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술상 4편 서울의 밤 × 미로식당

매실주를 증류하여 단 향만 남긴 리큐어와 한식 안주의 절묘한 어울림.

우리나라는 과실주의 역사가 짧다. 설탕에 버무린 과일을 고도수의 술에 넣고 침출하는 기술은 외국 양조 기법에서 빌려온 것이다. 물론 고문헌에도 과일을 술의 재료로 쓴 기록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쌀로 술을 빚을 때 과실을 보태거나 증류한 술에 향을 가미하기 위해 살짝 담가놓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과실주를 증류한 술을 찾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한편 와인을 생산하는 서양 국가들은 예부터 와인을 증류한 전통주를 하나씩 보유하고 있다. 알마냑, 코냑, 그라파 등을 아우르는 브랜디가 바로 그것. 와인 이외에 사과, 배, 복숭아, 자두 등의 과일로 담근 술을 증류한 독주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렇듯 과실주를 증류한 술은 물론 곡물, 채소 등을 재료로 한 술을 한 차례 이상 증류한 술을 통틀어 리큐어라고 한다. ‘매실원주’라는 매실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더한주조는 지난 6월 매실원주를 두 차례 감압 증류한 술 ‘서울의 밤’을 세상에 내놨다. 서울 시민이 아니라면 다소 서운할 수 있겠지만 귀에 쏙 박히는 이름에 깔끔한 디자인이 이목을 끄는 서울의 밤은 보통 소주로 인식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과실주를 증류했으니 리큐어에 속하며, 증류 과정에서 매실의 텁텁한 뒷말을 중화시키기 위해 주니퍼베리를 넣었으니 진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진은 모든 종류의 증류주에 주니퍼베리를 가미한 술을 통칭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는 작명하며 ‘서울 진’이라는 이름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매실원주가 본디 지닌 단 향에 두 차례 증류하며 바닐라 향, 볶은 견과류 향 등을 입힌 서울의 밤은 향이 감미롭고 부드러워 어느 음식에나 잘 어울린다. 그런데 육류 요리를 할 때 매실청을 주로 써온 탓일까, 매실 향이 감도는 서울의 밤 한 모금에 고기 한 점이 그립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술에 강한 애착을 지닌 미로식당 박승재 셰프도 동의하는 눈치다. 박 셰프는 미로식당의 스테디셀러 메뉴인 육회와 양념돼지목살구이를 내주며 육회에는 스트레이트로, 돼지구이에는 탄산수를 살짝 섞어 곁들이기를 권한다. 미로식당은 ‘맛 미(味)’에 ‘밥 그릇 로(盧)’ 자를 붙여 ‘맛있는 음식을 담는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와우산 자락에 위치한 식당을 찾는 길이 미로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착각한다. 미로식당은 그만큼 접근이 수월하지 않지만 매일 밤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누린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대동한 가족 단위 손님과 회식을 즐기는 직장인들이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이 진정한 한국형 비스트로 같다. 박 셰프는 여전히 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식을 평가하며 자신도 모르게 ‘손맛’이라는 단어를 쓴다. 아무리 단순한 요리더라도 그의 손이 닿으면 감칠맛이 더 차지게 느껴진다. 한우 꾸리살을 채 썰어 직접 제조한 소스와 꿀로 버무린 육회와 촘촘히 칼집을 낸 돼지 목살을 양념에 24시간 재운 후 그릴에 구운 요리를 한 점씩 맛본 다음 서울의 밤을 털어 넣자 입안이 더없이 개운하고 화사하다. 이는 곡주를 증류한 술에서 기대할 수 없는 산뜻하고 청량한 기운이다.

주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0길 80
문의 02-326-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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