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 바 4편 쿠촐로 TBD

미식계의 새로운 화두인 내추럴 와인에 입문하기 좋은 서울의 내추럴 와인 바를 찾아갔다.

TBD

주소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6
문의 02-465-3334

렁팡스, 도치피자, 오르에르, WxDxH 등 이름난 레스토랑과 카페, 숍이 즐비한 성수동 연무장길에 지난 6월 간판 없는 가게가 들어섰다. 미정(未定)을 뜻하는 영어 관용어구 ‘To Be Determined’의 약자를 이름으로 한 TBD는 장식을 최소화하여 언뜻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을 가득 채운 채 식사하며 활기찬 분위기를 내뿜는 손님들이 통유리 너머 눈길을 사로잡는다.

낮에는 샌드위치 가게, 밤에는 내추럴 와인 바로 변신하는 TBD에는 인테리어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하지만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면 모두 의미가 깊은 물건들이다. 알루미늄 프레임에 니스 칠을 한 나무를 덧대 가벼운 인상을 주는 의자는 1980년대 독일의 한 알루미늄 회사가 일시적으로 생산한 제품으로 경매를 통해 중고품을 어렵게 구입했다. 한편 가게에서 유일한 조명인 스탠드는 이탈리아에서 직접 구해 왔다. 주방과 홀의 경계에 자리한 카운터는 스위스의 유명 가구 브랜드 ‘USM 모듈러 퍼니처’ 제품이다.

TBD가 공간을 미니멀하게 꾸민 이유는 주문한 음식과 와인이 나오는 순간 짐작할 수 있다. 파스텔풍의 그릇에 담겨 나온 형형색색의 음식과 내추럴 와인 특유의 알록달록한 라벨이 시각적 즐거움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곳의 주인공이 음식과 와인임을 한 번 더 일깨우는 영리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TBD는 하우스 와인을 제외한 모든 와인을 내추럴 와인으로 구비했다. 총 12종으로 구성이 단출한 편이지만 이 또한 찬찬히 뜯어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보와 자쿠, 레 파르셀, 라르팽 데 보동 등 여느 바에서 보기 힘든 와인이 제법 눈에 띈다.

신생의 작은 바에서 이렇듯 희귀한 와인을 여럿 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트레드수드’라는 와인 수입사를 운영하는 장 폴 보레즈가 있다. 세계적 명성의 레스토랑 ‘노마’에서 수셰프를 역임한 보레즈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며 와인 전문가 겸 요리연구가로 활동한다. 보레즈는 TBD가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메뉴를 훑고 음식을 맛본 후 결에 맞는 와인을 추천했다.

TBD는 패션 브랜드 ‘스테레오 바이널즈’ 김기환 대표가 투자하고 르꼬르동블루 출신의 박정재 매니저가 메뉴 개발을 하는 동시에 매장을 관리한다. 와인 바이지만 소믈리에는 따로 없다. 박 매니저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대한 와인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듣고 기본에 충실하게 서비스하려고 노력한다.

주방은 박 매니저와 르꼬르동블루를 함께 졸업한 동문이 맡았으며, 음식은 전체적으로 내추럴 와인의 정신을 계승하여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하도록 개발했다. 그중에서도 채식주의자들이 베이컨의 식감을 즐기기 위해 개발한 가지 요리 ‘비건 베이컨’을 재해석한 스파이스 에그플랜트와 수비드한 삼겹살을 구워내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포크 벨리가 단연 인기 메뉴다. 점심때 찾아가 샌드위치에 내추럴 와인을 곁들여도 더할 나위 없다. 성수동이라는 다소 결이 거친 동네에 갓 오픈하여 풋풋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TBD는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때로는 어수룩한 매력을 뿜어내는 내추럴 와인과 제법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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