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배경음악

하기 전에 뭘 틀어두는 게 좋을까?

“노래를 튼다고요? 섹스하기 전에?”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커피를 마시던 김준오 씨가 되물었다. “그때 노래를 틀 수가 있나요? 전 노래를 틀어본 기억이 없어요. 튼다 해도 뭘 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다른 사람들에게 섹스의 배경음악이라는 주제를 말해줬을 때의 반응도 김준오 씨의 대답과 비슷할 것 같았다. 좋다, 튼다 치자. 대체 뭘 틀까? 그리고 이런 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매일 집에 들어가자마자 노래부터 틀어요” 같은 대답을 하는 DJ에게 물어보면 된다. 행당동에 사는 DJ 김진훈 씨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매일 새로운 노래를 듣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은 디스코와 하우스예요. 하지만 집에 여자와 함께 들어온다면 그런 걸 틀지는 않죠.”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DJ는 뭘 틀까? 

“우선 한글 가사인 노래는 안 될 것 같아요. 한글이 문제가 아니라 들어서 알 수 있는 말이 나오면 집중이 안 돼요. 가사가 귀에 들어오면 안 되는 거죠.” 이해가 간다. DJ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보통 앨범 한 장을 계속 틀어둬요.” 무슨 앨범? “음, 지금 생각나는 건 디앤절로의 <부두(Voodoo)>?” 1999년의 명반이다. 아주 좋지만 조금 진한 노래라는 생각을 할 때쯤 그가 말을 이었다. “재즈를 틀기도 해요. 아예 세속적이고 노골적인 퓨전 재즈. 제프 로버 같은 거요.” 역시 DJ랄까. 다양한 상황에 맞는 음악 추천이었다. 그와 맥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제프 로버의 ‘Prototype’을 틀었다. 식탁에서 듣다가 침대 안으로 미끄러져도 어색하지 않을 듯한 음악이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이어졌다. 

“절대 안 돼!” <에스콰이어> 섹스 칼럼의 히로인 김예리 씨는 호불호가 확실해서 좋다. 그는 ‘섹스의 배경음악’이라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소리치며 말을 끊었다. “다른 소리가 들어오면 집중이 안 돼요. 음악을 틀어두면 좀 부끄럽기도 하고. 간지러워!” 섹스할 때 음악을 틀어두느냐 아니냐는 평소 그 사람의 음악 청취 습관과도 관련이 있는 듯했다. “저는 생각해보면 음악 들으면서 뭔가를 하지 않아요. 음악 들을 때는 음악에만 집중해요. 일할 때도 음악을 안 듣고. 섹스할 때는 섹스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그녀는 명언 같은 말로 이야기를 맺었다. “내가 내는 소리만이 음악이다.” 

“집중이 안 되긴 하지.” 직업 음악인 이영준 씨도 김예리 씨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나는 음악 제작이나 연주를 일로 하니까 음악이 정보로 들려서 섹스에 집중할 수가 없어.” 그래서 직업 음악인임에도 이영준 씨의 섹스 배경음악은 없다. 대신 그는 일반론을 들려주었다. “선율이 너무 익숙하거나 반대로 너무 복잡한 게 좋을 것 같아. 음악에 신경이 쓰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야. 적당히 선율이 좋으면 귀에 들어오거든. 그런 의미에서 사람 목소리도 없는 게 낫겠고. 굳이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면 여자 목소리가 나을 듯한데.” 듣다 보니 남자 보컬의 목소리가 섹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건 별로 안 내킬 것 같다. “이런 걸 종합하면 최악의 배경음악은 엠씨 더 맥스 노래 같은 게 되겠지.” 으, 그 노래만은 정말. 

“클래식이나 재즈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직업 음악인이 아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민지희 씨는 한참 생각하더니 놀랍게도 이영준 씨의 일반론과 비슷한 결론을 냈다. “사람 목소리가 있는 건 별로겠네요. 들었을 때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나 부드러운 재즈 음악이 좋을 것 같은데요. 저는 베토벤이나 쇼팽 정도가 적당하겠어요.” 하긴 말러나 버르토크 같은 걸 틀어두었다가는 그날 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적당한 게 좋을 때가 있다.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볼레로가 좋다고 해요.” 클래식 음악 연주자 조혜미 씨는 특정 곡목을 알려주었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에는 확실히 섹스와 맞물리는 면이 있다. 이 노래의 메인 멜로디는 하나뿐이다. 비트도 하나뿐. 처음에는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시작하는 비트와 멜로디는 화성이 겹겹이 쌓이면서 고조되다가 거의 결말부에서 거대한 절정을 이루고 절정에 닿자마자 파도의 꼭대기처럼 무너져 내린다. “그걸 틀어두면 좋다나요?” 볼레로의 멜로디를 떠올리니 확실히 일리가 있다. 그녀는 직업인답게 좀 더 매니악한 노래를 알려주었다. “저라면 스크랴빈을 틀겠어요. 이 사람 노래가 좀 야해요. 악보를 보면 어떻게 치라고 지시하는 말도 좀 야하고요. 후기 작곡은 너무 세서 중기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요.” 그녀는 그 말과 함께 스크랴빈 피아노 연습곡 4번을 추천해주었다. 다음에 어디를 만질지 모르는 애무 같은 노래였다.

“틀긴 틀지. 여자랑 여행 같은 데 가서 분위기 잡을 때.” 권헌준 씨가 입을 열면 무슨 말을 할까 불안하다. “1990~2000년대의 R&B가 플레이리스트에 많아서 그 노래가 자주 나와. 그런데 한국 노래가 나올 때도 있어. 신효범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같은 거. 요즘은 위켄드의 ‘I Feel It Coming’을 들어.” 웬일로 온건하다고 생각했는데 권헌준 씨는 역시였다. “아이 필 잇 커밍. 나 지금 간다잖아. 오선생이 온다잖아.” 그럼 그렇지. 권헌준 씨와 대화가 이어지면 늘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나는 음악을 시간 재는 데 써.” 권헌준 씨는 늘 생각지 못한 발상을 알려준다. 이건 무슨 말일까? “보통 노래 한 곡에 4분 정도 걸리잖아. 그러니까 노래가 몇 곡 지났는지에 따라 내가 몇 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거지.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를 타이머처럼 쓰는 거야. 이거 진짜 팁인데, 오늘 너한테만 알려준다.” 권헌준 씨는 이러면서도 내가 본인의 이미지를 왜곡시킨다고 생각하고 있다. 헌준아, 잘 생각해봐. 

그래서 음악은 섹스에 도움이 될까? 의견이 다양했지만 좋은 음악은 섹스에 도움이 된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조건이 몇 있다. 쉬워서든 튀어서든 너무 귀에 쉽게 꽂히지 않는 음악. 사람의 목소리가 없는 음악. 있다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여자 목소리. 이를테면 오페라의 아리아 같은 것. 남자 목소리가 왜 별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다들 싫다고 했다. 나도 싫다. 

“카투사로 군 생활을 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많이 봤어요.” 음악은 정말 문화권을 뛰어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도시 남자 방준면 씨는 언젠가의 군 생활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은 무조건 하루 종일 아주 강한 베이스의 흑인 음악을 들었어요. 그때 ‘하면서 들었으면 좋겠다’ 싶은 노래를 많이 들었죠. 생각나는 노래요? 슬로우 앤드 이지, 집 앤 로저, 1993년. 제목부터 딱이죠.” 그러게, 천천히 편안하게. 섹스의 최고수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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