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의 한식 3편 라연

라연

주소 서울 중구 동호로 249
문의 02-2230-3367

서울신라호텔 내의 한식 다이닝 라연은 <미슐랭 가이드>가 서울 편을 출간한 이래 2년 연속 별 세 개를 받은 유일한 레스토랑이다. 서울신라호텔은 2005년 한식 다이닝 서라벌의 문을 닫은 후 9년 만에 라연을 열었다. 1988년 호텔에 입사한 이래 이 극동의 변화를 몸소 겪은 김성일 총괄 셰프에게 라연의 개장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터. 심기일전하여 준비한 라연이 미슐랭으로부터 최고점을 받자 노력에 따른 성과를 거뒀다며 누구보다 기뻐했다.

서울신라호텔 23층에 위치한 라연은 40석 규모로 아담한 편이다. 솟을빗창살과 격자빗꽃살이 겹쳐진 전통 창호 너머로 서세옥 화백의 수묵 추상화가 보인다. 라연은 우아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반듯한 격식을 갖췄다. 전통 직물처럼 씨실과 날실이 성기게 보이는 백색의 식탁보에는 주름 한 줄 없고, 수저받침 위의 은수저는 나란히 수평을 이룬다.

라연은 와인 페어링과 함께 전통주 페어링을 진행한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맺은 결실을 맛보고자 전통주 페어링을 주문했다. 전통의 식자재인 오미자에 프랑스의 샴페인 제조 기술을 접목한 오미로제로 페어링이 시작됐다. 기분 좋은 단맛이 기포와 함께 혀끝에서 사라지는 순간, 낯선 공간이 주는 일말의 긴장감이 풀렸다.

환영 음식은 그때그때 바뀌는데 달걀찜, 수삼미즙, 채란, 밤응이 등 맛과 식감이 부드러운 요리가 주를 이룬다. 달걀찜으로 속을 부드럽게 채우자 구절판이 상에 올랐다. 둥근 백자 가장자리를 따라 여덟 개의 알록달록한 속재료를, 중앙에 밀전병을 정갈하게 놓은 차림새에 감탄이 절로 났다. 둥글레차로 반죽하여 미색을 띠는 전병에 쇠고기, 새송이버섯, 애호박, 오이, 고구마, 단호박, 도라지, 느타리버섯을 올려 겨자 소스에 찍어 먹으니 작고 소박한 모습 뒤에 숨어 있는 무수한 정성이 전해진다.

라연의 여름 메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음에 등장한 물회였다. 청주를 희석한 물을 약한 불에서 3시간가량 끓이며 쪄낸 전복과 켜켜이 칼집을 내어 부드럽게 데친 한치에 식감과 향미를 더해주는 오이, 미나리를 가니시로 곁들인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속으로 주홍빛 소스를 끼얹자 공기를 따라 흩어지는 발효취가 코끝에 감돌았다. 막장, 초장, 마늘을 섞어 3일간 숙성한 소스가 너무 정갈하여 자칫 인상이 흐려질 수 있는 식사에 방점을 찍는 듯했다.

함께 페어링한 풍정사계 ‘춘’도 누룩 내가 있는 편이어서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외국인에게는 한식에서 빠뜨릴 수 없는 발효의 미학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겠다. 두툼하게 포를 떠 부친 민어전과 복분자 고추장 소스를 발라 구운 장어는 그야말로 한여름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전통 창호 가림막과 서세옥 화백의 수묵 추상화가 우아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속에서 차려내는 음식 또한 튀는 법이 없다.

한우 요리 중에서는 라연이 직접 개발한 황토 맥반석 숙성고에 20여 일 숙성하여 참숯에 구운 등심숯불구이가 단연 인기가 높다고 했다. 소량의 소금으로 간을 한 고기는 송아지 고기처럼 육질이 부드러워 몇 번 씹었을 뿐인데 입안에서 사라지더니 구수한 육 향과 함께 은은한 불 향을 남겼다. 곁들여 나온 양파장아찌는 오븐에 장시간 구워 식감이 부드러우면서 매운맛 없이 소스가 잘 뱄다. 라연의 음식은 튀는 법이 없지만 내실이 견고하게 잘 다져진 인상이다. 이는 미슐랭 별 세 개를 받고도 나서는 법이 없는 김성일 총괄 셰프의 단엄침중한 성품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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