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술상 2편 오미로제와 락교제

오미자로 만든 선홍색 스파클링 와인과 한옥의 정취에 취하는 밤.

이 땅에서 나는 와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포도에 기대 사는 농민들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저마다 와인을 빚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은 서양에 오랜 역사를 지닌 명가가 많다 보니 아무래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국내에는 와인 제조를 위한 포도 품종이 전무하다시피 한다.

국내산 와인이 특별히 기대를 모으지 못하는 가운데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는 오미자로 도전장을 냈다. 이 대표는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 등 복잡다단한 맛을 지닌 한편, 선홍색 빛깔에 스파이시한 향까지 갖춘 오미자가 훌륭한 양조 재료라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챘다. 나아가 오미자는 우리나라가 주산지다.

이 대표는 양조 재료로 오미자가 지닌 관능적 매력을 좀 더 극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스파클링 와인을 택했다. 이때 기포를 최대한 섬세하게 끌어내기 위해 샴페인의 고장인 프랑스 샹파뉴를 여러 차례 찾아 정통 샴페인 제조 기술을 눈동냥 귀동냥했다.

‘샹파뉴 메소드’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와인에 효모와 당분을 추가 첨가한 후 병입해 병에서 2차 발효를 유도한다. 발효를 거치며 기포, 즉 이산화탄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병이 좁다 보니 서로 부딪히고 끼이면서 자연스럽게 입자가 점점 작아진다. 입자가 작을수록 혀에 닿았을 때 기포가 보드랍고 우아하게 터지며 그윽하게 스민다.

재료에서 파격을 꾀하되 정통 방식을 고수하는 이 고상한 술을 고아한 한옥에서 즐기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북촌에 위치한 한옥 스테이 ‘락고재’의 대청마루는 밤이면 근사한 바로 변한다. 130년 된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국내에서 생산한 귀한 술과 간단한 안주를 즐길 수 있다. 이는 서촌에서 ‘라운지담’을 운영한 전재식 이사가 합류하며 가능해진 일. 국내에서 생산하는 다종다양한 술 중 오미로제를 가장 아끼는 전 이사는 젊은 층의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오미로제의 라벨을 새로 디자인하기도 했다. 연분홍색 끈이 흘러내리는 듯한 디자인이 제법 세련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시대 유물인 끈무늬병을 모티프로 했다고 한다.

오미로제와 함께 나오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웰컴 푸드는 단순히 미감만 뛰어난 게 아니다. 명인이 만든 연근 부각, 고창산 민물장어포, 강화 백미와 검정쌀 누룽지, 쑥증편에 이르는 구성은 차리는 이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재료 본연의 담백한 맛은 기포가 받들어 올리는 오미자의 스파이시한 향과 잘 어울린다. 한편 김부각에 두부와 겨자씨, 청포도, 얇게 편 썬 청양고추를 올린 타파스는 부드러운 식감과 바삭한 식감이 입안에서 중첩되는 게 제법 재미있다. 두부가 리코타 치즈처럼 부드럽고 담백하면서 기분 좋은 신맛이 난다고 했더니, 두부를 오미자 찻물과 청을 넣고 버무렸다고. 첫인상은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오미자처럼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을 동시에 담아내려는 노력, 술과 연결성을 이어내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혀끝에서 파도의 포말처럼 부서지는 오미로제를 음미하며 어둑어둑한 도시를 바라보니, 그 어둠 속에 꼭 오미자 가도가 펼쳐져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주소 서울 종로구 가회동 218
문의 02-742-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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