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건아와 함께 꾸는 한국 농구의 꿈

구 라틀리프 현 라건아가 등장하니 골밑이 든든해졌다. 한국대표팀의 농구가 이전과는 판이했다.

지난 2월 23일과 26일은 한국 농구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외국인 선수로 한국프로농구리그(KBL)를 주름잡았던 리카르도 라틀리프(29. 이하 ‘라건아’)의 귀화 후 첫 국가대표 데뷔전이었기 때문. 비혼혈 외국인 최초의 국가대표로 이름까지 ‘라건아’로 개명한 그는 약체 홍콩과의 경기에서 13점 9리바운드로 가볍게 몸을 푼 후,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의 강호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선 29점 11리바운드를 쓸어 담았다. 비록 경기는 84-93으로 패배했지만 농구팬이라면 얼마 만에 본 안구정화(?) 게임이었는지 충분히 느꼈을 것. ‘라건아가 골밑에 자리 잡으면 여지없이 공이 투입됐고 이어서 어깨와 등으로 거구의 상대 선수들을 툭툭 밀고 들어가는 포스트 업을 통해 2점 적립.’ 말로 해보면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은 이 플레이를 지난 20여 년간 제대로 해낸 대한민국 센터는 거의 없었고 그래서 더욱 감격에 젖을 수 있었다.(연세대 재학시절 부상을 당하기 전의 서장훈은 예외다.)

라건아의 확실한 1:1 공격 옵션에 적잖이 당황한 뉴질랜드는 그를 에워쌀 수밖에 없었고 라건아는 수비수가 붙지 않은 이정현(31), 전준범(27) 등에게 패스 아웃을 해서 외각 득점을 도왔다. 아름다웠다. 놀라운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패싱 센스가 뛰어난 대한민국의 대표 센터 오세근(31)과의 ‘빅 투 빅’에 이은 2:2 투맨 게임은 요즘 NBA에서 유행하는 공격 전술과 아주 흡사했다. 200cm 전후의 두 빅맨이 자유자재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오펜스를 이끌어가는 전술은 그 동안 국가 대항전 경기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

전통적으로 대표팀은 ‘양궁농구’를 고집했다. 물론 슛 적중률이 높은 날은 한 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했지만, 골밑을 공략하지 못해 24초 동안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시간에 쫓겨 3점슛을 던지는 날은 더 이상 경기를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무력했다. 하지만 라건아의 등장으로 대표팀은 더 이상 양궁농구만이 강제될 필요는 없어보였다는 게 이번 예선전의 큰 수확이다.

라건아가 들어오고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또 있는데 바로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고 험블 상황에서도  상대방에게 공 소유권 내주지 않는 것. 골밑의 약세 때문에 공격 리바운드를 포기하다시피 했던 대표팀은 라건아가 골밑에 단단히 자리 잡고 리바운드를 따내니 코트의 5명 전원이 리바운드, 험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라건아가 합류하고 수비 조직력이 예전만 못한 점은 앞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다. 뉴질랜드의 빠른 패싱 게임에 당황한 선수들이 스위치 상황에서 제대로 로테이션을 돌지 못하고 꼬이는 상황을 수차례 연출했다. 하지만 이제 2경기를 치렀으니 앞으로 훈련을 통해 손발을 맞춰 나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김선형, 이승현 등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비에 대한 평가는 추후에 내려도 늦지 않을 것.

한국 대표팀은 오는 6월 28일 2019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A조 최종 예선전 2라운드를 앞두고 있다. 상대는 세대교체 후 전력이 안정권에 접어든 강호 중국이다. 약 100여일간의 준비 기간이 있는 한국 대표팀은 또 어떤 달라진 경기력을 보여줄지, 라건아는 어떻게 팀에 완벽하게 녹아들지 벌써부터 뜨거운 여름의 경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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