모를 자랑하는 이 웅장한 미술관에서.

짚어보면 건축이나 인테리어가 무서우리만큼 기능적이고 간결하며 그렇기에 현대적이라는 느낌은 도시의 첫 관문인 뮌헨 국제공항에서부터 받은 인상이다. 엘리베이터에는 버튼만 있고(당연한 것이지만 드문 일이기도 하다), 주요 컬러는 흰색과 검은색 혹은 회색이었다. 멋 부리지 않아 멋있는 디자인은 뮌헨 국제공항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인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모르게 내재된 ‘독일 감성’인 것인지 궁금했다. 뮌헨 국제공항의 해외 홍보를 담당하는 코리나는 그에 답했다. “음, 잘 모르겠어요. 원래 이런걸요.” 프로페셔널한 그녀가 정말 몰라서 모른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를 듣던 루프트한자의 홍보 담당자 조이가 흥미롭다는 듯 끼어들었다. “뮌헨은 확실히 달라요. 프랑크푸르트 공항과는 완전히 다른걸요.” 문득 훗날 바우하우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공작연맹의 출발점이 뮌헨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뮌헨은 걷기 좋다. 누군가는 뮌헨을 두고 거쳐가는 도시라고, 유럽 여행 중 당일치기로 들러도 충분한 곳이라고 한다. 그 말은 천천히 걸으며 가까이 들여다보기 좋은 도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가 뮌헨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이유는 컬렉션을 향한 이들의 욕구 때문이다. 미술관을 둘러보다 보면 최소 2박 3일쯤은 미술관 안에서 숙식하고 싶어진다. 그만큼 방대하다. 어느 정도로 방대하냐면, 앤디 워홀과 팝아트에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로 불리는 앤디 워홀이 이곳에서는 ‘막내’로 여겨질 정도다. 미술관을 안내해준 큐레이터이자 홍보 담당자 제니퍼는 나슬로 모호이너지, 안젤름 키퍼, 네오 라우흐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보다 상대적으로 낯선 예술가를 소개하는 데 열성이었다. 미술관 투어 끝에 그녀는 자기 취향의 그림만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인사했다. 전혀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다. 모두 현대 예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거나, 미치고 있거나, 미칠 예술가였다.

솔직히 말하면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를 둘러보며 나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회화나 설치 작품은 물론이고 임스, 미스 반데어로에, 마르셀 브로이어, 디터 람스 등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무심히, 엄청나게 전시해둔 모습을 보며 이 굉장한 수집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궁금했다. 게다가 발레리의 말에 따르면 주변에 최소 16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더 있었다. 왜 이렇게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은 것일까. 어떻게 이런 방대한 컬렉션이 가능한 것일까. 뮌헨이 유별난 것 아닌가.

“다른 도시도 그렇지 않나요?” 바이에른 관광청 홍보 담당자인 스테파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내가 모르는 소소하나 훌륭한 갤러리, 미술관, 박물관이 많으니 개수가 중요한 일은 아닐 터였다. 다시 물었다. 하지만 소장품의 가짓수나 카테고리가 상당하지 않느냐고. 스테파니는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바리아(뮌헨이 주도인 바이에른주의 영어식 이름으로 대부분 바바리아라고 부른다)는 역사가 길고 무엇보다 루트비히 왕조 국가였으니까요.” 역사가 길다는 말에는 그만큼 수집에 들인 시간과 소재가 풍부하다는 의미가, 왕조 국가라는 말에는 수집가로서 수단과 방법을 갖춘 사람이 존재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미술관 근처에는 18세기 이전 미술품을 소장한 알테 피나코테크와 근대 회화를 소장한 노이에 피나코테크가 있는데, 모두 루트비히 1세가 만든 미술관이다. 이를 계승해 2002년에 개관한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까지…. 이 세 미술관만 돌아도 초·중·고 교과서에 등장하는 미술사를 죄다 경험하는 셈이다. 미술관 투어를 도와준 큐레이터 제니퍼가 괜히 미국에서 온 게 아니었다. 미국인 제니퍼는 음악을 표현한 것이라는 칸딘스키 그림 앞에서 말했었다. “제 고향인 루이지애나는 재즈가 유명하고 나는 예술이 좋아 뮌헨에 왔어요.”

#

루트비히 왕조 때부터 시작된 컬렉션, 즉 수집하고 소장하고 보존하는 행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뮌헨 도시 자체가 그 증거다. 뮌헨에는 오래된 석고상이 떨어질까 미세한 그물망을 쳐놓은 18세기 고딕 양식의 건축물과 그런 화려한 건축물에 어우러지도록 간결하게 지은 현대건축물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역설적이게도 뮌헨이 한 번 무너진 도시라는 사연이 있다.

“뮌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거의 잿가루가 된 도시야. 융단폭격을 맞아 3%도 안 되는 건물만 남고 모두 파괴되었지.” 미술관에서 나와 천천히 걸어 다시 마리엔 광장에 들어서자 발레리가 고백하듯 말했다. 이 정교한 도시 뮌헨이 스러진 적 있다니. 발레리는 광장 근처 어느 성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성 피터 성당이라고 했다. 차분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나지막이 이어 말했다. “뮌헨은 원래의 도시 모습으로 재건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어.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원조를 받아가면서 말이지. 와중에 이 성 피터 성당은 뮌헨 시민의 힘으로 다시 재건한 곳이야. 오직 뮌헨 시민의 손과 시간으로. 그래서 뮌헨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지.”

뮌헨으로 떠날 때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라는 책을 챙겨 갔다. 뮌헨의 문화재 건물 전문가인 임혜지 씨가 유럽의 건축에 대해 쓴 책이다. 늘 그렇듯 정작 여행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읽지 않고 돌아와서야 펼쳐본 책에는 뮌헨에 대해 이런 구절이 있었다. “많은 건물들이 외형만 오리지널인 쭉정이이고, 철거 후에 현대식 자재로 완전히 다시 지으면서 겉모양만 옛것을 본뜬 모조품도 적지 않다.” 다소 터프하기는 해도 뮌헨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과 같은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폭격을 받고 그참에 새로이 태어난 베를린이나 다른 여러 도시와 달리 뮌헨은 왜 그토록 옛 유산을 그대로 수집하고 재건하고 보존하려 했을까. 임혜지 씨는 이런 문장도 적었다. “그러나 쭉정이와 모조품을 통해서라도 옛날의 영광을 엿볼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작가의 말대로 뮌헨은 왕조 국가가 이뤄낸 문화적, 명예적 부유와 영광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발레리는 바바리아 전통 의상을 판매하는 가게 앞에 섰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복 가게쯤 되려나. 남자는 반바지, 여자는 원피스에 앞치마를 두른 모양새인데 뮌헨 시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며, 9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 뮌헨 옥토버페스트에 많이들 입는다고 했다. 자신도 있다며 웃었다. 그러곤 강조했다. “대신 베를린에서는 절대 입지 마. ‘대체 저 옷은 뭐야?’ 하고 쳐다볼 테니까.”

이렇게 말하는 발레리는 사실 프랑스인이다. 프랑스보다 독일이 좋아 뮌헨에 산다고 했다. 아까 뮌헨을 두고 분명 ‘스트레인지 시티’라고 해놓고서. 가끔 ‘이상하다’는 말에는 애정보다 더 깊은 애정이 묻어 있는 법이다. 조금 다른 독일. 멈춰 있는 듯 여전히 흐르는 시간의 공간. 옛것의 영광을 오늘로 이끄는 곳. 뮌헨의 거리는 고요했다. 고고하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이상한 거리를.

뮌헨을 즐기는 방법

가는 법

루프트한자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은 인천에서 뮌헨으로 주 6회 운항한다. 특히 이코노미 클래스 대비 개인 공간이 50% 더 넓으면서 요금은 비즈니스 클래스보다 저렴한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가 있어 보다 합리적이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편하게’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인체 공학적 설계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www.lufthansa.com

자는 곳

바이에른 호프 호텔

18세기에 루트비히 1세의 명으로 지은 호텔. 루트비히 1세가 아끼던 독일 절충주의 건축의 거장 프리드리히 폰 게르트너가 지었다. 루프톱에서는 뮌헨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데, 성모교회 쌍둥이탑(98.5m)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뮌헨이기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호텔 내에는 뮌헨 최초의 미슐랭 3스타인 레스토랑, 아틀리에가 있다.
www.bayerischerhof.de

즐길 거리

프란츠 마르크 뮤지엄

독일 화가 프란츠 마르크를 비롯해 그가 속해 있던 독일 예술가 그룹 ‘청기사’의 표현주의 예술을 모은 곳. 뮌헨에서 차로 40분가량 떨어진 코헬 지역에 있다. 호수와 산을 끼고 있어 독일의 고즈넉한 시골 풍경과 예술 속에서 쉬고 싶을 때 찾아가면 좋다. 미술관 옆에는 현지인이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 추천한 카페도 있다.
www.franz-marc-museum.de

뮌헨 국제공항 에어브로이

독일에서는 집에 돌아가는 길까지 신선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뮌헨 국제공항의 에어브로이(Airbrau)는 세계 최초로 공항 내에 자리한 양조장 겸 펍. 대체 독일은 왜 맥주가 유명한지 독일인에게 물었더니 어떤 첨가제도 없이 보리, 홉, 이스트, 물, 이 네 가지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이 있다고. 그만큼 깨끗하고 맛있다. 에어브로이도 물론 그렇게 맥주를 만든다.
www.munich-airport.de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