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가 당신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합니까?

7점 만점으로 대답해달라 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4점 정도?” 녹사평역 근처에서 사무엘 아담스를 마시며 윤종민 씨가 말했다. 그는 서울 시내에 있는 어느 대기업 본사에 다닌다. 나이는 서른다섯. 결혼은 아직. 여자는 본인 말에 따르면 ‘만나다 말다’. 일은 적당히 바쁘지만 야근이 아주 많지는 않다. “섹스를 너무 하고 싶지는 않아. 하면 좋지. 소개팅을 할 때도 있고, 그런 사람이랑 두 번쯤 만났다가 가끔 잘 때도 있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연락해서 자고 가는 여자도 있어. 다 막지는 않지. 굳이 내가 여자에게 너무 다가가지도 않아. 섹스, 하면 좋았지만 내 생각에 너무 많이 한다 싶을 때는 없었어.” 21세기 서울 남자 성생활의 표본 같은 답이었다.

“당연히 7점이지.” 표준을 벗어난 성생활의 대표 권헌준 씨가 말했다. 섹스를 향한 권헌준 씨의 노력과 정열은 대단하다. 권헌준 씨는 미혼이다. 연애도 안 한다. 자유롭게 섹스하기 위해서다. 운동은 열심히 한다. 정기적으로 가는 스포츠 클럽만 세 개다. 섹스와 일을 둘 다 잘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나 이사했어. 경리단길로.” 이것도 섹스 때문이다. 권헌준 씨는 오금동에 오래 살았다. “서울 동남쪽이잖아. 일산이나 홍대 여자를 만나러 다니려니 피곤하더라고. 집을 얻기 전에 지도를 봤지. 어느 동네가 가장 사통팔달로 뻗어 있는가. 동시에 사람들이 많이 놀러 오는 동네가 어디냐.” 그래서 권헌준 씨는 지금 경리단길에 산다. 용산구청도 이런 이유로 용산구민이 된 사람이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섹스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7점 만점으로 답하라는 건 말이 안 되는데요?” 김윤선 씨는 되물었다. “중요하긴 7점 만점으로 중요해요. 그런데 저는 연인이랑만 섹스를 해요. 연애를 안 하면 섹스도 안 해요. 지금은 연애를 안 하고요. 그러니까 지금 제 삶에서 섹스의 중요성은 0이에요.” “질문을 바꾸면 낫겠네요. 관계에서 섹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렇다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7이에요.”

“저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가로수길 근처에서 만난 나선영 씨도 김윤선 씨 의견에 동의했다. “섹스 중요하죠. 그런데 저는 원나이트는 절대 안 해요. 제 삶에서 섹스가 중요하다고 해도 제가 하는 노력은 0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하나 더 넣었다. 섹스가 얼마나 중요한가, 거기 더해 섹스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맨 앞에 나온 윤종민 씨에게 이 척도로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윤종민 씨는 4-3이라고 답했다. 권헌준 씨는? 당연히 7-7이다.

“나는 7-1 같아.” 명동성당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던 장성준 씨가 말했다. 그는 5년 전에 결혼해 4살 된 아이가 있다. “실질적인 노력이나 섹스 횟수는 1도 안 되겠지. 섹스할 시간이 어디 있어. 야근하고 돌아와서 애 키우고 주말에는 가족과 보내야 하는데.” 장성준 씨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처음 보는 여자랑 짜릿한 시간을 보내는 상상은 하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그런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여전히 내 삶에서 섹스가 중요한 거 아닐까?” 나는 장성준 씨에게 혼자 사는 싱글 남자의 삶에 하루키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장성준 씨는 어제 뚜껑을 열어서 김이 빠진 콜라를 마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중요도는 6이에요. 그런데 노력 점수는 2점이에요. 이유는 비밀이에요.” 은수현 씨는 하나를 묻자 둘을 답하더니 갑자기 대화를 끝냈다. 10분쯤 지나자 은수현 씨가 다시 말을 꺼냈다. “비밀이었는데 그냥 말할래요.” 사람의 마음은 정말 알 수 없다. “제 삶에서 섹스의 중요성이 6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제 연인의 삶에서 섹스의 중요성은 그만큼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하도 저랑 안 해서 ‘너 바람 피우니?’ 같은 말을 한 적도 있어요.” ‘섹스를 안 한다’와 ‘바람을 피운다’ 사이에는 넓고 가파른 논리의 비약이 있어서 나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자 친구가 모든 남자가 성욕이 강한 건 아니래요. 남자 친구 같은 경우는 중요도와 노력 점수가 2-2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아요.”

섹스가 당신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이 허술한 질문은 우리에게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마음으로 원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자기가 생각하는 섹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 모든 가능성을 떠올린 결과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너무 중요하지.” <에스콰이어> 섹스 칼럼의 뮤즈 김예리 씨가 말했다. “하지만 권헌준 씨? 그 사람 같지는 않아요. 나에게는 섹스 말고도 다른 소중한 게 있어.” 김예리 씨는 균형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었다. 김예리 씨처럼 평온한 결론을 얻으려면 살면서 한 번은 아주 도전적인 시간을 보내봐야 할 수도 있다. 그 선택 때문에 예상 밖의 고통이나 난처한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훈과 위기에는 어느 정도 비례하는 면이 있다. 섹스도 다르지 않다.

“저는 7에서 4에서 1이에요. 이렇게 대답해도 돼요?” 임진영 씨는 살다 보니 섹스의 중요성이 조금씩 변했다고 했다. “20대 때는 자유로웠죠. 연인도 있고, 연애 안 할 때는 섹스 파트너도 있었고요. 그러다 결혼하고 한 번 변했어요. 남편 말고 다른 사람과 섹스하지 않죠. 아이를 갖고 나자 좀 더 변했어요. 이제 빈도로만 봤을 때 섹스의 중요도가 1 정도예요. 친구들에게 ‘내가 이렇게 성욕이 없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야’ 같은 말도 했다니까요.” 그의 말 그대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의 가치가 환율이나 주식 시세처럼 늘 바뀌곤 한다. 섹스도 그렇다. “섹스의 자리에 스킨십이 들어간 것 같아요. 남편과 저는 친밀한 스킨십이 아주 잦아요. 섹스의 육체적인 쾌락은 없지만 스킨십이 주는 정서적인 친밀감이 제게는 되게 중요해요.” 그러게 말이다. 섹스를 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

오늘 남에게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영화 <노트북>처럼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결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게 다일까? 엄연히 실제로 있지만 채워지지는 않는 성욕은 어떻게 할까? 사라지지도 해소되지도 않는 성욕이 어딘가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는 건 아닐까? 다들 떼어내지도 터뜨리지도 못하는 그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마음들은 다 어디서 어떻게 사람의 몸을 움직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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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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