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박창진이 된다

4년 전 12월부터 박창진을 만나보고 싶었다. 땅콩 회항 사건 후 에 나온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어느 브랜드인지는 몰라도 패션하우스의 것임이 분명한 정장(라펠의 긴장감이 다르다)을 입고 각얼음만큼 작은 딤플로 타이를 매고 심야 뉴스에 나와서 휘트니 휴스턴의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떠나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4년이 지났다. 조현아는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를 봉송했다. 반면 박창진은 주니어급 승무원으로 고생을 하면서 진보 성향 매체와 가끔 인터뷰를 할 뿐이었다. 그는 SNS 계정 하나에만 기대고 있는 것 같았다. 계정 속 그에게는 계속 부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진 속 박창진은 여전히 미남이었지만 4년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면 꽤 지치고 나이 들어 보였다. 거대한 조직을 상대하는 개인의 체념과 피로가 그의 표정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박창진에게 관심이 있다고 아무 때나 인터뷰를 할 수는 없었다. 마침 이슈가 터졌다. 조현민의 녹취록이 공개되고 대한항공 직원들의 가면 시위가 이어졌다. 박창진은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않고 시위에 참가했다. 4년 후의 나 역시 노화하고 여러 가지를 잃었지만 깨달은 것도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박창진을 만나지 못한다. 지금의 그에게 듣고 남겨야 할 이야기가 있다.

박창진을 만나러 5월 26일 금요일 종각역에서 열린 대한항공 4차 촛불 집회 현장에 갔다. 얼굴을 보고 인사하면서 취지를 알리고 싶었다. 마침 그날은 박창진의 비행 스케줄이 겹쳐서 그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박창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몸이 살짝 굳는 것 같았다. 처음 국제선 비행기를 탔을 때 들은 듯한, 숙련된 승무원의 그 목소리와 발성이었다. 박창진은 회한도 분노도 없는 정확한 발음으로 대한항공직원연대의 창립 선언문을 읽었다.

“찬용아, 박창진이 정말 피해자일까?” 인터뷰 전날 편집장이 나를 불렀다. 일리가 있는 의심이었다. 박창진의 이슈는 4년 전부터 창밖에 걸어둔 깃발처럼 빛이 바래 있었다. 밖에서 봐서는 누구의 잘못인지, 과연 박창진이 순결하기만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때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척 열심히 말했던 것 같다.

내 삶의 관심사 중 하나는 조직과 개인의 필연적 불화다. 개인의 꿈을 이루려면 조직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소방수가 되고 싶은데 자기 차를 개조해서 불을 끄고 다닐 순 없다. 어떤 개인의 자존은 자신의 직장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이 관계는 늘 실패한다. 조직은 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은 그 자체로 별개의 자아다. 조직은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그 우두머리마저도 어쩔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힘이 생긴다. 개인의 자아를 완성시키려 스스로의 신념을 조직에 걸었을 때의 이야기는 거의 모두 비극이다. 이념으로 뭔가를 해보려 했던 20세기의 천재 몽상가들이 걸었던 길도 둘 중 하나였다. 구체제에 편입된 괴물이 되거나, 아니면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에 휘말려 핏자국도 못 남기고 갈려나가거나.

박창진도 자기 삶의 완성도라는 과녁을 업무 완성도에 일치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자기 일에 충실했고, 그렇게 22년을 최고의 승무원으로 보냈다. 이런 사람이 싸워야 한다면 이기거나 남 위에 서거나 뭔가를 획득하거나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을 뿐이다. 그것만은 맞으니까, 내가 틀린 게 없으니까, 거기서 물러나면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거니까.

가끔 무모하게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가 해온 일로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성과, 자신의 직업윤리, 자신의 직업적 결과물, 그것의 완성도와 완전무결함을 위해 인생을 건다. 누군가가 보면 아무것도 아닐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으면서 낭떠러지에서 홀로 버틴다. 그게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게 당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박창진이 된다.

<에스콰이어>에서 일하며 감사하게도 그런 분들의 삶을 찾아 지면에 옮길 수 있었다. 김시덕, 라종일, 박은정, 황두진, 연천 미라클의 선수들, 트레바리 사람들, 컬링 국가대표팀의 김경두와 의성여고 1기 컬링팀 감독 김경석, 그리고 이달의 박창진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자들, 그런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걸었던 경험을 듣는 건 아주 큰 영광이었다.

이달 박창진을 만나는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사람이 두 명 더 있다. 한 명은 잡지 에디터 출신 작가 허지웅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방송인이 되었음에도 대한항공 4차 촛불 집회의 사회로 섰다. 유명인이 그런 자리에 나서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안다. 다른 한 명은 <에스콰이어> 편집장 신기주다. 한국의 패션 잡지에서 반기업적 이미지를 가진 인물에게 페이지를 할애하는 건 보통 결정이 아니다. 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허지웅과 신기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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