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의 섹스

“언제, 누구와, 어디서, 왜 했나요?” 에 대한 수도권 남녀의 사연.

“그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 프랑스의 법관 브리야 사바랭이 <미식 예찬>에 쓴 말이다. 그는 판사로 살았지만 그를 역사에 남긴 건 그가 먹고 다니며 느낀 걸 써둔 이 책이었다. 성공한 직장인 겸 미식 파워 블로거가 블로그로만 인정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사바랭은 먹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을 안다고 단언했다. 이걸 성생활에 연결할 수도 있을까? “그대 언제 누구와 어디서 왜 했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도 말이 될까?

“직전 섹스는 말하기 싫은데. 지지난번 섹스 말하면 안 돼?” 권헌준 씨의 첫 대답을 듣자마자 저 질문이 제 기능을 할 거란 걸 깨달았다. “직전 섹스는 정말 별로였거든. 친구들이랑 3 대 3 미팅을 하러 오랜만에 서울 밖으로 나갔어. 친구들이 다 짝이 맞아서 나가고 나랑 한 명만 남았는데 그분이랑 하는 건 정말 안 내켰어. 그런데 이미 밤은 너무 늦었고, 거기서 서울 돌아가는 대리운전비를 생각하니 자고 가는 게 낫겠더라.” 그래서 권헌준 씨는 6월 9일 밤에 경인권 어딘가의 모텔에서 내키지 않는 섹스를 하고 밤을 보냈다.

이걸로 권헌준 씨의 모든 걸 정의할 순 없다. 권헌준 씨는 성실한 직업인이자 정직한 납세자이며 건강한 국가관과 평화로운 세계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남자가 이렇게 밤을 보내기도 한다. 헤어지기 전 권헌준 씨에게 하나 더 물었다. 직전 섹스와 지지난번 섹스의 상대가 다른지. “응, 그렇지.” 권헌준 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같은 날 손가영 씨도 모텔에 갔지만 그의 모텔은 권헌준 씨와 달랐다. “남자 친구와 서울에서 놀다가 즉흥적으로 강릉에 갔어요. 뻥 뚫린 양양고속도로를 지나서 예쁜 강릉의 해변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게 됐어요. 어차피 잘 모르는 동네니까 해변 주위에 있던 곳 중에서 제일 멀끔해 보이는 모텔로 갔어요.” 즉흥적인 교외 여행의 마무리가 모텔이라는 건 왠지 흐뭇한 결말이다. ‘모던 코리안 위크엔드’랄까. 하지만 바닷가의 날씨처럼 관계의 향방도 늘 변한다. “그런데 그 이후로 어이없는 이유가 생겨서 헤어졌어요.” 손가영 씨가 말을 이었다.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데 섹스 때문은 아니에요.” 바닷가에서는 한 치 앞을 모른다.

손가영 씨가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기 몇 주 전, 서울의 강가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 섹스한 게 가장 최근이었다고 방준면 씨는 말했다. “전 직장 동료였어요.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술을 좀 마셨어요. 많이는 아니에요. 맥주 마시고 소주 마시고 칵테일 한 잔 더 마시고.” 이 정도 주량을 많지 않다고 하는 것만 봐도 방준면 씨의 체력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솔직히 전에도 궁금하긴 했어요. 저 사람과 자면 어떨까? 그런데 막상 술을 마시니 그 친구가 너무 적극적이었어요. 한강 근처에 있는 어느 호텔에 갔죠.” 방준면 씨는 푸른 셔츠를 잘 입는 도시적인 남자다. 그는 짧은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호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성적 호기심? 그쪽도 비슷했다고 생각해요. 그다음에 서로 연락하지 않았으니까요.” 도시 남자의 도시적인 하룻밤이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요. 8개월? 7개월?” 도시에 방준면 씨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김민선 씨에게 가장 최근의 섹스를 묻자 그녀는 지난 계절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해봐요. 왠지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남자들이 종종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라고 하죠? 그 말이 기분 나쁘긴 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해요. 막 친구처럼 농담하고 장난쳤는데 약간 그쪽으로 모드가 변하지 않는 거예요.” 그 모드를 ‘섹스 모드’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김민선 씨는 남편과 친해지고 마음의 안정을 얻은 대신 성적 호기심이 약해져 ‘섹스 모드’가 켜지지 않는 스위치 같은 사람이 됐다. “한번은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되게 현명해진 것 같다고. 육욕이 사라져서 그런가?” 남자든 여자든, 강렬한 성욕은 내면의 불안정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의무감에 했어요. 굳이 말하면 타이틀 방어전 같은 느낌.” 결혼이 섹스에 뭔가 영향을 미치는 건 확실하다. 곧 결혼하는 진영수 씨는 본인의 최근 섹스를 말할 때 성욕을 깎아 내린 바깥의 환경에 대해 더 많이 말했다. “머리도 쓰고 현장도 다녀야 하는 일을 해요. 요즘 일이 바빠서 컨디션이 굉장히 안 좋았어요. 다다음 주면 결혼하는데 지금 둘 다 일 때문에 예민해져 있어요. 그래서인지 상대에 대한 성적인 끌림도 줄었어요. 하지만 오래 만난 사이에 너무 안 하면 또 관계가 안 좋아지니까….” 우리는 이 부분에서 잠깐 말을 멈추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삶에서 섹스의 의미는 참 다양하다. 우리는 왜 할까?

“모르는 사람이랑 하고 싶었어.” 박승환 씨는 오늘 이야기를 나눈 사람 중 ‘직전’의 시점이 가장 빨랐다. “오늘 오후 2시, 수도권 어딘가의 도시에서, 일하다 잠깐 쉬러 나가서 여자를 찾고 휴게텔로 갔어. 요즘은 회원제 인터넷 서비스를 쓰면 쉬워. 검색 조건도 엄청 다양해.” 모바일 디바이스와 초고속 인터넷은 인간의 성 행동에 아주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평창올림픽 개막 전날이에요.” 정지민 씨의 말을 듣자 ‘아 그래, 올림픽이 있었지’ 싶었다. “제 친구랑, 그 친구 남자 친구랑, 그 남자 친구의 친구랑 넷이 술을 마셨어요. 남영동 막걸리집에서요. 그 남자 친구의 친구는 저보다 네 살이 어렸어요. 친구 커플은 저랑 걔랑 잘될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그 커플이 저희 집에 가는 택시에 그 남자애까지 같이 태웠어요. 저는 술에 취해서 또 집에서 한잔 더 했네요.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긴 했지만 저는 그 아이와 뭔가 더 해볼 생각이 없었어요. 출근길에 그 남자애를 깨워서 같이 나왔어요.” 첨단 디바이스가 인간의 삶을 바꾼다고 해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국 혈중 알코올농도와 밤의 어두움인가 싶기도 했다.

시험 삼아 들었는데 확실히 깨달은 게 있었다. 대답의 내용 자체보다는 대답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흥미로웠다. 가장 최근의 섹스는 말하기 조금 머쓱한 주제다. 그 질문에 대해 얼마큼이나 자세한 정보를 말해주는지, 어떤 말투로 이야기하는지는 당연하게도 모두 달랐다. 담담한 사람, 조금 부끄러워하는 사람, 약간 격앙된 사람. 그 각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더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야기가 통할 듯한 사람과 이 주제로 한번 이야기를 나눠봐도 좋겠다.

이제 이 칼럼에서 김예리 씨의 안부를 적어두지 않으면 걱정과 비난을 받는다. 이번 달에는 김예리 씨가 너무 바빠 섹스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김예리 씨는 바쁜 와중에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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