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의 한식 1편 이종국 104

모던 한식 열풍에 흔들리지 않고 정통 한식의 깊이를 더하고자 노력해온 대가들이 있다. 그들이 차려낸 뿌리 깊은 한식을 소개한다.

이종국 104

주소 서울 성북구 성북로 95-1
문의 02-747-0104

회화를 전공한 이종국 선생이 꾸민 레스토랑은 진귀한 작품과 골동품이 가득한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접시 위에도 선생만의 미감이 살아 있다.

이종국 선생은 전설 같은 인물이다.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이 100주년 기념 갈라 디너를 개최했을 때 초빙한 셰프가 바로 선생이었고, 지난해 포시즌스 그룹이 1인당 1억5500만원짜리 초호화 미식 여행을 기획했을 때 첫 식사를 맡은 이도 선생이었다. 또한 선생이 기틀을 닦은 ‘곳간 by 이종국’은 문을 연 해에 미슐랭 별 두 개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이듬해 곳간 by 이종국을 나온 선생은 올 초 성북동에 4층짜리 건물을 짓고 ‘104’라는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갤러리에 온 듯 진귀한 작품에 둘러싸인 채 자리에 앉자 직원이 사각함을 건넸다. 함의 해태 손잡이를 열자 청실, 홍실로 장식한 종이 사이에 초콜릿이 들어 있다. 굵게 빻은 고춧가루를 가미한 초콜릿을 혀에 올리자 달콤하고 쌉싸래하면서 매콤하니 입에 금세 침이 고였다. 전채로는 우무묵을 넣은 콩물, 산딸기초, 새우를 곁들인 대저토마토 샐러드가 나왔다. 부들부들한 게 입안으로 절로 빨려 들어가는 우무묵의 식감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콩물을 들이켠 후 오징어 단자를 입에 넣고 씹자 콩물의 구수하지만 단순한 풍미에 반전 같은 재미가 더해졌다. 마지막으로 토마토 샐러드와 산딸기초로 입을 씻으니 한 번에 여러 음식을 먹었음에도 오히려 입안은 더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이어서 나온 명란두부찜을 곁들인 보리 샐러드와 돌문어녹두죽은 알 듯 모르는 맛이었다. 콩꽃으로 물들여 보랏빛을 띠는 보리알은 두부찜의 보드레한 식감에 씹는 재미를 주는 한편, 명란의 짭조름한 맛을 중화시켰다. 한편 돌문어녹두죽은 첫술에 아는 맛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나 숟갈질에 박차를 가할수록 모르는 맛에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잘게 다져 넣은 배와 미나리가 식감과 향취를 더했기 때문일 터. 그다음 등장한 요리는 가히 104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검은색 그릇에 동색의 노방 보자기로 감싼 보따리가 올려졌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향에 취해 보자기를 풀자 그 안에 종이 뚜껑을 쓴 동색의 사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능이, 석이, 목이버섯, 가지 껍질, 고사리 등을 간장과 식용 숯가루로 버무린 블랙푸드였다. 식재료마다 전혀 다른 식감에 집중하며 먹으면 되레 식감만큼 다양한 향에 더 놀라고 만다. 오징어초무침으로 블랙푸드의 짙은 여운을 씻어내자 한 폭의 평면화 같은 요리가 나왔다. 우엉, 연근, 마, 비트, 당근 등 각종 뿌리채소에 견과류 가루를 뿌린 요리다. 재료 본연의 맛이 물리지 않도록 가죽나물장아찌를 함께 냈다. 우엉을 꽂은 떡갈비까지 맛보니 새삼 한식이 이리도 스펙트럼이 넓고 묵직한 요리였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식사는 궁중에서 쓰던 것을 재현한 반상에 담겨 나왔다. 죽순을 넣고 지은 깨고소한 솥밥에 갖가지 반찬이 곁들여졌는데 특히 고추장이 인상적이다. 감칠맛이 유별하다 했더니 무려 말린 참오징어를 갈아서 만든 약고추장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소나무 속껍질을 넣고 빚은 송기떡을 집었다. 입안에 솔향기와 나무껍질 특유의 쌉싸래한 향이 남은 상태에서 감로차로 입안을 적시자 호젓한 산사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산딸기가 흐드러지게 핀 숲에서 짭짤한 해풍 부는 바닷가, 야생 버섯이 자라는 검고 축축한 땅을 거쳐 말이다. 이종국 선생의 음식은 단아한 생김새 속에 사람을 송두리째 흔드는 마력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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