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낙관한다

불황에서 출발한 위워크가 바꾼 우리의 일과 삶.

자의식이 강하면서도 공동체의 중요성을 아는 ‘위 제너레이션’이 위워크를 이용한다.

“사무실은 비싸고 사무 공간은 줄어들 것.” 사무 공간의 미래를 다룬 BBC 뉴스의 헤드라인이다. 사무실의 미래에도 극장이나 백화점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을까? 수많은 근로자가 같은 시간에 정해진 공간으로 출근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사무실이라는 개념이 이제 휘청거리는 걸까? 온라인은 여기서도 오프라인을 대체할까? 사무실의 미래는 승패가 판가름 난 싸움처럼 정해져 있는 걸까?

BBC의 보도는 체념과 한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접점이 필요하며, 사무실은 협업과 교감을 위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시트릭스(Citrix) 부사장 재클린 드 로하스의 말이 이어진다. 시트릭스는 글로벌 클라우드 네트워킹 기업이다. 드 로하스의 예측처럼 사무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의가 달라질 뿐이다. 그렇게 보면 사무실업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멸종보다는 진화에 가깝다.

옛날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멸종하는 것들에 조의를 표하기 바쁘다. 하지만 기회는 변화를 주시하는 자들이 가져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각종 업계의 수많은 변화는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이다. 냉소주의자의 이론보다는 낙관주의자의 행동이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마련이다. 특히 세대가 교체되고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위워크가 그렇다. 위워크는 사무실 공유라는 서비스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미국 기업이다. 위워크의 비즈니스 모델은 그 자체로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한 시대를 돌파하는 낙관론자의 비전이다. 위워크의 두 창업자 미겔 매켈비와 애덤 노이만은 2008년 전 세계적으로 무력감이 팽배해 있을 때 위워크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일상 영역으로 들어온 테러의 공포, 만연한 청년 실업. 뉴욕은 세계를 휘감고 있는 무력감의 근원지였다. 이들은 바로 여기서 기회를 포착했다.

무력감은 부동산 비즈니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무 전용 빌딩은 임대료가 너무 높은 나머지 공실률도 높았다. 기업은 장기 임대에 손발이 묶여 있었다. 부동산 시장은 누군가 돈을 잃어야 돈을 버는 제로섬 게임처럼 보였다. 위워크는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매켈비와 노이만은 뉴욕 브루클린의 건물주에게 제안했다. 건물의 한 층을 여러 개의 사무 공간으로 쪼개고, 각각의 임차인에게 받은 월세를 절반씩 건물주와 나눠 갖는다는 계산이었다. 모두가 불가능을 보던 때의 호기로운 윈윈 게임이었다.

뉴욕 소호에 있는 위워크의 라운지. 이곳에서 제공하는 음료를 즐기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건물주는 ‘당신이 부동산에 대해 뭘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받아쳤습니다. ‘지금 당신 건물이 텅텅 비어 있어요. 당신은 부동산에 대해 뭘 알고 있습니까?’” 애덤 노이만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젊은 창업가의 반문은 치기 어린 해프닝이 아니었다. 건물주와 두 창업자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다양한 영역의 프리랜서, 크리에이터, 소규모 스타트업이 위워크 사무실로 몰려들었다. 2개 지점으로 시작한 위워크는 지금 50개 도시에 165개 지점을 운영하며 8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6년 만에.

위워크는 그냥 신규 부동산업이나 유망 수익 모델이 아니다. 이들의 성공을 그 정도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공간의 재임대와 공유는 형식일 뿐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이들의 이름에 그 본질이 있다. ‘워크(work)’ 앞의 ‘위(we)’, ‘우리’ 말이다. ‘우리’는 위워크의 양적 성장과 브랜드 가치를 관통하는 유일한 키워드다.

여기서 ‘우리’란 초원복국에서의 ‘우리가 남이가’ 같은 폐쇄적 집단주의가 아니다. 개인과 개인이 모인 우리, 서로가 갖지 않음을 인정하는 우리다. 위워크의 창립자, 위워크의 각 부문을 관장하는 리더, 위워크의 직원과 멤버, 위워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위 제너레이션(we generation)’의 영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위 제네레이션이 무엇일까? 의미를 풀어 써보면 이렇다. 독립적이면서도 소셜 라이프를 중요하게 여긴다. 누구보다도 자의식이 강하지만 항상 타인에게서 배우고자 한다. 불안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지가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이러한 개념들이 유기적으로 위워크에 구현되어 있다. 공간이라는 상품을 제공해서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관계라는 서비스로 ‘우리’의 기능을 극대화시킨다.

위워크의 물리적 공간은 쪼개지거나 합쳐지면서 회원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킨다. 직원이 20명이 넘는 회사가 열쇠로 잠기는 독립형 사무실을 쓸 수 있다. 프리랜서 한 명이 고정된 자리 없이 목적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일을 볼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상황에서 통화를 할 수 있는 폰 부스도 있다. 공짜 맥주와 커피를 제공하는 라운지도 있다. 거기서 이해관계나 상하 관계로 엮이지 않은 입주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창업 멤버 2명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 성장해 10배 규모가 되면 그에 맞는 공간으로 멤버십을 갱신할 수도 있다.

위워크에서는 이렇게도 사무를 볼 수 있다. 위워크가 바꾼 건 사무라는 개념 자체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하는 형태.” 위워크의 한 임원은 위워크 시스템을 이렇게 설명했다. 위워크가 2016년 1월 뉴욕에서 선보인 주거 공유 서비스 ‘위리브’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기능한다. 위리브에 엄격한 집의 프레임은 없다. 위워크처럼 휴식과 사교의 경계를, 업무와 여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땅 한 뙈기 없는 위워크가 이 모든 일을 벌이고 있다.

공간엔 공간 관리자가 있어야 한다. 공간이라는 상품을 채우는 관계 서비스의 중심에도 커뮤니티 매니저가 있다. 위워크를 호텔이라고 치면 호텔리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위워크의 라운지 개념인 커뮤니티 바에 상주하면서 위워크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관리한다.

커뮤니티 매니저의 일 중 가장 중요한 일 역시 공간에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위워크라는 물리적 공간을 사회적 커뮤니티로 만드는 것이다. 위워크의 각 멤버를 퍼즐처럼 끼워 맞추는 일, 각 개인의 필요와 연결하는 일은 모두 커뮤니티 매니저가 주도한다. 입주자의 관심에 맞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도, 잠재적 멤버를 유치하는 일도 커뮤니티 매니저의 일이다. “저는 위워크 직원이지만 최소한 100개 이상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한 회사를 다니면서 100개 이상의 회사에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위워크 뉴욕 지점의 어느 커뮤니티 매니저는 스스로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말처럼 위워크의 상품은 다름 아닌 촘촘한 관계망일 수도 있다. 그들의 전략과 콘셉트는 모두 유기적 관계라는 목적을 향한다.

위워크가 공간을 대하는 방식 역시 관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위워크는 공간 인테리어와 공간을 채우는 오브제마저 관계를 활발하게 하는 촉매처럼 쓰려 한다. 그래서 위워크의 인테리어는 특별히 고급스럽지도, 그다지 세련되지도, 특정한 스타일을 답습하지도 않는다. 부담스럽지 않은 동네의 아담한 동네 카페나 친근한 부티크 호텔처럼 보인다면 위워크의 공간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이 전략은 구체적인 오브제로까지 이어진다. 전 세계 위워크 지점 어디에나 공통적으로 놓인 것이 있다. 쉽지만 도발적인 문구가 담긴 포스터나 다소 조악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조형물이다. 위워크 인테리어 책임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 물건은 ‘대화를 시작하고 말문을 열 수 있도록 하는’ 도구다.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해소시키는 건 때로 허탈할 정도로 안 웃긴 농담이거나 적당히 넘어가줄 수 있는 실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워크는 불완전한 물건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한스 베그너 의자나 USM 선반 같은 건 위워크에 없다. 홍보용 사진에 나올 법한 결벽증스러운 정리도 하지 않는다. 쿠션이나 담요, 잡지, 물컵 등이 늘 소파나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다.

이런 태도는 위워크의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위워크의 태도, 혹은 이들이 제시하는 세계관은 다시 한번 ‘낙관’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위워크라는 사업은 두 사람의 낙관에서 시작했다. 그들의 낙관론은 위워크가 이만큼 커진 지금까지도 그들이 꾸리는 모든 공간에서 강하게 묻어난다. 뭐 어때, 조금 흐트러져도 좋고, 그리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면야.

지금 젊은 세대의 화두 중 하나는 ‘워크 라이프 밸런스’다. 이 뜨거운 감자에 대해서도 위워크의 낙관론은 여전하다. 이들의 공식적인 입장을 봐도 알 수 있다. “인생을 사는 것, 생계를 꾸리는 것이 아니라(Make a life, not just a living).” 위워크의 낙관(落款)과도 같은 이 낙관(樂觀)적 태그라인은 일과 삶을 칼로 도려내듯 분리해 완벽한 균형을 맞추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 없다면, (일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자’는 낙관에 가깝다.

물론 낙관에도 함정은 있다. 체념이다. 자칫 체념에 빠질 수도 있는 이들을 위해 위워크는 끝없이 제안한다. 그 제안이란 삶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생산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위워크가 끊임없이 말해왔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야기할 것, 바로 ‘우리’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낙관은 생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위워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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