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임팩트

최근 몇 개월간 가장 인상적인 영상 콘텐츠는 모두 넷플릭스가 만든 것이었다.

제마와 애비는 미국 볼티모어의 가톨릭계 학교인 키어 고등학교 졸업생이다. 자신들을 가르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젊은 수녀를 기억하는 두 여성은, 47년이 지나도록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스승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69년 볼티모어에서 일어난 캐서린 세스닉 수녀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살인 사건 뒤에 감춰진 더 어두운 이야기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 들어간다. 학생들을 세뇌시켜 강간을 일삼아온 가톨릭 신부들, 진실을 은폐하는 데 협력한 지역사회 사람들, 반복적으로 성폭행 혐의가 제기된 신부를 파문하는 대신 피해 생존자와 돈으로 합의를 봐왔던 볼티모어 대교구에 대한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 무시무시한 작품의 정체는 7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천사들의 증언>(2017)이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시선을 끌거나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천사들의 증언>은 피해 생존자, 수사 당국, 주변인들과 주요 용의자들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그 말을 종횡으로 촘촘히 엮어 사건을 재구성한다. 오랜 세월 냉담자로 살았으나 여전히 내심 스스로 가톨릭 신자라 생각하는 나는 7부작을 완주하는 동안 자주 호흡곤란을 경험했다.

그게 만약 TV 프로그램이었다면 과연 이런 수준으로 완성해 방영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는 아주 높은 확률로 첫 회 방영이 끝나기도 전에 반박 성명을 발표하고 신자들은 편파 방송이라며 업무가 마비될 때까지 항의 전화를 했으리라. 외압에 시달리다 보면 취재의 깊이나 방송에서 표현하는 수위 또한 은연중에 순화됐겠지. 그렇다고 한 회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눌러 담으려 들었다가는 핵심적인 부분만 남기느라 자칫 60분 내내 자극적인 말만 가득해서 이게 진실을 보도하는 건지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한 에피소드가 되었을 공산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천사들의 증언>은 한 시즌을 통째로 동시에 공개하는 넷플릭스의 프로그램이었고, 덕분에 앞의 에피소드에서 던져둔 단서나 요소들을 그다음 에피소드에서 이어받아 차근차근 풀어내는 꼼꼼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방영 중간에 외압받을 걸 걱정할 일도 없었고 말이다. TV로는 불가능한 넷플릭스 특유의 릴리즈 방식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이 외압이나 논란의 걱정 없이 차분하게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

<천사들의 증언>만 넷플릭스 시스템의 득을 본 게 아니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2018)는 어떤가. 1980년대 미국 오리건주에 코뮨을 건설하는 실험에 나선 라즈니쉬 추종자들과, 불청객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경계심을 놓지 못했던 미국 사회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다룬 이 6부작 다큐멘터리는 공개된 직후부터 수많은 평론가와 시청자들에게 일관된 호평을 얻었다. 특히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냉정한 톤을 유지하는 작품을 완성하는 건 한 시즌을 통째로 공개하는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어려웠으리라. 오쇼 인터내셔널이 아직도 건재하고, 라즈니쉬푸람 코뮨 실험에 얽힌 이 중 대부분이 살아 있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고백의 기록>(2017)이 겨냥한 건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다. 이 시리즈는 미국의 경찰 당국이 교묘한 회유와 강압으로 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이들로부터 거짓 자백을 받아낸 사례를 고발한다. 경찰과 FBI가 용의자에게 끊임없이 거짓 암시를 주고 자백만 하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날 것이라고 회유하는 광경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만약 한 주에 한 편씩 공개했다면 ‘매우 이례적인 한두 건을 가지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작진은 일곱 편을 꽉꽉 눌러 담아 한꺼번에 펼쳐 보임으로써 애초에 그런 비판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이처럼 긴 호흡의 스토리텔링의 이점을 누리는 동안 넷플릭스의 예능 프로그램은 조금 다른 의미로 넷플릭스 덕을 봤다. 이를테면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 미칠 듯한 화제를 끌었던 <파티셰를 잡아라!>(2018)를 보자. 슬로모션으로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오는 참가자 3명, 유명 파티셰들의 심사, 제과제빵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다 갖춰진 팬트리 룸, 매회 우승자에게 수여되는 상금 1만 달러까지. <파티셰를 잡아라!>는 얼핏 보면 <마스터셰프>나 <헬스키친> 같은 쿠킹 서바이벌 쇼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문법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쇼의 목적이 참가자들이 얼마나 훌륭한 케이크를 만드는가 보는 것에 맞춰진 게 아니라 참가자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하는가 보며 웃는 것에 맞춰져 있다는 것만 빼면.

<파티셰를 잡아라!>는 ‘전문 파티셰가 만든 정교하고 아름다운 케이크를 재현하라’는 미션을 받은 아마추어 파티셰들이 열과 성을 다해서 정성스레 실패하는 과정을 담은 쇼다. 반죽할 때 밀가루를 넣는 걸 깜빡하는 수준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니 결과가 처절한 실패일 것은 안 봐도 뻔한 일. <파티셰를 잡아라!>는 형편없는 결과물을 보고 참가자들을 윽박지르는 대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확인하고 한바탕 신나게 웃은 다음 개중 그나마 덜 망친 사람에게 1만 달러를 주는 희한한 쇼다. 덕분에 이 쇼에서 가장 괴로운 이들은 참가자가 아니라 심사위원인데, 자신들이 과제로 내준 정교하고 아름다운 케이크가 아마추어 참가자들의 손끝에서 형편없이 변주되는 걸 보고도 웃어야 하는 그들의 미묘한 고뇌는 언제 봐도 일품이다. 게다가 그 어설픈 작품들을 보며 어떻게든 나름의 장점을 찾아내서 칭찬까지 해줘야 한다!

뭔가를 잘하는 일반인들을 발견해 그들의 비범함을 누리는 대신 일반인들의 못남과 평범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함께 웃는 쇼.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TV였다면 아마 이런 소재로 35분짜리 쇼를 만들며 회당 상금 1만 달러를 지출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이 기괴한 쇼에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시달리는 참가자들을 회당 70분씩 보여주는 기존 서바이벌 쇼의 문법에 지친 시청자들은, 이처럼 어차피 망할 것이 예정되어 있어서 긴장할 필요가 없는 <파티셰를 잡아라!>를 보며 위안을 얻는다. 단 한 순간도 분위기가 심각해지거나 리듬이 늘어지는 걸 용납하지 않는 이 35분짜리 쇼의 1시즌은 총 6회. 웃고 싶어질 때면 언제든 부담 없이 아무 에피소드나 꺼내서 다시 보면 된다. 마치 예전에 MBC <라디오스타>가 회당 15분에서 30분 안쪽으로 끊어지던 시절의 빠르고 가벼운 리듬을 연상시키는 이 호흡은, 조금만 잘되는 프로그램을 발견하면 길이를 70분으로 늘리지 못해 안달인 TV 예능에 질린 이들에겐 단비와도 같다.

평범한 일반인들의 흑역사를 공유하는 <흑역사 안내서>(2018) 또한 소재 선택이나 형식의 전개가 비범하기 짝이 없다. 10대 시절에 썼던 일기장을 되돌아보는 건 언제 해도 끔찍한 일이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생각하고, 허세에 젖어서는 왜 이렇게 착하고 훌륭한 나를 세상이 몰라주는지를 토로하고, 왼손에 봉인해둔 흑염룡이 언제 뛰쳐나올지 몰라 걱정하고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온 인류가 다 그렇다. <흑역사 안내서>는 바로 그런 우스꽝스러운 과거를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겠다고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쇼에 출연하는 이들은 저마다 10대 시절에 썼던 일기장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와 간단한 배경 설명을 한 뒤 곧바로 일기를 낭독한다. 친구들 사이에 섞이고 싶어서 발버둥쳤던 이야기, 가족에 대한 애증, 첫사랑과 첫경험에 관한 우스꽝스러운 경험담. 관객들은 함께 폭소하고 때론 민망함에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결국 뜨거운 박수로 낭독자와 연대한다.

일반인이 경험했던 우스꽝스럽고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얼핏 SBS 라디오 <컬투쇼>의 ‘사연 진품명품’이나 KBS <안녕하세요>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지만, <흑역사 안내서>는 따로 MC를 고용한다거나 사연을 읽어줄 다른 사람을 쓰는 대신 당사자가 직접 무대 위에 올라가 낭독하게 한다. TV였다면 능숙한 MC를 기용해 사연의 주인공을 변호해주거나 힐난하며 양념을 쳤겠지만 <흑역사 안내서>는 오로지 흑역사를 고백하는 나와 그에 공감하는 관객의 면대면 소통으로만 이뤄진다. 자신이 경험한 흑역사를 재해석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의 몫이고, 덕분에 쇼는 군더더기 없이 바로 본질로 들어갈 수 있다. 당사자가 직접 허심탄회하게 웃으며 직접 자신의 과거를 관객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다른 쇼와 <흑역사 안내서>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TV가 관성에 젖어서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던 쇼 프로그램의 오랜 문법이 넷플릭스에서는 쉽게 파괴된다.

넷플릭스가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라는 식의 상투적이고 무책임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언 피스트>(2017)랄지 실사판 <데스노트>(2017) 같은 실패 사례를 보면 넷플릭스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TV가 넷플릭스의 성공 사례를 따라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TV와 넷플릭스 같은 OTT(오버 더 톱: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에는 시청 패턴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니까. 하지만 넷플릭스가 TV가 쌓아 올린 쇼의 문법을 반복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문법을 쓰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문법이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창작자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전에 없던 가능성이 열린다는 걸 의미하니 말이다. 보라, 넷플릭스가 쇼를 한 시즌 단위로 통째 올리는 전략은 그 편이 바이럴 마케팅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그 덕분에 세상의 민감한 소재를 가지고도 외압을 걱정하거나 논쟁에 쫓기는 일 없이 차분한 호흡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TV 예능의 문법을 살짝만 비틀었을 뿐인데 소셜 미디어에서 한 몸에 화제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사이의 경쟁만 존재하던 시장에 전혀 새로운 문법으로 승부하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TV 종사자 입장에서는 적잖이 당혹스럽겠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지금처럼 쇼 비즈니스가 흥미진진해 보인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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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 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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